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담 후세인 정권이 몰락하고 3년이 지나는 시점에서 이라크의 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다수 시아파와 소수 수니파 사이의 종파갈등이 내전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지난 2월22일 사마라에 있는 시아파 성지 아스카리야 황금사원이 폭파된 뒤 종파간 유혈투쟁은 위험수위에 이르렀다. 보름 사이 시아-수니 양쪽의 피가 피를 부르는 보복공격으로 600여 명이 숨졌다. 영국 BBC 보도에 따르면 병원측은 한꺼번에 너무 많은 시신이 들어오는 바람에 영안실이 넘쳐 미군이 제공한 대형 냉동차에 시신을 보관했다.
부시 행정부 고위 관리들은 이라크가 지난해 12월 총선거를 치르면서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차량 폭탄 테러를 비롯한 저항세력의 움직임은 그대로다. 희생자 수도 줄지 않고 있다. BBC 이라크 특파원 폴 레이놀드는 “현재의 이라크는 사담 후세인 몰락 후 최악”이라고 보도했다. 차량 폭탄 테러를 막으려고 바그다드에는 한때 차량 통행금지 조치가 내려지기도 했다.
“이라크는 질색”…탈영병 속출
이라크의 저항세력은 주로 소수 수니파 민족주의자, 이슬람 국가에서 건너온 무자헤딘(이슬람 전사)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의 전략적 목표는 미국의 이라크 지배구도를 깨뜨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나라를 내전(內戰) 상황으로 몰아가 혼란에 빠뜨리려 시도하고 있다. 쿠르드족, 시아파 성직자들, 시아파 사원을 공격함으로써 유혈보복의 악순환을 일으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차량 폭탄 테러 등 무차별 대량살상도 마다하지 않는다.
미군 정보당국이 펜타곤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2005년 한 해 동안 저항세력의 공격은 총 3만4131회 발생했다. 2004년의 2만6496건에 비해 29% 늘어났다. 미 정보당국이 파악하는 이들 저항세력의 공격 성공률은 24%에 달한다. 이들이 움직이면 어떤 형태로든 피해자가 생긴다.
피해자 속에는 미군도 있다. 2005년 미군 전사자는 673명. 2004년 전사자 통계(714명)와 비슷한 수준이다. 다만 미군 부상자는 29% 줄어들었다(2004년 7990명, 2005년 5639명). 그러나 이는 팔루자 같은 치안불안지역에서 미군이 대규모 군사작전을 벌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라크 각지에서 활동하는 반미 저항세력을 뿌리뽑겠다고 나선다면 그만큼 미군 사상자가 늘어나는 구조다.
이라크 주둔 미군 병사들의 사기는 말이 아니다. 도로를 순찰하다가 느닷없이 날아온 로켓추진 총류탄(RPG)에 맞아, 또는 순찰차량이 길에 놓인 폭발물을 건드려 터지는 바람에 죽고 다치기 일쑤다. 이라크인들의 눈길도 차갑기 그지없다. 이라크에서 반미 저항세력 소탕작전에 참여했다가 미 본토로 돌아온 병사 3명 가운데 1명은 밤에 잠을 못 이루는 등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베트남전쟁 참전 병사들에게 많이 발생했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상이 이라크 참전병사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엔 “이라크엔 죽어도 못 가겠다”며 탈영하는 병사가 늘고 있다. 2003년 이라크 침공 이래 3년 동안 명령계통에서 벗어나 사라지거나, 예정된 귀대일에 돌아오지 않은 미군 병사는 적어도 8000명에 달한다(3월 초 현재 육군 4387명, 해군 3454명, 공군 82명. 해병대는 지난해 9월 집계로 1455명). 여기엔 이라크전쟁 초기 6개월(2003년 3~9월)의 집계가 빠져 있다. 따라서 미군 탈영병 수는 1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