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호

육군 인권개선위원장 백군기중장

“아들 군대 보낸 부모님, 이젠 안심하세요”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 사진·정경택기자

    입력2006-03-31 18: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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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 인권개선위원장 백군기중장
    군을 인권과는 거리가 먼 ‘특수집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일이지만, 지난해 3월 육군은 인권개선위원회를 설립했다. 말 그대로 장병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기구다.

    인권개선위원장은 중장 보직인 감찰감이 겸직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제2대 육군 인권개선위원장에 부임한 백군기(白君其·56·육사29기) 중장은 야전에서 잔뼈가 굵은 작전통이다. 여단 작전참모, 수방사령부 상황실장, 사단 작전참모, 연대장, 특전사령부 작전처장, 공수여단장, 사단장, 특전사령관 등의 화려한 경력이 이를 말해준다. 그런가 하면 육사 생도대장과 육군대학 총장을 역임하면서 행정 및 관리 업무도 익혀 문무(文武)에 두루 밝다는 평을 듣는다.

    2월27일 육·해·공군본부가 있는 계룡대에서 군 인권을 주제로 백 위원장과 두 시간가량 얘기를 나눴다. 장성급인 인권개선위원회 분과위원장 몇 명과 정훈공보실장이 배석했다. 며칠간 답변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는 백 위원장은 미리 만든 ‘예상 질의·답변 자료’를 거의 보지 않은 채 보충 설명을 곁들이고 ‘돌발 질문’에도 능숙하게 대응했다.

    군과 인권. 사실 딱딱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역전의 노장 이미지를 풍기는 은은한 백발과 짙은 눈썹이 인상적인 그는 시종 부드러운 표정으로 이 딱딱한 얘기를 딱딱하지 않게 설명하려 애썼다.

    그의 이력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특전사 복무다. 5공수여단 작전참모, 7공수여단 31대대장, 특전사령부 작전차장, 1공수여단장 등을 거쳐 현 직책인 감찰감을 맡기 직전엔 특전사령관(2004년 5월~2005년 11월)을 지냈다. 특전사령관 임무를 막 끝낸 사람이 인권개선위원장에 부임한 것이다. 특전사령관에서 인권개선위원장으로. 왠지 어색한 변신이다. 그의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인분 사건’이 기폭제

    -특전사령관을 하다가 인권개선위원장이 됐는데, 왠지 어울리지 않는 느낌입니다. 특전사 이미지가 인권과는 거리가 좀 있지 않습니까.

    첫 질문에 좌중에서 폭소가 터졌다. 백 위원장도 함께 웃긴 했지만, 이어진 그의 답변은 자못 진지했다.

    “잘못된 인식이에요. 흔히 (훈련이) 강하면 인권이 유린되는 줄 생각하는데,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권이 유린되는 곳에서는 강한 힘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강한 전투력이 요구되는 특전사에서야말로 인권이 존중돼야 합니다. 인권이 신장되면 전투력이 약해진다는 인식부터 바꿔야 합니다.”

    -군에 무슨 인권위원회냐고 의아하게 여길 사람이 많을 듯싶은데요. 어떤 취지로 만든 것입니까.

    “1990년대 이후 사회적으로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대한 욕구가 커짐에 따라 국가인권위원회가 발족되는 등 인간존중 의식이 확산돼 왔습니다. 이러한 사회의 급속한 변화 추세가 군에도 유입돼 장병의 기본권 보장에 대한 욕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인권개선위원회가 만들어진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해 발생한 육군훈련소 인분(人糞) 사건입니다. 이 사건이 기폭제가 돼 군에서 인권 문제를 체계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어요.”

    -인분 사건 관련자들은 어떤 처벌을 받았습니까.

    “가혹행위 당사자인 중대장(대위)은 구속됐고, 교육대장과 연대장도 문책을 받았습니다.”

