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호

‘수사의 재구성’, 이인제 의원 수뢰사건의 경우

오만과 편견의 덫에 걸린 ‘거물급 유죄 만들기’

  • 김진수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ockey@donga.com

    입력2005-07-28 13: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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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검 중수부, 수사의 기본인 ‘계좌추적’부터 소홀
    • 이 의원 전 공보특보 김윤수씨의 잇단 진술 번복
    • 돈 건넸다는 이 의원 부인과의 대질신문 생략
    • 항소심 재판부, “돈 전달한 경위·시점 불명확해 김씨 진술 신빙성 없다”
    • 김씨, 가중처벌 받지 않으려 허위진술했을 가능성
    ‘수사의 재구성’, 이인제 의원 수뢰사건의 경우

    2004년 5월17일 충남 논산시 취암동 자신의 지구당 사무실 앞에서 검찰 관계자에게 강제 구인되고 있는 이인제 의원.

    “차라리암살을 당하면 동정이나 받지만, 돈을 받아먹었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지 않은가.”

    2004년 5월19일. 2002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으로부터 2억5000만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던 이인제(李仁濟·57) 의원(자민련)은 끝내 눈물을 떨궜다. 법정에서 자신을 향한 검찰 수사가 ‘계획된 정치탄압’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이론(異論)의 여지’는 있었다. 2005년 6월21일 서울고법 형사5부(이홍권 부장판사)는 이 의원에 대한 항소심에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로써 이 의원은 1년여의 법정싸움에 종지부를 찍었다. 하지만 그가 정치인으로서 입은 간단치 않은 상처에 대한 책임까지 ‘무죄’인 것은 아니다. 그 책임의 주체는 물론 검찰이다.

    정치인 수뢰사건에서 무죄가 선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번 사건 수사의 시종(始終)을 찬찬히 뜯어보면, 거물급 인사에 대한 ‘유죄 만들기’를 거듭해온 무리한 검찰 수사의 축소판임을 확인할 수 있다.

    돈 전달한 날짜도 기억 못해



    이인제 의원이 불법정치자금 수사에 휘말리게 된 것은 한나라당 불법대선자금 수수사건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기업들로부터 모금한 돈의 행방을 추적하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안대희)는 이른바 ‘출구조사(대선자금 사용처 수사)’ 과정에서 이 의원의 전 공보특보 김윤수(51)씨의 범죄혐의를 포착했다.

    검찰은 2004년 2월18일 김씨를 긴급체포한 뒤 그에게서 “2002년 12월초, ‘대선에 출마한 이회창 후보의 지원유세를 이인제 의원이 해줬으면 한다’는 부탁과 함께 한나라당 관계자에게서 현금 2억5000만원씩 든 상자 2개를 받아 며칠 뒤 이중 1개를 이 의원 집에서 그의 부인에게 전달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검찰은 이 의원을 수사키로 하고, 2월24일 검찰 출두를 요구한다.

    검찰의 잇단 소환 요구에 계속 불응하면서 4·15 총선기간을 지나 5월3일부터 14일간 충남 논산시 자민련 지구당사에서 지역구 당원과 함께 바리케이드와 가스통까지 동원해 철야농성을 해가며 버티던 이 의원은 결국 5월17일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돼 6월4일 검찰에 의해 기소된다. 이어 2004년 10월21일의 1심 판결에서 유죄가 인정돼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2억5000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런 그에게 왜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판결을 뒤엎고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 의원에 대한 공소사실 요지는 김윤수씨의 진술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와 이 의원의 변호인들이 낸 변론서, 법원의 판결문 등을 종합해보면, 검찰이 수사 및 공판과정에서 이 의원의 공소사실을 범죄행위로 입증하지 못한 까닭이 분명히 드러난다.

    우선 이 사건의 유일한 증거라 할 수 있는 김씨의 진술부터 명확하지 않다. 목격자는 물론 없다. 그는 2004년 2월18일 연행된 뒤 최초로 한 검찰 진술에서 “한나라당으로부터 2억5000만원을 받아 혼자서 다 썼다”고 했다가 “5억원을 받아 혼자서 사용했다”고 말을 바꿨다. 하지만 같은 날 밤 최종 진술에서는 “한나라당에서 모두 5억원을 받았고, 이중 2억5000만원을 이 의원 부인에게 전달했으며, 나머지 2억5000만원은 개인 채무를 갚는 데 썼다”고 다시 한 번 말을 뒤집었다. 그러나 검찰은 최종 진술에 근거해 조서를 작성하면서 김씨가 진술을 번복한 사실과 그 경위에 대해선 기재하지 않았다.

