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호

박진 한나라당 의원의 도발적 제언

“남북한 GP 상호 철수해 비무장지대 ‘비무장화’하자”

  • 박 진 국회 국방위원회 의원·한나라당 www.parkjin.net

    입력2005-07-28 14: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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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전방 GP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 8명의 젊은 생명을 앗아간 비극적인 사고를 접하고 그 원인과 재발방지를 위한 다양한 분석과 대책이 쏟아져 나왔다. 이와 관련해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박진 의원이, 이번 사건의 한 원인으로 지목된 폐쇄적인 GP 체계를 개선하는 것만이 근본적인 해결방안이라는 요지의 글을 ‘신동아’에 보내왔다. 남북이 비무장지대 전체에 걸쳐 200여 곳의 GP를 운용하고 있으나, 이는 원칙적으로 정전협정 위반이므로 단계적으로 철수해 군사적 신뢰구축과 상호 군축의 계기를 마련하자는 주장이다.
    박진 한나라당 의원의 도발적 제언

    6월23일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열린 연천 GP 총기난사사건 관련 수사결과 발표 도중 수사관이 현장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6월24일 오후. 필자를 비롯해 안영근, 박세환 의원 등 국회 국방위 진상조사소위원회 위원들은 6월19일 새벽 총기사고가 발생한 경기도 연천의 530GP를 방문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 닷새가 지났지만 현장보존을 위해 아무것도 치우지 않은 530GP는 참혹했다. 수류탄이 터진 흔적과 파편자국, 그리고 병사들이 흘린 핏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환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비좁은 GP는 아직도 피비린내가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GP 벙커의 내무반 면적은 20여 명의 소대원이 숙식을 하기에는 턱없이 좁아 보였다. 일반 후방의 내무반이 1인당 1.5평인 데 비해 GP의 내무반은 0.5평에 불과했다. 생존 병사들은 “한 사람이 편안히 누울 자리도 모자라 잠을 잘 때는 모로 비스듬히 누워서 자는, 소위 ‘칼잠’을 자야 했다”고 말했다.

    GP 내무반은 곳곳에 누수와 습기의 흔적이 보였고, 조명기구도 매우 열악했다. 그나마 전기공급도 원활해 보이지 않았다. 사건 조사과정에서도 확인됐지만 열악한 전기시설로 인해 내무반의 전기는 자주 차단됐고, 이로 인해 심지어 외부 감시소초와 상황실의 인터폰 연결이 끊어지는 일도 다반사였다고 한다.

    혈기왕성한 20대 젊은이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닌 20여 명이 이 좁은 공간에서 수개월 동안 생활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지금도 다른 수많은 GP에서는 똑같은 풍경이 계속되고 있을 것 아닌가. 특히 GP로 통하는 ‘통문’이 잠기면 이곳은 그야말로 고립무원의 섬이나 다름없다. 만약의 사태가 발생해도 후방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오로지 몇 가지 보급품과 총기, 그리고 동료들에 의지해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지켜야 하는 곳이다.

    젊은 장병들이 왜 이러한 ‘고립무원의 섬’에서 하루 24시간 내내 적의 공격과 위협에 대한 불안 속에 생활해야 하는 것일까.



    ‘보다 본질적인 처방’

    총기사건 발생 이후 일각에서는 군의 기강 해이가 사건의 원인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철책선 절단사건, 북한 병사 월남사건에 이어 이 사건 역시 최전방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우리 군의 기강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최전방은 후방과 달리 북한군과 직접 대치하고 있는 곳이다. 특히 GP는 적의 유효사격거리 안에 있어 언제 총격전이 발생할지 모르는 현실적인 위협이 상존한다. 따라서 어느 곳보다 철통같이 방어하고 안보태세를 유지해야 자신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 이러한 최전방에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 자체가 군의 기강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는 진단이다.

    이와 함께 이 사건의 또 다른 원인으로 신세대 장병들에 대한 이해부족과 군의 미흡한 인성교육을 지목하는 의견도 있다. 개인적인 생활방식에 익숙한 신세대 장병들의 특성을 이해하고 이들이 군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 군의 기반을 이루는 20대 초반의 신세대 장병들은 대부분 소가족 환경에서 자란, 자기 중심적인 문화에 익숙한 세대다. 이런 장병들에게 기존의 획일적인 군 문화에 무조건 적응하라고 요구하면 ‘문화적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 국민의 생활여건은 21세기 최첨단을 향하고 있는데, 장병들에게 20세기 사고방식을 강요한다면 과연 아무런 반감 없이 적응할 수 있을까.

