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으로 갈라선 이복남매의 사랑
- ‘거짓말 탐지기’ 조사 앞두고 자살한 성폭행 피의자
- 남자친구는 취조 대상으로 보지 말자
- 스릴 넘치는 호스트바 잠입, ‘못생긴 년이 별것 다 시킨다’고?
- “윤락은 안 했고 오럴섹스만 했다”는 뻔뻔한 남자들
1년에 545명 검거한 여걸
‘스타 여성 투캅스’로 부르던 김인옥 제주경찰청장과 강순덕 경위가 부적절한 처신으로 물의를 일으켜 이날 행사는 예년과 달리 조촐하게 치러졌지만, 묵묵히 현장을 뛴 황 경사의 수상에 참가자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기념식이 끝난 뒤 황현주 경사를 만났다. 500여 명의 범인을 잡아들인 형사라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가녀린 몸매가 첫눈에 들어온다. 단아한 인상에 차분한 목소리. 부드럽고 친절하다.
그러나 그와 몇 마디를 나누며 금세 깨닫는다. 형사 업무에 대한 열정과 프로 의식이 지금의 그를 있게 했음을. “여형사에게 피해자 조사만 시킬 것이 아니라, 피의자 조사도 시켜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그가 든든해 보인다.
황 경사는 대학을 졸업하던 1995년 경찰에 입문했다. 제복이 멋있어 보여 경찰이 되고 싶었다는데, 그의 전공은 의상학이다. 그러나 황 경사가 경찰관이 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 건 가족이다.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참된 경찰관으로 살아온 아버지,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근무하는 오빠는 그가 여형사로 성장하는 데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었다. 또한 중학생 때부터 알고 지내던 멋진 여경 선배가 그의 롤 모델이다.
“언론의 주목을 받는 ‘스타’보다 여성청소년계 분야에서 제몫을 하는 경찰관이 되고 싶다”고 겸손하게 말하는 그가 더 주목받는 것은 2002년부터 인터넷 홈페이지({http://my.dreamwiz. com/pinepol)에 써온 일기 덕분이다. 일명 ‘여형사의 일기’라고 하는 그의 글이 누리꾼(네티즌)에게 알려지면서 홈페이지 방문객이 급증했다.
2년 전 배우 하지원이 열연한 TV 드라마 ‘다모’에 열광했는가. 그러나 황 경사가 쓴 ‘여형사의 일기’는 리얼리티에서 우러나는 더 큰 감동이 있다. ‘다모’의 주인공 채옥이 겪는 비극적 로맨스나 공중을 가르는 무협 액션은 없지만, 노래방 단속에 나섰다가 도우미로 오해받고 용의자의 자살에 고통스러워하는 여형사의 생생한 체험이 녹아 있다.
후배 경찰관에겐 ‘수사 참고서’, 일반인에겐 ‘인생 교과서’가 될 ‘여형사의 일기’를 들여다보자. 여형사의 땀, 고뇌, 분노, 기쁨과 보람이 묻어나는 이야기를. 그가 홈페이지에 올린 일기, 그리고 가슴속에 담아둔 수사비화를 일기 형식으로 재구성해 소개한다.
2년 만에 붙잡은 성폭행범 (2005년 6월27일)
2002년 11월 초순 시각장애인 하늘(가명·7)이를 조사한 적이 있다. 하늘이를 돌보던 학교측은, 아이의 팬티에 콧물처럼 찐득찐득한 것이 자주 묻어나와 병원에 데려갔더니 ‘임질성 질염’이란 진단이 나왔다고 했다. 병원에 재차 확인한 결과 “임질성 질염은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아이의 분비물은 성접촉에 의한 것이 확실하다”고 했다.
진술 녹화를 위해 충북아동학대예방센터에 갔다. 그곳에서 참 맑은 표정의 한 아이를 만났다. 미소가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눈만 보였더라면, 가족의 따뜻한 보살핌만 있었더라면, 하늘이도 다른 아이들처럼 지낼 수 있었을 텐데….
하늘이는 임신한 엄마, 의붓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의붓아버지는 건설 현장 노동자, 1주일에 한 번 겨우 집에 들어온다고 했다. 이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집에서 아랫도리조차 입지 않고 돌아다니는 사람이었다.