    김씨는 자신이 이 의원 부인에게 돈 상자를 건넨 정확한 날짜는 물론, 돈 전달 사실을 이 의원 본인에게 직접 확인했다고 주장하는 일시도 진술하지 못했다. 빈번하게 발생하는 일이 아닌데도 해당 일시를 특정하지 못한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변호인이 금융거래내역 조회 신청

    검찰은 뇌물범죄 수사에서 기본적인 사항이라고 할 수 있는 계좌추적에도 등한했다. 검찰은 김씨가 한나라당으로부터 5억원을 받았고 그중 일부를 은행 대출금 변제에 사용했다고 털어놓았는데도 그와 그의 가족 및 주변 인물에 대한 계좌추적을 하지 않았다고 시인했다. 이번 사건의 유일한 증거인 김씨 진술의 신빙성을 검증하려면 금융거래내역부터 살펴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

    그런데도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김씨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해 계좌추적을 하지 않았으며, 그의 가족 및 주변인물에 대한 계좌추적은 불필요한 사생활 침해 소지가 있어서 하지 않았다”는 군색한 답변을 내놓았다.

    이 의원의 변호인들은 검찰이 당연히 계좌추적을 해놓고도 내용을 감춘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의견을 표했다.

    김씨가 한나라당에서 받은 5억원 중 2억5000만원을 개인 채무(은행 대출금)를 갚는 데 사용했다는 것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다. 이는 김씨의 자백에 의한 것으로, 검찰수사에서도 사실로 밝혀졌다. 그러나 김씨가 실제로 변제한 금액은 3억5000만원이다. 즉 1억원의 차액이 생긴다. 이 같은 의문에 대해 김씨는 “부족한 1억원은 내가 차명으로 관리 중인 계좌에 있던 별도의 돈을 인출해 충당했다”고 검찰조사에서 답했다.

    반면 이 의원의 변호인들은 법원에 김씨와 주변 인물들에 대한 금융거래내역 조회를 신청해 김씨가 말한 차명계좌라는 것이 사실은 자신 명의의 실명계좌라는 것을 새롭게 알아냈다. 게다가 그 계좌의 잔액은 700만원도 안 돼 1억원 인출은 불가능했다. 즉 이 의원의 변호인들은 김씨의 ‘차명계좌 발언’이 허위진술임을 밝혀낸 것이다.

    ‘1억원 인출’에 대한 의문이 생기자 김씨는 2004년 7월14일 검찰조사에서 기존 진술을 번복한다. 2001년 1월 자신이 개인사업 관계로 거래하던 업자에게서 3억원짜리 수표를 받은 일이 있는데, 그 수표를 자신 명의의 계좌에 입금해 ‘자금세탁’한 다음 차명계좌에 입금했고, 그 돈 가운데 1억원을 인출해 채무 변제에 보탰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거래내역 조회 결과 이 진술 또한 허위임이 드러났다. 김씨의 실명계좌에 입금됐던 3억원 수표는 이미 2001년 1∼2월에 2억7330만원이 인출됐고, 그 자금의 이동경로를 추적한 결과 차명계좌로 들어간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차명계좌의 존재 자체가 의심스러워진 것이다.

    이와 관련, 검찰은 이미 2004년 3월 김씨의 차명계좌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그의 실명계좌에 입금돼 있던 3억원 수표의 번호와 발행한 은행지점까지 확인해두고 있었다. 그럼에도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한 수사보고 및 자료를 수사기록에서 누락했다. 검찰의 해명은 “시간적 제약 때문에 미처 수사기록에 편철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차명계좌’ 허위진술

    검찰은 김씨가 이 의원 부인에게 전달했다는 2억5000만원의 행방을 좇기 위한 계좌추적, 즉 이 의원 본인과 그의 부인, 주변 인물들의 금융거래내역 조회도 하지 않았다. 김씨의 예에서 보듯, 2억5000만원이란 거액이 어떤 형태로든 이 의원측에 건네졌다면 그 어떤 ‘흔적’을 남길 수도 있음을 검찰은 간과한 것이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김씨와 그가 직접 돈 상자를 건넸다는 이 의원 부인과의 대질신문도 하지 않았다. 이 의원 부인이 돈을 받지 않았다고 완강히 부인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이유로 든다. 하지만 김씨는 당초 검찰조사에서 “나와 이 의원, 그리고 이 의원 부인을 대질하면 그들이 돈 받은 사실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진술한 바 있다.

    2004년 7월9일에 실시된 1심 법원의 현장검증에서도 이 의원 집에서 그의 부인과 대면한 김씨는 고개만 숙인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법정에서 이뤄진 이 의원의 직접신문에 대해서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한때 이 의원의 최측근에서 그를 보좌하던 김씨로서는 막상 그들의 면전에서 ‘돈을 줬다’고 진술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양측간 법정 다툼이 첨예한 상황임을 감안한다면, 검찰의 이 같은 해석은 지나치게 ‘느슨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검찰은 이 의원에 대한 피의사실도 공표했다. 2004년 2월21일, 당시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이 기자들에게 “이인제 의원 사건은 전형적인 정치자금법 위반 사례”이며 영장 청구가 불가피하다고 밝힌 것. 이 의원의 소환이 이뤄지지 못해 그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유죄로 단정한 것이다.

