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호

육군 1군사령관 김병관 대장의 마음수행법 체험특강

“생각의 주인이 돼라, 미래의 걱정을 던져라, 하고 싶은 건 하되 매이지 말라”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 사진·정경택 기자

    입력2005-08-12 17: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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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숨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일깨워주는 대형 참사 앞에서 우리는, 비록 잠깐이긴 하지만 평소 잊고 지내던 삶의 근원적인 질문을 되짚어보게 된다. 도대체 삶과 죽음은 무엇이고 육신과 영혼이란 무엇인가. 또 사람의 마음이란 무엇이기에 이토록 엄청난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단 말인가. 김병관 육군 1군사령관의 독특한 마음수행법을 소개한다.
    육군 1군사령관 김병관 대장의 마음수행법 체험특강
    사람 살아가는 곳이면 어디든 사고가 있게 마련이다. 사람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사고도 많지만 대부분의 사고는 사람의 마음이나 의식과 관련돼 있다. 특히 자살과 타살처럼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사고가 그렇다. 지난 6월 경기도 연천 육군 최전방 부대에서 일어난 총기난사사건도 예외가 아니다. 좁게 보면 군 조직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드러낸 사건이지만, 넓게 보면 결국 사람의 마음과 관련된 사고인 것이다.

    강원도 원주로 육군 1군사령관 김병관(金秉寬·57) 대장을 찾아 나선 것은 그의 독특한 마음수행법 때문이다. 전사(戰史)에 해박하고 전술전략에 능통한 그에게는 온화한 성품에 민주적 리더십을 갖춘 지휘관이라는 평이 따라다닌다. 장관급 장교인 현역 대장이 특정 언론사의 인터뷰에 응하는 데는 상당한 명분과 용기가 필요하다. 전례도 거의 없다. 육군참모총장의 승인을 받는 절차도 번거롭지만 그보다 더 부담스러운 것은 주변의 시선이다.

    “이 인터뷰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가 하는 ‘붓다필드(Buddha Field)’ 공부가 주변에 알릴 만한 가치가 있고 군 장병들이 마음수양은 물론 업무에 전념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해 응했습니다.”

    7월8일 오후 1군사령부 집무실에서 만난 김 사령관은 군 냄새를 풍기지 않는 편안한 사복차림을 하고 있었다. 옷차림만큼이나 인상도 편안했다. 위압적이거나 권위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흔히 얘기하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수더분한 인상. 배석한 두 참모도 사복을 입었다. 걸치고 가진 것은 다 두고 결국 올 때처럼 벌거숭이로 떠나는 것, 그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계급장을 떼니 ‘사람’이 보였다.

    육군사관학교 28기인 김 사령관은 2사단장, 합참 전략기획부장, 7군단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덕장(德將)으로 통하지만 교육훈련만큼은 철저하게 시키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가 사단장을 지낼 때 참모 노릇을 하던 육본의 한 장교는 “그때는 정말 행복했고 보람과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김 사단장은 교육과 작전, 전술훈련 분야를 중점적으로 챙겼는데, 워낙 전술전략에 밝아 불필요한 훈련을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손자병법’의 대가

    -부하들을 어떻게 대했기에 “행복했다”고까지 말하는 장교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군인의 존재 이유는 유사시 적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일선 지휘관으로 있을 때 철저하게 실전을 염두에 두고 교육과 훈련을 시켰습니다. 그래야 전시에 부하들이 피를 덜 흘리고 국민에게 불행한 사태가 닥치는 것을 막을 수 있지요. 어떻게 하면 전투시 가장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느냐. 내가 공부하고 연구한 싸움의 원리를 지속적으로 가르치되 토론을 통해 부하들의 견해도 받아들이고 그들이 자율적으로 자신이 할 일을 찾도록 유도했습니다. 그렇게 지휘관과 같이 공부하고 토론하고 현장에서 함께 땀을 흘린 데서 보람을 느끼지 않았나 싶군요.”

    그가 전술전략에 밝은 것은 ‘손자병법(孫子兵法)’ 덕분이다. 40년 가까이 통산 300여 회 읽었다고 하니 그 깊이를 알 만하다. 얼마나 심취했던지 때로는 녹음해 듣기도 했다. 고교 졸업 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제대로 된 번역본이 없어 국립중앙도서관에 가서 조선시대에 발간된 언해본 내용을 공책에 베껴 와 원문과 비교해가며 공부했다고 한다. 그는 지난 5월 ‘군사적 관점에서 본’이라는 부제가 붙은 ‘손자병법해설’이라는 책을 냈다. 군내에서만 유통되는 비매품이다.