    그는 “처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휘 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하고 발전시키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인분 사건은) 군의 기본권 보장 문제를 이슈로 만들고 군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인권개선위원회 위원은 모두 28명. 정책위, 교육위, 복무여건개선위, 상담·조사위, 법무위, 의무위, 실태확인위 7개 분과위원회가 있는데 위원장은 모두 장성급이다. 위원회별로 3~4명의 영관급 실무자가 편성돼 있다.

    군에서는 그동안 ‘인권’과 ‘기본권’을 혼용했으나 국방부 지침에 따라 현재는 ‘기본권’으로 용어를 통일해 사용하고 있다. 기본권은 인권보다 더욱 구체적인 개념이다. 인권이란, 말 그대로 사람이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다. 반면 기본권은 헌법 테두리 안에서 보장되는 모든 국민이 갖는 기본적인 권리를 뜻한다.

    인권개선위원회는 ‘육군 기본권 개선 종합추진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교육기관·야전부대 교육규정 및 지침 보완 ▲얼차려 및 소원수리(受理) 방법 개선 ▲시설 개선 등 시급한 현안 65개를 개혁과제로 선정, 2006년 2월말 현재 43개 과제를 완료했다. 대표적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신병훈련 과도한 목표 조정

    먼저 교육기관·야전부대 교육규정 및 지침 보완과 관련해서는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참모총장 주관으로 신병교육 발전 대토론회를 열어 신병교육훈련의 과도한 목표를 조정함으로써 훈련수준을 현실화했다. 둘째, 장교 및 부사관 양성기관과 야전부대에 인성교육을 정규과목으로 편성하고 ‘육군리더십센터’를 창설해 인간존중의 리더십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셋째, 기본권 교육 및 상담을 위한 ‘장병 기본권 교육’과 ‘기본권 상담관용 법률교육’ 교재를 발간하고 전문상담관 6명을 야전에 배치해 시험운용하고 있다. 전문상담관은 심리학을 전공한 민간인으로, 내년엔 40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다음으로 얼차려 및 소원수리 방법 개선. 얼차려 개념을 처벌이 아닌 체력단련으로 바꾸고 인간적인 수치심과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방식을 개선했다. 얼차려를 실시할 때는 반드시 공개된 장소에서 집행자의 감독을 받도록 했다. 방법도 팔굽혀펴기와 개인호(壕) 파고 메우기, 보행, 뜀걸음, 참선, 반성문 쓰기 등으로 제한했다. 훈련병 소원수리의 경우 매 기수 입소기간 중 한 차례 받던 것을 2회로 늘렸고 군 휴대전화를 이용해 상담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시설개선 분야에선, 2015년에 완료할 예정이던 모든 신병교육기관의 병영시설 현대화를 2011년으로 앞당겨 시행하고, 국방예산 및 BTL(민간자본 유치사업) 방식으로 5개 사단 신병교육대와 야전부대의 병영시설 개선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육군훈련소는 지난해 90여 억원을 들여 화장실과 목욕탕을 개선했다. 신세대 장병의 신체조건을 고려해 화장실 공간을 0.8㎡에서 1.5㎡로 넓히고 재래식 변기 690개를 좌변기로 바꿨다. 또 냉·온수를 늘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을 갖췄다.

    아울러 민간 인권관련 기관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행사도 개최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육군본부에서 ‘인권과 생명’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는데, 이 자리에는 민·관·군 인권 유관기관 및 시민단체 실무자 150여 명이 참가했다. 오는 6월엔 국가인권위원회와 시민단체 등을 초청해 ‘장병 기본권 포럼’을 개최할 예정이다.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이 ‘홍익인간’이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민족은 예부터 인간존중 사상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군 장병의 기본권 문제도 이러한 전통사상의 연장선에서 생각하면 쉽게 풀릴 수 있으리라 봅니다. 또 ‘논어’에 ‘군사신이예(君使臣以禮) 신사군이충(臣事君以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휘관이 부하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부대를 지휘할 때 부하는 목숨을 바쳐 지휘관을 따르고 충성을 다한다는 뜻입니다. 지휘관이 장병의 기본권을 존중할 때 진정 강한 군대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강한 군대의 출발점은 인권 보장”이라고 강조한 그는 “육군훈련소 인분 사건을 통해 군 인권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털어놓았다.

