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D.샐린저와 호밀밭의 파수꾼’ 김성곤 지음/살림 ‘호밀밭의 파수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지음/김욱동, 염경숙 옮김/현암사 ‘벌거벗은 점심’ 윌리엄 S. 버로스 지음/정성호 옮김/월간 에세이
그 권능의 일차적 담지체는 국가다. 국가는 포획기계다. 국가는 영토를 포획하고, 사람을 포획한다. 포획의 힘, 달리 말해 제약과 규제의 힘을 내부화하지 못한 조직은 국가가 될 수가 없다. 제약과 규제의 힘에 의해 작동한다는 점에서 국가란 다소 느슨한 규율이 지배하는 수용소이자 말랑말랑한 감옥이다. 금서는 포획기계로서 국가가 행하는 사회 통제 기획의 일부라 할 수 있다. 국가가 금서의 조건으로 가장 빈번하게 내세우는 것은 폭력과 외설이다. 이에 대한 억압과 규제는 공공의 가치와 사회의 미풍양속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정당화된다.
미국에서 1950년대는 냉전시대의 보수주의 가치에 의해 국가주의가 강화되던 시기다. 노먼 메일러는 이 시기를 “순응에 의해 서서히 죽어가는 시대”라고 규정했다. 미국은 풍요로운 소비사회를 구가했는데, 그 이면에는 매카시즘이라는 광풍에 순응하는 사회의 무기력과 정신적 빈곤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 ‘순응의 시대’에 대해 반발하고 저항한 사람들이 바로 비트 세대 작가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샐린저와 ‘벌거벗은 점심’을 쓴 버로스는 비트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다. 이들은 성(性)과 사랑과 마리화나와 재즈를 성화(聖化)하고 기성세대의 위선과 기만에 진절머리를 치면서 기존 제도와 도덕에 격렬하게 저항했다. 무절제하며 무질서한 삶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관습과 기만의 도덕에 억압당하지 않는 자유로운 삶,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고자 했다.
비트 세대의 좌절과 고뇌
미국 문학사상 헤밍웨이, 피츠제럴드와 함께 가장 대중적이며 비평적 관심의 표적이 된 작가가 바로 샐린저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1951년에 발표됐다. 이 한 편의 소설로 샐린저는 일약 세계적인 작가가 됐고, 1961년 9월15일자 ‘타임’지 표지를 장식할 만큼 대중적 관심의 표적이 됐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195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서 일어난 비트 제너레이션(Beat genaration)의 반체제운동과 1960년대의 히피문화를 중심으로 일어난 반문화운동(Counter culture)의 사상적 동력을 제공했다.
현대문명에 대한 환멸과 절망에서 비롯된 비트 세대의 저항은 기존의 모든 가치와 규범, 관습과 제도에 대한 격렬한 부정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이 떨어뜨린 원자폭탄으로 일본의 두 도시가 한 순간에 잿더미가 되는 것을 목격했다. 그들은 인류공동체가 언제라도 순간에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공유했다. 현대사를 할퀴고 지나간 세계전쟁과 인종학살, 동서냉전과 쿠데타, 그리고 파시즘과 나치즘, 공산주의, 제국주의, 식민주의에 대해 진절머리를 쳤다.
바로 이때 ‘호밀밭의 파수꾼’이 나타났다. 작중화자인 홀든 콜필드는 당대 젊은이의 방황과 내면의 불행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내 보였다. 거침없는 비어와 속어, 추악한 세상에 대한 조롱, 반체제적 내용으로 한때나마 유해성 논란에 휩싸이고 사회적 파문을 일으켜 급기야 금서 목록에 올라간 적도 있다.
홀든은 호밀밭을 걸어오는 아이들이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지키는 파수꾼이 되겠다고 한다. 절벽이란 아이들이 타고난 순진성을 잃고 곧 발을 딛게 될 어른 세계의 기만적 제도와 규범이 아닐까. 궤도에서 이탈한 행성과 같이 홀로 밤거리를 떠도는 홀든 콜필드의 방황은 곧 정체성을 찾으려는 열망과 관련돼 있다. 또 타자와 진정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안타까운 몸부림이기도 하다. 속물주의와 타락한 세상 한가운데 섬처럼 떠 있는 홀든 콜필드는 외롭고 고독하다. 작가는 홀든 콜필드의 외로움과 고독을 통해 인간이 잃어버린 순진성의 신화에 애달파하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두 도시에 원폭이 투하되는 것을 목격한 세대가 겪는 정신적 좌절과 고뇌를 보여준다. 홀든 콜필드는 샐린저의 분신이다. 홀든이 믿고 따르는 한 선생님은 이렇게 충고한다.
“미성숙한 사람의 특징은 대의를 위해 고결하게 죽기 원한다는 것이고, 성숙한 사람의 특징은 대의를 위해 겸허하게 살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허위와 가식으로 가득 찬 주류 세상을 부정하고, 단순하고 직접적인 것을 추구하며 고뇌와 기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미국의 비트 세대 작가들은 1960년대 히피운동으로 그 명맥을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