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공무원에 매월 100만원, 부서비로 200만원 상납
- 현장 1곳당 평균 접대비·상납비 5360만원
- 중앙부처, 공기업, 군·경찰의 뇌물수뢰 ‘선수’들
- 빌라에서 발견된 76억원 현금뭉치
- 접대 직원 과로사 속출
최근 1년 동안 벌어진 비리 의혹 사건이다. 한국이 ‘부패공화국’임을 만방에 선포하기라도 하듯 연이어 터져 나왔다.
지난해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한국의 부패인식지수(CPI)는 10점 만점에 4.5점, 146개국 중 47위다. 1995년 이후 계속 40~50위를 맴돌고 있다. 한국은행 김태동 금융통화위원은 “경제 규모는 선진국 턱밑까지 쫓아갔지만 부패 지수는 후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며 “이런 부패구조에서 국민소득 2만달러를 달성하면 뭐하겠냐”고 개탄했다.
건설 비자금 절반은 ‘부패자금’
부패의 진원지는 건설업이다. 앞서 열거한 부패사건들도 모두 건설과 연관돼 있다. 국민 대다수가 ‘건설’ 하면 ‘복마전’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릴 정도다. 택지개발사업을 하기 위해 지방 공무원이 지정하는 건축사무소에 일을 맡겨야 한다거나, 공무원에게 급행료를 줘야 사업 인·허가가 떨어진다는 얘기는 흔해빠진 얘기다. 그만큼 건설산업은 일반인의 뇌리에 부패한 산업으로 인식되고, 실제 매우 부패해 있다.
하지만 국민은 건설업이 부패했다는 사실을 알아도, 그 실상은 잘 모른다. 부패의 양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어떻게 발생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건설업계의 부패는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각하다는 의미기도 하다.
어느 정도 심각한지 보여주는 자료가 있다. 지난 4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1993년 2월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2005년 4월까지 12년 동안 언론에 보도된 부패 및 비리 사건을 유형별로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뇌물사건 584건 중 건설 분야 사건은 320건으로 55.3%다. 또 뇌물을 받은 1047명 중 673명(64.3%)이 건설과 관련돼 있다. 같은 기간 사법처리 과정에서 혐의가 입증되거나 법원에 의해 추징된 뇌물 1383억원 가운데 건설과 관련된 것은 600억원(43.4%)이다. 부정부패의 핵심 고리가 바로 건설산업이다.
같은 자료에서 사법처리 시기를 기준으로 건설 관련 뇌물사건을 살펴보자. 김영삼 정부 187건(58.4%)·418명(62.1%), 김대중 정부 58건(18.1%)·126명(18.7%), 노무현 정부 75건(23.4%)·129명(19.2%)이다. 김대중 정부 때 잠시 주춤했으나 노무현 정부 들어 증가했다. 집권 2년여 만에 이미 건수로는 김대중 정부의 5년치를 넘어섰다. 부패가 줄었을 것이라는 일반의 통념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노태우 정권부터 현 노무현 정권까지 집권세력의 정경(政經)유착이나 측근 비리는 계속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때문에 한국 사회의 부패수준도 크게 낮아진 것 같은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하지만 각종 개발이권과 특혜를 먹잇감으로 삼는 건설부패는 오히려 늘어났다. 물론 수사당국이 과거보다 더 적극적으로 수사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건설 부패가 여전히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는 데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낙찰제는 없고 운찰제만 있다
건설 부패는 한국 사회를 심각하게 오염시키고 있다. 건설이나 개발과 관련된 모든 단계에서 비리 및 부패사건이 발생하고, 건설 발주 및 인·허가 관련 업무를 하는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들이 부패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경실련 김헌동 공공사업감시단장은 “대한민국 부패는 건설에서 시작해 건설에서 끝난다”며 “건설은 로비와 뇌물로 시작해 로비와 뇌물로 끝난다”고 지적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언론에 보도된 부패의 양상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20년 동안 건설업체에서 근무한 김헌동 단장은 건설에서 생기는 비자금 규모가 연간 수십조원에 이르고, 이 가운데 절반이 각종 로비와 뇌물 등 부패자금으로 흘러간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은 어쩌다 악취가 진동하는 건설부패 공화국이 됐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내 건설산업과 이를 둘러싼 법적, 제도적 실태를 짚어봐야 한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의 제도와 관행을 그대로 본떠 형성된 국내 건설산업의 틀은 매우 후진적이고 기형적이다. 칸막이식 업역(業域) 구분과 다단계 하도급 구조, 기괴한 복권추첨식 입찰제도 등이 국내 건설산업을 옥죄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기획, 설계와 시공, 감리, 유지보수 등이 업역별로 분리돼 있다. 시공을 예로 들면 그 안에서도 전기공사, 통신공사로 구분된다. 업역에 따라 칸막이를 쳐 경쟁을 제한하는 한편 업역별로 ‘밥그릇’을 챙기게 돼 있는 구조다. 또 시공영역은 하청-재하청-시공참여자-십장, 반장으로 이어지는 중층적 구조로, 생산 및 유통단계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매우 많다.
