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호

공공기관 지방이전 막전막후

“청와대 실세 수석들, ‘빅4 내고향 유치’ 총력전 ‘한전 광주행’ 일찌감치 내정, 눈치보며 규모 축소”

  • 송국건 영남일보 정치부 기자 song@yeongnam.com

    입력2005-07-28 14:0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이강철 수석, ‘대구 챙기기’ 열성
    • 이해찬 총리, 화난 부산시장에게 미군부대 땅 양여 약속한 듯
    • 한국감정원 등 5개 기관 이전지, 발표 30분 전 뒤바뀌다
    • 열린우리당, ‘보안’ 이유로 논의에 끼지도 못해
    공공기관 지방이전 막전막후
    “기적 같은 일을 우리가 해냈다.” 지난 6월24일 수도권에 있는 346개 공공기관 가운데 176개 기관을 12개 광역시·도로 이전하는 내용의 ‘공공기관 지방 이전안’이 발표되자 이 작업을 주도한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이하 균발위)와 건설교통부에서는 환호와 탄성이 터져 나왔다.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6월12일, 지방화 정책의 일환으로 수도권에 있는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옮기겠다는 노 대통령의 ‘대구 구상’이 발표된 이후 2년여 만에 결과물이 나온 것이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대한 반대 여론, 회의론이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해당 부처로서는 ‘어려운 숙제를 마침내 풀어낸 기분’이 들 법도 했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수도권에 있는 공공기관 본사 인력 3만2000명과 그 몇 배에 이르는 가족, 연관산업 종사자들을 포함해 90만명이 지방으로 이동하는 거대 프로젝트다. 사업의 핵심은 ‘이전 대상지 선정’에 있었다. 균발위 한 간부는 “176개 공공기관을 12개 시·도로 나눌 때 발생하는 경우의 수를 상상해보라”고 했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비수도권 시민에게 큰 관심사안이므로, 비수도권 지역 신문 기자인 필자는 지난 2년여간 성경륭 균발위 위원장 등 이 사업의 핵심 관계자들을 상대로 밀도 높은 취재를 벌여왔다. 이전 대상지 선정과 발표에 얽힌 뒷이야기를 소개한다.

    당초 공공기관 지방이전지 발표는 2003년 12월에 하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민감한 사안이다보니 다섯 차례나 연기돼 2005년 6월 발표하게 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서울시 등 수도권, 공공기관 노조, 규모가 작은 공공기관을 유치한 지방 자치단체의 반발은 예상보다 약한 편이었다고 할 수 있다.



    6월24일 당일에도 국무총리실에서 “또 연기된다”는 말이 돌았다. 확인 결과, 통일교육원을 빼는 문제를 놓고 빚어진 혼선이 확대해석된 것이었다. 실제로 그간의 정부 발표나 언론 보도를 보면 이전기관이 177개로 돼 있는 경우도 많다.

    “양치기 소년이 돼 있었다”

    공공기관 지방 분산배치 방안 발표는 거듭 미뤄졌지만, 균발위와 건교부가 자의적으로 연기한 것은 처음 한 차례뿐이다. 나머지는 탄핵 등 어쩔 수 없는 외부 요인에 따른 것이다. 균발위 한동환 비서실장은 “우리는 ‘늑대가 나타났다’고 소리친 적도 없는데 양치기 소년이 돼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2년이나 끌면서 수차례 발표 연기의 과정을 거친 것이 오히려 수도권 지자체, 노조 등 이전 반대론자들의 진을 빼 후폭풍을 그나마 약하게 한 효과가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정자립도를 높이고 고용효과도 창출할 수 있는 대형 공공기관 유치를 놓고 각 시·도의 경쟁은 치열했다. 더구나 지방선거가 불과 1년 앞으로 다가와 시도지사들은 사력을 다했다. 이들은 틈나는 대로 청와대로, 균발위로, 건교부로 뛰어다녔다.

    정부는 이전 대상지를 공정하게 선정하겠다고 했지만, 시도지사들 중 그 말만 믿고 “알아서 잘 보내주겠지” 하며 손놓은 사람은 없었다. 특히 시도지사들은 청와대 등 여권에 몸담고 있는 동향 출신 실세에게 매달렸다. 여당 소속 단체장은 말할 것도 없고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소속 단체장들도 일제히 줄을 찾아 움직였다. 청와대의 수석비서관 또는 대통령 보좌관급이 최우선 로비 대상이었다. 균발위와 건교부의 고위직도 비슷한 비중이었고, 그 다음이 열린우리당 지도부, 국회 건설교통위 소속 열린우리당 의원 순이었다.