    -2000여 년 전에 나온 책인데 현대전에도 응용할 만한 내용이 있나요.

    “구체적인 방법론보다는 싸움의 큰 원리를 갈파한 것이므로 지금도 유용합니다.”

    -‘손자병법’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경쟁에서 유리해지기 위해 갖춰야 할 모든 것을 담고 있습니다. 싸움에 임하기 전 경쟁력을 키우는 방법, 싸움이 다가오면 준비해야 할 것, 싸움에 임하는 원칙 등 전쟁에 관한 모든 것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전술 전략 군사정책이 그 안에 다 들어 있어요.”

    경기고 출신인 김 사령관은 육사를 수석으로 입학해 수석으로 졸업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서울대에 입학해 1학년 1학기까지 다니다 그만두고 육사에 들어간 점. 곧바로 육사에 진학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그는 “고등학교에서 워낙 입시 위주 교육만 받는 바람에 사회성이 부족하다 싶어 1년 쉬었다 들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서울대에 들어간 것은 어머니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다는 것.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군 주변에서는 요즘 젊은이들의 국가안보관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데요.

    “예전에 비해 군 기강이 많이 무너진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것인데, 나는 신세대 장병들의 국가관이나 안보관에 대해 오히려 신뢰하고 있습니다. 엄정한 군기가 유지돼야 싸움을 잘할 수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어요. 요즘 아이들에 맞는 리더십을 갖춰야 하고 군 기강을 유지하는 방법도 그에 맞게 바꿔야 합니다. 이를테면 같은 지시라도 ‘야 이거 해!’가 아니라 ‘이렇게 하자’고 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거지요. 신세대 장병들이 갖고 있는 자신감과 창의력을 북돋아주면서 안보상황을 이해시키면 서해교전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적극적으로 임무를 완수할 거라고 믿습니다.”

    -군에 불어닥친 인권 바람에 대해서도 일부에서는 부작용을 걱정합니다.

    “가끔 일탈 행위가 발생하지만 대체로 별문제가 없는 편입니다.”

    -예하 지휘관들이 그런 문제와 관련해 고충을 토로한 적은 없나요.

    “특별한 건 없습니다. 군기사고 건수나 그 내용을 보면 예전보다 더 심각하거나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닙니다.”

    -군에선 종종 병사들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사실 군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돋보여서 그렇지 인구비율로 따지면 자살사고율이 바깥사회보다 훨씬 낮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불행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통제된 사회인 군에서 일어나는 자살사건은 개인의 문제로만 볼 게 아닌 것 같은데요.

    “자살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문제라고 봅니다. 통제된 사회에서 극소수만 그런다는 건 군대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걸 뜻합니다. 다만 죽을 만한 요인을 가진 사람의 마음에 군대 내의 답답함과 불편함이 상승작용을 일으킨 것이죠. 물론 그마저도 왜 상담이나 교화를 통해 막지 못했냐고 추궁하면 할 말은 없지만요. 중요한 것은 장병들이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인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나는 왜 이리 못났나’ ‘나는 왜 늘 불안한가’ 하는 생각으로 스트레스를 일으켜 몸에 병을 만들고 괴로움을 증폭시킵니다. 그러므로 병사들이 긍정적인 마음을 갖도록 평소 교육하고 계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고창해수욕장에 마련된 수련장

    그는 틈날 때마다 책을 읽는 학구파로 알려져 있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을 묻자 역시 ‘손자병법’을 든다. 그 다음으로 꼽은 것이 ‘황석공 소서(黃石公 素書)’.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일으킨 장량이 젊은 시절 황석공이라는 신선한테 받은 책이라는데, 김 사령관에 따르면 한마디로 마음을 다스리는 책이다. 그가 펴낸 ‘손자병법 해설’ 뒤편에는 이 책의 원문과 한글 해석이 첨부돼 있다.

