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세계화는 산업적 세계화다. 19세기 초 산업혁명, 즉 산업적 노마디즘이 그것이다. 자동차의 발명, 철도와 운하의 건설, 화폐제도의 발달 등으로 상품의 이동과 결제가 빠르고 많아지면서 빈곤한 노마드와 부유한 노마드 사이에 깊은 골이 팬다. 하지만 두 번째 세계화도 중단된다. 1929년 대공황으로 세계경제가 휘청거리면서 세계화가 유발한 빈곤에 대한 반작용으로 전체주의가 생겨나게 된 것. 이때 유럽역사상 뛰어난 노마드였던 유대인 600만명이 학살당한다.
20세기 후반 상업적 노마디즘이 다시 가동된다. 이 세 번째 상업적 노마디즘은 주로 상인과 상품을 유통시킨다. 상품 유통의 자유를 보장하는 국제기구가 창설되고 모든 사람의 이동과 이주의 권리를 선언하는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된다. 상품의 이동은 10년마다 세 배씩 증가하고 있으며, 매년 10억의 인구가 이동한다. 매 순간 100만명이 비행기와 함께 공중에 떠 있는 것이다. 도시는 일상적인 노마디즘의 플랫폼이 되었고, 도로는 이제 주거지보다 더 중요하다.
미국과 노마디즘의 충돌
저자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도 노마디즘으로 예견한다. 기업은 제한된 시간에 주어진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유랑극단이 될 것이고, 국가는 노마드 행렬이 지나가는 오아시스일 뿐이다. 실제로 현재 인간·기업·물건의 이동은 점점 빨라지고 도시 유목민, 해외주재원, 배낭여행자, 사이버 여행객 등 새로운 형태의 노마드가 넘쳐난다. 이에 노마드용 여행도구와 놀이문화가 생성되고 있다. 상업적 노마디즘의 과잉이다.
이제 세계화를 지휘하고 있는 미국이 이 상업적 노마디즘과 충돌하게 된다. 저자는 이에 노마드 반란자들이 쇠퇴해가는 미제국과 그 연합국들에 대항해 영토를 초월한 하나의 제국을 건설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원시 노마드의 자연주의 정신을 되찾는다면 이런 반란으로부터 견뎌낼 수 있을 것이나, 그렇지 못하면 미래는 시장과 민주주의, 이슬람이라는 세 가지 형태의 노마드 세력과 미국의 대립과 투쟁으로 치닫게 될 것으로 본다. 미국 자체가 확산의 전도사로 나선 시장과 민주주의, 상업적 노마디즘인 세계화가 결국 미국의 적이 된다니 아이러니하다.
또 저자는 미래 인류를 세 부류, 즉 창의적인 직업을 가지고 많은 정보를 창출하고 향유하며 부유하게 살아가는 극소수의 하이퍼 노마드와 농민·상인·공무원·의사·교사 등 정착민 그룹, 그리고 노숙자·이주노동자와 같이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동해 다니는 인프라 노마드로 나눈다.
하이퍼 노마드는 미래 상업적 노마디즘의 주역이다. 그들은 전세계를 지배하는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실제와 가상공간에서 새로운 식민지를 찾고 있다. 하지만 세계는 여전히 극빈 인프라 노마드로 가득 차 있다. 저자는 인프라 노마드가 2050년경 인류 인구의 절반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한다. 이들은 하이퍼 노마드와 충돌하게 될 것이다.
바람직한 미래, 트랜스 휴머니티
그렇다면 인류의 바람직한 미래는 어떤 것일까. 저자는 미래의 바람직한 인류상을 호모 노마드가 아니라 노마드적인 정착민, 즉 정착민적 가치와 노마드적 가치의 변증법적 가치인 트랜스휴먼에서 찾는다. 저자는 저서 ‘21세기 사전’에서 19세기가 자유의 시대, 20세기가 평등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박애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박애가 바로 노마디즘과 정착성 사이에서 어느 하나의 선택이 아닌 그 둘을 공동의 이익으로 받아들이는 트랜스 휴머니티가 아닐까.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우리나라를 오랜 문명을 가지고 있으면서 많은 노마드 부족이 역동적으로 교차하고 새로운 기술로 무장된 노마드 기기가 시시각각 발명되는 노마디즘 나라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21세기 디지털 유목 한국을 표방하고 있는 우리에게 이 책은 인류의 과거와 현재뿐 아니라 우리 사회와 주변 환경을 되돌아보고 미래를 예견해보게 하는 좋은 해설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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