    청와대의 경우 부산 출신인 문재인 민정수석과 대구가 고향인 이강철 시민사회수석이 각각 부산·경남과 대구·경북의 민원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원은 성경륭 균발위 위원장이 원주에서 대학교수 생활을 한 점에 기대를 걸었다. 호남지역 단체장들은 동향인 정찬용 전 청와대 인사수석과 김완기 현 인사수석에게 상황이 변할 때마다 ‘SOS’를 타전했다.

    동향 출신 수석비서관급이 없는 일부 자치단체에서는 비교적 역량이 있는 1~2급 비서관에게 “고향을 위해 힘을 써달라”고 매달렸다. 3~4급 행정관에게까지 줄을 대는 단체장도 있었다.

    청와대 실세 인사들이 주로 부탁받은 것은 한전 유치. 그것이 어려우면 ‘빅4’ 가운데 한 개 기관 유치였다. 어차피 각 시·도에 공공기관을 배치함에 있어 수적으로 형평을 맞추기로 했으므로 유치할 공공기관의 ‘덩치’가 문제였다.

    ‘빅4’란 본사 임직원수 1125명, 연간 매출액 23조6608억원의 한전을 필두로 한국도로공사(695명·2조4380억원), 한국토지공사(796명·4조2000억원), 대한주택공사(1459명·3조940억원) 등 지역경제에 파급효과가 큰 초대형 공공기관을 의미한다. 빅4의 뒤를 한국가스공사가 잇는다.

    영남 출신 모 수석은 해당 지역 언론사 기자들이 사석에서 “어떻게 돼갑니까, 우리 지역에 어떤 기관이 옵니까” 하고 물을 때마다 “걱정하지 마쇼. 빅4 가운데 하나는 오지 않겠습니까” 하고 장담했다. 그의 참모는 “나중에 우리 수석님이 유력 공공기관을 유치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소개해달라”며 은근히 부각시키기도 했다.

    한 유력 언론이 “대구엔 (규모가 영세한) 광업공사가 온다”고 보도하자 청와대 주변에선 “그런 안이 실제로 검토됐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인적 구도로 보아 보도내용이 그대로 실현되기는 어렵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추병직보다는 성경륭에게“

    청와대 실세 인사들의 ‘청탁 루트’는 대체로 건설교통부는 아니었다. 이들은 동향 단체장들에게서 받은 청탁을 균발위 성경륭 위원장에게 전달했다. 대통령 직무정지 기간에 노무현 대통령이 ‘칼의 노래’ 외에 탐독한 또 다른 책은 ‘이제는 지역이다’였다. 이 책은 균발위가 발행한 것이다. 행정도시건설과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노 대통령식 개혁의 핵심인데, 후자를 실현하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만든 기구가 균발위다. ‘위원회’ 조직임에도 연간 5조원의 예산집행권을 줬다. 대통령은 성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줬고, 청와대 실세 인사들은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청와대와 균발위는 가까운 위치에 있지만, 따로 만날 경우엔 오해 받을 소지가 있기 때문에 주로 청와대 실세가 전화로 설명하고 부탁하는 식이었다. 노 대통령 주재로 열리는 ‘혁신과제 회의’처럼 대통령 자문위원회 위원장들과 청와대 수석비서관, 각료들이 함께 참석하는 회의나 모임은 좋은 기회가 됐다. 청와대 실세 인사들이 성 위원장, 추병직 건교부 장관 등과 귀엣말을 나누는 광경이 자주 눈에 띄었다.

    “청와대 실세 인사들은 단체장의 부탁을 받아 민원을 전달하긴 해도 구체적인 배치안을 짜는 데 적극 개입하지는 않았다”고 필자가 만난 정부 간부들은 증언한다. 공공기관 지방 분산배치에 대한 노 대통령의 의지가 강한 데다, 너도나도 유력 공공기관 유치를 고집할 경우 만사가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강철 수석은 유력 공공기관을 대구로 끌어오기 위해 대놓고 나섰다. 빅4의 하나인 도공이 경북에 갔음에도 같은 경제권인 대구에 빅4 다음으로 덩치가 큰 한국가스공사(본사 임직원 632명, 연간 예산 9조1513억원)를 유치한 데에는 이 수석이 나름의 몫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수석은 한나라당 소속 경북지사, 대구시장과도 업무적으로 협조관계에 있었다. 이와 관련, 대구시가 한전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다 공공기관 지방이전 발표가 임박한 시점에 예상을 뒤엎고 한전 유치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은 점은 미스터리로 남았다.

