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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선 획정에서 남북정상회담까지②

민족지도자들의 분열, 좌우 대연정의 꿈은 무너지고…

  • 이철순 부산대 교수·정치학 cslee@pusan.ac.kr

민족지도자들의 분열, 좌우 대연정의 꿈은 무너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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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 거두 송진우의 거부

그러면 여기에서 초기 건준(1차 조직)을 이끌던 여운형·안재홍·정백의 이념적 성향을 간단히 살펴봄으로써 초기 건준의 성격을 알아보자. 여운형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내려져 있지만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는 중도좌파적 이념 성향을 보였다.

여운형은 광복 직후 진보적 민주주의와 진보적 민족주의를 주장했다. 전자는 소수자본가 지배를 거부하며, 다수 민중의 이익, 조선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과 근로대중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것이었다. 후자는 반봉건적 지배구조와 경제구조의 타파를 의미했다. 따라서 여운형은 자유민주주의적 부르주아 경제와 구분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주장했다고 할 수 있다.

여운형이 건준 내 중도좌파를 대표했다면 안재홍은 과거 신간회 인사들이 주축인 건준 내 중도우파를 대표했다. 안재홍이 주장한 신민주주의는 초계급적 종합국가 건설을 지향해 서구 선진제국의 봉건귀족과 대지주, 산업자본을 주도세력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와는 성격이 달랐다. 또한 그가 주장한 신민족주의도 내적으로는 다수 민중을 중심으로 한 자주적·계급적 협동체를, 대외적으로는 국제협동의 정립적 분담자로서 국가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안재홍의 신민주주의, 신민족주의는 여운형의 진보적 민주주의, 진보적 민족주의와 동일한 성격의 정치이념이라고 볼 수 있다.

후술하겠지만 장안파 공산당의 결성을 주도하고 건준에도 적극 참여한 정백은 공산세력 내 박헌영의 재건파와 장안파의 중간에서 우파와도 협력을 도모했다. 그는 중간파적 공산주의자로 좌우협력에 관해서는 민족주의 성향을 보였다. 그는 광복 직후에는 좌우협력, 이후에는 미소군이 철수한 후 남북한 정치지도자간 협상을 통해 통일정부를 수립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초기 건준에 참여한 세 지도자는 극단적인 좌우파가 아닌 중도적인 정치성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런 면에서 이들이 주도한 초기의 건준은 좌우연합체의 성격을 띠고 있다.

건준이 명실상부한 좌우연합체가 되려면 국내에 남아 있던 우파 거물 송진우가 참여했어야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사실 여운형은 누구보다도 우파의 중심인물인 송진우와 협력하고자 했다. 여운형은 “송진우와의 합작은 개인을 상대함이 아니라 김성수를 중심으로 한 배후집단을 상대하는 것이며 우익 중 세력이 크다고 할 이 그룹의 편향을 방지해 좌익과 합작해 대동단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운형의 최측근인 이만규에 따르면 여운형은 송진우·김성수의 교육·언론을 통한 민족운동을 인정했고 이들을 중요한 협력자로 여겼다고 한다.

따라서 여운형은 광복 며칠 전부터 안재홍·정백·조동우와 협의해 송진우 측과 연대하기로 하고 광복 후 건국준비를 위한 협력을 제의했다. 중간 역할을 맡았던 장안파 공산당의 정백은 여운형과 송진우가 합치면 국내는 당할 정치세력이 없을 것이라는 뜻을 김준연을 통해 전달하고 송진우측에 8월12, 13일 양일에 걸쳐 교섭을 시도했으나 송진우가 거부해 결렬됐다.

15일 여운형은 다시 이여성을 송진우에게 보내고 17일에는 자신이 직접 가서 협조를 구했다. 그러나 송진우는 끝내 건준 참여를 거부했다. 송진우는 이때 여운형에게 “내가 보기에 몽양은 공산주의자가 아니오. 그러나 자칫하면 그들에게 휘감기어 공산주의자도 못 되면서 공산주의자 노릇을 하게 될 위험성이 없지 않소. 내 말을 들으시오”라고 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부터 철저하게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한 송진우다운 얘기다. 그러나 여운형과 송진우가 합세했더라면 건준은 명실상부한 좌우연합체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송진우를 지지하는 편이던 이인도 자신의 회고록에서 “건준의 협조를 뿌리친 송진우의 태도가 정세판단에 너무 어두운 것이 아닌가” 하고 판단한 점도 음미할 만하다.

그러면 좌우연합을 표방한 건준의 성격이 어떻게 변질돼 해방정국이 좌우대립으로 전개됐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건준에 대한 도전은 우선 일제의 건준 견제로 나타났다. 8월15일 새벽 “이제부터 우리의 생명보전은 그대에게 달렸다”고 호소하던 엔도 정무총감은 사태가 일본이 의도하던 대로만 진전되지 않자 약속위반이라고 생각하면서 17일 건준의 기능을 치안유지로 제한할 것을 요구했다. 일본의 조선군관구는 만약 민간인들이 치안을 저해한다면 군이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세상이 바뀐 것에 놀란 일본인들은 총독부가 질서유지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8월18일 “일본군은 엄연히 건재하다”며 일본군은 치안을 해칠 경우에는 무력행사도 불사하겠다고 위협하면서 곳곳에서 충돌했으며 믿을 만한 사람에게만 무기를 제공하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조선군사령관은 같은 날 행정권 이양을 취소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조선인에게 인계한 신문사와 학교를 다시 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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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순 부산대 교수·정치학 cslee@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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