가장 큰 문제는 건설업체가 막대한 폭리를 취할 소지가 다분한 입찰제도다. 정부와 지자체, 공기업이 발주하는 공공 공사의 예산(설계가) 원가산정 기준이 부풀려져 있다. ‘표준품셈’으로 부르는 원가산정 기준은 건설현장의 공종(工種)별로 들어가는 품을 일일이 계산한 것. 예를 들어, 어떤 크기의 덤프트럭이 어떤 속도로, 얼마만큼 토사를 운반하는지 정해놓은 것이다. 이 품셈을 근거로 개별 공사 현장에 필요한 작업량을 추정하는 방식으로 공사의 예정가격을 정한다.
그런데 표준품셈은 기술 발전과 작업 효율의 증가 등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10~20년 전 그대로 적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덤프 운반 품셈의 경우 트럭 용량이 커지고 도로 사정이 좋아져 운행 속도가 2배 이상으로 빨라졌는데도 20년 전 수준으로 적용한다. 이 때문에 표준품셈에 근거한 정부 설계가는 실제 시장단가보다 최소 30~40% 부풀려져 있다.
건설업계, 정부 예산으로 돈 잔치
기형적인 입찰제는 건설업체가 폭리를 취하는 토대다. 국내 입찰제도의 근간이 되는 것은 적격심사제다. 적격심사제는 공공사업 발주자인 정부가 부실공사 방지를 명목으로 일정 낙찰률 미만으로 낙찰되지 않도록 일정 수준의 낙찰 하한선을 만들어둔 제도다.
명목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현실은 기가 막힌다. 사실상 복권 추첨식의 요행에 의해 낙찰자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기술력이나 공사 이행능력과 상관없이 재수 좋은 건설업체가 공사를 따도록 돼 있다. 이 때문에 건설업계에서는 운에 의해 결정되는 낙찰제라는 의미로 운찰제(運札制)라 부른다.
이는 글로벌 스탠더드 격인 자유경쟁입찰제(최저가 낙찰제)와 대비된다. 자유경쟁입찰 방식인 최저가 낙찰제는 말 그대로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낸 입찰자에게 공사를 주는 방식이다. 물론 해당 공사를 제대로 이행할 수 없을 정도로 부실한 업체가 최저가를 써내는 경우에는 낙찰받을 수 없도록 하는 장치는 있어야 한다. 정부도 최저가 낙찰제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을 인정하고, 2001년부터 이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고 있지만, 아직 적격심사제가 주류다.
그나마 올해부터 100억원 이상 공공 공사에 확대 도입키로 했던 최저가 낙찰제가 다시 유보돼 공공 공사의 대부분이 여전히 운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2003년 발주된 공공 공사의 58.2%(21조원)가 적격심사제로 발주됐고, 14.3%(3조2000억원)는 저가심의제(최저가 낙찰제 하에서 덤핑 수주를 방지한다는 목적으로 도입된 제도이지만 역시 운에 의해 낙찰 여부가 결정되도록 만들었다)로 발주됐다. 전체 공사의 72.5%가 운에 의해 낙찰된 것이다.
문제는 입찰 방식과 상관없이 다단계 하도급을 거쳐 최종 하도급자가 실행하는 공사 원가는 똑같다는 점이다. 결국 정부 예산으로 건설업체들의 배를 채워주는 셈이다. 대부분의 몫을 가져가는 것은 공사를 직접 수주하는 대형 원도급자들이고, 하도급업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많지 않다.
최저가 낙찰제가 조금씩 확대되자 2001년부터는 최저가 낙찰제 예외 대상인 턴키공사(설계·시공 병행입찰)가 대량으로 발주되기 시작했다. 건설업계의 로비 덕이다. 이 제도는 애초에 국내 건설산업의 기술력을 키운다는 명분으로 도입됐다. 그러나 국내엔 설계와 시공의 업역이 구분돼 아직 도입할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다. 턴키공사는 업체간 담합에 유리한 구조여서 낙찰률이 95%에 이른다. 물론 이들 공사 역시 최종 하도급 단계의 실행 원가는 같기 때문에 최저가 낙찰제 공사 대비 30~40%를 건설업체들이 더 챙길 수 있는 제도다.
이처럼 국내 건설 관련 제도는 대형 건설업체가 막대한 폭리를 취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경실련이 올해 5월 발표한, 최근 6년간 건교부 산하 지방국토관리청이 수행한 8개 국도 건설현장의 실태를 보자. 이 자료에 따르면 표준품셈에 근거한 정부 예정가격은 시장가격보다 2배 가량 부풀려져 있다. 특히 토공사(土工事)에서는 2.6배 가량 부풀려진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성남-장호원 국도공사의 경우 비슷한 규모임에도 입찰제도의 차이에 따라 낙찰가가 1200억원 이상 차이 나기도 했다.
