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성 있는 마스크와 튀는 연기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배우 배두나와 강혜정. 아직 ‘톱스타’라고 하긴 어렵지만, 언제나 자기 자리에서 독특한 색채의 빛을 발한다. 연예인에 대한 일반적 선입견으로는 그들에게 어울리는 형용사를 꿰어맞추기 힘들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남과는 어딘가 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 빼어난 미모가 아님에도 강한 흡인력으로 시선을 잡아끄는 그들의 매력 포인트는 무엇일까.
하지만 배두나(26)에겐 남과 다른 특별함이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배두나가 예상 외의 적나라한 베드신을 찍었다는 사실도, 이것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배두나도 안다. 사람들이 말하는 ‘배두나스러움’이 무엇인지. 그래서 사람들의 기대가 큰 것도 알고 있다. 배두나의 연기를 보고 그의 팬이 된 사람들은 ‘인간 배두나’를 알아가면서 그의 마니아가 된다.
연예인에 대한 편견과 그로 인한 굴레에 자신을 가두기를 거부하는 배두나는 자신의 일상생활을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여느 여배우들처럼 모자 쓰고 선글라스 끼고 외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수수한 얼굴을 ‘무기’ 삼아 거리로 나서기를 즐긴다.
배두나에 대해 좀더 알고 싶다면 그의 블로그에 들어가 보시라. ‘불친절한 두나씨’(blog.naver. com/hnpl46.do)는 이미 네티즌 사이에서 인기 높은 블로그다. 그 은밀한 공간을 잠깐 들여다볼까.
그는 요즘 쿠키 만들기와 꽃꽂이 배우기에 빠져 지낸다. 자신의 첫 작품을 찍어 블로그에 올려놓고 “저는 맛보다 모양에 신경 써요” 하고 말한다. 배우들이 인터뷰를 통해서나 얘기하는 것들을 배두나는 이 공간을 통해 좀더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MBC 드라마 ‘떨리는 가슴’을 택한 것은 드라마 ‘위풍당당 그녀’를 통해 만난 김진만 감독님에 대한 200% 신뢰 때문”이라고, 말하고 “드라마 속 방 세트를 만들기 위해 내 책상 위의 물건들을 직접 가져갈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연극배우인 어머니 김화영씨가 대학에서 첫 강의를 하게 된 것을 기념해 자신이 차로 모셔다 드린 날의 ‘떨리는 가슴’도 블로그에 소녀의 일기처럼 고백했다.
“대학 강단에 서신 모습을 보고 싶어서 강의실까지 살금살금 따라 올라갔는데 내가 다 가슴이 쿵쾅쿵쾅거려서 강의실을 훔쳐보지도 못하고 그냥 나와버렸다. ‘엄마, 첫 시간엔 짧게 끝내는 걸 애들이 좋아해’ 하고 당부하고 복도를 걸어 나오면서 초등학교 때 몰래 분장실이나 객석에 앉아서 엄마 연극 공연하시는 모습을 훔쳐보면서 ‘어쩜 저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떨지 않으실까’ 감탄하거나 혹은 ‘실수나 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던 생각이 났다. 어릴 적, 무대 위에 서계신 엄마가 너무너무 커 보이고, 위대해 보이고, 배우라는 건 정말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고 감탄만 하던 꼬맹이가 이제 배우가 되려고 하고 엄마는 또 다른 멋진 길을 가려 하신다.”
블로그에 올린 글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자 배두나는 다소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블로그를 통해 사람들과 교류하는 방식을 포기하지 않았다. 다만 “별 뉴스도 아닌 것이 기사화되는 게 살짝 부끄럽기도 하고 뾰로퉁해지고 잔뜩 움츠렸으나, 다시 한번 슬슬 움직여볼까나” 하고 얘기할 뿐이다.
연예인의 일상을 엿보는 것은 팬들에겐 큰 기쁨이다. 스타의 평소 모습을 가까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진짜 배우’가 되고 싶어서
주목받는 청춘스타 배두나는 의외의 선택을 한다. 자신이 돋보이지도, 흥행 가능성이 높지도 않은 영화 ‘플란다스의 개’에 출연한 것이다. 이유는 ‘진짜 연기’를 하고 싶어서였다. 이후 그는 연극 무대에 오르는 등 다양한 연기 변신을 시도한다.
그 소녀는 스무 살이 되던 해 여느 연예인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다지 화려하지도 눈에 띄지도 않은 시작이었다. 한 의류 브랜드의 카탈로그 모델로 데뷔한 뒤 한동안 패션잡지 모델로 활동했다. 몇 편의 CF에도 출연했지만 그다지 눈에 띄진 않았다.
