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모 노마드 - 유목하는 인간’ <br> 자크 아탈리 지음/이효숙 옮김/웅진닷컴/535쪽/2만원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 자크 아탈리는 그 해답을 ‘노마디즘(Noma-dism)’에서 찾는다. 유목민적 행위와 삶을 뜻하는 노마디즘이 인류 역사의 근간을 이뤄왔고 미래 사회를 개척해나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는 600만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시대로부터 미국이라는 제국이 해체될 미래까지 인류의 역사를 노마드의 시각으로 새롭게 풀어냈다. 즉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6000년 정착민의 역사가 아닌 600만년에 걸친 노마드의 역사에서 찾은 것이다. 정주성(定住性)은 인류사에 아주 잠깐 끼여들었을 뿐이고 이제 다시 노마드로 되돌아가고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나타난 변화와 지금 일어나는 변화, 앞으로 다가올 변화에 대해 노마디즘적 시각으로 조망하는 이 책은 우선 그 스케일이 방대하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부터 호모 에르가스테르를 거쳐 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에 이르는 인류의 진화와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 로마제국의 생성과 멸망, 제국주의, 산업혁명, 1·2차 세계대전과 이후 미국의 패권주의와 그 미래까지 조망한다.
또 수백에서 수천 개에 달하는 부족과 종족의 이름, 지구상에서 명멸한 수많은 국가의 이름이 등장한다. 마치 인류사나 인류문화사, 세계문화사나 세계경제사를 읽는 것 같다. 저자는 인류의 본성인 노마드를 야만과 무지의 역사로 폄하한 정착민의 사관을 부정하고 방대한 사료분석과 역사연구, 문화탐구를 통해 인류문화와 문명 및 역사를 새롭게 해석한다.
노마드(Nomad)는 원래 ‘유목민’을 뜻하는 말로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가 처음 사용한 철학적 용어다. 자크 아탈리는 이를 ‘특정한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삶을 탐구하고 창조해온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또는 ‘디지털시대 현대인의 새로운 생존전략’으로 확대 조명하고 있다.
또 인류의 진화를 노마드의 산물로 해석한다. 불, 언어, 농경, 예술, 유일신, 시장, 민주주의 등 문명의 토대가 된 창조물을 고안한 것도 노마드다. 반면 정착민의 발명품은 국가, 세금, 감옥, 총, 화약뿐이다. 그가 역사 속에서 발견한 노마드는 몽골족, 스키타이족, 흉노족, 게르만족, 바이킹족, 투르크족처럼 대규모 이동을 했던 집단종족만을 뜻하지 않는다. 상인, 선원, 해적, 순례자, 음유시인, 곡예사, 탐험가, 집시, 이민자, 카우보이, 호보(미국의 뜨내기 노동자) 등 정착민 시대의 모든 주변적 존재까지 포함한다.
세계화는 ‘상인 노마디즘’
인간은 여행을 통해 태어난다. 인간의 몸은 정신과 마찬가지로 노마디즘에 의해 형성된다. 500만년 전 인류 최초의 조상이 나무에서 내려와 진화하면서 살아남은 종은 유랑생활에 가장 잘 적응한 부류뿐이다. 그들은 정착민이 되고 난 후에도 노마디즘을 버리지 않았다. 기독교는 정착민적 소유물을 늘리지 말고 노마드적으로 살라고 권고한다. 풍요와 이상향을 꿈꾸는 노마드적 모험가들은 망망대해를 헤쳐 신대륙을 발견했고 정복자 노마드는 그곳의 원시 노마드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노마디즘은 자연적이고 창조적이다. 저자는 신대륙의 발견과 개척뿐 아니라 지난 5000년간의 인류 문명사를 모두 정착민과 노마드의 투쟁과 전쟁으로 해석한다. 노마드가 다른 정주민족의 땅을 빼앗아 정주민이 되어 국가를 이루고, 이 국가는 다른 노마드에 제압당해 또 하나의 정주국가를 이루는 과정의 연속으로 이해한다.
저자의 눈에는 세계화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세계화를 세계적인 상인 노마디즘으로 정의한다. 최초의 세계화, 즉 최초의 세계적인 상인 노마디즘은 18세기에 시작된다. 제노바·네덜란드·영국의 상인들과 지식인, 예술가들은 자유롭게 여행하면서 유럽 대륙의 문화적 정체성을 만들어갔다. 하지만 정주민의 공동체인 국가는 여행의 자유화를 불미스럽게 여기고 이를 막거나 더디게 하는 조치를 취한다. 여권과 통행증 발급을 통한 감시와 추방이 그것이다. 또 정주 관료들에게는 세계화가 혼란과 무질서로 다가왔다. 결국 상업적 노마디즘은 한계에 부딪히고 개방의 문을 걸어 잠그게 된다. 노마드들은 강제로 아메리카대륙으로 보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