    그는 최근엔 ‘붓다필드’와 관련한 책을 많이 읽고 있다고 했다. ‘붓다필드’(www.buddhafield.or.kr)는 도(道)와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2002년 인터넷상에 만든 일종의 마음수련 모임이다. 이들은 ‘게이트(Gate)’라는 아이디를 가진 40대 후반의 한국인 남자를 영적인 스승으로 따르고 있다. ‘게이트’는 현재 뉴질랜드에 거주하고 있는데, ‘붓다필드’ 사람들에 따르면 무불통지(無不通知)의 경지에 오른 도인이다.

    -사령관께서는 오래 전부터 깨달음에 관심을 갖고 남다른 마음공부를 해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계기에서 시작했습니까.

    “올바른 삶이 무엇인지 알려는 순수한 동기에서 비롯된 것일 뿐 달리 특별한 계기는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 출발점은 학창시절 품었던 ‘인생이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하는 철학적 질문이었을 겁니다. 근원적인 의문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하는 염원은 성장한 후에도 지속됐습니다. 소설 ‘단(丹)’을 읽고 나서는 그 내용대로 수련도 해보고 단학선원에도 다녀보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을 찾아가 배우기도 했지요. 그렇게 깨달음에 대해 갈망하던 차에 친구의 소개로 ‘붓다필드’를 알게 됐습니다.”

    -어떤 수행과정을 거쳤나요.

    “회원이 되면 인터넷사이트 ‘붓다필드’에 접속해 거기에 게재된 글을 읽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올려 타인의 평가를 받아보는 것으로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단체모임에 참가해 그룹별 대화를 통해 선배 도반들에게서 의식수준을 점검받고 조금씩 향상시켜 나갑니다. 또한 주말에 2박3일 일정의 투어 형태의 수련회에 참석해 토의와 대화, 스승의 법문을 통해 내면을 관조하는 공부를 하게 됩니다.

    나는 군단장으로 재직하던 2년 전에 입문했는데, 지휘관으로서 부대를 임의로 이탈할 수 없기 때문에 모임에는 자주 나가지 못했습니다. 이 공부를 시작한 지 두 달쯤 지난 2003년 7월말 고창 해수욕장에 마련된 임시 수련장에서 먼저 깨달음을 얻은 두 선배 도반과 함께 새벽까지 대화하고 토론하고 명상했습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통에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지나고 나니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더라고요. 아마도 깨달음을 얻기 위해 필요한 기초공부는 그날 다 하지 않았나 싶어요. 내가 가진 가치관과 철학이니 과학이니 역사니 하는 지식은 보잘것없는 것이고 더 큰 세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됐지요. 그 모임 후 스승의 법문을 읽고 도반들과 대화하면서 내 공부의 경계(한계)를 점검받고 내면을 깊이 살피는 과정에 ‘참 나’가 무엇인지를 알게 됐습니다. 두 달 뒤인 9월에 주말투어에 참가했고 보름 후 마지막 단계를 넘어섰습니다.”

    -군의 고급장교로서 그런 공부를 하는 게 부담스럽지는 않았습니까.

    “‘붓다필드’에 들어가 게시된 글을 읽으면서 상당한 흥미와 함께 ‘되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무슨 거창한 수행법이 있는 게 아니어서 군 생활과 병행해 공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실제로 마음공부는 부대에서 퇴근한 후에만 했습니다. 전에는 퇴근 후 관사로 일거리를 갖고 갔는데, 공부를 시작한 후로는 업무시간과 공부시간을 구분했습니다. 그렇게 하자 업무 효율도 높아지더군요. 전에는 어떤 계획이나 지침을 만들 때 대부분 내가 직접 초안을 잡았어요. 부하들이 만들어온 것도 내 생각에 맞게 고치는 게 예사였죠. 하지만 공부를 시작한 후로는 시간이 넉넉지 않으니 큰 틀만 내가 검토하고 세부적인 것은 맡기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것이 전혀 문제가 안 되고 오히려 더 나은 면이 있더군요. 비록 내가 원하는 바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내 아집에서 벗어나 부하들과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았던 겁니다.

    깨달음을 얻은 후엔 개인적인 성취욕과 이기심이 극복되고 인류와 국가에 대한 사랑, 공공이익에 대한 헌신이 자연스럽게 마음에 와 닿아 의지와 행위로 표출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장교나 사병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이지 않겠습니까. 또 심리적인 안정을 찾고 마인드 컨트롤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업무에 도움을 주면 주지, 지장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마음공부 덕분에 업무 효율도 높아져

    -일반적으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고행을 하거나 깊은 명상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붓다필드’에서는 어떤 수행법을 가르치는지요.