배두나는 1998년 겨울 공포영화 ‘링’으로 영화계에 들어선 후 활발하게 활동했다. ‘학교’ ‘광끼’와 같은 청춘 드라마는 물론 쇼 프로그램 MC와 라디오 DJ로도 데뷔했고 CF모델 활동도 이어갔다.
한창 주목받기 시작하던 배두나는 자신이 돋보일 만하지도, 흥행 가능성이 높지도 않은 작품을 골랐다. 영화 ‘플란다스의 개’였다. 패션 아이콘 같은 이미지를 버리고 구질구질한 아파트 관리사무실에서 일하는 여자 역을 자청한 이유는 ‘진짜 배우’가 되고 싶어서였다.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배두나는 이 작품으로 얻은 것이 정말 많다. 무엇보다 당시 연출을 맡은 봉준호 감독과 인연을 맺은 것, 훗날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에 배두나를 캐스팅한 정재은 감독의 눈에 띈 것이 큰 수확이다. 지금도 배두나는 그 영화를 택한 것이 배우로서 가장 잘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세 번째 영화인 ‘청춘’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사람들의 기억에선 잊혔지만 당시 배두나는 김래원과 과감한 베드신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주요 장면에선 대역을 썼다지만 어지간한 용기 없이는 어려운 일이었다. 여배우의 베드신은 톱스타에게도 ‘평생에 단 한번’이라는 각오 없인 힘들다.
하지만 배두나에게 벗었다는 사실은 중요하진 않았다. 작품을 통해 청소년기를 거치며 겪는, 사랑과 성을 둘러싼 방황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영화는 공허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흥행에도 실패했으나 배두나의 노력만큼은 높이 살 만했다.
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는 배두나가 처음 멜로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나선 작품이다. 그때껏 홍보활동에 적극적이지 않던 그가 각 방송사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성의를 보였지만 이 영화도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진 못했다.
그러나 배두나의 연기세계는 매번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청춘’에서 맨몸을 내보인 그는 영화를 위해 골초가 되기도 하고, 화장기 없는 맨얼굴로 카메라 앞에 서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제 고작 스물여섯인데 말이다.
아직은 어린 여배우 배두나가 가진 가장 큰 힘, 그것은 배짱이다.
연극, 피와 살이 되는 경험
막이 내리고 갈채를 받으며 무대 인사를 하는 배두나는 부끄러운 듯 내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쑥스러워 몸둘 바를 몰라하는 그를 무대를 지켜보던 스태프들이 “자신감을 가지라”고 조언했다. ‘연습이 모자랐던 게 아닐까’ 걱정했던 게, 하루 이틀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연극은 도무지 고칠 수도 없고 NG를 내면 그걸로 끝이다. 차라리 자신이 신인배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배두나는 공연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하고 있었다.
배두나가 두 번째로 제작하고 처음 출연한 연극 ‘썬데이 서울’은 그렇게 끝이 났다. 데뷔 7년째. 그간 영화도, 드라마도 여러 편 찍었지만 연극 무대에서의 경험을 그는 평생 잊지 못할 거라고 말한다. 직접 제 돈 들여 올린 작품이라서가 아니다. 제작비도 건지지 못하고 돈을 고스란히 날려버려서도 아니다.
‘썬데이 서울’을 하면서 배두나는 배우로서, 그리고 약간은 쑥스럽지만 제작자로서 “조금 잃고 많은 걸 얻었다”고 한다. 그렇게 힘들고 떨리던 경험도 앞으로 배우로서 성장에 큰 자양분이 될 거라고 믿었다.
배두나가 갑자기 연극을 만들겠다고 하자 세간엔 “엄마가 연극배우이니 그럴 만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출연뿐 아니라 연극계에선 ‘블록버스터’라 할 만큼의 거금을 들여 제작에 나선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는 다음 영화에 출연할 때까지 공백기 동안 연기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연극을 했다고 한다. 하기 싫은 드라마나 영화를 억지로 하는 것보다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이 될 거라고 믿었기에 연극을 택했다.
지난해 여름 공연된 연극 ‘썬데이 서울’은 박찬욱, 이무영 감독이 함께 시나리오를 각색하고, 연극 ‘청춘예찬’ ‘쥐’를 연출한 박근형이 연출을 맡은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배두나가 연기한 ‘정자’는 먹고 살기 위해 몸을 파는 연변 처녀다. 피우지도 못하는 담배를 영화를 위해 하루 두 갑씩 피운 경험이 있는 배두나에게 배역 자체의 어려움은 크지 않았다.
