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호

제주도 명주 오메기술

늙고 시든 제주의 상징, ‘전통의 재해석’으로 부활하라!

  • 허시명 여행작가, 전통술 품평가 soolstory@empal.com

    입력2005-08-16 16: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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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과 돌이 많은 제주에선 쌀농사를 지을 수 없다. 그나마 재배가 가능한 곡식이 좁쌀이다. 그래서 제주의 술은 모두 좁쌀로 빚는다. 제주 사투리만큼이나 이름도 특이한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을 찾아 떠났다.
    제주도 명주 오메기술

    오메기술을 가마솥에 넣고 고소리로 증류하면 고소리술이 된다. 오른쪽 가마솥 위에 올려진 것이 고소리다.

    모처럼 주당들과 함께 제주 여행에 나섰다. 나의 임무는 술을 구하는 것이고, 동행한 주당들은 그 술을 비우면 되는 여행이다. 주당 중 한 명은 다금바리 안주에 홀려 있었다. 다금바리는 등에 갈색 줄무늬가 있는 은빛 물고기다. 회맛은 어떤지 모르지만, 잘 잡히지 않아서 귀한 생선이다.

    장맛비가 내리는 서울을 떠나 제주공항에 내려서니 후텁지근한 바람이 온몸을 휘감았다. 마치 에어컨 실외기 냉각팬 앞에 서 있는 듯했다. 공항을 나와 점심을 먹으러 간 곳은 물항식당. 물항은 물항아리를 일컫는 제주말이다. 제주 말엔 축약어가 많다. 바람 많은 섬인지라, 말도 바람에 쉽게 날아가버린다. 그래서 짧고 강렬한 단어들로 의사 전달의 효율성을 높여왔다. 예컨대 ‘가십시오’는 ‘갑서’라 하고, ‘하십니까’는 ‘하우꽈’라 한다.

    물항식당에서 자리물회와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제주 소주의 맹주는 한라산(구 한일소주)의 22도 한라산과 21도 한라산 순한소주다. 우선 순한소주를 주문했다. 소주 특유의 쓴맛이 치받지만 뒷맛은 엷다. 물의 기운이 느껴졌다. 생수 ‘삼다수’로 소문난 제주 물의 명성 때문인지 물맛이 부드럽게 느껴졌다. 시원하고 매콤한 자리물회와 소주 두어 잔이 알알하게 혀를 감전시켰다.

    식당에서 나와 본격적으로 술을 찾아 나섰다. 제주도 해안일주도로를 타고 서부 해안의 애월읍에 이르렀다. 애월읍에는 곽지해수욕장이 있다. 두 줄기의 검은 현무암이 거품을 일으키며 바다로 뻗어 있고, 그 사이로 흰 모래밭과 옥빛 바닷물이 담겨 있다. 이곳 명물은 노천 용천수 폭포다. 해수욕을 하고서 샤워할 수 있는 시설인데, 해수욕을 하지 않고 폭포 물줄기만 맞아도 기분이 좋다.

    용천수가 나오는 돌담 옆에는 샘물을 기리는 돌비석이 하나 서 있다. 동네 사람들이 ‘과물’ 또는 ‘석경감수(石鏡甘水)’라 부르는 샘물이다. 제주는 구멍이 숭숭 뚫린 화산지형이라 중산간 지역은 물이 귀하고, 바닷물과 만나는 해안에선 용천수가 솟아난다. 섬 가장자리엔 비중이 높은 바닷물의 압력에 의해 거대한 자연 물탱크가 형성되는데, 그 물탱크의 한 자락이 용천수로 솟구치는 것이다. 그래서 제주 여자들은 물허벅을 지고 바닷가로 물을 길러 다녔다. 그 용천수 중에 수량이 풍부하고 차갑기로 소문난 게 바로 곽지해수욕장의 과물이다.



    과물 인근 동네인 애월읍과 한림읍은 제주에서도 특히 물맛이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한라산에서 흘러내린 하천이 여러 갈래고, 다른 지역보다 해수 침입이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주의 양조장은 대부분 이 지역에 모여 있다. 애월읍 하귀리에 제주 막걸리 제조장들이 하나로 합쳐진 제주합동양조장이 있고, 애월읍 상가리에 ‘오름의샘’과 ‘고소리술’을 빚는 우리농산물영농법인, 애월읍 고성리에 녹용주를 빚는 제주사슴영농조합법인이 있다. 한림읍 금능리에는 감귤양조사가 있고, 한림읍 옹포리에는 제주 소주를 대표하는 (주)한라산이 있다. 복분자주를 빚는 한백당이 있는 곳은 한림읍 바로 옆 현경면이다.