100조원 중 40조원이 비자금?
이런 상태에서 중앙 및 지방 공무원, 공기업 직원은 복잡한 법 규정과 제도를 통해 특혜와 이권을 좌우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건설교통부 등 국내 관료 조직은 막강한 정책 결정 및 집행권을 행사할 뿐만 아니라, 토공과 주공, 도공, 수공 등 산하 공기업을 수족처럼 부리며 사업 결정 및 집행권을 장악하고 있다.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판교 신도시 개발이나 각종 국도 사업은 건교부가 직접 정책을 결정하고, 사업 기획까지 맡는다. 이는 민간 전문업체나 민간 전문가에게 건설사업의 기획 및 총괄 관리를 맡기는 선진국과는 판이한 구조다. 한국은 관료가 지나치게 비대한 권한을 갖고 있다. 이러니 관료를 상대로 치열한 로비전이 펼쳐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경실련 분석에 따르면, 뇌물을 받은 공무원 중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이 341명(50.7%)으로 가장 많다. 이들은 모두 147억원의 뇌물을 받았다. 중앙부처 78명(11.6%, 71억원), 공기업 66명(9.8%, 64억원), 군 40명(5.9%, 27억원), 경찰 19명(2.8%, 4억2000만원), 청와대(대통령 친인척·측근 포함) 16명(2.37%, 90억원) 등 공사 발주 및 인허가 관련 권한이나 영향력을 지닌, 넓은 의미의 공무원이 81%를 차지했다.
이제 국내 건설산업의 비자금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추산해보자.
해마다 발주되는 국내 공공사업의 규모는 민자사업 20조원을 포함, 연간 70조원에 달한다. 각 지자체가 벌이는 사업과 재정사업을 합치면 연간 100조원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가운데 10조~20조원이 비자금으로 쓰일 것으로 추정한다. 이 가운데 절반은 건설공사 과정에서 로비 및 향응, 접대, 뇌물 등에 사용되고, 나머지 절반은 기업주가 비자금 형태로 은닉한다.
연간 100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민간주택건설 및 기업설비 투자사업 공사비도 10~20%가 비자금으로 조성된다. 공공과 민간부문을 합쳐 모두 연간 20조~40조원의 비자금이 전국 공사현장에서 만들어지고, 이 가운데 절반이 뇌물로, 또 다른 절반이 로비 및 향응접대비로 뿌려지는 것이다.
10년간 중·소형 및 대형 건설업체를 두루 경험한 건설업체 직원 박모씨는 “업체마다, 공사 현장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적게 잡아도 공사비의 10%는 비자금”이라고 말한다. 김헌동 단장은 비자금 규모가 최대 40조원은 된다고 주장한다. 경실련 아파트 값 거품빼기운동본부장으로 아파트 원가공개운동을 주도했던 그는 오랜 건설업계 경험을 토대로 각종 공사의 원가가 어느 정도인지 잘 안다.
그는 공사의 낙찰률을 기준으로 비자금을 계산한다. 최저가 낙찰제 평균 낙찰률이 55%, 적격심사제 78%, 대안입찰 82%, 턴키공사 95%, 민자사업 100% 라고 할 때 공사 물량 비중을 고려하면 대체로 평균 낙찰률은 80%대. 정부 예정가격 대비 최종 하도급업체의 실행원가는 40%도 안 된다. 각종 하도급 명세서를 살펴보면, 최저가 낙찰제 공사에서도 대형 원도급 업체는 직접 공사비에서 15~20%를 떼먹는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정부 공사 물량 가운데 최소 40%는 건설업체들이 중간에서 뗀다는 얘기다. 이를 연간 정부 공사 발주 물량 100조원에 대입하면 40조원의 수익이 발생한다. 김 단장은 주택시장업계도 최근 몇 년 동안 부동산 투기 붐에 편승한 고분양가 정책으로 30~40%의 폭리를 취한 것으로 분석한다.
그런데 건설업체가 국세청이나 건교부에 신고하는 수익률은 터무니없이 낮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집값 급등세가 극에 달한 2002년 주택 건설업계의 매출액 대비 이익률은 3.03%였다. 제조업의 6.27%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김 단장은 이로 미루어 건설업체들이 취한 이익의 절반이 비자금으로 조성됐다고 판단한다. 그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연간 공사 물량의 10%인 20조원이 비자금으로 만들어진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비자금 규모는 사주(社主)와 사주가 신임하는 일부 사람만 아는 극비사항”이라고 말했다.