    “인분 사건은 정상적으로 군 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 사건으로 군 전체를 매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조직이나 3% 정도는 별난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이 사건도 그런 차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결코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거든요.”

    자살사고 사망자 현황(통계청 및 육군자료 2004.12) 단위 : 명
    구분 평균 2004년 2003년 2002년 2001년 2000년 1999년
    사회 10,900 11,700(추정) 11,000 11,000 10,500 10,300 10,000
    육군 59.6 53 53 66 60 66 84


    구타, 가혹행위 현저히 줄어

    -인권개선위원회 창설 이후 가장 눈에 띄는 성과라면 무엇을 꼽을 수 있습니까.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예비역과 현역을 대상으로 실시한 ‘군대 내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구타 및 가혹행위와 언어폭력이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임을 알 수 있어요. 구타당한 비율이 예비역은 51.9%인 데 비해 현역은 6%로 나타났습니다. 또 예비역의 62.5%, 현역의 9.6%가 가혹행위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어요. 기본권을 해치는 악습이 여전히 남아 있긴 하지만, 현저히 개선됐음을 보여주는 통계입니다.”

    지난해 육군에선 사상 처음으로 사망자 수가 두 자리 숫자인 98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이 중 52%가 자살인데, 바깥사회와 달리 군에선 자살률이 낮아지는 추세라고 한다(표1, 표2 참조).

    -반대로 기대만큼 성과가 나지 않거나 부작용 또는 역효과가 나타나는 부분이 있다면.

    “역효과가 심각하게 나타난 부분은 아직 없어요. 다만 일부 병사들이 기본권을 중시하는 분위기를 악용해 개인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갖고 행동함으로써 초급간부들과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우려스럽긴 합니다. 병영생활 행동강령에 따르면 분대장을 빼고는 선임병은 후임병에 대해 간섭할 수 없어요. 따라서 병사 상호간 위계질서가 훼손돼 기본적인 병영질서가 흐트러질 개연성도 없지 않아요. 하지만 이런 문제점들은 변화에 따른 일시적인 부작용일 뿐 기본권 보장 풍토가 완전히 자리잡으면 자연스럽게 해소될 걸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군 교도소의 재소자 처우도 크게 개선됐다고 하는데,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요.

    “먼저 제도개선 면에선, 국방전산망을 이용한 수용자 화상면회 시스템 구축을 꼽을 수 있어요. 부모가 교도소(경기도 장호원 소재)에 가지 않고도 각 지역에 있는 헌병부대에서 화상을 통해 면회하는 제도지요. 또 모범 수형자에 대한 가석방 제도를 확대, 시행하고 있습니다. 운용·처우 면에선 사식(私食)과 물품 반입을 허용하고 민간 조리원을 채용함으로써 급식 질 향상을 꾀한 것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입니다. 또 매년 정기적으로 수용자의 부모를 초청하는 행사를 열고 있으며, 민간 교도소인 여주교도소와 자매결연을 해 교정 정보를 공유하는 등 수형자의 인권과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발생한 노충국씨 사망사건은 군 의료체계의 후진성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군에서 위궤양 판정을 받은 노씨는 전역 후 2주 만에 위암 판정을 받았고 3개월 투병 끝에 숨졌다. 인권개선위원회의 정책과제 중엔 의료체계 개선도 포함돼 있다.

    대표적인 것이 원격진료 시스템 조기 구축. 군병원과 멀리 떨어진 격오지 부대의 경우 군의관이 화상을 통해 진료하는 방식이다. 현재 6사단에서 시험운용하고 있다. 또한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의무장비를 보강하고 외부에서 우수 의료 인력을 들여오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무엇보다 부모들이 솔깃할 만한 것은 현역병 건강검진제도 도입. 전역을 앞둔 현역병을 대상으로 종합 건강검진을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예산이 문제예요. 제 개인적인 희망입니다만, 민간 의료기관에서 무료로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불가능한 일만도 아닐 듯싶은데….”

