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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vs 기무사 ‘40년 정보전쟁’ 秘話

“도와가며 일하라는데 왜 자꾸 말썽이야, 아주 보내버리겠어!”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국정원 vs 기무사 ‘40년 정보전쟁’ 秘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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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과 기무사 법적 관계

사업·예산감사, 보안점검 틀어쥔 국정원의 절대우위
“기무사는 절대로 국정원의 상대가 될 수 없다.”
두 기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들이 한결같이 내리는 결론이다. 제도적으로 기무사는 국정원에 철저히 예속된 상태라는 것이다. 군사정권 시기에는 보안사가 나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법과 제도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21세기에는 이야기가 다르다는 단언이다.

우선 기무사는 정보보고 과정에서부터 국정원과 긴밀히 연동한다. 노무현 정부 들어 정보기관장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는 관행은 사라지고 모든 관련정보는 청와대 안보실(지난해까지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을 경유하게 됐지만, 예전에는 안기부가 이 통로역할을 맡았다. 지금도 기무사가 청와대에 보고하는 첩보는 국정원에도 동시에 전달하는 것이 관례다. 정보조정 최고책임을 맡은 국정원이 이들 첩보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확실한 정보’로 만든다는 취지다(김정일 방중 보고와 관련해 국정원이 시간상 ‘늦은’ 것에는 두 기관이 올리는 보고 사이의 이러한 성격차이가 숨어 있다).

기무사의 업무추진도 상당부분 국정원의 승인을 받도록 돼있다. 각 정보기관이 추진하는 공작사업은 먼저 국정원장에 보고서를 제출해 부호를 발급 받아야 한다. 부호가 없는 공작사업은 불법이므로 ‘공무’가 아니다.

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돈. 국정원은 국내 각 관련기관이 사용하는 모든 ‘정보예산’을 통제한다. 기무사와 국군정보사령부, 경찰 정보파트 등은 경상비용은 상부기관 예산에서 타지만 공작사업을 위해 사용하는 예산은 세목별로 국정원에 신청한다. 국정원은 이 예산안을 심사해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하고 국회는 이를 총액개념으로 승인한다. 국회는 어떤 사업, 어떤 세목으로, 얼마나 예산이 배정되는지까지 꼼꼼히 감독하지 못한다. 사실상 기무사의 예산 승인권은 국정원이 갖고 있는 셈이다.

예산을 타서 쓰므로 감사도 받아야 한다. 국정원 감찰실에는 크게 두 부서가 있다. 하나는 각급 시설의 보안현황을 점검하는 팀이고, 다른 하나는 정보예산을 받아쓰는 기관들을 순회하며 감사하는 팀이다. 1년에 한 번 이뤄지는 기무사 정기 사업·예산감사는 3~4일 동안 진행되는데, 담당 팀은 준비기간과 정리기간을 합치면 1년의 절반을 감사로 보낸다고 할 정도로 꼼꼼하게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은 기무사의 상당수 업무를 바닥까지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정보예산의 특성상 예산이 적절히 집행됐음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한 관계자는 “해외 정보원 포섭을 위해 돈을 뿌리면서 영수증을 받아올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공작사업은 감찰관이 ‘걸면 걸리는’ 경우가 많다. 예산·사업에 이상이 있을 경우 국정원 감찰실은 피감기관에 담당직원의 징계를 요청할 수 있고, 해당 기관장은 이에 협조할 의무가 있다.

보안점검 역시 간단치 않다. 국정원은 국내에 산재한 각급 보안시설에 대해 1년에 한번 점검을 한다. 기무사와 정보사는 물론 국방부와 합참도 대상이다. 시설, 통신, 문서, 인원 등으로 나뉘어 실시되는 점검기간 중에는, 감찰관이 야간에 불시로 해당시설 사무실 문을 열어 보안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비밀문서가 일반 캐비닛에 있다든가 하는 이상이 발견되면 역시 징계를 요청할 수 있다.

전직 군 정보당국자들 사이에서는 국정원의 이러한 ‘압도적인 제도적 우위’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도 있다. “경쟁 없는 권한독점이 계속되면 정보기관은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는 식이다. 여기에는 군 정보기관의 활동공간을 넓혀 국가 주요정보의 교차확인이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희망사항’이 암묵적으로 배어 있다. 물론 이러한 견해에 대해 국정원측 인사들은 “1970년대 같은 비효율과 기관간 대립으로 인한 혼선을 다시 만들자는 말이냐”며 “구태의연한 조직이기주의”라고 강하게 반발한다.



그러나 이론은 이론일 뿐, 기무사(옛 보안사, 육군 방첩부대)는 늘 국정원(옛 국가안전기획부, 중앙정보부)의 통제를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게 정설이다. 한 전직 국정원 간부는 “군사정권 때는 기무사가 ‘문민(文民)에 밀리지 않겠다’는 의식이 강했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남산의 그늘을 벗어나려 애썼다”고 회고했다. 군 정보당국의 한 전직 고위관계자는 “군사정권 때는 청와대가 그러한 갈등을 부추겨 서로를 견제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두 기관으로부터 같은 주제로 보고를 받아 교차확인하는 식이었다”고 말한다. 분위기가 심각했을 때는 무력충돌에 준하는 상황도 심심찮게 발생했다는 것이다.

중정 포위한 윤필용의 방첩부대

두 기관의 긴장관계는 중앙정보부가 창설된 1960년대부터 계속돼왔다는 데 이견이 없다. 이전까지 정보를 독점해온 육군 방첩부대와 새로운 권력으로 떠오른 중앙정보부 사이에 알력이 빚어진 것이다. 특히 이들 기관의 수장(首長)이 어떤 인물인가에 따라 긴장은 고조되기도 하고 잦아들기도 했다.

전직 관계자들이 ‘최초의 충돌’로 꼽는 사례는 1967년의 이른바 ‘나일론백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1월말, 육군 방첩대 정보처는 위장수출과 관련한 첩보를 입수한다. 인천과 홍콩을 오가는 무역선이 수상하다는 내용이었다. 12월 이 무역선을 급습한 방첩부대는 적재된 나일론백 속에 수출품 대신 쓰레기와 돌덩어리가 가득한 것을 적발한다. 수출실적을 속여 수입쿼터를 따내 돈을 버는 수법이었다. 공범을 추적하던 방첩대는 기대 밖의 소득을 건졌다. 사건의 배후에 중앙정보부(이하 중정) 중견간부가 있다는 진술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측근이자 무섭게 떠오르던 하나회의 대부였던 윤필용 당시 방첩부대장은 이를 중정을 견제하는 데 활용하기로 결심한다. 박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낸 윤필용은 남산 중정 본부에 무장요원 10여 명을 급파하고, 배후로 지목된 중정 중견간부를 체포하기 위해 출입구마다 진을 친다. 사태를 눈치챈 이 중견간부는 사무실에서 버티며 시간을 끌었다. 김형욱 당시 중정부장은 청와대로 달려가 “위장수출은 해외공작기금 마련을 위한 자구책”이라는 논리로 대통령을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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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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