    “특별한 수행법이나 격식이 없어요. 단학이나 참선에서 강조하는 호흡법과 좌선, 고행 등은 깨달음을 얻는 데 도움을 주는 수단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굳이 수행법을 원한다면 그 중 자신에게 맞는 것을 택하면 그만입니다. 다만 명상할 때는 호흡을 가다듬고 척추를 곧추세우도록 합니다. 그 상태에서 계속 자각을 유지하는 거죠.”

    -사령관께서 하는 마음공부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을 명확히 바라보는 것입니다. 자신의 내면을 깊이 관찰하고 관조하는 거죠. 내면에서 일어나는 생각의 뿌리를 캐고 들어가 자신이 그 생각의 창조주임을 깨닫는 겁니다. 즉 자신이 만들어낸 생각의 종이 아니라 주인이 되는 겁니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면 ‘붓다필드’에서 가르치는 마음수행법은 다른 정신수련단체에 비해 언뜻 단순해 보인다. 하긴 종교적 진리란 복잡한 것이 아니고 단순한 것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그 단순함이 오히려 어렵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그의 설명을 더 들어보자.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신성(神性)과 본성(本性)이 있습니다. 그것을 확연히 아는 것이 깨달음이라는 거죠. 오직 배울 것은 내 안에 다 있다, 내 안에 스승도 있고 교재도 있고 제자도 있다고 가르치죠. 일반인이 궁금해하는 도술이나 초능력도 마찬가지입니다. 나한테 없는 능력을 어디선가 배우는 게 아니라 원래 내 안에 있는 능력을 발견하는 것뿐이라는 거죠. 보통 사람이 그런 능력을 갖지 못하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거나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일이라면서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명상을 통해 그런 의심을 풀어내고 믿음을 가지면 저절로 신통력을 가질 수 있다는 거죠. 안 된다고 하는 생각의 구속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게이트님도 젊은 시절 이따금씩 그런 신통력을 드러내곤 했다는데 요즘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는다고 해요. 내가 듣기로 현재 제자들 중 몇 사람도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됐다고 합니다. 나도 예전엔 그런 걸 보고 싶어 하고 배우고도 싶었는데, 깨달음을 얻고 난 후에는 관심이 없어졌어요.”

    현재 ‘붓다필드’에는 ‘견성(見性) 인가’를 받은 사람이 250여 명에 이른다. 김 사령관도 그 중 한 명이다. ‘견성 인가’란 말 그대로 깨달은 자임을 인정해주는 것으로 인가 여부는 스승인 게이트가 결정한다. 특별한 형식은 없다. 그저 뉴질랜드에 있는 게이트가 인터넷 대화창을 통해 당사자에게 알릴 뿐이다. 물론 그 전에 당사자는 그에 걸맞은 어떤 특별한 정신적 체험을 한다. 말하자면 ‘견성 인가’는 스승이 제자의 체험을 영적인 공간에서 감지할 때 가능한 것이다. 김 사령관도 그랬다.

    육군 1군사령관 김병관 대장의 마음수행법 체험특강

    김병관 사령관은 장병들에게 “내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라는 걸 알라”며 각자의 신앙생활을 참되게 할 것을 권유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견성은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解脫)과는 조금 차이가 있는 듯싶다. 김 사령관의 표현대로라면 깨달음은 ‘마음공부의 시작’일 뿐이다.

    마음의 오르가슴

    -깨달음이 어떻게 찾아왔습니까. 그 순간 어떤 느낌이었습니까.

    “순간에 찾아왔어요. 부다가 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에 따르면 견성할 때의 느낌은 오르가슴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어요. 성적인 오르가슴이 아니라 마음의 오르가슴이죠. 실제로 내가 넘어가는(깨달음의 마지막 고비를 넘긴다는 뜻) 순간에도 그런 희열이 찾아왔습니다. 이유 없는 기쁨이 몇 시간 이상 지속되는 가운데 나를 둘러싼 어떤 현실적인 문제도 실제로는 아무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어요. 그런데 요즘 마음이 차분한 상태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람도 나오는 걸 보면 각자의 개성에 따라 견성의 느낌도 달리 나타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주관적인 느낌일 텐데요. 또 본인은 그렇게 생각해도 스승이 볼 때는 아닐 수도 있을 테고요.

