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허시명의 酒黨千里 ⑧

제주도 명주 오메기술

늙고 시든 제주의 상징, ‘전통의 재해석’으로 부활하라!

  • 허시명 여행작가, 전통술 품평가 soolstory@empal.com

제주도 명주 오메기술

2/4
제주 최고의 특산물인 감귤로 술을 만드는 감귤양조사를 먼저 찾았다.

감귤양조사를 운영하는 사람은 박두준(74)씨다. 북제주군 의회의장을 지낸 박씨는 제주에 감귤주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양조사를 차렸다고 한다. 양조사를 지키는 기술자는 김성배(75)씨. 머리는 벗겨지고 관자놀이에 흰머리가 성성한 노인이지만 팔뚝은 굵고 뿔테 안경 속의 눈빛은 형형하다. 김씨는 감귤주를 빚기 위해 4년 전에 제주에 왔는데, 강원도 진부의 감자술 제조와 영광 법성포의 아랑주 제조에 관여했으며 술과 함께해온 지가 20년이 넘는다고 했다. 그는 이곳에서 감귤주 상품화와 신제품 연구를 하고 있다.

양조사 안에 있는 감귤주 발효통은 예쁜 백자 항아리였다. 백자 용량이 70ℓ쯤 되니 쌀 한 가마가 못 들어가는 작은 용기다. 김씨가 감귤주를 한 잔 따랐다. 감귤을 통째로 즙을 내서 포도당과 과당을 첨가한 뒤에 효모를 넣어 발효시킨 12도짜리 감귤와인이다. 감귤향은 사라지고 없고 신맛도 느껴지지 않는 대신 귤껍질의 쓴맛과 과즙의 단맛이 혀에 감겼다. 앞으로 껍질은 제거하고 알맹이만 착즙할 거라고 하니 쓴맛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출시를 앞둔 감귤탁주를 냉장고에서 꺼냈다. 색깔이나 첫 입맛은 분명 감귤주스인데, 부드럽게 목을 타고 넘어가면서 가벼운 알코올 기운이 따라왔다. 기분이 좋아지는 감귤 알코올 주스다. 담그는 법은 감귤와인과 다르지 않은데, 거칠게 여과해 탁한 형태를 유지해서 탁주라고 부른다고 했다.

감귤탁주는 조만간 현경면 조수리의 식품공장단지에 새로 지은 공장에서 출시한다니 기대해볼 만하다. 감귤와인이나 감귤탁주가 수입산 포도와인이나 일반 막걸리를 능가할 것이라는 기대는 아니다. 감귤이 과잉 공급돼 감귤나무를 베어내고 대안작물을 찾는 시점에 감귤 가공상품으로 거는 기대다. 20년 넘게 술과 함께 살아오고, 새로운 감귤주를 개발하기 위해 홀로 숙식하며 땀흘리는 김성배씨의 노력이 제주의 자산이 되기를 바라며 발길을 돌렸다.



제주 술 기본 재료는 좁쌀

일행은 다시 자리를 옮겨 전현직 대통령이 다녀갔다는 산방산과 용머리 해안이 한눈에 들어오는 남경미락 식당을 찾아갔다. 1kg에 18만원을 호가하는 다금바리를 맛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날 들어온 다금바리는 2.5kg짜리 한 마리뿐이었고, 이미 앞서 온 손님을 위해 횟감으로 다듬어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인근 모슬포의 해녀식당에서 회덮밥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도톰한 회를 많이 썰어 넣어주는 집이었다. 이곳에서도 술 한잔을 마다할 수 없어 22도짜리 한라산 소주를 시켰다. 22도 한라산 소주는 도수가 1도 높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증류식 소주가 첨가돼 21도 한라산 순한소주보다 맛이 묵직하고 깊었다.

둘째 날, 일행은 제주의 농민주를 대표하는 13도 약주인 ‘오름의샘’과 30도 ‘고소리술’을 만드는 영농조합을 찾았다. 제주도개발특별법에 의해 민속주로 지정된 고소리술은 40도짜리도 있지만, 30도짜리가 잘 팔린다. 영농조합 대표 홍성윤(49)씨는 농림부에서 추천을 받고 제주도개발특별법상의 민속주로 지정받은 고소리술을 1998년부터 빚고 있다.

제주를 대표하는 술은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이다. 오메기술은 좁쌀로 만든 오메기떡을 재료로 빚은 술이다. 제주의 술은 쌀을 기본으로 하는 육지와 달리 좁쌀을 기본 원료로 삼는다. 제주는 쌀농사를 지을 수 없어서 쌀술이 없다. 쌀농사를 지으려면 무논이 있어야 하는데, 비가 내리는 대로 ‘숨돌’이라 부르는 현무암 구멍 속으로 송송 빠져나가니 물을 가둬놓고 논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밭에 보리와 좁쌀 농사를 지어 대대로 살아왔다. 그리고 찰기 있는 차좁쌀로 오메기술을 빚었고, 그 술을 다시 고소리로 증류해 소주인 고소리술을 내려 마셨다.

오름의샘은 오메기술을 모태로 한 제품이다. 좁쌀에 쌀을 추가하고, 전통누룩 대신에 백국균을 뿌린 쌀알누룩을 썼다. 여기에 진피(감귤껍질), 섬오갈피, 오미자, 감초, 손바닥선인장 등 제주산 약재 열 가지가 들어간다. 쌀을 넣으면 술맛이 부드러워지고 쌀알누룩을 쓰면 누룩내가 준다. 여기에 약재를 넣었으니 약주나 다름없다. 대신 좁쌀 오메기술에서 많이 멀어졌다. 옛길에서 영감을 얻어 새길을 찾아간다면 나무랄 게 없다.

아쉽게도 오름의샘은 맛보지 못했다. 술이 공장에도 없는 상태였다. 대신 오름의샘을 증류한 30도짜리 고소리술을 맛볼 수 있었다. 고소리술은 깔끔하고 단정했다. 알코올향이 올라왔지만 거칠게 콧등을 칠 정도는 아니다. 소주의 쓴맛과 아릿한 맛이 섞이고 투박하면서 맛과 향의 균형이 잡혀 있다. 쌉쌀하기만한 한라산 소주에서 느낄 수 없는 향이 있고 억센 기운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동행한 주당들이 가장 좋은 제주 술로 꼽은 게 고소리술이다.

2/4
허시명 여행작가, 전통술 품평가 soolstory@empal.com
목록 닫기

제주도 명주 오메기술

댓글 창 닫기

2019/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