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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고발

건설 부패의 늪에 빠진 대한민국

현장소장에서 권력실세까지, 전방위로 주무르는 비자금 연 40조원

  • 선대인 미디어다음 기자 battiman@hanmail.net

건설 부패의 늪에 빠진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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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찰제는 없고 운찰제만 있다

건설 부패는 한국 사회를 심각하게 오염시키고 있다. 건설이나 개발과 관련된 모든 단계에서 비리 및 부패사건이 발생하고, 건설 발주 및 인·허가 관련 업무를 하는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들이 부패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경실련 김헌동 공공사업감시단장은 “대한민국 부패는 건설에서 시작해 건설에서 끝난다”며 “건설은 로비와 뇌물로 시작해 로비와 뇌물로 끝난다”고 지적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언론에 보도된 부패의 양상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20년 동안 건설업체에서 근무한 김헌동 단장은 건설에서 생기는 비자금 규모가 연간 수십조원에 이르고, 이 가운데 절반이 각종 로비와 뇌물 등 부패자금으로 흘러간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은 어쩌다 악취가 진동하는 건설부패 공화국이 됐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내 건설산업과 이를 둘러싼 법적, 제도적 실태를 짚어봐야 한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의 제도와 관행을 그대로 본떠 형성된 국내 건설산업의 틀은 매우 후진적이고 기형적이다. 칸막이식 업역(業域) 구분과 다단계 하도급 구조, 기괴한 복권추첨식 입찰제도 등이 국내 건설산업을 옥죄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기획, 설계와 시공, 감리, 유지보수 등이 업역별로 분리돼 있다. 시공을 예로 들면 그 안에서도 전기공사, 통신공사로 구분된다. 업역에 따라 칸막이를 쳐 경쟁을 제한하는 한편 업역별로 ‘밥그릇’을 챙기게 돼 있는 구조다. 또 시공영역은 하청-재하청-시공참여자-십장, 반장으로 이어지는 중층적 구조로, 생산 및 유통단계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매우 많다.

가장 큰 문제는 건설업체가 막대한 폭리를 취할 소지가 다분한 입찰제도다. 정부와 지자체, 공기업이 발주하는 공공 공사의 예산(설계가) 원가산정 기준이 부풀려져 있다. ‘표준품셈’으로 부르는 원가산정 기준은 건설현장의 공종(工種)별로 들어가는 품을 일일이 계산한 것. 예를 들어, 어떤 크기의 덤프트럭이 어떤 속도로, 얼마만큼 토사를 운반하는지 정해놓은 것이다. 이 품셈을 근거로 개별 공사 현장에 필요한 작업량을 추정하는 방식으로 공사의 예정가격을 정한다.

그런데 표준품셈은 기술 발전과 작업 효율의 증가 등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10~20년 전 그대로 적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덤프 운반 품셈의 경우 트럭 용량이 커지고 도로 사정이 좋아져 운행 속도가 2배 이상으로 빨라졌는데도 20년 전 수준으로 적용한다. 이 때문에 표준품셈에 근거한 정부 설계가는 실제 시장단가보다 최소 30~40% 부풀려져 있다.

건설업계, 정부 예산으로 돈 잔치

기형적인 입찰제는 건설업체가 폭리를 취하는 토대다. 국내 입찰제도의 근간이 되는 것은 적격심사제다. 적격심사제는 공공사업 발주자인 정부가 부실공사 방지를 명목으로 일정 낙찰률 미만으로 낙찰되지 않도록 일정 수준의 낙찰 하한선을 만들어둔 제도다.

명목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현실은 기가 막힌다. 사실상 복권 추첨식의 요행에 의해 낙찰자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기술력이나 공사 이행능력과 상관없이 재수 좋은 건설업체가 공사를 따도록 돼 있다. 이 때문에 건설업계에서는 운에 의해 결정되는 낙찰제라는 의미로 운찰제(運札制)라 부른다.

이는 글로벌 스탠더드 격인 자유경쟁입찰제(최저가 낙찰제)와 대비된다. 자유경쟁입찰 방식인 최저가 낙찰제는 말 그대로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낸 입찰자에게 공사를 주는 방식이다. 물론 해당 공사를 제대로 이행할 수 없을 정도로 부실한 업체가 최저가를 써내는 경우에는 낙찰받을 수 없도록 하는 장치는 있어야 한다. 정부도 최저가 낙찰제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을 인정하고, 2001년부터 이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고 있지만, 아직 적격심사제가 주류다.

그나마 올해부터 100억원 이상 공공 공사에 확대 도입키로 했던 최저가 낙찰제가 다시 유보돼 공공 공사의 대부분이 여전히 운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2003년 발주된 공공 공사의 58.2%(21조원)가 적격심사제로 발주됐고, 14.3%(3조2000억원)는 저가심의제(최저가 낙찰제 하에서 덤핑 수주를 방지한다는 목적으로 도입된 제도이지만 역시 운에 의해 낙찰 여부가 결정되도록 만들었다)로 발주됐다. 전체 공사의 72.5%가 운에 의해 낙찰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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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인 미디어다음 기자 battim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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