    박진 한나라당 의원의 도발적 제언

    ‘무장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인 1965년의 DMZ. 지금처럼 삼엄한 경비는 찾아보기 어렵다.

    더욱이 GP 근무 병사들은 언제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위기에 직면하게 될지 모른다는 심리적 압박과 소외감, 고립감에 따른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매우 크다는 점에서 정기적인 심리상담을 통해 근무 적합 여부를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전에 더욱 철저하게 부적응 대상자를 분별하고 관리했다면 이번 참사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GP에서 근무했던 많은 장병은 사회에 나가 자신이 최전방 GP에서 근무한 경험을 큰 자랑으로 여긴다고 한다. 아마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이겨낸 자신들이 자랑스러운 것은 아닐까. 반대로 이러한 과도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할 경우 자칫 이번과 같은 엄청난 참화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가정하기에 충분하다.

    물론 이러한 원인이 아무리 심리적인 압박으로 작용했다고 해도 적(敵)의 위협으로부터 생사를 같이하는 동료들을 살해한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GP의 극한적인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묘안이 있다면 이러한 참사를 원인부터 제거할 수 있는 ‘본질적인 처방’이 되지 않을까.

    최전방에 배치된 GP는 특별한 개선책이 없는 한 잠재적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GP가 현재의 형태로 존재하는 한 이러한 참사가 재발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남북한은 현재 비무장지대 안에 약 200여 개의 GP를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GP가 많은 이유는 GOP와 GP를 분리해 운용하는 우리 군과 달리 북한은 정전협정 이후 최전방 초소를 조금씩 남쪽으로 전진 배치해 전선 전체에 걸쳐 초소들이 비무장지대 안으로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DMZ 출입허가는 군사시설 철거용

    GP는 전술적으로 적의 공격에 대한 조기경보, 정전협정 위반감시, 상대방 동태 감시의 세 가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설치됐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이러한 GP의 운용이 엄격한 의미에서 볼 때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점이다.

    애초 정전협정에서 비무장지대의 출입을 허가한 이유는 비무장지대의 군사시설을 철거하기 위함이었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직전까지 휴전선 일대에선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따라서 상호 2km의 비무장지대를 설치해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는 완충지대로 만들고 비무장지대 내에 설치된 군사시설을 조속한 시일 안에 철거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정전협정 제13조에 정전협정의 효력이 발생한 뒤부터 72시간 이내에 폭발물, 지뢰, 철조망 등의 모든 군사시설을 철거하고 이를 45일 이내에 제거한다고 명시한 것이다.

    또한 정전협정 제10조에는 이러한 제거 및 민사행정을 위해서 비무장지대의 출입을 허가하되, 그 인원의 총수는 100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특히 비무장지대 출입시 휴대할 수 있는 무기는 단발식 보총 및 권총으로 제한해 자칫 상호간 충돌이 대규모 군사적 충돌로 확대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이러한 정전협정 규정을 볼 때 남북 모두 비무장지대 내에 설치, 운용하고 있는 현재의 GP체계는 다음과 같은 세부사안에서 명백히 정전협정을 위반하는 것이다.

    첫째, 북한은 1960년대부터 군사분계선 안으로 진출한 자신들의 초소를 연결하여 광범위한 요새진지를 구축해왔다. 이는 상호 2km 떨어져야 하는 정전협정 규정을 위반한 것이다.

    둘째, 북한의 요새 진지화에 따라 한국도 1965년 이후 비무장지대 내에 중화기 등을 배치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러한 중화기의 배치 자체가 정전협정 위반이다. 이번 사건에서 김 일병은 내무반에 수류탄을 투척하고 총을 난사했으며 모든 소대원이 같은 종류의 무기를 소지하고 있었다. 이런 무기의 휴대 역시 협정 위반이다.

