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호

‘골프 모독한 죄’를 알렸다!!

  • 장상인 팬택계열 기획홍보실장·전무

    입력2005-07-29 16: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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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프 모독한 죄’를 알렸다!!
    “그런데 저…, 제가 한번도 골프를 쳐본 적이 없는데요….”

    “뭐라고? 닭장에도 안 가봤나?”

    “골프 연습을 닭장에서 하나요?”

    1994년의 어느 가을, 일본 후쿠오카 시티은행 본사 임직원과 지점 간부들이 참여하는 골프대회에서 오간 ‘기막힌 대화’의 한 토막이다. 한 달 전쯤 초청 제의가 왔을 때 “골프를 못 친다”고 답한 것이 화근이었다. 나로서는 “칠 줄 모른다”고 답했건만, 주최측에서는 “잘 못 친다”고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아무리 못 쳐도 100타 전후는 치겠지’, 그런 식으로 생각한 듯했다.

    물론 책임은 내게도 있다. 한 달 내내 잊고 있다가 이틀 전에야 연습장을 찾았으니. 껄껄 웃으며 “무슨 대회인지는 몰라도 다녀와서 시작하시는 게 낫겠다”는 레슨 프로를 뒤로하고는 서점에 들러 입문서 한 권 사다 읽은 것이 참가준비의 전부였다. 어쩌겠는가. 이미 참가자 명단이 뿌려진 것을. 새 장갑에 새 모자, 한 번도 골프채를 잡아본 적이 없는 ‘새 손’.



    막상 일본에 가보니 120명 정도가 참가해 30팀을 구성하는 꽤나 큰 대회였다. 외부인사인 필자는 은행총재의 팀에 이어 두 번째 팀에서 출발하는 영광을 안았다. 제비뽑기를 했더니 필자가 1번이란다. 4번을 뽑은 오자키 이사에게 순번을 바꾸자며 연유를 설명했더니, 필자와 같은 회사의 도쿄지점장이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골프채를 잡아본 적이 없다”는 필자의 고백에 지점장의 얼굴빛은 하얗게 변했다. 그에게 필자의 행태는 무례함 정도가 아니라 ‘골프 모독’ 수준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방법이 없다. 앞 사람이 공을 때리는 동작을 훔쳐보며 순서를 기다렸다. 공을 치고 오른쪽 발바닥을 뒤집는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필자 역시 드라이버를 힘껏 휘두르고 나서 오른쪽 발바닥을 뒤집었다. 그러나…. 공은 미동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세 번, 네 번을 휘둘러도 공은 움직이지 않았다.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등에서 흘러내리는 식은땀.

    꽤나 여러 번 만에 드라이버 헤드의 귀퉁이가 골프공을 스치자, ‘픽~’ 소리와 함께 공이 20m쯤 굴러간다. 수풀이 우거진 러프에 빠졌지만, 뒤에서 기다리던 일본 사람들은 아낌없이 박수를 친다. 모자를 벗어 인사라도 해줘야 하건만 창피함에 차마 돌아볼 수가 없었다. 이후 풀 속에 박힌 공을 손으로 끄집어내어 그린에 올라가기까지의 과정은 골프가 아니라 필드하키 혹은 자치기에 가까웠다.

    그린 위에서도 잘 안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매너 게임인 골프경기에서 필자의 무례함은 극에 달했다. 다른 사람의 라인을 밟고 다니는 것은 당연(?)했고 스파이크를 끌고 다니는 바람에 그린은 상처투성이가 됐다. 후반 들어서는 7번 아이언 하나만 가지고 티샷부터 어프로치까지 마무리했다. 스윙 폼이라는 게 있을 턱이 없었다.

    그래도 동반자들은 거리에 관계없이 공이 뜨기만 하면 박수를 쳐주었다. 흡사 영화 ‘말아톤’의 주인공처럼 온갖 역경(?)에 굴하지 않고 끝내 18홀을 마쳤다. 그 날의 행사에서 ‘캐디를 가장 괴롭힌 골퍼 상(賞)’이 필자에게 돌아왔다.

    아픔이 독하면 결심도 독해지는 법이다. 그날 이후 필자는 ‘골프와 전쟁’을 시작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동네연습장에 나갔다. 집앞 골목길에 차가 막혀 있으면 자가용 대신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출장 가는 날을 빼고는 1년 내내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어느 겨울날은 연습장에 갔더니 한 사람도 보이질 않았다. 레슨 프로에게 “왜 이렇게 조용하냐”고 물었더니 “영하 13℃ 날씨에 누가 연습을 하러 오겠냐”는 퉁명스러운 답이 돌아온다. ‘그래도 춥진 않은데….’ 필자의 혼잣말에 레슨 프로가 두 손을 들었다.

    그때 내 나이가 벌써 45세였으니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러대는 것은 당연했다. 마디마디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요즘 신체검사를 하면 ‘5, 6번 늑골 골절흔적’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갈비뼈가 부러졌다가 저절로 붙은 모양이다.

    학문에만 왕도(王道)가 없는 게 아니다. 골프에도 왕도가 없다. 연습에 박차를 가한 결과 1년 만에 90대 초반, 2년 만에 80대 진입. 그러나 욕심은 끝이 없었다. 골프를 시작한 지 3년쯤 됐을 때의 일이다. 드라이버, 미들 아이언 모두 잘 맞았지만 쇼트게임에서 실수가 많았다. 공의 머리를 때려서 그린을 오버하거나 뒤땅을 치는 경우가 많았다. 속상함이 물밀 듯 밀려왔다.

    매일 밤 둘째아이를 데리고 한강 둔치로 나갔다. 발걸음으로 거리를 재어 아들녀석의 발 앞에 공이 떨어지도록 피칭연습을 했다. 20m에서부터 50~60m까지 그렇게 단계별로 연습했다. 그 얘기를 듣는 사람마다 “아들의 머리 위에 사과를 얹어놓고 활 시위를 당긴 윌리엄 텔 이야기 같다”며 낄낄 웃는다.

    지금 필자의 골프실력은 핸디 10 정도. 베스트 스코어는 76타다.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어렵다는 아시아나CC 동코스에서 세운 기록이다. 지난해에는 사이클링 버디를 기록하기도 했다. 비결이 뭐냐고? 간단하다. 내게 그 무렵의 골프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자기와의 싸움이었다. 지금도 스코어보다는 플레이 내용을 염두에 두자고 되뇌며 이를 악문다. 10년 전 겨울 필자가 저지른 ‘골프 모독’의 죗값을 달게 치른다는 마음가짐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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