    “돌이켜보면 나의 깨달음은 그간의 마음공부를 통해 얻은 작은 깨우침이 축적된 결과가 아닌가 싶어요. 마지막까지 깨우치기 어렵던 큰 의문 하나를 몇 주간의 고뇌 끝에 내려놓았더니 막혔던 가슴이 확 트이면서 각성이 이뤄졌습니다. 불교에서도 내려놓으라, 버리라고 가르치지 않습니까. 자기가 갖고 있던 지식과 사상을 다 내려놓는 것인데, 이게 쉽지 않아요. 내 경우도 마지막까지 힘들었던 게, 이를 ‘마지막 경계’라고 하는데, 내가 완벽하게 납득하지 못하는 한 어떠한 얘기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아집이었습니다. 스승님이나 도반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집에 돌아와서도 그 생각만큼은 버리지 못했어요. 밥 먹을 때나 누워 있을 때나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왜, 머리에 쥐가 난다고 하죠. 풀릴 듯 풀릴 듯하면서도 안 풀리더라고요.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왜 이것 하나 때문에 이렇게 버티고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풀면 되지. 그 한마디가 답이었어요. 버리자, 무조건 받아들이자. 그 생각과 함께 찡 하는 느낌이 오더군요. 그리고 잠시 후엔 그 안 풀리던 문제마저 풀렸어요. 버리니까 얻게 되더라고요. 혼자서 좋아 어쩔 줄 몰라 거실을 왔다갔다했습니다. 그러곤 다시 누운 상태에서 생각해보니 아무런 문제도 아닌 걸 스스로 문제라고 만들어놓고 어떻게 푸나 고민하고 있었더라고요. 내 마음속에 뭔가 꽉 잠겨 있어 그걸 풀 열쇠를 찾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자물쇠라는 게 원래 없더라는 것, 그것이 바로 열쇠더라는 얘기죠. 즉 문제를 해결하려는데, 알고 보니 문제가 없더라는 거죠. 이것을 현실의 상황에 대입해보니 모든 문제가 해결되더라고요.”

    대화가 여기에 이르자 휴, 절로 한숨이 나온다. 가슴으로는 이해가 될 듯하면서도 머리로는 이해가 잘 안 된다.

    -깨달음을 얻고 나면 욕심과 불안, 두려움, 노여움, 질투 등 인간을 옭아매는 감정이 일어나지 않나요.

    “그런 감정을 흔히 번뇌 또는 망상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마음공부 단체에서도 그것을 처리하는 방법을 가르치지요. 물론 (깨달은 후에도) 감정은 일어나죠. 하지만 전보다 훨씬 덜 일어나고 일어나도 잠깐만 들여다보면 금방 해결되죠. 그게 또 일어나는구나, 내가 그걸로 또 걱정거리를 만드는구나 하고 허허 웃으면 곧 벗어나게 됩니다.”

    -사람인 이상 현실적으로 걱정되는 일이 없을 수 없잖습니까.

    “내가 육체로 살고 있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므로 염려하는 게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걱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어떤 걱정이 와도 쉽게 처리되더라고요. 그게 이 공부의 가장 좋은 점이에요. 스트레스가 거의 없어졌어요. 스트레스라는 것도 다 내가 만든 생각인데, 그 생각을 내가 맘대로 조절하니 (스트레스가) 없어질 수밖에요.”

    말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기자의 의구심을 헤아리기라도 하듯 보충설명을 했다.

    “걱정이란 것은 알고 보면 대부분 미래에 대한 걱정입니다. 한마디로 실패에 대한 염려죠. 하지만 미래의 성공이란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면 걱정할 필요가 없지요. 영원한 영혼의 관점에서 보면 일시적인 ‘나’로 인해 일어난 생각과 감정은 한낱 꿈이요 물거품이기 때문에 실체가 아니라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자명해집니다. 이 깨달음이 확연해지면 욕심 불안 노여움 따위의 감정은 힘을 잃고 사라지는 거죠.”

    -군 장교의 경우 진급과 보직에 끊임없이 신경 쓰지 않습니까.