    서부 해안말고 술을 빚는 곳은 제주 동부의 성읍마을뿐이다. 성읍마을에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을 빚는 김을정씨 집과 좁쌀막걸리를 빚는 제주민속좁쌀주 제조장이 있다. 성읍마을은 물이 좋아서 술이 있는 게 아니라, 민속마을에 걸맞은 품격을 갖추다보니 술이 생겨난 동네다.

    새로운 도전, 감귤탁주와 감귤와인

    그런데 애월읍과 한림읍에 양조장이 모여 있는 것은 물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어 보였다. 제주는 예로부터 술이 센 동네로 알려져 있다. 제주소주는 개성소주, 안동소주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세다. 섬 지방이라 특유의 술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육지의 술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라면 예사롭지 않은 수준이다. 그 밑바탕에 몽고의 영향이 있다. 개성소주와 안동소주의 명성이 높은 것은 고려시대에 몽고군이 그 지역에 많이 주둔했던 결과다. 제주도 마찬가지다. 애월읍 고성리에는 삼별초군의 대몽(對蒙)항쟁 최후 거점이던 항파두리성이 있다. 삼별초군이 진압된 뒤에 제주는 남송과 일본 공략의 전초기지가 됐고 몽고군의 목장이 되면서 100년 가까이 몽고의 지배를 받았다.

    제주 최고의 특산물인 감귤로 술을 만드는 감귤양조사를 먼저 찾았다.

    감귤양조사를 운영하는 사람은 박두준(74)씨다. 북제주군 의회의장을 지낸 박씨는 제주에 감귤주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양조사를 차렸다고 한다. 양조사를 지키는 기술자는 김성배(75)씨. 머리는 벗겨지고 관자놀이에 흰머리가 성성한 노인이지만 팔뚝은 굵고 뿔테 안경 속의 눈빛은 형형하다. 김씨는 감귤주를 빚기 위해 4년 전에 제주에 왔는데, 강원도 진부의 감자술 제조와 영광 법성포의 아랑주 제조에 관여했으며 술과 함께해온 지가 20년이 넘는다고 했다. 그는 이곳에서 감귤주 상품화와 신제품 연구를 하고 있다.

    양조사 안에 있는 감귤주 발효통은 예쁜 백자 항아리였다. 백자 용량이 70ℓ쯤 되니 쌀 한 가마가 못 들어가는 작은 용기다. 김씨가 감귤주를 한 잔 따랐다. 감귤을 통째로 즙을 내서 포도당과 과당을 첨가한 뒤에 효모를 넣어 발효시킨 12도짜리 감귤와인이다. 감귤향은 사라지고 없고 신맛도 느껴지지 않는 대신 귤껍질의 쓴맛과 과즙의 단맛이 혀에 감겼다. 앞으로 껍질은 제거하고 알맹이만 착즙할 거라고 하니 쓴맛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출시를 앞둔 감귤탁주를 냉장고에서 꺼냈다. 색깔이나 첫 입맛은 분명 감귤주스인데, 부드럽게 목을 타고 넘어가면서 가벼운 알코올 기운이 따라왔다. 기분이 좋아지는 감귤 알코올 주스다. 담그는 법은 감귤와인과 다르지 않은데, 거칠게 여과해 탁한 형태를 유지해서 탁주라고 부른다고 했다.

    감귤탁주는 조만간 현경면 조수리의 식품공장단지에 새로 지은 공장에서 출시한다니 기대해볼 만하다. 감귤와인이나 감귤탁주가 수입산 포도와인이나 일반 막걸리를 능가할 것이라는 기대는 아니다. 감귤이 과잉 공급돼 감귤나무를 베어내고 대안작물을 찾는 시점에 감귤 가공상품으로 거는 기대다. 20년 넘게 술과 함께 살아오고, 새로운 감귤주를 개발하기 위해 홀로 숙식하며 땀흘리는 김성배씨의 노력이 제주의 자산이 되기를 바라며 발길을 돌렸다.

    제주 술 기본 재료는 좁쌀

    일행은 다시 자리를 옮겨 전현직 대통령이 다녀갔다는 산방산과 용머리 해안이 한눈에 들어오는 남경미락 식당을 찾아갔다. 1kg에 18만원을 호가하는 다금바리를 맛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날 들어온 다금바리는 2.5kg짜리 한 마리뿐이었고, 이미 앞서 온 손님을 위해 횟감으로 다듬어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인근 모슬포의 해녀식당에서 회덮밥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도톰한 회를 많이 썰어 넣어주는 집이었다. 이곳에서도 술 한잔을 마다할 수 없어 22도짜리 한라산 소주를 시켰다. 22도 한라산 소주는 도수가 1도 높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증류식 소주가 첨가돼 21도 한라산 순한소주보다 맛이 묵직하고 깊었다.