    일각에선 “10월 국회의원 재·보선을 염두에 둔 행보 아니겠느냐”는 분석도 나왔다. 이 수석은 지난해 17대 총선 당시 대구 동갑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는데, 10월 재·보선 때 인근 지역인 대구 동을에서 선거가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대구에서 동구는 공공기관이 이전될 혁신도시 후보지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 수석과 공공기관 이전 주무부처인 건교부의 추병직 장관은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다. 두 사람은 경북대 동문인데다 지난해 총선 때 열린우리당 외부인사 영입단장이던 이 수석이 여권의 총선 올인 전략에 따라 건교부 차관이던 추 장관을 설득해 경북 구미을에 출마시킨 인연이 있다.

     공공기관 이전 배치안이 발표된 당일 이 수석은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동문 100여 명이 모인 초청 특강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대구에 오는 한국가스공사는 지역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며, 한국전산원은 현재 추진 중인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 분원 설립과 함께 차세대 성장산업인 정보통신(IT)산업을 육성하는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수치를 나열하며 설명하는 등 대구 이전 공공기관에 대해 연구해왔음을 읽을 수 있었다. 또 특강 후 지인들과 만나서는 공공기관 분산 배치에 따른 지역갈등 최소화가 시민사회수석실의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인데, 이 와중에서 고향에 유력기관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던 어려움도 토로했다고 한다.

    영·호남 실세, 동분서주

    문재인 민정수석은 국회 건교위원으로서 열린우리당 부산시당 공공기관유치특위 위원장을 맡았던 조경태 의원과 수차례 만나 균형발전위와 건교부의 동향을 점검하고 대책을 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그는 이강철 수석과 함께 당·정·청 여권 핵심인사들의 정례모임인 ‘11인회’ 멤버인데, 여기서 간혹 공공기관 이전 문제가 의제로 오를 때면 적극적으로 부산경남의 여론을 전하기도 했다.

    공공기관 이전을 둘러싸고 로비전에 불이 붙은 시점인 지난 5월 중순, 서울시내 모 음식점에 문 수석과 송규정 회장 등 부산상공회의소 회장단 일행이 마주앉았다. 이 자리에서 부산상의측은 “부산이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데도, 참여정부 출범 후 이렇다 할 혜택을 본 게 없다”고 불만을 토로한 뒤 “한전은 물론, 유력 공공기관들이 부산에 올 수 있도록 힘써달라”고 건의했다. 특히 이들은 “부산은 현재 원전 4기 가동에 4기 추가 건설 등 원전시설 집적지역인 데다 조선, 자동차, 철강 등 전력산업 연계업종이 대거 들어서 있어 누가봐도 한전 이전의 최적지”라고 문 수석을 설득했다.

    이에 대해 문 수석은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 청와대 민정수석으로서 언행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 때는 이미 정부 내에서 한전의 광주행이 확정적이었던 만큼 ‘한전 부산 유치에 노력하겠다’는 정도의 립서비스도 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주변에선 추정한다.

    경남을 위해선 경남도지사를 지낸 김혁규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과 김두관 대통령정무특보가 뛰었다. 김 상중위원은 도공 또는 주공을 경남으로 유치하는 작업을 막후 지원했다. 여권 내에서 한전 서울 잔류안을 찬성한 쪽은 주로 열린우리당 지도부였다. 이들은 한전이 특정 지역으로 이전할 경우 그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우려했다. 그 중에서 문희상 의장과 김 상임중앙위원이 ‘서울 잔류론’을 적극 개진했다.

    최근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밝힌 김두관 대통령정치특보의 경우 5월23일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특보 위촉장을 수여받자 곧장 경남으로 내려가 남해와 창원, 마산을 잇달아 방문해 공공기관 유치 등 지역 현안을 설명듣고 적극적인 노력을 다짐했다.

