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르포

‘아빠의 부도’ 그 후… 아이들이 살아가는 법

“학원 안 가도 공부 잘하고, 휴대폰 없어도 기죽지 않아요”

  • 글: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아빠의 부도’ 그 후… 아이들이 살아가는 법

3/4
‘아빠의 부도’ 그 후… 아이들이 살아가는 법

과도한 빚을 지거나 사업에 실패해 자녀를 돌보지 못한 집안의 아이들이 도심 유흥가를 점령하고 있다(사진은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는 준영이에게 서울에 있는 회사 구경을 시켜줬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으리으리한 정경에 입이 딱 벌어졌다. 아버지가 사용하는 사무실은 넓고 멋있었지만, 준영이는 어머니의 걱정스런 눈빛도 놓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갑자기 사업 규모를 키우는 것에 못내 불안해 했다. 준영이도 조금은 걱정스러웠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벤처기업의 거품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꿈이 현실을 너무 앞섰는지, 아버지는 준영이가 중학교 2학년에 다닐 무렵 사업에서 손을 뗐다. 어머니에게서 부도가 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언제부턴가 아버지는 회사에 나가지 않고 집에 있었다.

“아버지는 대우그룹에서 일하셨어요. 김우중 회장님이 계시던 곳이잖아요. 대우가 힘들어지면서 아버지는 회장님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사업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성급하게 일을 벌이신 것 같아요. 그래서 실패했다고 생각해요.”

아버지의 과오는 아이들의 눈에도 여과 없이 비친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실패 원인을 분석해보고, 재기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본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아이들은 성장한다. 준영이도 그랬다. 아버지의 실패로 집안 분위기가 어두워졌지만, 오히려 준영이의 꿈은 활짝 피기 시작했다.

중학교에서 전교 50등을 맴돌던 그는 아버지의 실패를 보고 난 뒤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학원비가 비싸지니까,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학원비를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듯 적극적으로 난관을 넘어서기로 결심한 덕분에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는 반에서 1등, 전교에서 5등을 오르내리는 실력파가 됐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넓어지고 깊어졌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나서서 반장을 맡았고, 간부 수련회에 가서는 회장 노릇을 자진해서 했다. 2학년에 올라와서는 선생님이 활달한 준영이에게 임시반장을 맡겼다. 선생님 심부름으로 숙제 공책을 걷을 때도 그는 친구들에게 걱정은 없는지, 힘든 점은 없는지 꼭 물어본다. 그만의 친구 사귀는 법이다.

실패는 혼자 남는 것

준영이는 “집안이 어려워졌다고 움츠러들긴 싫었다”며 “더 적극적으로 아이들을 사귀고 공부도 운동도 열심히 했다”고 했다. 조현정 재단의 장학금 수여식에서도 그는 처음 만난 친구들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들어간 선배들과도 어울리면서 특유의 사교성을 발휘했다. “성공과 실패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니?” 하고 묻자 준영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실패는 혼자 남는 것, 성공은 사람이 모이는 것이죠.”

아버지는 실패한 뒤에도 의연했지만, 웬만해선 바깥출입을 삼갔다. 만나던 사람들과 관계를 끊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에게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좋다”며 성격이 활달한 아들을 격려했다. 잠시 뜻을 이루지 못한 아버지의 삶을 보고 준영이는 이런 교훈을 얻었다고 했다.

“실패했을 때 도와줄 수 있는 인맥을 쌓아야 해요. 성공했을 땐 실패한 사람들을 도와줘야 하죠. 내가 실패할 수도 있잖아요. 실패했을 때는 풀 죽어 있지 말고 성공한 사람들을 찾아다녀야 해요. 실패한 사람들끼리 만나봤자 더 외롭기만 할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을 못 한다는 것

인터뷰를 마칠 무렵 준영이는 아버지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성적표를 한 번이라도 봐줬으면 하는 것이다. 준영이가 공부를 썩 잘해서 아버지는 지금껏 한번도 성적표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통해 슬쩍 성적표를 봤을 것이라고 짐작하긴 한다. 하지만 아들의 성적을 보고 미래 직업이나 계획에 대해, 그리고 준영이가 꿈꾸는 토목기사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한마디해줬으면 하는 것이 아들의 바람이다. 실패는 그렇게 또 다른 성공의 싹을 틔우고 있었다.

나중에 탤런트를 해도 될 만큼 예쁘게 생긴 민주는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다닌다.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으니 “경영인이 될까. 아니, 아저씨 같은 기자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아니야, 외교관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요” 하며 깔깔댔다. 민주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꿈도 많은 소녀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민주는 태국 방콕의 인터내셔널 스쿨을 다녔다. 그곳에서 사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방콕으로 갔다. 여러 나라에서 온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는 학교에 다닌 덕분에 민주는 세상을 보는 눈이 또래보다 넓다. 외교관이 되어 넓은 세상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문물을 보고 다양한 사람을 사귀고 싶기 때문이란다. 그래도 경영인의 꿈은 접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가 못다 이룬 사업가의 꿈을 대신 이루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3/4
글: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목록 닫기

‘아빠의 부도’ 그 후… 아이들이 살아가는 법

댓글 창 닫기

2020/03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