    이밖에도 김씨가 이 의원 집으로 돈 상자를 들고 찾아가 전달하는 과정의 정황, 김씨가 이 의원 부인에게 돈 상자를 건넸다는 사실을 그 이틀 뒤 이 의원 본인에게 직접 확인했다는 정황 등 몇몇 사실관계에 대해선 양측의 주장이 크게 엇갈려 여기서는 언급을 생략한다.

    무엇보다도 결정적으로 전세(戰勢)가 이 의원 쪽으로 급속히 기울어지게 된 계기는 김씨가 한나라당에서 받았다는 5억원의 용처(用處)를 이 의원 변호인들이 추적하는 데서 시작됐다.

    변호인들은 김씨가 5억원을 받은 이후에 개인적으로 획득한 가용자금이 개인사업 관계로 얻은 1억8000만원 정도인데, 그가 같은 시기에 취득한 재산은 골프장 회원권, 농지(農地) 등으로 그 대금총액이 2억8000만원에 육박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가용자금과 취득재산가액 사이에 1억원 가까운 차이가 있었던 것.

    이처럼 차액이 생긴 경위에 의심을 품은 변호인들은 김씨가 한나라당에서 받은 5억원 중 2억5000만원이 이미 개인 채무 변제에 사용됐고, 여기에 그 출처가 불분명하면서도 같이 채무 변제에 쓰인 1억원 역시 한나라당에서 받은 돈의 일부라면(합계 3억5000만원), 그 나머지인 1억5000만원은 앞서 언급한 김씨의 재산취득 목적으로 사용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검찰은 변호인들의 주장처럼 김씨가 한나라당에서 받은 5억원 중 3억5000만원을 개인 채무 변제에 사용하고, 나머지 1억5000만원을 분산·은닉했다면 발견되기 어려운 계좌를 이용할 것이지 굳이 금융거래내역 조회를 하면 금세 드러나는 자신의 아버지, 장모, 딸, 아들의 계좌를 이용할 필요가 있겠냐며 변호인들의 주장은 근거 없는 추측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뒤늦게 드러난 ‘9600만원’ 미스터리

    하지만 항소심에 이르러 김씨가 보유 중인 현금 9600만원의 존재가 금융거래내역 조회 결과 새롭게 드러나 법정 다툼의 분위기는 반전된다. 김씨가 한나라당으로부터 5억원을 받은 며칠 뒤로 추정되는 2002년 12월16일 신규 개설한 은행 계좌에 입금한 현금 9600만원 중 2600만원은 앞서 언급된 골프장 회원권의 계약금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김씨는 이 계약금이 문제의 현금 9600만원 중 일부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이리저리 말을 둘러대기에 급급했다.

    더욱이 김씨는 검찰수사 초기부터 원심의 변론 종결시까지 9600만원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밝히지 않은 터였다. 김씨는 2004년 8월12일 검찰조사에서는 골프장 회원권 계약금 2600만원의 출처가 아버지의 돈이라고 강변했다가 자신이 4000만원을 아버지 계좌에 송금한 사실이 금융거래내역 조회 결과 새로 드러나자 10월7일엔 자신의 돈이라고 진술을 번복했다. 그러다 2005년 1월엔 9600만원을 장인에게서 받았다고 또다시 말을 바꿨다. 정당한 자금의 흐름이라면 이렇게 진술을 자주 바꿀 이유가 없다.

    검찰은 1심 판결 선고 전에 김씨에게서 9600만원이 입금됐던 통장을 제출받았는데도 사건과 무관하다고 생각해 재판부에 제출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 점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현금 9600만원의 출처를 둘러싸고 이같이 갈팡질팡하던 진술은 결국 김씨의 기존 진술의 신빙성마저 현저히 떨어뜨려 항소심 판결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사건의 증거는 피고인(이인제 의원)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김윤수씨의 진술뿐인데 한나라당 관계자와 김씨, 피고인 사이에서 돈을 전달한 경위나 시점 등이 불명확해 김씨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김씨는 한나라당으로부터 받은 5억원 중 2억5000만원을 가로챈 뒤 자신의 돈 1억원을 합쳐 은행 대출금을 갚았다고 주장하지만 1억원의 출처를 명확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항소심에서 드러난 9600만원을 대출금 변제액 3억5000만원과 합치면 김씨가 한나라당으로부터 받은 5억원에 거의 육박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횡령죄로 재판을 받고 있는 김씨가 자신의 죄를 가볍게 하려 허위진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횡령의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인 경우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 제2호에 의거해 3년 이상 15년 이하의 유기징역(반면 이득액이 5억원 미만이면 형법 제355조 제1항에 따라 단순횡령죄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는 사실을 김씨가 자신의 변호인 등을 통해 이미 인지한 상태여서 법원의 이 같은 판단은 일견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의원에 대해서는 “피고인이 그 범행을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증거가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런데도 원심에서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것은 사실을 오인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을 저지른 것”이란 견해를 밝혔다.