“뇌물 없는 공사장은 없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막대한 비자금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각종 비리 사건을 통해 사실로 입증됐다. 극동건설, 신화건설, 동아건설, 한보건설, 우방건설 등 부도나거나 워크아웃 대상에 오른 건설기업의 사주들이 한결같이 수백억~수천억원대의 비자금을 빼돌렸다는 사실이 그렇다. D건설 사장은 30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이 드러났다. S건업이라는 중견 건설업체의 사주 아들은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한 1년 동안 76억원의 비자금을 현금으로 마련해 모 빌라 안방에 쌓아두고 있다가 지난해 검찰에 적발됐다. 중견 건설업체가 1년 동안 그런 규모의 현금을 비자금으로 빼돌리니 전체 건설업계의 비자금 조성 실태는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이 간다.
건설이 주력이 아닌 기업조차 각종 건설공사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다. 최근 219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임 명예회장은 폐기물 처리업체를 위장계열사로 인수하고, 공장 이전 공사를 맡은 하청업체와 이중 계약하는 방법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엄청난 비자금과 뇌물은 어떤 식으로 건네질까.
먼저 공사현장의 뇌물상납 구조를 보자. 복잡한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공사 물량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지만, 뇌물·접대는 밑에서 위로 올라간다. 공무원은 대형 건설업체에서 돈을 받고, 대형 건설업체는 하도급 업체에서, 하도급 업체는 다시 재하도급 업체에서 뇌물과 접대를 받는다.
룸살롱, 안마시술소, 접대 고스톱
안마시술소는 건설업계 로비스트들이 접대장소로 애용하는 곳이다.
원도급 업체는 감독공무원에게 보통 월례비로 100만~200만원씩 상납한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공사감독님’에게 촌지를 주던 관례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밖에 부서비로 월 200만원 정도를 상납한다. 감리에게 연간 2회(여름 및 겨울) 휴가비를 건네고 추석, 설 등 명절에는 수백만원대의 떡값이 오간다. 건설업계 사정을 잘 아는 한 변호사는 “뇌물의 규모는 현장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뇌물이 오가지 않는 공사장은 전국에 단 한 곳도 없을 것”이라며 “심지어 법정관리를 받고 있는 건설사도 하도급업자에게 뜯어서라도 뇌물을 대납한다”고 말했다.
상납 대상은 공사감독에 그치지 않는다. 정부 관련 부처 감독관에게 월 50만~100만원, 담당 경찰에게 월 100만~200만원, 소방서 등 각종 점검기관에 월 100만원씩 준다. 원도급 업체 본사는 현장소장에게 공사액의 2~3%를 뇌물 자금으로 준다. 이는 접대비를 제외한 금액이다. 본사에서 현금으로 공사현장에 내려 보내는 회사도 있고, 현장에서 자체 조성해 쓰도록 하는 회사도 있다. 대부분은 사고를 우려해 본사에서 비자금을 직접 조성해 현장에 내려 보낸다.
향응접대비도 엄청나다. 공무원을 대상으로 주말 국내 골프 접대는 물론 해외 골프 접대도 수시로 이뤄진다. 룸살롱, 단란주점, 안마시술소, 카지노, 접대 고스톱, 일식집, 갈빗집, 뷔페 등 접대 메뉴도 다양하다. 접대 고스톱은 감독관들에게 100만원씩을 나눠주고 고스톱판을 벌여 일부러 잃어주는 식이다. 회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건설회사에 입사해 10년이면 과장, 15~20년이면 차장, 부장이 되고 25년이면 대개 임원급이 된다. 차장, 부장 등 현장 책임자급이 되면 본격적으로 ‘접대부’ 노릇을 하게 된다. 골프는 최소 월 1~2회, 룸살롱은 월 2회, 일식과 갈빗집 접대는 주 1회씩 하는 식으로 공무원을 관리한다.
다음은 원도급 업체가 하도급업체에서 뇌물과 접대를 받는 메커니즘을 살펴보자.
대형 건설업체는 자사와 거래하는 수십 개의 하도급 업체를 등록하게 하고 이들에게만 수주 기회를 준다. 하도급 업체에는 대형 건설업체와 거래할 수 있는 기회만 가져도 엄청난 혜택이다. 이 때문에 하도급 업체 사장과 임원은 정치권이나 고위 공무원에게 대형 건설업체에 등록할 수 있게 해달라며 청탁한다. 등록과 함께 수주까지 보장하면 억대의 뇌물이 오간다. 하도급 건설업체의 공사 계약 문제를 상담하는 컨설팅 업체 직원 신모(42)씨는 “50억원짜리 공사를 따게 해주면 보통 공사금액의 3~5%가 뇌물로 전달된다는 게 업계의 통설”이라고 말했다.
