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2월28일 이해찬 국무총리의 국회 발언. 이 총리는 이날 송파 신도시 주택공급 계획과 관련해 토지 임대부 분양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정부정책을 진두지휘하는 총리의 발언이란 점에서 이 아이디어가 어떤 형태로든 정책에 반영될 것이라는 예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3월9일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 의장은 “아파트 반값 공급 아이디어는 현실성이 없기 때문에 송파 신도시에 적용하기는 힘들다”는 견해를 밝히는 등, 상황은 계속 널뛰고 있다. 구체적인 실현 가능성이 검증되지 않다 보니 하루가 다르게 공약(公約)과 공약(空約)을 넘나드는 것이다.
과연 아파트 반값 공급은 비현실적인 돈키호테식 발상일까, 아니면 대한민국의 아파트 분양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 획기적인 정책 아이디어일까.
우선 살펴볼 것은 홍준표 의원의 주장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홍 의원이 정치색 짙은 공약을 섣불리 내걸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지만 “어찌됐건 지나치게 높은 아파트 분양가 문제를 공론화한 공은 인정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홍 의원이 주장하는 아파트 반값 공급 아이디어는, 토지를 임대형식으로 확보하고 건물을 분양하면 가격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른바 ‘토지 임대부 분양’ 방식. 홍 의원은 공약을 발표하면서 “30평형대 아파트를 분양받으면 실제 점유하는 토지 면적은 8평에 불과하다”며 “그런데 소유주는 이 땅에 대해 아파트 가격의 60%가량을 내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아파트 분양가에서 토지비와 건축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6대 4 혹은 7대 3 정도다. 3억원짜리 아파트라면 1억8000만~2억1000만원이 땅값이고, 나머지가 건축비인 셈이다. 토지비가 분양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 결국 이 같은 구조에서, 건축비는 받되 택지를 분양하지 않고 월세로 받으면 분양가격이 대폭 낮아지므로 반값 공급이 가능하다는 게 홍 의원의 주장이다.
사실 토지 임대부 분양 방식은, 국내에선 낯설지만 선진국에선 도입사례가 여럿 있다. 다만 홍 의원이 주장하는 토지 월세 형식이 아니라 보증금 제도를 도입해 초기 투자자금의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 보편적이다.
영국의 경우 세계 최초의 정원도시로 기록된 레치워스(Letchworth)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도시는 1903년 에버니저 하워드 등 시민들이 제1전원도시주식회사 소유의 땅을 99년간 쓸 수 있는 ‘차지권(借地權) 계약’을 맺고 부지를 빌렸다. 시민들은 우선 땅값의 40~50%를 권리금으로 지급하고 99년 동안 매년 차지료를 냈다. 2003년 차지계약이 종료되자 주민들은 소유권 대신 999년간 유효한 차지권을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이주 시민들은 건물에 대한 권리만 매매하는 방식을 택했고, 건물이 노후한 경우 주민 커뮤니티를 통해 자금을 마련해 수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