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의 공동구상은 주한미군 재배치와 용산 미군기지 이전 같은 개별적 이슈에 논의를 집중함으로써 한미동맹의 미래와 관련한 근본적 문제들에 대한 토론을 뒤로 미루는 결과를 낳았다.
한국과 미국이 이처럼 ‘마차 앞에 말을 갖다댄’ 데는 기술적 불가피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러한 방식보다는 일반적 문제로부터 특수한 문제로 우선순위를 낮춰가는 것이 더욱 합리적이고 생산적일 것이다.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문제들에 대한 결정이 나중으로 미뤄지면 이미 이뤄진 작은 결정에 따른 정책을 무력화하거나 역진(逆進)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동맹의 미래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고 논쟁적인 문제는 주한미군의 역할을 어떻게 정의할 것이냐가 될 것이다. 특히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 개념은 한미상호방위조약상 주한미군의 주둔 목적인 한반도 전쟁 억지를 넘어서 주변 지역의 군사분쟁에도 주한미군을 투입할 수 있는 개연성을 열어두고 있어 한국에서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주한미군의 원정군화(遠征軍化)는 6·15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고 난 뒤인 2000년 9월 클린턴 미 대통령이 “아시아에 미군이 주둔하는 목적은 단순히 위험에 대처하는 차원을 넘어 위험 발생을 방지하는, 안정을 위한 균형자 역할을 하는 데 있으므로 남북간 긴장이 완화되고 중국이 계속 개방된다 하더라도 주한미군을 유지해야 한다”고 발언했을 때부터 이미 암시됐다.
그러나 미국이 더욱 구체적인 제안을 한 것은 9·11테러 이후 2002년 11월에 열린 한미안보협의회에서였다. 미국의 관점에서 보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화는 이미 정해진 결론이다. 이는 미국의 세계적 군사방위 체제의 변형과도 관련이 있다.
주둔군의 기동군화
냉전은 적대적 이익과 비전, 그리고 적대적 이념을 가진 양 진영이 세계패권을 놓고 벌인 투쟁이었다. 미국의 군사전략은 공산주의 팽창을 세계적 차원에서 봉쇄한다는 개념이 기반이 되었다. 당시만 해도 지정학과 이념이 분쟁 지역을 결정했으며 전략적 유연성의 문제는 크게 대두되지 않았다.
이러한 구도 아래서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공산주의의 팽창을 봉쇄하는 지역적 전초기지로 인식됐고, 한미동맹은 ‘한반도-범위 동맹’으로, 대규모 주한미군은 한반도에만 고정된 군사력으로 간주됐다.
그러나 냉전 종식 이후 세계적 안보조건이 변화했으며 9·11테러는 미국의 군사전략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했다.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은 냉전 구도 아래 감춰져온 민족주의나 종교적 충돌로 인한 ‘새로운 위협’과 지구적 테러에 대처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은 냉전기 안보 동학(動學)을 기초로 새로운 안보환경에 부합하도록 해외주둔군 구조를 조정하고 있으며, 분쟁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서 신속히 전력을 전개할 수 있도록 전력 기지를 확보하는 한편, 주둔군을 소규모 기동군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