대형 건설업체는 흔히 ‘견적 초청’이라고 하는 입찰 참여 공지를 등록업체에만 보낸다. 등록업체 중에서도 대형 건설업체의 현장책임자나 임원급이 추천하는 업체라야 견적 입찰에 초청받는다. 하도급 업체는 견적 초청에 참여할 기회를 얻기 위해 현장책임자나 임원에게 또다시 뇌물을 준다. 전문 건설업체 S토건은 H건설의 견적 초청에 참여할 기회를 얻기 위해 1년가량 H건설의 임원을 쫓아다녔다. 룸살롱 접대와 명절 떡값 명목 등을 포함해 1년 동안 업체 임원에게 1억원이 넘는 돈과 향응을 접대하고서야 55억원짜리 공사를 딸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업체 등록, 입찰 초청, 수주까지 단계별로 뇌물과 접대 없이 공사를 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뇌물 상납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공사를 수주한 하도급 업체는 공사현장에서 원도급 업체(원청) 직원에게 뇌물을 줘야 한다. 한 하도급업체가 원청에 주는 뇌물 액수는 대략 원청이 공무원에게 주는 금액의 5분의 1 정도다. 원청은 한 공사에서 보통 여러 하도급 업체와 거래하므로 개별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는다.
공기업 경찰서 언론사, 돈 요구
전문 건설업체가 증가하면서 대형 건설업체로부터 각종 이권을 따주는 수주 브로커들도 활개를 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정·관계 인사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발주 및 수주 정보를 주고받는다. 또 건설업체와 정치인 또는 고위 공무원의 가교 노릇도 한다. S토건 관계자는 “브로커들은 하도급 업체의 회장, 부회장 명함을 파서 활동한다”며 “이들은 호텔 커피숍에 하루 종일 죽치고 앉아 원도급 사와 하도급 회사 임직원을 만나 업체 등록이나 공사 수주를 중개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공사를 따주면 커미션으로 공사비의 1% 가량을 받는 게 관례다. 수주 브로커는 공사 도중 안전사고가 생기거나 부실공사 문제가 생기거나 불시점검을 통해 지적받는 등 문제가 생기면 해결사 노릇을 하기도 한다.
고석구 전 수자원공사 사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중소 건설업체에서 로비자금 등의 명목으로 수십억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 5월말 구속된 수주 브로커 이모씨의 사례를 들어보자. 검찰에 따르면 이씨는 수자원공사 고석구 전 사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S개발과 K토건 등 중소업체 두 곳으로부터 수자원공사가 발주하는 공사를 하청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속여 71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S개발 대표 권모씨는 80억원의 회삿돈을 비자금으로 빼돌려 이 가운데 47억원을 로비자금으로 쓴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발주기관의 감독공무원이 하도급 업자 선정에 관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04년 경기도 북부지역의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주택사업을 추진한 한 업체는 공무원에게 톡톡히 당했다. 택지개발 추진 과정에 아무 문제가 없었고 담당 계장도 문제가 없다고 했으나 담당 과장이 2년 가까이 승인을 내주지 않았다. 결국 한 인사를 통해 과장을 구워삶자 그는 자신이 아는 하청업체에 일감을 주라는 조건으로 승인해줬다.
부패 고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하도급 업체는 재하도급 업체에 공사를 주면서 뇌물을 받는다. 주로 십장 출신의 시공 참여자는 50~100명의 기능 인력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항상 공사에 굶주려 있다. 따라서 공사를 따기 위해 하도급 업체나 재하도급 업체에 뇌물을 주지 않을 수 없다. 십장, 반장도 함께 일하는 근로자들의 일감을 확보하고 노무비를 제때 지급하기 위해서는 재하도급 업체에 뇌물을 줘야 한다.
2003년 전국 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이 각 건설업체 현장소장 4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건설현장의 접대 및 뇌물 관행이 얼마나 심각한지 여실히 드러난다. 조사 결과 46명 모두 ‘건설현장에서 부당한 요구를 받아본 적이 있으며 부당한 금품을 지급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부당한 요구를 한 기관은 공기업 등 발주처, 경찰서, 언론사, 노동사무소, 시군구청 및 동사무소 순이었다. 연간 접대비와 정기·부정기 상납비를 조사한 결과 현장 한 곳당 5360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부당한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절반이 기성대금(중간 정산대금)의 늑장지급, 규제와 감시의 강화, 준공검사 등 공사일정 지연 같은 불이익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청 속이는 페이퍼 컴퍼니
경실련 국책사업감시 단원들이 최저가 낙찰제 시행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재경부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원도급 업체는 하도급 업체와 이중계약을 맺는 수법을 가장 많이 쓴다.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이 발주한 수도권의 한 국도 공사의 경우 공사를 수주한 H건설은 하도급률 계산 수치를 조작하는 방법으로 이익을 취했다. 하도급률 계산에 포함해서는 안 될 항목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실제 58.8%에 불과한 하도급률을 84.9%라고 허위 통보한 것이다. 이처럼 이중계약을 통해 H건설은 130억원가량을 빼돌렸다.