    사실 비무장지대에서 정전협정 위반이 문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71년 유엔사령부는 비무장지대에서 남북간 무력충돌이 작아지자 제317차 정전위원회 본회의에서 DMZ의 비무장화(DMZ Proposal)를 제의했다. 특히 1992년 2월에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에도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 등 군사적 신뢰조성 문제를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서 협의해 추진하기로 규정한 바 있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하면 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를 위해서라도 남북간 GP의 상호 철수를 추진할 때가 됐다고 본다. 일각에서는 GP 철수가 시기상조이며, 군사적으로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현대전의 성격을 놓고 볼 때 GP의 군사적 기능은 이미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다. GP의 조기경보 기능과 상대방 동태 감시 기능은 첨단·과학화된 군 장비를 통해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으며, 특히 미래전의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과학화된 장비로 이전해가는 것이 옳다. 인공위성을 통해 수백km 밖에 있는 적의 움직임을 안전하게 살필 수 있는데, 굳이 젊은 장병들에게 위험을 무릅쓰며 지켜보라고 할 이유는 없다.

    전방 밀집 배치, 아군 피해 키워

    또한 GP는 과거 병력 중심의 ‘전방 밀집형’ 전술에 의한 것으로, ‘축선(Corridor) 중심’의 전쟁이 예상되는 한반도의 지형적 특성에 전혀 맞지 않는 개념이다. 실제로 군사 전문가들은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일어난다고 해도 155마일 전선 전체에서 동시에 전투가 벌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19세기 기마전도 아니고 모든 병력이 전선에 일렬횡대로 서서 진군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의 군사배치 상황을 분석해보면 휴전선에서 모두 3~4개의 축선을 중심으로 기동화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축선 개념의 공격은 기습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으로 한반도의 지형적 특성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물론 전선 전체에 걸친 산발적인 대응과 교전은 적의 기습공격을 지연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축선을 중심으로 한 주공격부대의 신속한 공격을 차단하는 방패가 될 수는 없다. 따라서 한국군의 방어 및 대응계획도 이러한 축선 중심으로 편성되는 것이 당연하다.

    현재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장사정포 및 핵, 생화학 무기 등 비대칭 전력을 고려할 때 지금과 같은 전방 밀집형의 군 배치와 GP운용은 오히려 개전 초 아군에 막대한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현재 한국군은 주병력의 2분의 1 이상이 휴전선을 지키고 지원하기 위해 투입된 상태다. 이러한 군 운용은 북한의 기습공격에 대해 매우 취약한 구조다.

    이라크전쟁에서도 증명됐듯 현대전은 더 멀리에서, 더 신속하게, 더 정확하게 공격하는 능력이 승리를 좌우한다. 바야흐로 로키산맥의 지휘벙커에서 이라크의 사막을 공격하는 시대다. 현대전의 요체는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적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술개념에서 보자면 후방기지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장거리 정밀타격능력을 배양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전략이며 대응태세다.

    한국군은 이미 수년 전부터 독자적인 조기경보시스템 구축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왔고, 무기구매사업에 따른 부작용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금강백두사업, 공중조기경보기(E-X), 공중무인정찰기(UAV) 도입사업 등을 추진해왔다. 모두 이 같은 상황변화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 복무기간 단축, 인적자원 감소 등으로 병력감축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시점에서 현재와 같은 인력 중심의 GP 운영은 군의 현대화를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

    평화 구축의 시험대

    따라서 남북이 운용하고 있는 GP를 단계적으로 상호 철수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은 우리 군의 전력을 취약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GP의 상호 철수는 첨단과학군에 대한 한국군의 자신감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오히려 인력 중심의 근대적 군사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북한측이 GP 철수에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남북 협상과정에서는 전방 밀집형 군 운용이 방어적 군 배치가 아니라 공격형 배치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만약 북한이 남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면 GP의 철수에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GP의 공동 철수는 단시일 내에 해결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상호 검증과정 및 절차, 전술적 변화에 따른 작전계획 수립에 적잖은 노력이 투입돼야 한다. 우리와 달리 전선 전체에 걸쳐 남쪽으로 전진 배치된 북측의 GP를 남측 GP와 1대 1 개념으로 철수시킬 것인지도 해결하기 쉽지 않는 쟁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논의의 핵심은 GP의 숫자가 아니다. ‘비무장지대(demilitarized zone)를 비무장화(demilitarizing) 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원칙이다. 이 점만 분명히 한다면 논의가 시작되는 것만으로도 남북간 군사적 신뢰는 물론 상호군축과 평화구축의 시험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와 군 당국은 말로만 남북간 협력과 평화를 논할 것이 아니라 이 문제를 북한측에 진지하게 제기할 필요가 있다. 조만간 백두산에서 재개하기로 합의한 바 있는 3차 장성급 군사회담은 그 좋은 무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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