    “그것도 미래의 일이죠. 내가 깨달은 것이 군단장 시절인데, 이후 진급이나 보직에 대해 전혀 걱정되지 않더군요. 잘될 것을 확신해서가 아니라 그런 것 자체에 관심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저 그때그때 일 잘되는 것에 만족하고 순간순간을 즐기고 현실에 최선을 다하다보니 진급도 되고 다른 일도 잘 풀리더라고요. 4성(星) 장군이라면 다른 할 일도 많겠지만 나는 오로지 현재의 일만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장래 일을 걱정한다면 내가 왜 이런 인터뷰를 하겠어요. 혹시 문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면 인터뷰 못하죠.”

    ‘내가 또 걱정거리를 만드는구나’

    -세속적인 욕망을 초탈한다는 개념과 다른 겁니까.

    “그 욕망이란 게 내가 만든 것이라는 걸 아니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이죠. 하고 싶은 게 없는 건 아니지만 관심의 영역이 다르니 웬만한 세속 일에는 끌려 다니지 않습니다. 어떻게 더 가지나, 더 버나 따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채워지지도 않아요. 다 허상이죠. 그것이 덧없다는 걸 알고 욕심을 놓으면 풀리지 않는 게 없어요. 내가 이 길을 가게 된 후 전보다 일이 더 잘된다고 하는 이유는 목표치가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전에는 내가 원하는 수준에 집착하다보니 일이 뜻대로 안 되고 성에 안 차는 경우도 있었는데,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무난한 목표를 설정하니 성과도 크고 모두 만족하게 되더라고요.”

    -가족을 이루고 살다보면 더 좋은 집을 원하고 아이들에게 더 좋은 교육을 받게 하고 싶지 않습니까.

    “지금은 아내도 깨달음을 얻은 상태지만, 그 전에 한번은 나에게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묻더군요. 견성을 하면 다른 차원의 재미를 느끼며 살아가게 됩니다. 내가 무엇을 갖고 무엇을 이루는 데 따른 행복감보다는 늘 풍족한 마음으로 나도 즐겁고 다른 사람도 즐겁게 해주는 재미지요. 물론 아이들 걱정을 안 할 수는 없겠지요. 그런데 그것도 자꾸 다른 집 아이와 비교하기 때문에 더 걱정하는 것이거든요. 저 집 애는 저런데 우리 애는 이렇다고. 걱정이고 욕심이죠. 아이마다 다 자기 갈 길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런 걱정과 욕심이 사라지지요. 집도 마찬가지예요. 더 좋은 집을 사고 싶다면 아마도 그렇게 되겠지요. 하지만 거기에 매이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그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에 설정한 한계를 깨야 한다”고 강조했다. 욕망을 무조건 참는다고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는 것이 아니며 깨달은 후에는 그런 것을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붓다필드’에서는 술이나 담배, 섹스를 금하는 것과 깨닫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가르쳐요. 담배? 피우고 싶으면 피워요. 끊어야 한다는 생각에 얽매이지 말라는 겁니다. 하고 싶으면 하라, 이거죠. 중요한 것은 거기에 매이지 않는 마음이니까.”

    “자칫 부도덕한 일탈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염려’에 김 사령관은 싱거울 정도로 간단히 대답했다.

    “그것도 생각이지. 그렇게 되면 어떡하나 하고. 넘어간 사람에게는 그런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아요.”

    -삶과 죽음에 대해 어떤 깨달음을 얻으셨는지요.

    “현재의 삶은 수많은 삶 중 하나이며 죽음은 다음 삶으로 이행하기 위한 과정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죽음은 종말이 아니라 전환점이므로 두려워할 현상이 아니지요. 전생에 있었던 수많은 삶은 잠재의식의 형태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영적인 존재인 ‘의식’은 그 삶의 주요 내용을 기억하고 있으며 정서나 감정을 지닌 채 영혼의 상태로 존재합니다. 현세에서 깨달음을 얻어 자신의 삶에 사랑이 충만하고 충족함을 느끼면 다시 물질계에 태어나 삶의 경험을 되풀이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요. 그러면 윤회가 중지됩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더 태어나지 않고 영원한 자유와 충족을 느끼는 ‘의식’으로 존재하는 거죠.”

    전생과 윤회는 불교적 세계관의 핵심 용어다. 그렇다면 ‘붓다필드’는 불교의 아류인가.

