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텃밭인 대구에서 무소속으로 남구청장에 재선, 2002년 6·3 지방선거에 대구시장 후보(무소속)로 출마해 선전 끝에 현 조해녕 시장(한나라당)에게 석패, 같은 해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에 대한 공개 지지, 대구지역 친노(親盧) 개혁 성향의 지식인 그룹 ‘화요공부모임’ 회원, 2004년 4·15 총선에서 낙마(대구 중·남구), 환경부 장관으로 화려한 부활….
이 장관은 구청장 재임시 관내의 속칭 ‘19번 도로’에 밀집한 유흥업소의 변칙영업에 ‘전쟁’을 선포하고 강력한 단속에 나섰다가 신변의 위협을 받은 적도 있다. 치과의사 출신의 연극인이기도 하다. 일찍부터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해 대구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 낙동강 페놀 유출 사태 해결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 초대 집행위원, 고속철도 지상화 반대 시민단체연합회 집행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세간에 각인된 이 장관의 이미지는 깔끔하고 온화한 편. 정해놓은 원칙과 소신을 굽히지 않는 외유내강형 인물이란 평가도 있다.
그러나 국가 환경정책을 선도할 중책을 맡은 그가 취임식에 앞서 “내년 5월 지방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고 밝힌 솔직담백함(?)은 한 가닥 아쉬움으로 남는다. “물러날 때 환경행정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성공한 장관으로 평가되길 바란다”는 환경운동연합의 당부가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