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 내 헌법조사위원회는 현행 헌법에 대한 다양한 개정안을 마련해놓고 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가 왜곡을 서슴지 않고 헌법에서 전쟁금지조항이 삭제된다는 것은, 1920년대 전후에 그러했듯이 군부 세력의 득세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 다음 단계로 현행 일본헌법 제4조를 삭제하려는 시도는 정세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결정적으로 말해준다. 현행 일본헌법 4조는 ‘천황은 국가적 문제에 결정권이 없다’는 것이다.
‘신성한 日王’의 부활?
1920~30년대에 ‘신성 천황’ 개념은 일본 군부가 녹슨 칼 휘두르듯 내세우던 구호였다. 천황을 손아귀에 넣고 조종하던 군부는 ‘만세일계의 현인신(現人神) 천황’의 이름으로 각종 군사조직을 강화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지금(1982년) 그런 것처럼, 교과서 내용을 왜곡했다.
한국과 일본의 건국신화의 시대적 배경은 모두 청동기 문화시대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신화내용이 엇비슷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건국신화는 일본보다 더 일찍 생겨났다. 한국인들이 석기시대 일본으로 이주해 가면서 우수한 무기와 건국신화도 따라서 이동했다. 이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공통된 현상으로, 앞선 문화와 앞선 기술의 무기를 가진 민족은 늘 그보다 못한 민족을 정복했다.
역사왜곡 또한 인간이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래로 수많은 나라에서 행해진 일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보다 정직한 미술사를 선호한다. 중국 역사가들이 남긴 전형에서 보듯, 새 왕조를 연 개국공신들은 언제나 전 왕조를 비난했다. 공산주의 국가는 역사를 아예 사상의 선전도구로 활용했는데, 옛 소련이나 북한이 책을 정직하게 기술하길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다. 그에 비해 일본과 서독은 민주국가를 표방한다. 민주국가라는 일본이 한일강제합방이나 난징 대학살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부인한다면 독일이 히틀러를 영웅이라고 정당화하는 것이나 다를 게 없다.
일본의 왕에게 아무 권력도 없던 중세에는 역사가 비교적 정확하게 기술됐다. 그러나 일본 군부가 아시아를 침탈하는 팽창정책에 천황이 이용되면서, 일본의 교과서는 선전도구가 되고 말았다. 최근 자민당은 일왕을 상징적 존재 이상으로 만들려 노력하고 있어 그 실현은 시간문제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일본인들은 이를 ‘국내 문제’라 할 것이다. 어떤 면에선 그렇다. 불행하게도, 수백만명이 그것이 일본 내 문제가 아닌 세계의 문제’임을 알고도 말할 수 없게 됐다. 죽었기 때문이다. 그 ‘문제’는 한때 아시아 8개국에 처참한 결과를 가져왔고 여타 국가에도 말할 수 없는 영향을 끼친 ‘세계의 문제’였다.
악명 떨치던 일본 경찰
일본이 상대적으로 빈곤국가이던 1920년대에도 군국주의의 대두는 그처럼 심각한 것이었다. 이제 일본은 세계 제2의 부국이며 경제적으로 번영하는 국가로 성장했다. 따라서 군국주의는 백배 더 가공할 사태를 불러올 것이다. 한때 한국인들은 누구나 일본 경찰을 두려워했다. 한낱 동네 경찰이라 해도 일본에서조차 1930년대의 양식 있는 시민에게는 막강한 군부세력의 말단조직원으로 진정 두려운 존재였다.
일본에 머물 때의 일이다. 나는 여행길에 배의 상갑판에 올라가 있었다. 그때 “천황의 초상화를 싣고 가는 배의 상갑판에 올라간 것은 불경죄에 해당하니 당장 내려오라”고 해서 억지로 내려서야 했다. 또 말이 날뛰는 바람에 위험에 처한 일왕비에게 뛰어들어 목숨을 구해준 어느 남자는 ‘신성한’ 왕비의 비단옷에 손을 댔다는 이유로 손목이 잘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흔히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한다. 일본은 정말 ‘신성’의 시대로 되돌아가는 중인가. 히로히토 천황이 취미인 물고기 표본에 심취하는 팔순의 멋진 노인으로 남아 있기를 나는 바란다.
[#2] 일본인은 솔직해질 수 없다
1980년 나는 유네스코 강당에서 3대의 영사기로 컬러 슬라이드를 비춰가며 한국·중국·일본의 예술형태를 통해 극동의 세 나라를 비교하는 강연을 했다. 세 나라의 특성을 한마디로 요약할 말을 찾다가 영어의 C자로 시작하는 낱말을 떠올렸다. 중국은 통제(Control), 한국은 무심함(Casual), 일본은 작의적(Contrived)이라고. 이런 대비는 삼국의 도자기를 비교해보면 뚜렷하게 드러난다.
중국 도자기는 가마와 유약의 사용을 철저하게 관리한 결과 특히 도자기에서 완벽의 경지를 이뤄냈다. 한국의 도공은 언제나 자연스럽기 짝이 없고 무심해서, 이들이 만들어낸 도자기에는 도공의 기질과 불이 어떻게 작용했는지가 그대로 반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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