    “행복하지 않을 이유를 모르겠네”

    -불교의 가르침과 유사한 점이 많은 것 같은데요.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진리를 깨우치는 이치는 거의 같다고 봅니다. 다만 불교는 3000년 전에 종교화된 것이므로 가르침의 주된 내용이 당시 사람들의 의식수준과 환경에 맞는 것이라면 ‘붓다필드’는 현대의 복잡한 사회현상을 다 수용하면서 요즘 사람들의 의식구조에 맞춰 가르친다는 것이 차이점이죠. 나는 어려서부터 불교에 관심을 갖고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50세가 되던 1997년에 수계를 받기도 했고요. 그런데 ‘붓다필드’를 접한 후 ‘붓다필드’의 마음수련이 불교에서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좀더 쉽게 불교적 깨달음에 이르도록 이끌어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후 불교신앙과 별 마찰 없이 마음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아닌가요.

    “불교를 만든 건 석가가 아니라 제자들입니다. 기독교도 마찬가지고요. 종교는 일종의 사회현상이므로 가르침 자체와는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깨달음을 얻은 위대한 분들의 가르침을 내면화하는 것이죠. 예수나 석가나 마호메트 모두 깨달음을 얻은 분이고 그들의 가르침은 인간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일치합니다. 그런데 ‘붓다필드’에서는 스승을 구도(求道)의 중심에 놓지 않습니다. 깨달음의 여정을 안내하는 길잡이일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종교와는 좀 다르죠.”

    -기성 종교에서 말하는 진리나 ‘붓다필드’의 깨달음이나 궁극적으로는 같은 길이겠죠?

    “수천년 동안 검증된 것인 만큼 종교의 가르침은 위대한 것입니다. 다만 사회현상으로서 폐해가 있는 게 문제지요. 권력화하고 부패하고 위압적이고….”

    “임무에 충실하면서 그 자체를 즐겨라”

    당신은 행복한가, 라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김 사령관이 그랬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하십니까.

    “행복하지 않을 이유를 모르겠네(웃음). 지금 이 자리에서 웃고 얘기하는 게 행복이지요. 행복하지 않은 것은 뒷일을 염려하기 때문이에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왜 염려합니까. 그 염려를 놓으면 항상 행복하지요. 불행은 행복의 반대가 아닙니다.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불행이지.

    많은 사람이 행복의 조건을 스스로 설정하고 남들과 비교해 행복과 불행을 만들어냅니다. 행복과 불행이 자신이 설정한 것이라면 행복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허상에 불과한 미래에 대한 근심을 내려놓고 현재에만 충실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행복입니다.”

    그는 “견성한 후 내 운명에 대한 염려가 사라졌다”며 “내가 해나가는 것이 곧 나의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자 자잘한 걱정이 없어지고 대범해졌다”고 덧붙였다. 또한 성장과 성숙을 구분해 설명했다.

    “깨달은 자는 성장과 더불어 성숙해야 합니다. 견성, 즉 진짜 공부의 세계를 안 다음에는 자기만 성장해서는 안 됩니다. 남을 위하는 마음이 생기고 헌신하는데, 그것이 바로 성숙입니다. 종교에서 얘기하는 이타심이 그런 거죠.”

    -끝으로 장병들에게 마음수련과 관련해 권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먼저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면서 그 자체를 즐기라고 말해주고 싶군요. 성과에 대한 포상과 칭찬이라는 미래의 일에 연연하지 말고 현 시점에서 내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라는 걸 알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각자의 신앙생활을 좀더 참되게 할 것을 권유합니다. 특히 지금의 내 모습에 집착해 현실적 이익과 행복을 바라는 기도에 빠지지 말고 위대한 스승들의 가르침을 받들고 자기화해 행복과 자유를 찾도록 노력하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느끼는 행복과 자유를 남에게도 나누어주고 헌신하면서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오후 5시에 시작한 인터뷰는 7시가 다 돼 끝났다. 육체는 배가 고팠지만 정신은 배가 불렀다. 배석한 두 영관장교는 사령관실에서 나오자마자 담배를 물면서 ‘공식적으로는 끊은’ 기자에게도 권했다. 다들 표정이 밝고 상당히 친해진 느낌이었다. 이런 얘기가 오갔다.

    “아, 담배 끊어야 하는데….”

    “담배 끊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잖아요.”

    “알지만 잘 안 되지요. 사령관님이야 깨달은 분이고….”

    “한번 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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