또 다른 국도공사를 수주한 I토건은 원도급 금액과 한치의 오차도 없이 100%로 하도급을 줬다고 발주청에 통보했다. 가격경쟁을 통해 하도급을 줬기 때문에 최소한 20%가량을 남겼을 것으로 추정되는데도 도급금액과 1원도 안 틀리게 하도급을 줬다고 허위로 발주처에 통보한 것이다.
이중계약 외에도 여러 방법이 동원된다. 공사에 동원된 인부의 수와 일한 날수, 지불임금을 조작하면 손쉽게 비자금을 만들 수 있다. 공사장 인부는 대개 일용직이어서 이들의 수입이 국세청에 잘 잡히지 않는 맹점을 노린 것이다(지난 1월부터 1개월 미만 일용직 노동자에게도 고용보험이 확대 적용돼 소득이 노출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제도로 비자금이 줄어들지는 지켜봐야 한다)
건설현장에 동원하는 중장비 대수 및 가동 일수, 각종 자재의 수량 및 단가를 조작하는 방법도 비자금을 만드는 수법이다. 또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비자금을 조성하고 세금을 포탈하거나 하청업체와 거래한 금액을 부풀리는 등의 수법도 동원된다. 특히 소규모 페이퍼 컴퍼니는 신설과 폐업이 쉬워 3~5년 간격으로 실시되는 국세청 세무조사를 손쉽게 피해나갈 수 있다. 건설업체들은 매출액을 실제보다 적게 분식(粉飾) 회계해 세금을 줄이기도 한다. 이때 이용되는 게 공사 진행률이다. 아파트 건설공사의 경우 1년 만에 끝나는 공사가 거의 없기 때문에 올해 공사가 40% 진행됐더라도 30%만 진행된 것으로 바꿔 매출액을 줄인다.
이 같은 현장 관행은 정치권과 중앙 부처의 관련 정책을 바꾸거나 특정 업체에 특혜성 사업을 주도록 하는 데 드는 뇌물에 비하면 미미하다. 2004년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 과정에서 밝혀진 현대건설·대우건설·한화건설 등 대형 건설업체의 비자금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전직 건설업체 간부는 “수백억~수천억원의 공사를 따내기 위해 수십억원을 지불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말한다. 지난 대선자금 수사에서 (주)부영의 이중근 회장이 27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해 이 가운데 일부를 정치권 로비자금으로 사용한 사실만 봐도 로비 실태를 짐작할 수 있다.
1인당 뇌물 1억2600만원
건설업체 입장에서는 건설 관련 정책부터 실제 사업결정 및 수주와 관련된 모든 과정이 건설업체 로비와 뇌물 공세의 대상이다. 건설 관련 정책 및 제도 결정, 사업 결정, 입찰방식 변경, 담합 입찰, 선급금 지급, 공공주택단지나 신도시 건설 과정, 재개발 재건축 승인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특히 공공사업은 재정사업으로 할지, 민자사업으로 할지에 따라 건설업계의 이해가 달라지기에 치열한 로비 대상이다.
또한 국가 재정사업으로 한다면 다시 턴키나 대안, 적격심사제, 최저가 낙찰제 등 어떤 제도로 입찰하느냐에 따라 건설업체에 돌아오는 몫이 달라진다. 따라서 사업 및 입찰방식 결정권자도 건설업체의 핵심 로비 대상이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경실련 분석 결과에서도 수뢰 명목을 기준으로 볼 때 공사수주·낙찰·수의계약을 내세워 돈을 받은 건수가 156명(23.1%, 197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또 받은 뇌물도 1인당 평균 1억2600만원으로 가장 많다.
이 때문에 로비 및 뇌물공세의 주대상이 되는 것이 바로 정책 및 사업자 결정권을 가진 중앙부처 및 지자체, 공기업이다. 주택사업이나 도시개발사업, 신행정도시 이전사업 등의 사업자 결정권은 모두 중앙부처에 있다. 건설업체들은 이런 대규모 개발사업의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공무원과 공기업, 국회에 로비를 펼친다. 정부 관료와 지자체장, 공공기관장이나 정치인 등이 개입해 사업자 선정 관련 규칙과 절차 등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공공택지사업과 관련해 건교부는 어떤 공공택지에서는 대형 주택건설업자를 주축으로 택지를 분양받게 하고, 어떤 곳은 중소형 주택건설업자만 분양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건교부 관료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건설업체의 명암이 교차하는 것이다.
건교부 산하 중앙건설기술심의위원회(중기심)는 연초에 정부 재정사업의 발주방식을 결정하는데 여기 참여하는 위원들은 치열한 로비 대상이 된다. 건설업체들은 발주 방식 결정 과정에서 손쉽게 돈을 남길 수 있는 턴키 물량 비율을 늘리기 위해 치열한 로비를 펼친다. 또 설계를 완료하고 가격입찰 경쟁을 하기 직전에도 대형 건설업체의 임원진이 발주기관장들을 찾아다니며 턴키 및 대안입찰방식으로 발주방식을 바꾸도록 로비한다.