    -인권 강조로 군 기강과 전투력이 약해질지 모른다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는데요.

    “인권 보호는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서 자신의 행위에 대한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투력에는 유형적인 것뿐 아니라 무형적인 것도 있습니다. 무형 전투력은 바로 장병의 기본권이 보장될 때 극대화된다고 봐요. 군 기강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겉으로 드러나는 외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내면의 충성심과 자발적인 의지의 발현이 더욱 중요한 거죠. 예를 들어 평상시 100% 명중률을 자랑하는 특등사수도 적과 교전시 의지가 부족하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실탄만 낭비하게 됩니다. 반면 비록 명중률 30%에 그치는 사수라도 내적인 군기와 의지가 강하면 적은 실탄으로 적을 제압할 수 있는 것이죠.”

    내적인 군기가 더 중요

    그는 군 교육과 훈련방식도 시대의 변화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세대 병사들은 개인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하지만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긍지를 가지면 능동적이고 창의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즉 어떤 임무를 부여할 때 해야 할 일을 잘 알려주고 인격적으로 지도하면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하는 뛰어난 자질을 갖고 있어요. 연평해전이 좋은 예입니다. 만약 신세대 병사들을 과거와 같이 무조건 강요하는 방식으로 다루려 한다면 우리 군은 엄청난 위기를 맞게 될 겁니다. 따라서 현재 군에서 추구하는 장병 기본권 보장은 군 기강과 전투력을 배가하는 최선의 방법이자 시대적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육군 인권개선위원장 백군기중장

    ”인간 중심의 병영문화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인내심을 갖고 군의 변화를 지켜봐주시길 바랍니다.”

    -인권이라는 시대적 명제에 맞는 새로운 유형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위원장께서 생각하는 바람직한 군 리더십은 어떤 것인지요.

    “‘손자병법’에 ‘시졸여애자(視卒如愛子)’라는 말이 있어요. ‘병사를 자식같이 보살펴라’는 뜻이지요. 어느 부대 감찰참모가 아들의 신병 입소식에 참석했습니다. 추운 날씨인데도 훈련병들이 야전상의를 입지 않은 채 입소식을 치르고 있어 신병교육대장에게 항의했다고 합니다. 그 감찰참모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신병 입소식에 참석했는데, 야전상의 문제는 생각지도 않았다고 해요. 그런데 아들 입소식에 참석하고서야 훈련생들이 야전상의를 입지 않은 것이 눈에 띈 거예요. 이처럼 병사를 아들처럼 생각하고 보살피는 인간 중심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자기 아들이 군에 가서 손가락을 다쳤다고 생각해봐요. 얼마나 가슴 아프겠습니까. 모든 병사를 아들처럼 생각해 군에서 조금이라도 다치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마음먹는 것, 이것이 바로 지휘관에게 필요한 인간 존중 리더십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휘권의 민주적인 행사 못지않게 장병의 인권 신장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 사법권의 합리적인 행사다. 그동안 군에서 사법권은 고유의 영역을 갖지 못한 채 지휘권의 보조수단에 머물렀다.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주도로 입법을 눈앞에 둔 군 사법개혁의 기본 취지는 사법권을 지휘권으로부터 독립시키는 것이다. 골자는 군검찰과 군사법원의 독립기구화, 헌병·기무에 대한 군검찰의 수사지휘, 관할관 확인제도(지휘관의 형량 감경권) 폐지, 영창 제도 개선 등이다. 이러한 군사법원법 개정안에 대해 군 일부에서는 ‘군의 특수성을 무시한 발상’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에 대해 묻자 백 위원장은 말을 아꼈다.