    둘째 날, 일행은 제주의 농민주를 대표하는 13도 약주인 ‘오름의샘’과 30도 ‘고소리술’을 만드는 영농조합을 찾았다. 제주도개발특별법에 의해 민속주로 지정된 고소리술은 40도짜리도 있지만, 30도짜리가 잘 팔린다. 영농조합 대표 홍성윤(49)씨는 농림부에서 추천을 받고 제주도개발특별법상의 민속주로 지정받은 고소리술을 1998년부터 빚고 있다.

    제주를 대표하는 술은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이다. 오메기술은 좁쌀로 만든 오메기떡을 재료로 빚은 술이다. 제주의 술은 쌀을 기본으로 하는 육지와 달리 좁쌀을 기본 원료로 삼는다. 제주는 쌀농사를 지을 수 없어서 쌀술이 없다. 쌀농사를 지으려면 무논이 있어야 하는데, 비가 내리는 대로 ‘숨돌’이라 부르는 현무암 구멍 속으로 송송 빠져나가니 물을 가둬놓고 논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밭에 보리와 좁쌀 농사를 지어 대대로 살아왔다. 그리고 찰기 있는 차좁쌀로 오메기술을 빚었고, 그 술을 다시 고소리로 증류해 소주인 고소리술을 내려 마셨다.

    오름의샘은 오메기술을 모태로 한 제품이다. 좁쌀에 쌀을 추가하고, 전통누룩 대신에 백국균을 뿌린 쌀알누룩을 썼다. 여기에 진피(감귤껍질), 섬오갈피, 오미자, 감초, 손바닥선인장 등 제주산 약재 열 가지가 들어간다. 쌀을 넣으면 술맛이 부드러워지고 쌀알누룩을 쓰면 누룩내가 준다. 여기에 약재를 넣었으니 약주나 다름없다. 대신 좁쌀 오메기술에서 많이 멀어졌다. 옛길에서 영감을 얻어 새길을 찾아간다면 나무랄 게 없다.

    아쉽게도 오름의샘은 맛보지 못했다. 술이 공장에도 없는 상태였다. 대신 오름의샘을 증류한 30도짜리 고소리술을 맛볼 수 있었다. 고소리술은 깔끔하고 단정했다. 알코올향이 올라왔지만 거칠게 콧등을 칠 정도는 아니다. 소주의 쓴맛과 아릿한 맛이 섞이고 투박하면서 맛과 향의 균형이 잡혀 있다. 쌉쌀하기만한 한라산 소주에서 느낄 수 없는 향이 있고 억센 기운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동행한 주당들이 가장 좋은 제주 술로 꼽은 게 고소리술이다.

    제주도 명주 오메기술

    1 성읍마을에서 ‘조껍데기’ 술의 원조인 좁쌀막걸리를 맛보다. 2 성읍마을 남문을 지키는 장승. 3 백자 항아리에 감귤주를 담는 감귤양조사.

    하지만 지금 영농조합의 술 형편은 매우 어렵다. 대량유통과 대량생산의 시장경제 구조 안으로 진입하려다 돌부리에 걸려 잠시 쉬고 있다. 다시 일어나 씩씩하게 걸어가길 기대하며 발길을 돌렸다. 어디로? 다시 다금바리 횟집으로.

    하지만 횟집으로 향하는 길에 우리 일행은 실망스러운 전화를 받았다. 오늘 다금바리가 한 마리 잡혔는데 3kg짜리라는 것이다. 더욱이 쇠고기처럼 싹뚝싹뚝 썰어 파는 것도 아니라 1kg에 18만원이니 54만원을 내고 먹어야 한다고 했다. 54만원이면 모슬포의 청정 바다에서 양식한, 큰 접시만한 광어 27마리 값이다. 다금바리 값으로 배정된 회비 20만원을 초과하는 금액 34만원을 혼자 감당할 테니 그래도 다금바리를 먹자는 회원도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횟집 주인과 통화한 사람은 다른 주당이었다.

    “어쩔 수 없네요. 조금 작은 다금바리가 잡히면 연락 주세요.”

    그날 밤 일행은 서울의 광어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쫄깃쫄깃한 광어회 2kg을 안주로 고소리술을 마셨다.

    주당들의 꿈은 깨지고…

    사흘째, 일행은 제주의 마지막 보루와 같은 성읍마을을 찾았다. 제주의 초가와 돌담, 관헌, 고목 등이 그나마 잘 보존된 전통 민속마을이다. 1984년에 민속마을로 지정됐다. 이 마을엔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을 빚는 할망(할머니의 제주 방언)이 산다. 문화재로 지정된 할망 김을정(81)씨가 오메기술 빚는 과정을 시연했다.