    정찬용 전 인사수석과 김완기 현 인사수석은 바통을 주고받으며 호남지역에 유력 공공기관을 유치하기 위해 열성을 다했지만 두 사람의 스타일은 달랐다. 정 전 수석이 이것 저것 눈치보지 않고 호남의 낙후성을 거론하며 한전은 광주로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김 수석은 공무원 출신답게 신중하게 접근했다는 후문이다.

    김완기, “좋은 결과 나올 것”

    김 수석은 6월1일 광주·전남지역 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한 기자가 “지역에서 시민사회단체 출신인 김 수석이 지역 숙원사업에 대한 해결사 역할을 해달라는 여론이 있는 것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김 수석은 “충분히 알고 있다”면서도 “숙원사업은 지역 국회의원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므로, 공직자 출신인 나는 인사수석의 역할에만 충실할 생각”이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공공기관 이전 대상지역 선정기준에 대해 그는 “지역 낙후도가 우선돼야 하며 이는 공공기관 이전 정책에 이미 충분히 반영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조만간 좋은 결과가 도출될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했다.

    반면, 정 전 수석은 광주의 한전 유치에 큰 관심을 가졌다. “한전보다는 수준급 연구소 5~6개가 더 낫다”고 주장한 열린우리당 염동연 의원과는 다른 의견이었다. 염 의원은 “지방세 190억원을 걷는 것보다는 광주가 하이테크 도시로 나아가도록 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소신을 가졌다.

    부산의 경우 여권 실세와 한나라당 소속 단체장 사이에 충돌이 빚어졌다. 부산은 빅4 등 유력 공공기관을 한 곳도 유치하지 못했다. 허남식 부산시장은 공공기관 이전 배치안이 확정 발표된 직후 강하게 반발하며 정부를 맹비난했다. 그러자 청와대의 부산 출신 핵심 인사가 이를 맞받아쳤다.

    “꼬붕인 줄 아나”…부산의 내분

    한국토지공사 유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추궁당하게 된 허 시장은 “정부가 당초 1개 시·도에 1개 대규모 기관을 배치하겠다는 원칙을 협의 없이 바꿔 유관기능군(群)과 산업특화기능군(群)에 묶어 일괄배치했다”며 이를 토공 유치 실패의 원인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정부에 왜 이처럼 방침을 변경했는지 해명을 요구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산지역 언론사 기자들에게서 이 말을 전해들은 청와대 인사는 매우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성경륭 위원장이 국회 건교위에 배치기준 변경을 보고했으면 됐지, 일일이 단체장들을 찾아다니며 얘기해야 하는가. 균형발전위원장이 단체장의 꼬붕(부하)인 줄 아느냐”고 일갈했다. 그는 또 “부산 출신 한나라당 의원들한테도 다 들었을 텐데, 그때는 조용히 있다가 지금 와서 배치기준 변경을 문제삼는 이유가 뭐겠냐”며 “재선을 의식해 자기의 허물은 덮고 모든 책임을 여권에 돌리려는 것 아니냐”고 비난했다.

    성 위원장도 “5월27일 시·도지사와 협약식을 맺을 때 내부적으로 대형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기능군을 만들어 배치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6월14일 이를 국회 건교위에도 보고했고 공개적으로 알렸는데 부산시의 정보가 부족했을 것으로 본다”고 부산시에 직격탄을 날렸다.

    국회의원들은 광화문 균발위와 과천 건교부 청사를 드나들며 공공기관 이전과 관련한 민원을 전달했다. 특히 민주당과 경쟁관계인 호남의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대형 기관 유치에 명운을 걸고 사력을 다해 뛰었다.

    간혹 한나라당 의원들도 공공기관 이전 문제에 불참한다는 당론에도 불구하고 은밀히 정부부처를 찾아가 지역구의 사정을 설명하면서 배려를 요청했다. 부산 의원들이 가장 적극적이었고 경북은 K의원 정도를 제외하곤 무관심했다. 호남에선 민주당 L의원이 적극적이었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귀띔이다.

    균발위 사무실에는 단체장과 정치인은 물론, 정보를 수집하려는 공공기관 임직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위원장 비서실에서는 성 위원장에게 면담이나 전화통화를 신청하는 사람들을 체크해 특정한 쪽에 상대적으로 접촉기회를 많이 주지 않도록 했다.