    “군 사법개혁 문제는 현재 관련 법안이 국회에 상정돼 있는 만큼 제가 언급할 사항은 아닙니다. 다만 군내 법질서를 효과적으로 유지하고 장병 기본권을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개정돼 국민에게 신뢰받는 군 사법제도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기자가 “그 이상은 언급하지 않으시겠다는 거죠?” 하고 다짐을 받듯이 묻자 좌중에서 웃음이 터졌다. 백 위원장은 “국회 계류 중인 사안이니…” 하고 말꼬리를 흐렸다.

    “요즘은 병사가 가장 무섭다”

    -관할관 확인제도는 형량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것이기 때문에 장병 인권 문제와 관련이 있을 듯한데, 이 제도가 없어지는 게 좋다고 봅니까.

    “저의 지휘관 경험에 비춰보면, (관할관 확인시) 거의 100% 감형조치를 했던 것 같습니다. 지휘관으로서 군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저지른 범죄라는 점을 고려한 것입니다. 어쨌든 폐지가 좋은지 나쁜지를 떠나 그것 때문에 장병의 기본권이 약화돼서는 안 되겠죠.”

    -군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의 독립은 장병 기본권 강화에 도움이 될까요, 아니면 부작용이 더 클까요.

    “기본권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겠죠.”

    잇달아 에둘러 답변한 백 위원장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꼭 뒤로 가면서 어려운 질문이 나온다”고 농담을 건넸다.

    -영창제도 개선도 관심을 끄는데요. 이제까지는 지휘관의 지시로 영창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개혁안에 따르면 영창에 보내기 전에 인권담당 법무관이나 군판사의 사전 심사를 거치게 됩니다.

    “기본권 보장에 도움이 된다면 그런 검증을 거치는 게 좋겠지요. 어떤 개혁안이든 그 기준은 기본권을 효과적으로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봐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휘관의 의식 전환이 아닐까요. 그동안 군에선 병사를 국가가 관리하는 물자 또는 전투력 유지에 필요한 자원이나 소모품으로 여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런 인식을 바꾸는 것이 제도 개선보다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지휘관들의 생각이 과거와는 크게 달라졌어요. 요즘엔 군에서 병사가 가장 무서워요(웃음). 다른 간부들도 비슷하겠지만, 저는 병사와 마주치면 꼭 말 한마디라도 건네고 인사를 나눠요. 자식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과거엔 병사가 지휘관과 마주치게 되면 주눅이 들어 얼굴도 못 들거나 피하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엔 별 셋인 저에게 병사가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하루 즐겁게 보내십시오’ 하고 스스럼없이 인사를 건네요. 저는 사단장과 특전사령관 시절, 아니 그 전에 육사 생도대장을 지낼 때도 가끔 병사들과 함께 목욕을 했습니다.”

    병사들과 목욕하는 지휘관

    -그거, 군에서 대단한 금기사항 아닌가요.

    “(웃음) 그걸 금기로 여기는 것 자체가 문제지요. 목욕을 통해 병사들에게 지휘관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인식시켜주는 겁니다.”

    그는 “이 얘기는 잘못 쓰면 안 되는데…” 하며 목욕 얘기를 이어갔다.

    “목욕하면서 병사에게 등을 밀어달라고 부탁하곤 했습니다. 병사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등을 밀어줬어요. 반대로 나도 그렇게 하고. 병사들은 나중에야 (내가 누구인지) 알았죠. 육사 생도대장 시절엔 생도들이 사우나탕에서 벌거벗은 저를 보고 깜짝 놀라곤 했지요. 목욕을 끝내고 나와 보니 탕 바닥에 물이 흥건하더라고요. 탕 입구에 수건이 비치돼 있지 않은 탓이었지요. 그래서 상부에 건의해 수건 1000장을 구입했습니다. 훈육관들이 생도들과 같이 목욕해본 적이 없으니 목욕탕 사용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없었던 거죠.”