    준비된 재료는 손바닥만한 누룩과 직접 농사지어 빻은 차좁쌀가루가 전부였다. 도구로는 항아리와 주걱, 함지, 대바구니가 준비됐고, 가마솥에는 물이 끓고 있었다. 할망은 먼저 오메기떡을 만들기 시작했다. 오메기떡은 차좁쌀가루에 뜨거운 물을 붓고 반죽해 도넛 크기로 뭉친다. 정말 도넛처럼 가운데 구멍을 뚫기도 하는데, 떡이 갈라지기 때문에 그냥 찐빵처럼 둥그렇게 빚는다. 이것을 끓는 물에 넣어 익힌 뒤 건져내 팥고물이나 콩고물을 입히면 오메기떡이 된다. 그런데 술을 빚을 때는 고물을 묻히지 않은 떡에 뜨거운 물을 부어가며 으깨서 항아리에 담는다. 그 다음 누룩을 넣고 물을 잘박하게 부어두면 4∼5일 뒤에 술이 익는다. 이것이 오메기술이다.

    김을정씨는 오메기술과 고소리술로 문화재 지정을 받았지만, 두 술 모두 김씨 집안의 것은 아니다. 제주는 농토가 넓지 않고 척박해 부농이 없다. 조선시대에 제주 출신은 높아봐야 아전이었다. 현감이나 수령은 모두 육지에서 배를 타고 들어왔다. 그래서 제주에서는 반상의 차이가 크지 않았고, 남녀 차별도 별로 없었다. 또 재산을 늘리고 땅을 넓혀 대가족을 거느리는 구조도 아니었다. 결혼하면 분가하는 ‘독립채산제 핵가족’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한동네의 이웃 어른은 촌수에 관계없이 모두 삼촌이라고 부른다. 가문이나 문중의 힘은 약하고, 지역공동체의 유대가 강한 사회다. 그래서 가양주(家釀酒·집에서 빚은 술)가 따로 없다. 술도 동네사람 모두 공유한다. 오메기술과 고소리술도 그런 술이다.

    김씨 할망은 가마솥에 오메기술을 붓고, 그 위에 소줏고리(전통 증류기)를 얹어 고소리술을 내리는 것까지 보여줬다. 그런데 빚어놓은 오메기술이 문제였다. 술맛이 시큼했다. 초산균이 침입한 것이 분명했다. 할망은 그저께 하룻동안 정전돼 냉장고가 멈춘 바람에 신 것 같다고 했다. 그랬다손 치더라도 거른 지 4일밖에 안 된 술이 그 정도로 신맛이 돈다면 문제가 있다.

    제주 술의 상징, 구수하고 맛있는 오메기술을 구해서 주당들을 만족시키겠다는 필자의 꿈은 산산이 무너졌다. 예상치 않은 제주 사람이 들고 온 다금바리회 안주에 성읍마을 김철홍(44)씨가 만든 좁쌀막걸리가 있었기에 그나마 위안을 받긴 했지만 필자는 이날 밤 술에 취할 수 없었다.

    안타까운 제주의 상징 오메기술

    마지막 날, 제주공항으로 향하기 전에 성읍마을 문화재 할망의 집에 다시 들렀다. 할망의 집에서 운영하는 기념품가게 냉장고에 예의 그 오메기술이 들어 있었다. 그 술도 시기는 마찬가지였다. 할망에게 그 술 아까워하지 말고 소주 내리는 데 쓰라고 했다. 그리고 물어보았다. 성읍마을이 민속마을로, 그리고 할망이 문화재로 지정되고 나서 할망의 술에 어떤 변화가 있었냐고. 할망은 변한 게 없다고 했다. 식품공학이나 발효학을 전공한 학자들과 연계한 적도 없고, 국세청기술연구소 같은 외부기관에서 교육받은 적도 없다고 했다. 예전 그대로라고 했다.

    ‘그렇다면 전통이 그대로 지켜져야 할 것이 아닌가, 오메기술의 명성에 걸맞은, 거칠지만 감칠맛 나는 술맛을 유지하고 있어야 될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실 오메기술은 여든한 살 할망의 나이만큼이나 기력 없고 노쇠했다. 새로운 지식도, 새로운 기술도 더해진 것이 없었다. 민속마을로 지정됐으면서도 여전히 예전처럼 방치돼 있는 성읍마을과 다를 바 없었다. 성읍마을도 초창기에는 제주 관광객의 80%가 거쳐가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관광객의 20%도 찾지 않는다. 어쩌다 오는 신혼부부나 여행사에서 몰고 온 단체손님에게 비싼 밥값이나 지불하게 하는 경쟁력 없는 공간으로 머물러 있다.

    전통은 새롭게 해석돼야 한다. 성읍마을도 이제 더는 초가집과 돌담, 관아건물만으로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다. 김씨 할망의 오메기술도 마찬가지다. 오메기술은 한라산만큼이나 우뚝한 제주의 상징이자 화두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최소한 필자는 제대로 된 오메기술을 한번은 맛봐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 그날까지, 오메기술은 필자에게 안타까운 화두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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