    수뢰사건, 줄줄이 무죄선고

    이인제 의원 수뢰사건의 수사 및 공소유지를 담당했던 Y검사는 “이 의원의 유죄를 인정한 1심 판결이 정당하다는 내 생각엔 변함이 없다. 이 의원측에 2억5000만원을 전달했다는 김윤수씨의 진술엔 신빙성이 있었으나 이 의원측은 계속 혐의를 부인하면서 묵비권을 행사하기도 했다”며 “법원이 이와 유사한 사건에 대해 잇따라 무죄판결을 내리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검찰로서는 사실상 수뢰사건 수사를 하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서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5억원 중 2억5000만원을 김윤수씨가 개인 채무 변제에 사용했고, 그 나머지인 2억5000만원에 근접하는 출처가 불분명한 돈의 존재가 김씨와 그 주변인물들의 금융거래내역 조회를 통해 드러났다. 검찰은 이 돈이 김씨의 차명계좌와 장인에게서 나왔다고 주장하고, 변호인들은 한나라당에서 받은 돈이라고 팽팽히 맞섰다. 구속영장실질심사 당시 흘린 ‘이인제의 눈물’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그 자신과 김씨만이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이 의원에 대한 항소심 무죄판결에서 보듯, 이제 정치인 수뢰사건 수사에서 공명심을 앞세운 검찰의 ‘한건주의’는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의원에 대한 무죄판결 외에도 박광태 광주시장의 현대 비자금 3000만원 수수, 조희욱 전 자민련 의원의 불법정치자금 3000만원 수수, 최기선 전 인천시장의 3000만원(대우그룹) 수수, 박지원 전 문화부 장관의 150억원(현대그룹) 수수 혐의가 모두 돈을 줬다는 ‘공여자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는 이유로 줄줄이 무죄판결을 받았다.

    ‘수사의 재구성’, 이인제 의원 수뢰사건의 경우

    2004년 5월 검찰의 이인제 의원 연행을 막기 위해 충남 논산시 자민련 지구당사를 에워싼 이 의원의 지지자들.

    이와 관련해 검찰은 6월26일, 국민적 관심을 끄는 ‘중요사건’은 기소 전에 증거가 충분한지, 기소가 타당한지를 집중 검토하는 ‘공소심의위원회’와 기소 뒤 유죄 입증에 전력을 다할 ‘특별공판팀’을 만들어 공판중심주의에 대비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강찬우 대검 공보관은 “뇌물수수사건에선 주는 자와 받는 자 둘이서만 은밀히 현금을 주고받는데 증거라고 해봐야 공여자의 진술밖에 없다. 목격자가 없는 성범죄의 경우나 마찬가지로 명확한 물증이 없다. 따라서 수사는 그 진술을 뒷받침하는 간접증거들을 수집하는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며 “미국의 경우 잠입수사요원인 ‘언더커버 캅(Undercover Cop)’의 활동이 합법화돼 있지만, 그런 제도가 없는 우리 검찰의 경우 수뢰사건에서 공여자가 이해관계에 휘둘려 기존 진술을 번복하기라도 하면 무죄율이 50%가 넘을 정도로 수사에 한계가 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이인제 의원, “사필귀정”

    어쨌건 이인제 의원에 대한 무죄판결로 대한민국 최고의 수사력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대검 중수부의 체면은 구겨졌다.

    이 의원의 항소심 변론을 맡은 서희석 변호사(정명합동법률사무소)는 “이 의원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변호인들은 무려 100건 이상의 금융거래내역 조회 신청을 했다”며 “유죄를 증명해야 할 검찰이 되레 피고인측에 무죄를 입증하라고 할 정도로 부실한 수사였으며, 이 의원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한 구석이 있다 싶은 부분에 대해선 아예 수사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법조인 출신임에도 이번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이인제 의원은 “유죄를 인정한 1심 판결에 큰 충격을 받았으며,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잘못된 판결이라 생각한다”며 “정치권력이 신성한 검찰권을 동원해 내게 누명을 씌웠음에도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이 나온 것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여긴다”고 밝혔다.

    결국 ‘이인제 의원 수뢰사건’은 수많은 정치인이 정치자금 제공을 거절하지 않는 서글픈 정치현실과 ‘실적 올리기’를 위한 무리하고 부실한 검찰수사 관행이 빚어낸 ‘합작품’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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