“아빠가 음… 내 팬티를 벗기고 아빠 다리 위에 앉게 해서….”
하늘이와 나의 대화가 비디오테이프에 녹화되기 시작했다. 아이는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다. 이 일을 겪은 후 하늘이는 갑자기 신경질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점자 쓰기를 할 때도 상처 받은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는 듯했다.
녹화 테이프에 담긴 내용을 20여 장의 녹취록으로 만드는 데 꼬박 7일이 걸렸다. 녹취록 작성을 전문가에게 부탁하려 했더니 20만원이나 든다고 해서 내가 직접 했다. 낮에는 다른 사건을 조사하고, 밤에는 녹음을 풀고…. 피곤한 날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하늘이 엄마와 의붓아버지가 갑자기 도주해버려 날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남편이 딸을 성추행했다”는 하늘이 엄마의 결정적 진술을 듣고, 피의자가 집에 들어오는 날 그를 검거하려 했다. 그러나 남편과의 사이에서 곧 아이를 출산할 그는 갈등 끝에 남편과 도피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 때문에 딸이 성추행당하는 것조차 눈감아야 했던 하늘이 엄마의 심정은 어땠을까. 시각장애인 딸을 그렇게 버리고 도망가야만 했을까.
그러나 2년여 후, 하늘이 의붓아버지가 울산에서 붙잡혔다. 음주 오토바이 운전으로 수배자가 됐다가 경찰 검문에 걸린 것이다. 피의자를 데려와 조사했지만, 반성은커녕 오리발만 내민다. 우리 사무실에 오리발을 하나 갖다놓고 싶다. 아저씨 입 아플 테니, 미리 그 오리발을 드리고 “오리발 내밀고 싶으면 이걸 내밀라” 하고 싶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피의자는 결국 구속됐다. 검사가 진술녹화 테이프를 법정에서 계속 사용한다는 말도 들었다.
하늘이는 아동학대예방센터에서 꾸준히 심리치료를 받았고, 이제는 상태가 많이 호전됐다. 심리 치료 후 점자 연습도 정상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단다. 하늘이는 엄마를 그리워했지만, 끝내 엄마는 딸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아이야, 이제 씩씩하게 자랄 수 있을 거야. 너와 엄마를 괴롭히던 그 사람은 이제 감옥에 있거든.”
사랑해선 안 될 사람 (2005년 3월29일)
순찰 도중 전화가 왔다. 형사계에 변사자 때문에 조사받는 사람이 있는데, 자살이 우려되니 화장실에 같이 가달라는 이야기였다. 순간 ‘남녀가 동반 자살했는데 여자만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형사계에 가서 난 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러고 싶었다. 그래야 그가 세상의 따뜻한 온기를 느껴 자살하고 싶은 마음을 접을 것 같아, 작은 일이나마 해 보았다.
계속 울고 있는 여자…. 발생보고를 보니 둘은 이복남매고 여자가 누나였다.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은 둘의 관계를 비관하다가 결국 죽기로 결심한 것이다. 술을 마시며 자신들의 비극적 운명을 슬퍼하던 두 남녀. 여자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남자가 먼저 목을 맸다. 여자는 바로 들어와 동생의 목에 감긴 줄을 풀어주고, 숨을 내쉬는 그를 자신의 옆에 눕힌 채 잠이 들었다. 그러나 여자가 잠에서 깨어난 순간, 남자는 얼음장처럼 변해 있었다. 목을 맸을 때 이미 그의 기도가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울면서 담당 형사에게 부탁한다. 대전으로 가기 전에 영안실에 가서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고인의 명복을 빌며…. 다음 세상에는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나 여기서 이루지 못한 사랑 꼭 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남아 있는 당신은 그 사람의 몫까지 살길 바랍니다. 당신의 동생이 그렇게 당신과 살고 싶어 하던 세상이잖아요.
용의자의 자살 (2005년 1월28일)
“저희 아버님이 자살하셨습니다.”
오늘 오전 심장이 멎을 듯한 소식을 들었다. 장애인 소녀 은지(가명·12)를 성추행한 혐의로 조사를 받던 50대 김모씨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그의 며느리가 알려온 것이다.
