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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발

패전 60년, 다시 불거진 일왕 전쟁책임론

히로히토, 독가스 사용·731 부대 마루타 실험 허가했다

  • 이창위 대전대 교수·국제법

패전 60년, 다시 불거진 일왕 전쟁책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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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자민당은 그의 고문직을 박탈했고, 그의 발언에 반발하는 우익단체들이 나가사키시로 몰려가 그를 위협했다. 마침내 1990년 1월(아키히토가 새로운 일왕으로 즉위한 직후) 쇼키주쿠(正氣塾)라는 우익단체의 한 간부가 그를 총으로 쏘았다. ‘쇼키(正氣)’는 ‘제정신’이라는 뜻인데, 이름에 전혀 걸맞지 않은 단체의 폭력에 그가 쓰러진 것이다. 이 사건은 양심적인 지식인이나 정치가가 일왕의 전쟁책임을 공개적으로 논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맥아더, 일왕 전쟁책임 면책 지지

일본 국민도 일왕의 전쟁책임 문제가 부각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지금도 그런 경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히로히토가 사망한 후 새로운 자료가 공개되면서 전쟁책임 문제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려는 시도는 많아졌다. ‘아사히신문’은 2001년 8월15일자 사설에서 ‘전후의 원점에 다시 선다면 어쨌든 피할 수 없는 것이 쇼와 천황의 전쟁책임’이라고 전제한 뒤, ‘황군에 대한 모든 명령이 육·해군의 통수권자인 천황의 이름으로 내려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천황은 전쟁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그후 보수적인 ‘요미우리신문’도 일왕의 전쟁책임 문제를 비교적 전향적으로 다뤘다.

오랫동안 일왕의 전쟁책임이 명쾌하게 논의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패전 후에 연합군 최고사령부와 일본 정부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맥아더 장군은 일왕의 카리스마와 상징성을 이용해 점령 정책을 원활하게 수행하고자 했다. 일본 정부는 일왕제를 유지해 그에 대한 전쟁책임 추궁을 피하려 했다.

도쿄재판에 대한 미국 정부의 의도에 따라 시데하라 기주로(幣原喜重郞) 내각은 1945년 11월5일 비밀리에 전쟁책임에 대한 각의결정을 내렸다. 그에 따르면 일왕은 대미교섭의 원만한 타결을 위해 끝까지 노력했을 뿐 아니라, 개전 결정 및 작전계획을 수행하는 데 헌법 운용상의 관례에 따라 통수부 및 정부의 결정을 재가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직접적인 전쟁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맥아더도 1946년 1월 아이젠하워 미 육군참모총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천황이 과거 10년간 일본 정부의 결정에 크게 관여한 증거는 없다. 만약 천황제를 파괴하면 일본도 붕괴할 것이다. 일본에서 게릴라전이 벌어진다면 100만의 병력이 필요하다’고 밝힘으로써 일왕의 면책을 지지했다.

헌법 초월하는 존재

이렇게 해서 일왕의 전쟁책임 문제는 미일 양국의 정략적 필요에 따라 공식적으로 해결됐다. 그후 쇼와시대가 끝날 때까지 히로히토가 태평양전쟁 기간 중 실제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에 대한 검증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그에게 법적·정치적 책임이 없다는 일본 정부의 공식 판단과는 별도로, 일왕 자신이 도덕적 책임을 느꼈다는 것은 측근의 일지를 통해서 밝혀졌다. 1945년 9월27일, 맥아더와의 첫 회견에서 일왕이 내뱉은 발언은 그가 개인적으로 전쟁책임을 표명한 대표적인 예다. 당시 일왕은 “내가 모든 책임을 진다. 나 자신의 운명은 개의치 않는다”고 맥아더에게 말했다. 이는 은퇴한 맥아더가 1955년 9월 뉴욕에서 시게미쓰 전 일본 외상에게 밝힌 것이다.

일왕의 전쟁책임을 논할 때 입헌군주제에 입각한 메이지 헌법을 간과할 수 없다. 메이지 헌법은 1889년에 메이지 일왕이 제정·공포한 흠정헌법으로, 일본 정부가 일왕을 정점으로 하는 군주제에 입각해 구성됐음을 규범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메이지 헌법은 일왕을 신성불가침의 국가원수이자 군대의 최고통솔자, 그리고 국가권력의 총괄자로 규정했다. 일왕은 제국의회의 소집과 해산을 명할 수 있으며, 법률을 대신하는 칙령을 발하고 또한 문무관을 임면하여 그 봉급을 정하는 권한을 가졌다. 메이지 헌법은 일왕이 헌법을 초월하는 절대적 존재임을 인정함으로써 헌법의 존재의의가 일왕의 권력을 제한하는 데 있지 않고 그 권력을 보호하여 절대자의 지위를 확인하는 데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물론 메이지 헌법에 대한 입법론이나 해석론의 관점에서 그에 대한 반박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왕이 갖는 실질적 권한은 절대적인 것으로 거의 제한이 없기 때문에 정책결정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은 천황에게 귀속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즉 메이지 헌법상 일왕은 입헌군주보다는 절대군주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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