    이의근 경북지사는 거의 매일 성 위원장과 추 건교장관에게 전화를 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영남과 중부권의 모 시장과 모 도지사는 거의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또 어느 단체장은 실제로 한 일은 전혀 없으면서 언론 플레이에만 주력했다. 이 단체장은 가끔 균발위와 건교부에 들렀다 돌아가곤 했는데 이렇다 할 사람을 만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OO를 방문해 XX기관의 이전을 약속받았다’는 식으로 보도자료까지 만들어 홍보했다.

    자치단체들은 공공기관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아파트 특별분양, 공유지 무상제공은 기본이고 임직원 부인 취업 등 기발한 ‘공약’도 내놓았다. 전북은 한전, 토공, 주공 가운데 하나를 유치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연예인을 동원해 유치대상 기관 직원들을 상대로 구애작전을 펼친 끝에 토공을 가져갔다.

    자치단체간 유치경쟁은 치열했지만 빅4가 갈 곳은 사실상 정해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들은 “‘영남 2개, 호남 2개’라는 배분 원칙 정도는 있었다”고 증언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구체적인 배치안이 일찌감치 마련돼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한전의 경우 애초부터 광주행이 80% 이상 확정적이었다고 한다. 전남이 내부적으로 빅4의 유치가 어렵다고 일찌감치 파악해 농업, 문화예술, IT 관련 기관 쪽으로 눈을 돌린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초대형 기관인 한전이 광주로 가는 마당에 같은 경제권인 전남에 빅4 가운데 하나가 올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보고 ‘현실성’ 있는 곳을 유치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것.

    ‘한전+2’ 조치의 내막

    정부 당국자들은 “한전 이전 지역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세 곳이 옮겨갈 곳을 어떻게 정한다는 말이냐”고 손사래를 친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한전은 현 정권 창출의 일등공신 지역인 광주로 가게 돼 있다”는 말이 여권 주변에서 떠돌았고, 나머지 3개 기관의 행선지도 미리 정해져 있었다고 봐야 한다.

    다만 추진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해 차질이 생겼다. 정부가 ‘한전을 유치하려는 지자체간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부측은 “한전의 가치가 과대평가됐다”는 말을 언론에 흘렸다. “한전은 각 지역발전으로 전국에 산재해 있고 ‘한국수력원자력’ 등 규모가 큰 기관은 이전지를 별도로 선정하게 되어 있어 본사 이전의 효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이 틀린 얘기만은 아니었다.

    정부는 한전 유치전이 과열될 경우 유치에 실패한 지역을 중심으로 공공기관 지방이전 사업 전반에 대한 불만과 반발이 터져 나올 가능성을 염려했다. 아울러 문제 해결의 열쇠는 ‘한전의 몸집 줄이기’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한전을 가져가는 지자체에는 ‘한전+2개 유관 공공기관’만 주기로 하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그러나 오히려 “정부가 한전 유치 과열 현상을 실제보다 더 심각하게 본 것 아니냐. 그래서 과잉대응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한전 이전을 놓고 광주와 경합한 실질적 경쟁자는 경북이었다. 경북은 ‘원자력발전소 등이 가장 많은 곳이어서 본사 이전의 업무 효율성이 높다’는 명분을 내걸었다.

    그러나 정부의 ‘한전+2’ 조치 후 경북은 ‘한전 유치의 매력이 사라졌다’고 계산했다. 빅4 중 한 곳과 여러 공공기관을 유치한 뒤 ‘한국수력원자력’을 유치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본 것이다.

    당시 경북은 한전이 아니더라도 빅4중 한 곳의 유치를 확신하고 있었다. 사실 공공기관들을 기초단체인 시·군에 재배분해야 하는 도의 입장에선 공공기관의 규모뿐 아니라 수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므로 어떤 도지사라도 ‘한전+2개’안은 받기 어려웠다.

    한전의 경우 다른 공공기관과는 달리 유치를 희망하는 자치단체들은 신청서를 내야 했는데, ‘한전+2’안이 결정된 뒤 한전을 신청하는 곳이 한 군데도 없을 수 있다는 걱정이 정부 내에서 나왔다. 그만큼 이전규모가 대폭 축소된 셈이었다. 그래서 정부는 ‘한전+2’안을 마련해놓고 광주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광주시는 ‘한전+2’안에 반발하지 않았다. 이후 광주와 울산은 한전 유치를 신청했다. 대구는 경북을 대신해 유치전에 뛰어드는 방안을 자체적으로 적극 고려했으나 참여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한전을 놓고 광주-대구가 정면대결하는 상황은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공공기관 이전지 선정 과정에서 울산은 낙관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우리가 소외되고 있다’는 얘기가 울산시에서도 공공연히 나왔다. 그러나 막판 울산은 ‘한전 유치 탈락’을 명분으로 비교적 규모가 큰 기관인 ‘한국석유공사’를 포함한 여러 기관을 얻어 성공작이라는 평을 들었다.

