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동기로 세심원을 만들었는가. 그리고 열쇠를 100개나 만들어서 지인들에게 나눠준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의 대다수 샐러리맨이 갖고 있는 바람 가운데 하나가 전원주택을 한 채 갖는 것이다. 별장이라 해도 좋다. 공기 좋은 산골 동네에 삼 칸 흙집 한 채 지어놓고, 채마밭을 가꾸는 삶을 살고 싶어한다. 아마도 도시에 사는 40대 중반 이상의 월급쟁이라면 누구나 이런 생활을 꿈꿀 것이다. 따지고 보면 전원생활이 꼭 큰돈을 들여야만 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나 역시 이런 꿈을 갖고 살아왔다. 집안이 어려워 대학 입학은 일찍이 포기하고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 곧바로 9급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중간에 군대 다녀온 것을 제외하고는 30여 년 동안 장성군청에서 공무원으로 일했다. 마음 한구석에는 늘 출퇴근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인의 삶을 살고픈 소망이 있었다. 대자연 속에 파묻혀 살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먹고 사는 일이 문제였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뜻이 있으면 길이 열리는 게 인생인 듯하다.
1980년대 후반, 우연한 기회에 장성군 북일면 문암리(文岩里)의 축령산(鷲靈山) 자락에 쓸모없어 보이는 땅을 구입했다. 누에를 기르던 허름한 잠실(蠶室)이 세워진 산자락이었다. 시나브로 이 잠실을 손봤다. 사람이 거처할 수 있는 집으로 개조하는 작업이었는데, 이쪽을 고쳤다가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저쪽을 손보는 식이었다. 큰돈 들이지 않고 시간 날 때마다 매만졌다. 마침내 사람 살 집의 모양새를 갖춘 건 1999년이다. 인건비 한푼 들이지 않고, 34평형의 본 건물과 12평짜리 흙집이 완성됐다.
당호를 뭐라 할까 고민한 끝에 ‘세심원’으로 정했다. 먹고 놀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마음을 닦고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이용하고 싶다’는 바람이 담긴 이름이다. 마음의 때를 닦는 일이 곧 쉬는 일이지 않은가. 사람은 쉬어야 한다. 한국 사람들은 그동안 일을 너무 많이 했다. 쉬어야 자신에 대한 성찰이 온다고 생각한다. 성찰이 있어야 자연이 눈에 들어오고, 삶에 대한 허무감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세심원을 짓고 나니까 ‘나만 이 집을 이용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이용하게 하자, 다른 월급쟁이들도 얼마나 이런 집을 갖고 싶어할까’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주변의 지인들에게 자유롭게 드나들라고 열쇠를 나눠줬다. 그렇게 만든 열쇠가 100개나 됐다. ‘나는 관리인일 뿐이다. 주인행세를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열쇠를 모두 나누어주고 나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뿌듯해졌다. 열쇠를 받은 사람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오는 것을 보고 보람을 느꼈다. 이렇게 해서 세심원이 사람들에게 조금씩 알려진 것 같다.”
한 해 1500명 방문
-열쇠는 여전히 100개인가.
“아니다. 그동안 자물쇠가 몇 번 망가졌다. 많은 사람이 이용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세심원 아래에 있는 마을 사람에게 열쇠를 맡겨놓았다. 아랫마을이 임권택 감독이 영화 ‘태백산맥’을 찍었던 금곡마을이다. 그래서 ‘영화마을’이라고도 부르는데, 이 마을에 사는 두 사람에게 열쇠를 맡겨놓았다. 세심원에 오고 싶으면 이 집에 가서 열쇠를 달라고 하면 된다.”
-누구라도 세심원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가. 그동안 어떤 사람들이 다녀갔는가.
“마음을 닦거나 쉬려고 오는 사람은 언제든 환영이다. 그러나 유흥을 위해 한번 와보려는 사람은 거부한다. 세심원이 술 먹고 화투 치는 장소로 전락해선 안 된다. 전화로 몇 마디 나눠보면 대강 어떤 의도에서 세심원에 오려는지 감이 잡힌다. 그동안 세심원을 다녀간 사람은 어림잡아 5000∼6000명이다. 요즘은 연간 1500명쯤 방문한다. 처음에 열쇠를 받은 100명과 그 100명의 소개로 알게 된 사람들이다. 그 중에는 성직자도 여러 분 있다. 스님이나 목사님, 신부님, 원불교의 교무님도 상당수 다녀갔다. 대부분 아주 깨끗하게 이용하고 돌아간다.”
-세심원 이용객에게 돈을 받지 않는다고 들었다. 이용객들이 사용하는 전기요금, 전화요금, 음식값 등 제반 비용은 어떻게 충당하는가.
“세심원 운영비가 한 달 평균 30만원이다. 먹는 거야 집에 있는 쌀과 반찬으로 해결하기 때문에 식비는 운영비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30만원은 전기요금, 전화요금, 난방비로 나간다. 이 돈은 내 월급으로 충당해왔다. 사실 그렇게 큰 돈은 아니지 않은가. 한 달에 30만원을 들여 여러 사람에게 기쁨과 휴식을 줄 수 있다면 아주 싸게 먹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손님은 미안했던지 베개 밑에 돈 봉투를 놓고 가기도 한다. 아무튼 운영비 30만원은 전혀 아깝지 않다. 세상에는 소유의 기쁨도 있지만 반대로 나눔에서 오는 기쁨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가족의 생계는 어떻게 유지하는가. 평소 살림하는 공간은 어디인가.
“2005년 3월에 장성군청을 그만뒀다. 정년까지 7∼8년이 남았는데도 직장을 그만두려 하자 주위에서 모두 말렸다. 요즘같이 불안한 때 왜 안정된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려 하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1999년 세심원을 열 때부터 염두에 두었던 일을 실행에 옮길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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