며칠 전, 김씨에 대해 성폭력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기각됐다. 피해자의 말엔 신빙성이 있지만, 피의자의 범행에 대한 직접적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였다. 검찰은 “거짓말 탐지기로 한 번 더 진술을 받아보자”고 제안해왔다. 김씨를 안정시키기 위해 일단 그를 석방시켰다. 그러나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받기로 한 오늘 새벽, 그는 자신의 집 근처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나. 경찰에 들어온 이후, 가장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 행여 무고한 사람을 용의자로 지목한 것은 아니었을까.
“거기 찰칵 문 열리는 소리가 났어. 어떤 통로 같은 데를 지나 옥상으로 갔는데…. 거기서 할아버지가….”
진술 녹화 당시, 은지는 아파트 옥상에서 성폭행당한 정황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찰칵 문 열리는 소리는 바로 환풍기 소리였고, 아이가 성폭행을 당한 현장에는 담배꽁초가 흩어져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남성들의 사진 20장을 은지에게 보여준 순간, 아이가 주저없이 가리킨 인물이 바로 김씨였다.
그러나 김씨는 “1년 전부터 옥상에 올라간 적이 전혀 없다”며 혐의 사실을 부인했다. 그런데 조사를 받는 그의 태도는 무척 불안해 보였다. 나의 질문에 유난히 손가락을 파르르 떨었고, 긴장한 듯 여러 컵의 물을 계속 들이켰다. 김씨가 조사를 받을 때 피우던 담배꽁초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 DNA 감정을 의뢰했다. 옥상에서 주운 담배꽁초에 묻은 타액과 비교해보기 위해서다. 그러나 진실이 채 밝혀지기도 전, 그가 숨을 거뒀다.
발생보고엔 ‘한 50대 남성이 장애를 비관하여 자살했다’는 내용이 올라왔다. 구속영장을 신청한 사람이라도 망자가 되면 불기소 의견을 낸다.
끔찍한 일을 두 번이나 당한 은지를 떠올려본다. 그 아이는 2004년 5월에도 자신이 자주 놀러가던 아파트의 경비원에게 끌려가 성폭행을 당해, 내가 조사한 적이 있다. 그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올해 또다시 성폭행을 당한 것이다.
은지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어머니의 잦은 싸움에 충격을 받아 후천적 장애를 갖게 됐다고 한다. 지능이 떨어지고, 말을 더듬는다. 판단능력은 있지만, 저항능력이 없어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엔 벅찬 일을 두 번씩이나 겪어야 했다.
은지에겐 뭐라고 말해주어야 하나. 머릿속이 하얗다.
(※이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교육을 받다가 한 법의관으로부터 우연히 새로운 소식을 들었다. “옥상의 담배꽁초에서 나온 DNA와 김씨가 피운 담배꽁초에서 나온 DNA가 일치한다”는 이야기를. 무거운 죄책감의 그늘에서 겨우 빠져나온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망자의 유가족에게 누를 끼치는 것은 아닌지 송구스럽다.)
사람 냄새나는 사람이 좋다 (2004년 3월30일)
오늘 오전 여성청소년계 문을 살며시 열며 날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들어오라며 차 한잔 대접하겠다고 하니, “잠시 나와주십시오” 요청을 한다. 처음엔 몰랐다. 예전과 다른 모습 때문에.
청주 동부경찰서 민원실에 근무하던 1998년 5월 어느 날, 30대 여성 윤민자(가명)씨가 내게 찾아와 상담을 요청했다. “청와대, 여성단체 모든 곳을 가봤지만 희망이 없어 푸념이나 하고파 들렀으니 이야기만 들어달라”고 내게 애원했다.
세상에! 정말 삼류소설에나 등장할 법한 이야기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에 처음엔 난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윤씨는 “처제들은 형부가 이렇게 가르쳐 시집을 보낸다”는 형부의 말만 믿고 그에게 성폭행을 당해왔다.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윤씨가 자라온 환경을 보니 그럴 수 있단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를 채 마치지 못해 그는 고민을 나눌 친구조차 없었다. 청소와 빨래를 하며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 보니 바깥세상과도 완전히 단절된 상태였다. 성교육을 받았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서 윤씨는 자신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깨달았다. 또한 자신의 두 여동생도 형부에게 똑같은 일을 당해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뒤늦게 형부를 고발하려 했지만, 모두들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이 힘들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그는 자살하러 가기 전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나를 찾아온 것이라 했다.