    이전지 발표 뒤 여러 언론은 ‘광주는 한전 유치로 환호했다’고 광주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위의 관점이 맞다면 한전은 애초부터 광주로 가기로 돼 있었으므로 막판 정부의 ‘한전+2’ 특별 조치는 광주에 불리하게 작용한 셈이 된다.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2004년 한전의 광주 이전을 사실상 법률적으로 확정지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열린우리당이 이를 살리지 못했다”고 했다.

    ‘가스안전공’ 주고 ‘감정원’ 받고

    정부는 천신만고 끝에 ‘정부와 시·도지사 협약’, ‘노·정 협약’을 이끌어냈다. 6월24일 마침내 공공기관 지방 배치안이 발표됐지만 발표 직전 5개 공공기관의 이전지역이 바뀐 흔적이 감지됐다.

    정부가 이날 국무회의를 열어 공공기관 배치 방안을 발표한 시각은 오전 11시. 그런데 청와대는 이보다 30분가량 앞서 시·도별 배치 방안을 담은 보도자료를 기자실에 배포했다. 석간신문을 위한 배려였다. 문제는 청와대가 배포한 보도자료와 건교부의 최종 발표문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청와대 보도자료와 건교부 발표문에 차이가 나는 시·도는 강원, 충북, 대구, 경남, 전북, 전남의 6곳에 달했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은 청와대 자료엔 강원도로 이전하는 것으로 돼 있지만 건교부는 경남으로 발표했다. 대신 청와대 자료에 경남으로 배정돼 있던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이 건교부 자료에선 강원도로 가는 것으로 돼 있었다. 막판 조정과정에서 두 기관이 맞교환된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대구의 경우 가스안전공사를 충북에, 프로그램심의조정위원회를 전남에 내준 대신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을 전남에서, 한국감정원을 전북에서 가져온 것처럼 됐다

    이에 대해 정부측은 ‘건교부 실무자의 단순 실수’라고 해명했다. 건교부 자료실에는 초기부터 쭉 시뮬레이션해온 자료가 보관돼 있는데, 청와대의 자료 제출을 요청받은 건교부 실무자가 워낙 바쁜 통에 착각해 ‘구(舊) 버전’을 청와대로 보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공공기관 이전과 같은 중대 사안을 발표하면서 일선 부처에서 청와대로 올라가는 자료를 그렇게 허술하게 다룰 리 만무하기 때문.

    공공기관 지방 배치안을 최종 확정하는 과정에 균발위와 건교부, 국무총리실, 청와대는 직통 연락체계를 갖추고 수시로 협의를 진행했다. 그러나 여기서 열린우리당은 배제됐다는 관측이다.

    정부 관계자는 “지방 배치 원칙과 기본방향을 정하는 것을 놓고 여당 지도부는 물론 건교위 소속 의원들과도 상의했다”면서 “그러나 구체적인 이전 지역을 정할 때는 정치권을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정치권이 개입하면 보안유지가 제대로 안 된다는 게 이유였다. 배치안이 미리 새나가면 각 지자체의 반발로 처음부터 엉망진창이 될 가능성이 높아 어쩔 수 없이 여당을 배제했다는 설명이다.

    열린우리당의 김한길 국회 건설교통위원장은 균발위에서 한창 배치안을 짜고 있을 때 “정부가 국회를 경시한다. 당정협의를 해도 알맹이 있는 정보는 꽉 쥐고 공유하지 않으면서 부담만 당에 떠넘기고 있다”고 불쾌감을 강하게 표출했다. 성경륭 위원장과 추병직 장관이 출석한 건교위 회의에서도 김 위원장은 “한전 이전 지역은 확정됐는가” “기능군별 이전계획은 결정됐는가” “새로 보고할 내용이 없는가” 하며 다그치기도 했다.

    “웬 제주?” 외교통상부의 반발

    공공기관 지방 이전 작업의 진도가 지지부진하자 한때 두 핵심 축인 성경륭 위원장과 추병직 장관 사이의 갈등설이 나돌기도 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출석한 국회 건교위에서 성 위원장은 한전의 서울 잔류 가능성을 암시한 반면, 추 장관은 서울 잔류를 일축한 데서 갈등설이 유포됐다.

