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장석주의 책하고 놀자

누가 금서를 정하는가

‘호밀밭의 파수꾼’ ‘벌거벗은 점심’‘J.D.샐린저와 호밀밭의 파수꾼’

  •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kafkajs@hanmail.net

누가 금서를 정하는가

2/2
모든 중독에 대한 통찰

1962년 미국에서 처음 출판된 ‘벌거벗은 점심’은 미국의 여러 주에서 소송의 대상이 됐고 일부에서는 법적으로 판금 결정이 내려졌다. 하지만 “잔인하고 외설적이며 혐오스러운” 이 작품에 대해 1966년 매사추세츠주 대법원은 외설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미국 대법원은 어떤 책자를 외설물로 규제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성에 대한 음란한 관심을 자극하는 것이 주요 테마인 작품. 둘째, 동시대 사회의 가치 기준을 공공연히 모욕하는 공격적인 작품. 셋째, 사회적 가치의 회복을 철저히 배제한 작품이 그것이다.

‘벌거벗은 점심’은 작가가 스스로 “야수적이고 외설적이며 혐오스럽다”고 인정했고, 재판부도 이 작품이 전체적으로 공격적이고 일탈에 대한 외설적 관심과 호기심에 호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런데도 이 작품은 외설 혐의를 벗는다. 지성계 일각의 관심과 지지가 이 책이 “일정한 문학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의 증거로 인정된 것이다. 재판에서 노먼 메일러나 앨런 긴즈버그 같은 유명 문인이 피고에 대해 우호적으로 증언했다. 재판부는 ‘벌거벗은 점심’의 출판과 배포 행위에 대해 “외설적 호소를 위해 다른 모든 가치를 배제하는 상업적 추구의 소산”이라는 사실이 명확하지 않다고 보았다.



‘벌거벗은 점심’은 어떤 작품인가. 노먼 메일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각의 스타일은 대단히 독특합니다. 지극히 사소한 아름다움까지 포착하고 있습니다. 아주 평범한 대화, 범죄자나 군인, 운동선수, 마약 중독자의 대화 속에서 말입니다. 때로는 대단히 빼어나고 통렬하며 극적이기도 한 하층 계급의 언어로 표현된 웅변도 있습니다. 버로스는 내가 아는 다른 미국 작가들과는 달리 그런 웅변을 포착했습니다. … 그의 시적 상상력은 무척 강렬합니다. 때로는 혐오스럽죠. 하지만 그 속에는 충돌의 감각, 비범한 몽타주 기법의 감각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 소설은 한 마약 중독자의 고백으로 이뤄져 있다. 버로스 자신이 15년 동안 지독한 마약 중독자였던 만큼 소설은 거의 자전적인 체험으로 채워져 있다. 중독 상태, 중독에서 벗어나는 과정, 그리고 중독에서 완전히 벗어난 후의 세 국면을 거치면서 씌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무의식과 잠재의식의 요소가 뒤범벅돼 나타나 소설은 복잡한 양상을 띤다. 섬뜩한 냉소적 유머가 작품 전체에 차고 흘러넘친다.

마약은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최후의 지옥으로 우리를 이끄는 매개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미친 천재, 불구자, 야바위꾼, 성도착자, 범죄자, 썩어가는 야수들은 어떤 방어적 요소도 없이 그 지옥에 노출된 사람들이다. 중독 현상은 마약 중독자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삶을 꾸리는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다. 돈이나 상품, 재산에 대한 과도한 집착도 중독이다. 권력에 대한 중독 혹은 권력을 쥠으로써 타인의 정신과 마음, 영혼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통제력에 대한 중독도 있다. 버로스는 마약 중독이라는 현상을 다루면서 이 모든 중독에 대한 통찰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기존의 가치체계에 대한 혐오와 공격성, 잔혹함과 외설은 이를 다루기 위해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측면이다.

문학성 인정, 무죄 선고



버로스는 분명 비트 세대 작가의 영향권에 있고 그들과 같은 가치관을 공유한다. ‘벌거벗은 점심’이라는 제목도 비트 세대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잭 케루악의 작명이다.

기존의 제도와 관습, 그리고 도덕에 대한 공격은 그리스도, 부처, 마호메트, 공자, 노자와 같은 인류의 성자들을 희화하고 조롱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섬뜩한 냉소적 유머 속에 마리화나, 재즈, 난교, 동성애가 난만하게 펼쳐진다. 하지만 이 폭력적이며 외설적인 작품에 대해서 미국 법정은 문학성을 인정하며 무죄를 선고했다.

신동아 2005년 8월호

2/2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kafkajs@hanmail.net
목록 닫기

누가 금서를 정하는가

댓글 창 닫기

2021/11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