“최근까지도 형부가 같이 있고 싶다며 전화했다. 가족 모임에 가면 형부가 강제로 추행을 한다”는 윤씨의 이야기에, 즉시 형사계에 수사를 의뢰했다. 결국 파렴치한 행각을 벌여온 윤씨의 형부는 구속됐다.
그는 나란 사람을 무척 보고파 했다고 한다. 자신의 한을 풀어주었기 때문이란다. 지금은 너무도 밝아져서 그를 첫눈에 알아보지 못했다. “그동안 찾아오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지만, 그의 행복해진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뿌듯했다. 경찰과 피해자로 만났지만, 나란 사람을 오래 기억해준 그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얼마 전, 내가 구속시킨 한 피의자가 출감 후 나를 찾아왔다. 그는 감옥에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이젠 조금이나마 나를 이해하게 됐다며 인사차 들른 것이다.
“황 형사님! 저 나왔습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처음에는 참 원망스러웠지만, 그곳에 있으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의 말이 참 고마웠다. 힘들어도 사람 냄새나는 사람들이 있어 행복하다.
직업병 (2004년 4월15일)
후배와 저녁식사를 했다. 후배가 남자친구를 부른다고 한다. 그러면서 “남자친구가 경찰조직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며 그래서 속상할 때가 있다고 했다.
우리 직업을 이해해주기란 쉽지 않다. 12~13일 만에 한 번씩 숙직을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일제검문 등을 위해 밤에 2~3시간씩 ‘뻗치기’ 근무를 한다. 말이 2~3시간이지 아마 다른 사람들에게 하라고 하면 절대 못할 일인지도 모른다.
남의 일이라면 그저 “아, 참 힘든 직업이시군요” 하겠지만, 막상 내 아내가 일주일에 한 번 야간 근무를 나간다면 이해해줄 남편이 얼마나 될까. 아마 후배도 이런 점을 염려한 모양이다. 4월12일부터 이틀간 일제검문을 실시했다. 오늘은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근무하고 돌아왔다.
결혼을 생각하는 후배. 이것을 잘 이해해줄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이 쉽지 않기에 힘들다고 했다. 우리는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했다. 직업병에 대해.
후배와 나는 조사를 담당하는 형사들이다. 그러다보니 사람들과 대화하는 중에 불쑥불쑥 형사 기질이 튀어나온다. 상대방의 말이 잘못됐으면 꼬집어 말해야 하고, 사람들이 싸우고 있으면 그 원인을 알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상한 버릇! 이놈의 직업병이 다른 사람을 피곤하게 할 수 있다며 후배와 나는 깔깔 웃었다.
남자친구나 다른 사람들을 취조 대상으로 보지 말자고….
아가야, 이젠 울지 마! (2003년 5월1일)
며칠 전, 충북아동학대센터에서 긴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생후 28일 된 아기가 전치 12주의 팔 골절상을 입고 청주 모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이었다. 세상에 나와 듬뿍 사랑을 받아야 할 갓난아기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아기 엄마는 앳된 티가 채 가시지 않은 지체장애 3급 장애인. 의식불명 상태의 아기를 보며 엄마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동학대센터의 상담 선생님은 아기 엄마를 따뜻하게 다독이면서 자초지종을 물었다. 나는 아기 엄마의 마음이 변할까봐, 병원 원무과에서 컴퓨터를 빌려 급히 조서를 작성했다. 차마 납득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이야기가 아기 엄마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남편이 그랬어요, 우리 아가를. 너무 무서워요. 남편은 술만 먹고 들어오면 날 막 때려요. 우리 아가 어떡해요. 우리 아가….”
아기 엄마는 몇 년 전 스물다섯 살이나 많은 남편을 만나 동거하게 됐다고 한다. 사실, 아기 엄마에겐 또 하나의 상처가 있었다. 걸핏하면 폭력을 행사하던 아버지 밑에서 자라온 것. 그러나 아버지의 곁을 도망치듯 떠나 만난 남편도 그를 안전하게 보호해주지 못했다.
의처증이 있던 아기 아버지는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아내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확인해보니 아기 엄마는 환각증상은 있지만 폭력성향은 없는 것으로 나왔다. 이 대목에서 남편이 범인임을 더욱 확신하게 됐다.