    확인된 바로는 두 사람 사이에 큰 갈등은 없었지만,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 입지와 한전 유치를 연계하는 방안을 놓고 의견 차이를 보였다고 한다.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이 방폐장과 한전을 묶자고 제의한 데 대해 의견이 달랐다는 것이다. 추 장관은 “그 방안도 생각해보자”고 다소 신축적인 자세를 보인 반면, 성 위원장은 “그런 식으로 자꾸 인센티브를 주면 앞으로 고준위 방폐장 같은 국책사업은 뭘 주고 할 거냐”며 신중론을 제기했다. 결국 이 문제는 이해찬 국무총리가 조정에 나서 방폐장과 한전을 연계하지 않기로 결론내면서 일단락됐다.

    그 밖에는 성 위원장과 추 장관의 협조가 잘 이뤄졌다. 공공기관 배치안을 짜는 작업이 한창이던 지난 4월초 갑자기 강동석 건교부 장관이 사임했지만 신임 추 장관이 조기에 업무를 파악했다.

    일부 정부 부처는 산하기관을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내지 않으려고 했다. 외교통상부는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재외동포재단이 제주도로 이전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자 균발위는 노 대통령이 지난 1월27일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한 기록을 찾아내 가까스로 제주도와 두 기관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외교통상부를 설득했다.

    시·도별 이전 배치안이 발표되면 각 지역에서 ‘민란’ 수준의 반발이 일어날 것이란 분석도 있었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자 기우였음이 드러났다. 여기에는 정치적 이유가 있다. 처음 배치안이 확정 발표되자 12개 시·도의 반응은 엇갈렸다. 지역별 분위기는 각 시·도지사 회견에서 그대로 감지됐다. 빅4가 이전할 광주(한전), 전북(토지공사), 경북(도공), 경남(주공)은 두말할 것도 없이 환영을 표시했다. 빅4보다는 못하지만 비교적 덩치가 큰 기관을 받은 대구(한국가스공사), 울산(한국석유공사), 강원(한국관광공사)도 ‘아쉽지만 수용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물먹었다고 표시할 필요 있나”

    반면 토공 유치가 무산된 부산과 한전 유치에 실패한 전남에서 반발이 일어났다. 허남식 부산시장과 박준영 전남지사는 즉각 기자회견을 열고 “지역차별”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내 이 같은 태도를 접고 결과에 수긍하는 태도를 보였다. 왜 그랬을까. 한 정부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대부분의 단체장들이 ‘이만 하면 잘됐다’고 만족감을 표시하고, 부산시장과 전남지사조차 더 떠들지 않은 것은 ‘무능하다’는 평가를 자초하지 않기 위해서 아니겠는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는데 굳이 ‘우리가 물먹었다’고 표시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정부는 공공기관 이전안 발표 직후 가장 강력하게 반발한 부산시에 ‘하얄리아 미군부지 무상양여’를 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6월30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이해찬 국무총리와 전국 12개 시·도지사 공공기관 이전 관련 간담회 자리에서다.

    이날 시·도지사들은 공공기관 시·도별 배치 방안을 이의 없이 수용키로 약속했다. 대신 정부는 공공기관이 빠른 시간 내에 각 지역으로 이전해 지역발전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적극 협력키로 합의했다. 그러나 허 부산시장은 이 자리에서 유감을 강하게 표시했고, 이에 이 총리가 “부산지역은 다른 현안도 있지 않으냐”고 말했다고 한다.

    허 시장은 간담회 후 부산지역 기자들에게 “공공기관 이전에 대해 강력히 문제제기를 했더니, 이 총리가 여운을 남기며 보완책을 약속했다”고 전하고, “하얄리아 부지 무상양여 같은 현안이 몇 가지 있다”고 말해 모종의 다짐을 받았음을 암시했다. 그러나 정부가 공식적으로 ‘부산 무마책’을 밝힌 것도 아니어서 허 시장이 전하는 얘기가 현실화될지는 미지수다.

    공공기관 본사 지방 이전은 올해 말까지 부지 선정을 끝내고 2006년 한 해 동안 기본계획을 세운 뒤 2007년 본사 신청사 건축 공사를 시작해 2012년 이전을 완료한다는 일정으로 추진된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