노다지나 다름없는 턴키공사를 둘러싼 건설업체들의 로비 전쟁은 이공계 교수나 학자들까지 부패의 늪으로 빠뜨린다. 중앙 정부와 지자체의 턴키공사 입찰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이들 전문가 그룹이 사실상 공사 수주의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예정가격 1500억원 공사를 최저가 낙찰제로 입찰하면 800억원에 수주하지만, 턴키방식으로 따면 1450억원에 수주할 수 있다는 게 업체들의 계산이다. 최대 650억원의 차익을 앉은 자리에서 챙길 수 있다. 더구나 각종 심사결과 설계점수에서 1~2점의 극히 적은 점수 차로 낙찰자가 정해지기 때문에 업체들은 사활을 건 로비전을 펼치는 것이다.
“교수 부인의 해외여행도 챙겨줘야”
한 전직 대형 건설업체 간부는 “몇 년 전부터 턴키공사가 확대되면서 상위 10개 건설회사의 과장급 이상 직원 약 1000명이 로비에 동원되고 있다”며 “이렇게 로비해 공사를 한 건 수주하면 거대 이득이 생기는 데 어떤 건설업체가 가만있겠냐”고 말했다. 이 간부가 전하는 실태는 이렇다.
“우선 대형 건설업체들은 공사비의 2~3%를 턴키 입찰 로비비로 책정한다. 그 중 30%를 용역을 맡긴 설계업체에 준다. 설계업체들은 평소 설계심의를 받으러 다녀 심의위원들을 잘 알기 때문에 로비가 잘 통한다. 턴키 방식에서는 설계용역시장이 커지고 대형 건설업체들로부터 설계비를 후하게 받기 때문에 이들은 적극적으로 뛴다.
또 과장급 이상 직원은 연고가 있는 턴키 공사 심의위원인 교수나 연구원 리스트를 제출해야 한다. 자기가 아는 발주기관의 공무원 리스트도 작성해야 한다. 그러고는 이들을 대상으로 평소에 꾸준히 식사 및 술자리, 골프 대접을 해야 한다. 교수가 해달라는 것은 다 해준다. 지방 교수가 서울로 출장 온다고 하면 호텔을 잡아주고 교수 부인이 해외여행 가는 것까지 우리가 챙겨준다. 이렇게 꾸준히 심의위원들을 접촉해 로비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회사에 영수증을 갖다 내야 한다. 교수가 소속된 학교에 필요한 시설이나 기자재를 지원하기도 한다. 대학원에 등록해 교수들과 친분을 쌓기도 한다.
또 자기 회사가 대표사로 참여한 턴키공사의 경우 심의위원 예상자 명단을 뽑아서 사내외 관련 인사들을 총동원해 심의위원들을 밀착 마크한다. 다른 업체 사람을 만나는지 동향 파악도 한다. 그렇게 해서 예상자 중에 심의위원이 결정되면, 발표 하루나 이틀 전 발주기관에서 심의위원 명단을 빼낸다. 그때부터는 24시간 그림자처럼 심의위원을 따라다닌다. 그렇게 해서 공사를 따내면 심의위원에게는 ‘성공사례금’으로 5000만원에서 1억원을 주기도 한다. 심의위원 10명에게 1억원씩 10억원이 들어간다고 해도 공사 하나 따면 거액을 벌기 때문에 껌 값이다. 이것말고도 각종 음식 및 술 접대비로 10억원, 일반 경비로 10억원 등 월 20억원은 고정적으로 들어간다. 1년에 200억~300억원은 쓴다. 입찰에서 떨어지면 로비력이 부족해서 떨어진 거라고 생각해서 오히려 로비자금을 더 늘리고 로비 인력도 더 늘리는 회사가 적지 않다.”
이처럼 턴키 입찰을 둘러싼 거대한 부패 고리의 실체가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다. 2003년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군 장성들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한 H건설 김모 상무보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압수한 사내 문서는 이 같은 실태를 잘 보여줬다. ‘공공부문 입찰업무 분석’이라는 문서의 ‘턴키입찰 심의위원 선정방식 개정 현황 및 당사업본부 대응전략’ 항목에는 구체적인 지침이 드러나 있다.
FBI, 국세청 동원해 건설비리 조사
이에 따르면 기존 학계위원 관리체계를 중심으로 다른 직종의 심의위원까지 담당 지역별로 배분하되, 공무원이나 유관기관의 경우 공사수행과 관련해 직접 또는 과거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통해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또 로비의 과정에 대해 밀접한 관계 형성 후 심의위원 선정대상 범위를 유도하고 기초 확정명단 입수 등을 통해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접촉하며 입찰 진행기간에 심의 주관부서를 더 밀착관리한다는 식으로 단계별로 언급해놓았다. 턴키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대형 건설업체가 얼마나 전방위적 로비를 펼치는지 보여주는 문건이다. 이에 앞서 1999년에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14개 대학 교수 46명이 턴키입찰 참여 업체에서 한 사람당 600만~5000만원과 향응 대접을 받아 구속 또는 불구속됐다.
