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경제성장의 비밀’ 청차오저 지음/김준봉, 최윤정 옮김/ 지상사/544쪽/3만원
중국의 눈부신 성장을 보면서 성장 배경이 무엇인지,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지, 그 결과 동북아 경제 질서 및 세계 경제 질서는 어떻게 변화할지에 의문을 갖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시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최근 20여 년간의 중국 경제 발전사이며 중국 경제의 변화 방향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히는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동일한 현상이라 해도 이 현상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시각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이 책은 중국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학자인 청차오저의 시각으로 바라본 중국 경제에 관한 논설이다. 책 곳곳에 저자의 애국심이 지나치게 배어 있는 것을 관찰할 수 있으며 이것이 때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러나 저자의 애국심을 비판적으로 이해한다면 이 책의 의미와 교훈의 심도는 한층 더 깊어질 것이다.
비전 제시, 국민 지지 확보
이 책은 중국 경제 발전의 중요한 전제 중 하나로 철저한 과거반성에 기초한 적절한 비전의 제시와 이 비전의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국민적 지지의 확보를 들고 있다. 1978년 중국 공산당 전체회의는 과거 중국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함께 새로운 결심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의 결론은 ‘정치투쟁이 경제를 대신할 수 없다. 중국을 부흥시킬 방법은 부국강민(富國强民)뿐이다. 약하면 침략당하며 침략의 아픔은 이미 충분히 겪었다. 빈곤하면 모욕을 당하며 모욕의 역사는 이제 다시 써야 한다’는 네 가지였다. 덩샤오핑의 경제개혁에 관한 비전은 바로 이러한 인식에 기초를 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비전이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했다면 실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덩샤오핑의 경제개혁을 뒷받침한 정치 전략은 다양한 계층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일차적으로 경제성과에 의해 직접 이득을 볼 수 있는 농민, 근로자, 관리자 등 중간계층의 지지를 확보했다. 국가의 미래에 관심이 많은 군인과 당 정치 지도자에게도 ‘예산이 줄고 통제권이 약해지더라도 오직 개혁만이 중국을 부흥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설득해 지지를 받아냈다. 또 대외개방을 통해 대부분의 지식인과 대학생들이 정부의 정책에 찬성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중국이 개혁개방을 실천하는 과정에 천안문사태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이 개혁개방을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다양한 계층의 국민에게서 광범위한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체제 전환이 이루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논쟁거리다. 저자는 중국과 러시아를 비교하면서 개혁 모형의 차이가 성패를 결정지었다고 주장한다. 러시아의 체제개혁 모형은 소위 ‘충격요법’이라고 하는 급진적인 것이었다. 단기간에 신속하게 시장경제 체제를 수립하기 위해 러시아는 ‘500일 계획’을 세워 추진하는 등 노력을 경주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악성 인플레이션, 생산량 저하, 채무부담의 증가와 같은 온갖 부작용이 발생했으며 실제 러시아는 1990년대 말 모라토리엄을 경험했다.
반면 중국은 ‘쉬운 것을 먼저 개혁하고 어려운 것은 나중에, 약점을 먼저 보완하고 강점은 나중에’ 주력하는 점진적 개혁 모형을 선택했다. 농촌에서 개혁을 시작해 도시로 확산시켰고 초기에는 가격병행제를 실시하다 점차 시장가격제를 실시했다. 동남연해지역을 먼저 개방한 뒤 연해, 연안 및 내륙 지역의 개방을 추진했고 국유경제에 대한 조정의 강도를 높이는 동시에 비공유재 경제를 발전시켰다. 국유기업의 개혁에서는 기능을 하부기관에 분산하는 작업을 먼저 한 후 국유경제의 구조를 조정했고, 경제개혁을 중심으로 정치개혁을 추진했다. 저자는 중국식 개혁의 성공 원인을 이런 점진적 개혁 모형에서 찾았다.
점진적 개혁모형
중국이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이유는 웬만한 자본주의 국가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시장제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비교해 예를 들어보자. 우리나라의 주택 공급에는 여러 가지 규제가 적용된다. 분양가 규제가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초고층 재개발은 위화감을 조성하기 때문에 허용되지 않으며, 비슷한 시기에 짓는 아파트는 한데 모아 동시에 분양해야 한다. 하지만 초고층 아파트 5개 동이 들어설 예정인 상하이의 고급아파트 단지는 녹지율이 아주 높아 마치 공원에 지어지는 듯하며, 한 동을 지어 분양한 후 가격이 상승하는 것을 보고 다음 동은 더 높은 가격에 업자가 알아서 판매할 수 있다. 어느 것이 더 시장 친화적인가. 향후 중국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한다면 주원동력은 시장경제제도의 적절한 운영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경제 성장은 계속될 것인가. 저자는 낙관과 희망을 섞어 설명한다. 지속적 성장의 요인으로 지리적 이점, 높은 투자수익성, 후발(後發)우위, 인구 13억의 대국효과, 경제이중구조 등을 들고 있다. 이 중에서 저자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지리적 이점이다. 세계경제가 통합되는 추세에서 유라시아 대륙판과 환태평양 분지의 중심에 자리잡은 중국은 세계 무역과 경제의 중추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중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세계경제 질서에 편입돼 다양한 경제블록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저자의 희망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존의 아세안(ASEAN)에 중국이 가세해 ‘10+1’을 형성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그러하다. 중국 지식인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며, 중국 정부가 이와 관련된 정책을 수립해 실천에 옮긴다면 향후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경제적 패권주의가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 국가와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것도 버거운 우리의 처지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다.
한편 중국이 계속 발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후발 우위와 경제 이중구조를 든 것은 다소 의외다. 저자는 세계의 산업화 역사는 후발주자가 선발주자를 따라잡는 것이 하나의 법칙임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후발 우위가 성립하는 이유로 낙후된 문화일수록 흡수력이 뛰어나다는 흡수이론, 선발자의 문명 중 성공한 것만 취할 수 있다는 선택 우위, 선발자의 장점만 결합해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결합우위 등을 든다.
희망과 자신감이 발전 동인
중국은 노동력이 우수하고 과학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에 후발 우위를 충분히 활용해 선발주자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산업화 역사에서 후발주자가 선발주자를 따라잡은 예는 산업혁명의 후발주자였던 독일과 이후의 미국이나 일본 등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중국이 이러한 특별한 경우가 될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경제 이중구조에도 비슷한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위성이 하늘을 날고 늙은 소가 쟁기를 끈다’는 말로 대변되는 경제 이중구조가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까? 저자는 부문별 불균형이 심하다는 것은 효율적 개선에 따른 경제성장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낙후된 분야가 공존한다는 것은 기술의 발전을 가속화하는 데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장기적 경제성장이 담보된다면 심한 불균형 혹은 이중구조가 급속하게 개선될 여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나, 심한 불균형과 이중구조가 장기적 경제성장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 경제 발전의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요인은 결론 부분에서 아주 간략하게 언급된다. 물론 저자는 중국 경제가 이런 어려움을 성공적으로 극복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도시화의 진전에 따르는 빈부격차 심화, 구조조정 과정에 나타나는 잉여노동력의 처리문제, 취약한 금융시스템의 이상작동 가능성, 독점 심화, 공정경쟁 여건 미비 같은 문제는 어느 하나도 만만하지 않다. 중국 경제가 선진국 경제로 도약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저자는 이에 대해 확실한 믿음을 갖고 있다. 어찌 보면 중국 지식인이 중국 경제의 장래에 대해 갖고 있는 이런 희망과 자신감이 무엇보다 중요한 발전 동인(動因)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