    -인권개선위원장에 부임했을 때 주변의 군 선배들이 우려하지 않던가요.

    “걱정하는 말씀들이 있었지요. ‘인권, 인권 하니 군 기강이 무너지고 훈련도 강하게 못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 지적을 들을 때마다 ‘겉모습만 보고 평가하지 말라’고 얘기했습니다. 외유내강. 진정한 전투력은 겉이 아니라 속이 단단한 데서 나오는 것이고, 무형의 전투력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군 기강만 해도 그렇습니다. 예컨대 병사가 관등성명을 댈 때 자신은 물론 앞에 있는 사람도 정신없을 정도로 큰 소리로 외쳐야 기강이 선 것처럼 얘기하는데, 과연 그게 맞느냐는 거죠. 그냥 부드럽게 내가 누구인지 설명만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아무런 생각도 없이 앞에 선 사람 얼굴도 보지 않은 채 기계적으로 외쳐대는 건 무의미한 행동이죠.”

    -말씀을 죽 들어보니 인권개선위원장을 맡기 전부터 병사의 인권 문제에 대해 남다른 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까 질문한 내용처럼 병사를 전투력 유지의 도구로 여긴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얘기예요. 군은 국민을 무서워하고 국민 보기를 하늘같이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휘관은 국민의 자식인 병사의 손가락 하나라도 다치지 않게 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해요. 인터뷰라고 가식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저는 지휘관들이 이 문제를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휘철학은 무엇입니까.

    “군의 존재가치는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고, 유사시 적과 싸워 이기는 것입니다. 국민의 안녕을 위해 존재하는 만큼 늘 국민을 받드는 자세가 필요해요. 또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평상시 전투훈련을 철저히 해야 합니다.”

    그는 아들, 딸 하나씩을 뒀다. 아들은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입대해 전차병으로 근무했다. 그는 아들의 군 복무기간 중 한번도 면회를 가지 않았다고 한다. 부대 지휘관에게 부담을 줄 것 같아 그랬다는 것이다. 아들도 ‘아버지가 누군지 밝히지 말라’는 그의 당부를 받들어 부친 직업란에 ‘자영업’이라고 써넣었다니,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백 위원장은 인생철학에 대해 묻자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언급했다.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게 인간관계라고 봐요.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하는 지름길은 역지사지입니다. 상대편 처지에서 생각함으로써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지요. 자신을 한 단계만 낮추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데, 많은 사람이 그걸 잘 못하지요.”

    “아들이 군복 입었을 때 심정으로”

    그는 ‘국민에게 드리는 당부말씀’이라며 세 가지를 강조했다.

    “먼저 군을 믿어달라는 것입니다. 아직도 군에서 사고가 나면 뭔가 숨기는 걸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정말 안타깝습니다. 군처럼 투명한 곳도 없거든요. 바깥사회, 가령 기업 같은 데서는 회사 이익과 직결되는 경우 오랫동안 보안이나 비밀 유지가 가능하지만, 전역하면 그만인 군에선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외출한 병사가 PC방에서 인터넷으로 국방부 장관에게 제보하는 세상입니다.

    둘째, 군 생활을 하는 자식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입니다. 자기 아들이 군에 가 있는 동안엔 군복 입은 사람을 예쁘게 보다가 군복무가 끝나면 징그럽게 여겨요. 그러면 안 돼요. 아들이 군복 입었을 때의 심정으로 늘 군에 관심과 애정을 가져주길 부탁드립니다. 군복 입은 모든 장병을 아들처럼 사랑해주면 군의 사기가 올라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인내심을 갖고 군의 변화를 지켜봐주시길 바랍니다. 인간 중심의 병영문화를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아직 국민이 원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걸 바꿀 수는 없어요. 더 많은 예산과 노력이 필요하고, 실질적인 개선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겁니다. 악성 사고 하나를 갖고 군 전체를 부정적으로 보지 말고 항상 신뢰와 애정을 가져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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