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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인터뷰

허준영 전 경찰청장 격정 토로

“임기제 청장 내쫓은 잘못된 정치, 내가 바로잡겠다”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허준영 전 경찰청장 격정 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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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민 사망, 책임은 있지만 물러날 일은 아니었다
  • ‘청장 사퇴 후 대통령 사과회견’ 청와대 시나리오 거부
  • 청와대 모 수석, “민노당 끌고 가야 하니 제발 사퇴해달라”
  • 청와대와 운동권 핫라인이 평화 시위문화 정착 가로막아
  • ‘강정구 구속 발언’ 직후 청와대의 관련자 문책요구 거부
  • 공정한 인사시스템이 이 정부의 강점이었는데…
  • 내칠 땐 언제고, 도지사 나가라니…도리가 아니다
  • 한나라당도 정신 못 차려…주변에서 무소속 출마도 권유
허준영 전 경찰청장 격정 토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이탈리아 칸초네 ‘오 솔레미오’. 고등학교 음악시간에 배운 것으로 아련히 기억되는 이 노래를 지난 두 달간 아마 열댓 번은 들었던 것 같다. 허준영(許准榮·54) 전 경찰청장의 휴대전화 컬러링이기 때문이다. 허 전 청장은 지난해 연말 시위농민 사망사건으로 사퇴한 후 언론 접촉을 피해왔다.

3월초, 그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인터뷰가 아니라는 조건이 붙은 이날 대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짐작한 대로 그가 ‘오 솔레미오’를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 지난해 10월 리언 러포트 주한미군사령관이 초대한 만찬석상에서도 이 노래를 ‘답례’로 불러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그날 그를 더 우쭐하게 한 것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잘 불렀다”는 부인의 칭찬. 게다가 ‘앙코르’ 요청에 가사가 어렵기로 유명한 ‘My Favorite Things’(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 중 한 곡)를 불러 또 한 번 미국인들을 놀라게 했다나.

그는 2월말 서울 여의도에 있는 14평짜리 오피스텔을 임차했다. 사무실 겸 사람 만나는 장소다. 이곳에서 3월6일, 4시간여에 걸쳐 인터뷰가 진행됐다.

집기래야 4인용 식탁과 볼품없는 작은 소파가 고작인 이 비좁은 사무실은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꽃샘추위’가 어른거린 탓인지 실내 공기도 싸늘했다. 단정한 양복 차림의 그에게서 원칙과 규정 준수가 몸에 밴 공무원 특유의 반듯함이 느껴졌다.

그는 인터뷰 내내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으며 기자와 마찬가지로 한 번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얼굴 표정은 밝았으나 약간 긴장된 기색도 비쳤다. 단련된 이마와 야문 눈맵시는 그가 유도 유단자에 만능 스포츠맨이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줬다. 고집도 셀 것 같고.



“대답,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묵직한 목소리엔 절제된 뜨거움이 배어 있었다. 그는 작심한 듯 사퇴 비화를 공개하면서 청와대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출했다. 아울러 시위 대응방식, 수사구조 개혁 등 경찰 현안에 대한 소신과 참여정부에 몸담았던 고위 공직자로서의 소회, 나아가 정계 진출의 포부까지 밝혔다. 그에 덧붙여 경찰총수에 이르기까지 삶의 행로도 반추했다.

사퇴 후 그는 모처럼 가족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터키, 이집트, 그리스 3개국을 8박9일로 돌아보는 단체관광도 했고, 중국과 일본에도 다녀왔다. ‘10년 후의 한국’ 등 책도 여러 권 읽었다.

“그동안 일요일 개념 없이 살아오긴 했어도 짬을 내 스키도 타는 등 노는 것은 그런 대로 흉내를 내봤거든요. 그런데 요즘 ‘내가 노는 법과 쉬는 법의 차이를 몰랐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진정한 휴식이 뭔지 몰랐다는. 특별한 활동 없이 쉬면서 사색하는 지금의 시간이 굉장히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그는 요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직업안내용 책 집필을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청소년에 대한 직업 오리엔테이션이 제대로 안 돼 있어요. 외교관(그는 외무고시 출신으로 외교관 생활을 하다 경찰에 입문했다)과 경찰관 경험을 토대로 청소년에게 직업선택에 대한 지침을 주는 책을 쓰고 싶습니다. 어린 시절 동네 아저씨나 아주머니들이 ‘너 커서 뭐가 될래?’ 물으면, 다른 애들은 ‘대통령’이라고 했는데 나는 ‘교통순경이 되겠다’고 했어요. 어느 날 어머니가 지나가다 그 얘길 듣고 저를 한쪽 구석으로 끌고 가서는 ‘대답,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고 주의를 줬어요. 대통령이든 육군대장이든 교통순경이 ‘서라’ 하면 서야 하니 교통순경이 최고라고 여기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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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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