행담도개발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 수사관들이 한국도로공사에서 압수한 자료를 운반하고 있다.
건설 부패의 양상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이유는 비리가 적발돼도 제대로 처벌되지 않기 때문이다. 검찰이 수사해도 결국 건설 부패에 연루된 사주나 고위직 임원들에 대한 처벌은 드물고, 하위직 직원만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것. 그나마 처벌받은 건설업체 경영진은 정권이 바뀌면 ‘경제를 살린다’ ‘사회화합을 도모한다’는 명목 아래 사면받아 풀려난다. 부패 관행에 젖어 반칙과 불법으로 사업을 키워온 경영진이 어떻게 대한민국 경제를 살리고, 사회화합에 기여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이들에 대한 사면은 대한민국이 선진경제로 탈바꿈하는 것을 저해하고 평범한 서민에게 위화감과 박탈감만 심화시킬 뿐이다.
우리 정부나 사법 시스템의 ‘솜방망이 처벌’과 ‘면죄부’의 일례를 살펴보자.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뒤 1999년 검찰은 설계용역업체를 대상으로 대대적 수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뇌물 수수와 비리에 관한 사실관계를 대부분 밝혀놓고도 이 가운데 일부만 공개하고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다. 재경부, 건교부 등 정부부처와 정치권의 상당수 인사와 언론이 나서 “건설업이 어려우니 이번에는 봐주자”는 동정론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들 가운데 처벌된 인사들 대부분이 2000년 ‘밀레니엄 대사면’을 통해 풀려났다.
2002년과 2003년, 서울지하철 9호선 부실 공사와 관련한 대형 건설업체들의 담합 비리사건도 마찬가지다. 경실련이 고발해 공정위가 일부 사실을 밝히기는 했지만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공정위가 매긴 과징금(73억원)은 이들이 취한 폭리(600억~1000억원대로 추정)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 또한 재판에서는 전관(前官) 변호사들을 내세운 건설업체들이 기존 판결을 모두 뒤집었다.
伊, ‘마니풀리테’ 이후 건설비 절반으로
선진국의 경우 건설 부패행위를 강력히 처벌함으로써 부패사건의 재발 가능성을 줄이고 있다.
2002년 주한미군 육군 현역 대령이 기지 내 군인가족 주택건설사업 등 이권(利權)이 걸린 일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한국 업체들로부터 70만달러(7억원)를 받은 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문제의 현역 대령은 한국 건설업체인 A&S가 오산공군기지 주택 건설, 캠프 캐럴 등 다른 기지 내 몇몇 병영 건설 공사에 최저가로 응찰하지 않았는데도 낙찰받게 해준 혐의를 받았다. 이 대령은 이 건과 관련해 무려 11가지 혐의로 기소됐으며, 유죄가 인정될 경우 115년형을 선고받는다. 이 사건 하나를 수사하기 위해 미 육군범죄수사대와 FBI, 미 국세청이 동원돼 공조했다.
그런데 국내의 경우는 어떨까. 지난 정권 최대의 부패 스캔들인 분당 ‘파크뷰 게이트’ 사례를 보자. 당시 분당 파크뷰 개발 시행자였던 H개발 H회장은 2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형을 선고받고 출소한 뒤 지난해 파크뷰 분양으로 최소 500억원대 이상의 순이익을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김헌동 단장은 “H회장은 단 1억원의 자본금으로 남의 돈 100억원을 빌려 1조원의 아파트 분양사업을 한 뒤 엄청난 차액을 챙겼다”며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부패 사범이 징역도 살지 않고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최소 500억원을 벌 수 있다면 달려들지 않을 건설업자가 얼마나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파크뷰 게이트 당시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장으로 이 사건에 연루됐던 양윤재 전 서울시 부시장은 당시 파크뷰 사업의 용적률 관련 용역을 통해 사실상 불가능한 사업을 가능하게 하는 토대를 제공했다. 그는 대가로 아파트를 사전 분양받는 특혜를 누리고, 이와 별도로 H개발에서 4000만원을 받았으나 처벌되지 않았다.
특혜와 반칙이 만들어내는 건설부패 구조는 대한민국을 망치는 최대의 오염원이다. 사정 당국의 대대적인 수사를 통한 건설부패 청산 없이는 선진 한국은 요원하다. 건설부패는 정부에는 막대한 예산 낭비, 국민에게는 민간 주택시장의 고분양가라는 부담으로 돌아온다. 이런 점에서 이탈리아가 ‘마니풀리테(‘깨끗한 손’이라는 뜻으로 이탈리아 검찰이 정경유착 등에 대해 대대적으로 벌인 사정 작업)’를 통해 건설업계의 부패를 뿌리뽑자 건설공사비가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진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