그렇지만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절제하고 참으며 관객의 상상을 끌어내는 연기를 해온 배두나는 무대에서 관객의 눈을 바라보며 화끈하게 표현하고 팽창하는 연기를 새로 배우게 됐다. 연기에 대한 또 다른 테크닉을 익힐 수 있는 계기였다.
배두나의 다음 작품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이다. 그 사이 일본에 건너가 일본 영화도 찍고 왔다. ‘고양이를 부탁해’를 보고 배두나에게 반한 일본 감독 야마시타 노부히로의 작품이다. 요란한 한류 열풍을 일으키진 않지만 조용히 자신이 할 일을 찾아 해내는 그가 믿음직스럽다. ‘괴물’에서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젖었어요?” “마약했어요?”
영화 ‘연애의 목적’부터 이야기해야겠다. 강혜정(23)이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영화다. 그것도 포장은 멜로물. 그간 강혜정이 하나같이 드센 캐릭터를 연기한지라 그가 멜로 영화에 출연한다는 말을 듣고 다소 의아했던 게 사실이다. 내심으론, 다른 멜로 영화와는 뭔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했다. ‘연애의 목적’ 기자 시사회장. 의아함과 기대감을 안고 처음 공개된 영화를 보았다. 첫 대사부터 심상찮다.
“지금, 젖었어요?”
박해일이 저런 대사를 ‘치다’니….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지금 마약했어요?”
그 말을 받는 강혜정도 만만찮다.
‘연애의 목적’은 새로 온 교생 최홍(강혜정 분)과 이 학교 교사 이유림(박해일 분)의 발칙하고 솔직한 연애 스토리다. “한번만 자자”며 홍에게 집적대는 유림과 점점 그에게 빠져드는 홍의 밀고 당기는 사랑 이야기. 영화에 그려지는 연애의 목적은 섹스일까, 사랑일까. 결국 ‘섹스로 시작된 사랑’으로 영화는 결말을 맺는다.
연애에서 중요한 건 과정이다. 이 영화도 제목과 달리 ‘연애의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수위 높은 대사들과 예상치 못한 러브신으로 관객의 눈길을 끌지만 결국 본질은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감정의 교류 아닐까.
최홍 역시 범상치 않은 인물이지만 애초부터 정형화된 캐릭터는 아니었다. 강혜정이 그간 연기해온 캐릭터와는 달랐다. 작품에서 어느 정도 만들어져 있는 역할이 아니라 배우 강혜정이 스스로 색깔을 입히고 창조해야 하는 역할이었다. 그래서 더 어렵게 느낀 걸까. 강혜정은 최홍을 연기하며 “인물이 어디로 튈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 가증스럽지 않은 연애 이야기에 강혜정의 ‘필’이 꽂혔다. 예쁘게 포장된 흔한 로맨틱 코미디라면 절대 출연하지 않았을 거라고 한다. 보통 연애 영화가 보여주는 친절함이 싫다는 것이다. 가식적인 젠틀함이 없는 솔직한 연애 이야기가 좋았다는 말이다.
“너 누나 첨 볼 때부터 하고 싶었지?”
“섹스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연애를 다시 시작할 거라면 먹히지 말고 먹어버리자.”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한재림 감독은 여배우가 이런 대사를 어떻게 소화할지 염려했다고 한다. 시나리오를 읽어본 사람들 중 몇몇의 입에서 최홍에 대해 ‘미친 여자 아냐, 변태 아냐?’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강혜정의 입을 통해 이 대사들이 나오는 순간 한 감독은 “미치도록 행복했다”고 한다. ‘이 대사를 이만큼 해낼 수 있는 배우가 있음 나와 보라고 해.’ 딱 그런 심정이었다. 강혜정이야말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배우다.
“마지막 오디션일 수도 있다”
강혜정에 대한 찬사는 그뿐이 아니다.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 백서’에 촬영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는데 그중 하나.
“강혜정이 최민식과 섹스하는 장면에서 몸을 안 가리고 연기에 몰두해 눈 둘 곳이 없어 민망했다”고. 이런 행동은 분명 다른 여배우들과 다른 모습이다. 그의 과감함과 당돌함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영화 ‘올드보이’로 기사회생한 강혜정은 이후 주로 ‘센’ 역할을 해왔다. ‘연애의 목적’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솔직하고 발칙한 교생 ‘최홍’을 연기하더니 올 가을 개봉 예정인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는 산골의 광녀 ‘여일’로 출연한다. 과감함과 당돌함은 강혜정만의 독특한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올드보이’는 강혜정에겐 절박한 작품이었다. 강혜정이 오디션을 받을 때 인근 횟집에서 빌려온 회칼을 쥐고 연기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에피소드다. 그때까지 ‘밥벌이’를 제대로 하지 못하던 강혜정은 “이것이 나의 마지막 오디션이 될지도 모른다”는 각오로 오디션에 지원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SBS 드라마 ‘은실이’에서 은실이의 의붓언니 역으로 출연한 그는 3년의 공백기 끝에 스무 살이 되던 해인 2001년 영화 ‘나비’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하지만 이후 그에게 연기할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연기에 목마른 배우 아닌 배우로 살아야 했다. 그렇게 절박할 때 ‘올드보이’ 오디션에 참가했던 것.