오늘은 병원에서 코피를 흘리고 있는 아기 엄마를 발견했다. 남편에게 구타를 당한 것이다. 나는 병원 관계자라며 내 신분을 숨긴 채 남편을 쫓기 시작했다. 상담 선생님에게 부탁해 동료들에게 신고도 해놓은 상태였다. 그의 휴대전화를 빼앗고, 무사히 검거에 성공했다. 등줄기로 한 방울 땀이 흘러내렸다.
아무것도 모른 채 해맑게 웃던 아기에게 아버지는 무슨 일을 저질렀단 말인가. 사랑과 정성으로만 보살펴줘도 모자랄 나이인데. 범인을 검거했다는 뿌듯함은 잠시, 가슴속에 흘러내리는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구속된 아기 아버지는 법원에서 4년형을 선고받았다. 아기는 당시 폭행의 충격으로 뇌성마비를 앓고 있다. 아기야, 울지 마. 이젠 네게 행복한 일들만 있었으면 좋겠다.)
호스트바 (2002년 9월20일)
경찰에 입문한 1995년 이후 5년 동안, 줄곧 경찰서의 민원실과 면허시험장에서 근무했다. 그러나 정말 하고 싶었던 건 수사 업무다. 언젠간 범죄 현장을 누비며 잠복근무의 스릴을 만끽할 그 날을 간절히 꿈꿔왔다.
2000년 5월, 드디어 내게도 기회가 왔다. 청주 동부경찰서 형사계의 요청으로 호스트바 단속에 투입된 것이다(당시 나는 형사관리반 소속이었다). 첫 단속이라 손님으로 가장한 나는 남자들을 상대로 멋지게 호기 한번 부려보고 싶었다. 그러나 술 대접 한번 받아보지도 못하고 호스트바 침투에 들어갔다. 화장실과 주방을 샅샅이 뒤지고, 그곳에 있는 15명의 남자들를 형사계로 데려왔다.
첫 단속의 짜릿한 경험이 가슴을 설레게 했다. 그때부터 형사계 직원들에게 “그런 일 있으면 나 좀 불러줘요” 말하곤 했다. 사실 당시엔 ‘여자 형사와 남자 형사가 같이 잠복하다가 눈 맞으면 어떡하냐’며 여형사의 투입을 꺼렸다. 그러나 현장을 뛰겠다는 진심과 의지는 통하게 마련인가보다.
2년이 지난 오늘, 나는 또 호스트바를 단속한다. 새벽 2시 반, 졸린 눈을 비비며 집을 나선다.
호스트바를 찾는 사람들은 거의 술집 종업원이다. 그들은 남자 손님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똑같이 되갚아주면서 스트레스를 풀려고 한다. 호스트바에서 여자들은 삼류 잡지에서 본 것처럼 남자들보다 더 짓궂게 군다. 보통 50만~100만원의 술값이 나가는데, 가끔 그 술값을 내지 못해 여자들이 팔려가기도 한단다.
호스트바의 테이블에서 한 남자의 수첩을 발견했다. 그 남자는 수첩에 꼼꼼하게 자신이 들어간 테이블의 분위기와 여자 손님의 인상착의를 적어놓았다.
‘돈이 많은 여자다. 저 여자는 물어야지.’
‘얼굴도 못생긴 년이 별것을 다 시킨다.’
‘이 여자는 오늘 처음 왔나보다. 순진한 것 같다.’
‘저 여자는 얼굴도 예쁘고 돈도 많다.’
호스트바를 단속하기란 어렵다. 윤락행위를 적발하려면 호스트바에서 만난 두 남녀가 여관에 가는지 지켜봐야 하고, 설사 두 사람의 성관계 현장을 덮쳤다 해도 돈이 오고 갔는지 확인해야 한다. “서로 좋아서 그랬다”고 오리발을 내밀면 처벌하기가 어렵다.
또한 미성년자가 있어야 업소를 처벌할 수 있고, 음란행위를 적발하려면 내가 직접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50만원이 넘는 술값을 어떻게 감당하란 말인가. 이 박봉으로!
귀여워서 그랬어 (2002년 8월27일)
웃지 못할 일이다. 정보는 정보과 직원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자에게서 먼저 나오는 경우가 많다. 제보가 들어왔다. 80대 노인이 10대 정신지체아 자매에게 못된 짓을 했다는 내용이다. ‘설마, TV에서나 나오는 이야기가….’ 하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은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동네에선 이미 파다하게 소문이 났지만, 누구 하나 용감하게 나서서 사실을 확인해주진 못했다.
