2005년 2월호

군자가 되려면 ‘혼자 있을 때’를 조심하라

  • 최불암 탤런트

    입력2005-01-26 10: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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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자가 되려면 ‘혼자 있을 때’를 조심하라
    골프를 처음 시작한 것이 1980년 무렵이니 꽤 오랫동안 즐겨온 셈이다. 한창 젊던 시절, 지금은 없어진 여의도의 실내골프연습장에서 공을 치며 골프에 발을 들여놓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1987년, 88년 무렵이 전성기가 아니었나 싶다. 절친한 이들과 함께 틈나는 대로 필드를 누비다 보니 스코어도 절정에 올라 파가 심심찮게 나오곤 했기 때문이다.

    ‘될 듯 될 듯 안 되는’ 골프의 매력을 사랑하지만, 바쁜 스케줄 때문에 뜻대로 필드에 나가지 못하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영화에 드라마, 단막극으로 계속되는 방송 스케줄에 개인적으로 맡고 있는 ‘Welcome to Korea 시민협의회’ 일까지 겹쳐 더욱 바빠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별다른 ‘체력관리’는 호사스러운 일이 되고 말았다. 마음이야 언제나 그린을 그리워하지만.

    ‘내 인생의 골프’에 관해 이야기해달라는 주문을 받고 보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이 2000년 4월에 있었던 한 프로암대회에서의 일화다. 이때를 기점으로 내 골프인생이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골프를 즐기며 가장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일, 흔히 ‘공인’이라 불리는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자세를 깊이 각인한 날이었다.

    사실 그 대회는 평소 뵙고 싶던 실력 있는 골퍼들, 명사들과 함께해 무척 흐뭇한 자리였다. 라운딩을 끝내고 촬영한 오른쪽 사진(왼쪽 끝이 필자)을 보면 그날의 골프가 얼마나 만족스러웠는지를 알 수 있다. 문제는 대회가 끝나고 가까운 음식점에 들러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생겼다. 동행했던 컴패니언 한 분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다른 분은 몰라도 최 선생은 그러시면 안 됩니다” 하고 충고의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무슨 얘기냐고 물으니 이렇게 말했다.

    “아까 라운딩할 때 보니 모래 벙커에 빠진 공을 치기 전에 골프채가 살짝 주변 모래에 닿더군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만, 엄밀히 말하면 룰 위반이지요. 보통 아마추어 골퍼들이 완벽하게 룰을 지키며 플레이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 선생 같은 분이 그런 실수를 하면 주위 다른 사람들이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그때까지 벙커에서 골프채로 모래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공을 파내려 일부러 모래를 건드린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러나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준 그분의 충고는 창피할 만큼 따끔했다. ‘정직’이 중요하다고 누구보다 열심히 떠들고 다닌 사람이다 보니 더욱 그러했다. 자연인 최영한이 아니라 연기자 최불암의 이름이 가진 무게를 다시 한번 절감한 순간이었다.

    흔히 ‘군자인지 아닌지는 혼자 있을 때의 모습을 보면 안다’고들 한다. 저 멀리 벙커에 혼자 들어가 공을 빼내는 경우도 그 가운데 하나여서 누구나 슬쩍 공을 파내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 십상인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그런 짓을 하면 컴패니언들이 반드시 알게 되어 있다. 다만 나서서 말하지 않을 뿐이다. 두 번 세 번 건드린다 한들 그걸 뭐라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나부터도 그런 컴패니언이 있으면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는 편이니 말이다. 허나 생각 없이 모래 위를 스친 골프채도 지켜보는 사람이 있고, 그들이 생각하는 ‘나’는 ‘그런 사람’으로 각인될 수 있는 것이다.

    그날의 경험 이후로는 벙커에만 들어가면 모래를 건드리지 말아야겠다고 지나치게 조심하는 바람에 빠져 나오기가 어렵다. 일종의 강박관념이랄까, 그 일에만 신경이 집중되다 보니 정작 어떻게 하면 공을 쳐낼까 충분히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골프 룰을 정확하게 아는 일에도 신경을 쓰게 됐다. 알고도 안 지키든 몰라서 안 지키든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면 안 될 테니 말이다. 정직하고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골프를 즐기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요즘에는 한 편의 드라마나 영화를 준비하는 일이 흡사 자동차 운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목적지를 정해놓고 이러저러한 흐름과 리듬을 타가며 도착하는 것이다. 골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유롭고 깔끔하게 차를 모는 사람도 있고, 신호를 위반하고 과속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조금 일찍 간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고 스코어가 조금 잘 나온다고 기뻐할 이유도 없다. 따지고 보면 이 나이에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것도 누가 보든 안 보든 정직한 골프를 치듯 담백하게 살려고 애써온 덕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정직하고 솔직하게’ 골프를 치는 습관은 아내도 마찬가지다. 부창부수라고 할까, 가끔은 아내가 나보다 훨씬 더 깐깐하게 굴기도 한다. 아주 세밀한 룰 하나하나까지 꼼꼼히 체크하면서 “당신 그러면 안 돼!” 하고 지적하는 모습이 젊은 시절 못지않게 사랑스럽다.

    밤샘촬영을 거듭하며 강행군하고 있는 이번 드라마를 마치면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필드에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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