“떨어지든 붙든 그 순간만은 죽을 힘을 다하겠다”는 절실함으로 따낸 미도 역을 어찌 죽을 각오로 연기하지 않았겠는가. 그는 섹스신을 앞두고 이렇게 되뇌었다고 한다.
‘부끄러워하면 안 된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올드보이’로 배우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인 칸영화제까지 다녀온 그는 이후 오디션을 보지 않고도 영화 출연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들어오는 시나리오는 모두 ‘센’ 캐릭터였다.
강혜정은 ‘미도’ 이미지에서 벗어나길 원했지만 그렇다고 쉬운 선택을 하진 않았다. 다음엔 온몸이 피아노줄에 묶인 채 대사 한마디 없이 신음소리로만 연기해야 하는 피아니스트 역. 박찬욱 감독의 영화 ‘쓰리, 몬스터’다. ‘온몸이 묶인 채 연기하는 경험을 또 언제 할 수 있을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는 또다시 센 인물을 연기했다. 대사는 없지만 기가 센 사람이 필요했다는 박찬욱 감독의 바람대로 말이다.
도드라진 광대뼈, 맹한 입술
강혜정의 등장은 언제나 새로웠다. ‘나비’ ‘올드보이’ ‘쓰리, 몬스터’도 그랬지만 ‘우정출연’한 ‘남극일기’에서는 단 다섯 신에만 얼굴을 비췄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임필성 감독의 작품이고 존경하는 선배인 송강호가 부탁했기에 흔쾌히 응했다.
이어 장진 감독의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6·25전쟁이 벌어지던 시절 강원도 산골마을의 광녀(狂女) ‘여일’로 출연한다. 그 와중에 강혜정은 태국 영화 ‘Invisible Waves’를 찍고 왔다.
비중이 큰 배역도 있고 작은 배역도 있지만 강혜정이 연기한 작품 속 인물들은 언제나 작지 않은 존재였다. 누구도 범접하기 힘든 그만의 아우라가 있는 것이다.
여기엔 강혜정의 독특한 마스크도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작은 얼굴에 큼지막한 눈, 광대뼈가 도드라지고 약간 맹해 보이는 입술, 어딘가 ‘동남아’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생김새.
강혜정의 얼굴은 그 자체로 예쁘지는 않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언제 가장 예뻐 보이는지 알고 있다. 바로 예뻐 보이려 하지 않을 때, 편안하고 당당한 모습 그대로를 보여줄 때다.
그래서 인터뷰 중에도 스스럼없이 담배를 무는 강혜정에게서 사람들은 도발성보다는 자연스러움을 느낀다. 스무 살 때부터 골초로 살았다는 강혜정은 연인 조승우를 만난 후 흡연량을 하루 반 갑으로 줄였다고 한다.
강혜정의 의외성 중 하나는 노출을 꺼린다는 것. 영화 속 베드신에서는 그리도 당당한 배우가 실제로는 짧은 치마도 안 입는다. 사진을 찍을 때도 맨살의 다리가 드러나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강혜정 역시 여느 여배우들과 비슷하게 잡지 모델로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그가 가고 있는 길은 남다르다. 쉽지 않은 역할이 주는 모험을 즐기는 배우, 어떤 인물을 100% 표현할 수는 없지만 가장 가까이 접근하려 애쓰는 배우가 바로 그다.
박찬욱, 임필성 감독 등 그를 어여삐 여기는 인맥을 얻은 것도 든든한 힘이다. 임필성 감독은 “중학생부터 아줌마 역까지 커버하는 얼굴”이라고 그를 치켜세웠다.
하지만 강혜정은 언제나 생각한다. ‘시나리오가 들어오는 오늘은 행복하지만, 언젠가 다시 오디션 장을 찾아 뛰어다닐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충분히 좋다. 밥벌이를 할 수 있고 내 연기를 보여줄 수 있으니까.’ 죽는다 해도 하고 싶은 절실한 배역이 있다면 언제든 그는 뛰어갈 것이다. 오디션을 보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