우선 아이들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10대 자매가 살고 있는 집에 찾아갔다. 차마 집이라 부를 수 없는 가건물. 집안은 마치 돼지우리 같았다. 자매는 우리를 보자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두 자매의 어머니는 “애들 아버지가 두 딸이 못된 짓을 당한 사실을 알면 큰일난다”고 신신당부해, 두 자매의 아버지에겐 복지관에서 왔노라 선량한 거짓말을 했다. 사실, 이 자매의 엄마도 지능이 낮아 자녀를 잘 돌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첫째는 15세, 둘째는 11세였다. 언니는 키가 크지만 동생보다 기억력이 없고, 동생은 언니보다 말하는 것이 조금 낫다. 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을 건네야 할까.
아이들을 조사할 땐 아이들의 말로 질문을 해야 한다. 겨우 다섯 장의 진술서를 받는 데 2시간 반이 걸렸다. 비장애아라면 1시간이면 될 것을, 이 아이들은 집중력도 떨어져 조사받다가 놀고, 겨우 데려와 조사하면 어느새 지겹다고 한다.
그런데 이럴 땐 아이들을 놀게 한 시간도 빠뜨리지 않고 조서에 써넣는 것이 좋다. 조사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 테고, 나중에 임의성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젊었다. 80세라고 해서 호호 할아버지를 생각했는데, 60대 중반으로 보일 정도였다. 키는 작지만, 농사일을 오래 해온 탓인지 몸매가 다부졌다. 할머니와 지난해까지 성관계를 가졌다니, 건강은 타고났나보다.
황현주 경사는 “일기를 책으로 내보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지금은 그저 개인의 소중한 기록으로 간직하고 싶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할아버지는 강간에 대해선 부인했지만, 강제추행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아이들에게 귀엽다며 1000원씩 쥐어주고, 6회에 걸쳐 추행했노라 고백했다. 80대 노인이라 구속이 떨어질까 했는데, 결국 구속되고 말았다.
두 자매가 강간당했다는 현장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 할아버지 집에 갔다. 그곳에서 아이들에게 보여줬다는 6개의 포르노 비디오테이프를 가져왔다. 할아버지에게 불행의 시작은 그 포르노 테이프를 본 순간부터였는지 모른다.
여형사는 뭐든 아는 척해야 한다 (2002년 8월20일)
모처럼 휴일인데 당직이다. 저번 출장마사지 건으로 조사한 피의자의 2차 조서를 꾸미는 날이기도 하다.
처음 조사받던 때보다는 날 덜 경계하는 눈치다. 아마 오늘은 나를 비롯한 많은 형사에게 망신을 당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가 처음 조사받던 날은 내가 좀 심하게 신문했다. 윤락을 하지 않고 오럴섹스만 했다고 우기는 아저씨. 면상을 한 대 때리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는다. 1차 조서를 꾸미던 날, 그가 오럴섹스만 했다고 주장하자 나는 이렇게 질문을 던졌다.
“오럴섹스가 뭡니까?”
“그걸 몰라서 물어요?”
몰라도 알아도 피의자의 입으로 어떤 행위인지 구체적인 진술을 받아내야 하는 것이 형사다. 난감해하는 피의자, 다 알고 있다는 듯 거만한 표정의 여형사. 윤락행위등방지법에 의해 입건된 남성 피의자들을 조사할 때면 대부분은 쑥스러워 말을 잘 못한다. 그러면 나는 “알어 알어, 아저씨! 나 애 둘 딸린 엄마야. 나도 남편 있는데 뭐가 쑥스러워?” 너스레를 떨며 편안하게 말을 건넨다. 그때서야, 술술 말하기 시작하는 피의자들.
그들의 얼굴을 보면서 한 가정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결혼에 대한 환상을 일찍 깼는지도 모른다. 나의 직업 때문에!
나중에도 윤락행위라든지, 성폭행, 성추행 사건을 처리할 땐 모든 걸 다 아는 척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상대방이 마음놓고 이야기를 꺼낼 테니까. 모른다는 표정은 금물!
‘난 그날 당신이 한 일을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수사에 임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