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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한자 삼국지·上│中國편

대전(大篆)개혁, 백화(白話)운동, 간자화(簡字化)로 맥 이은 종주국 문자혁명

  • 김정강 이데올로기 비평가 gumgun@naver.com

대전(大篆)개혁, 백화(白話)운동, 간자화(簡字化)로 맥 이은 종주국 문자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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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동시에, 문명의 기본 도구인 문자가 우수했으므로 경쟁력 있는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고, 그 결과 한족이 번성했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현재까지 발굴된 유물을 근거로 고고학적으로 증명한 자료에 의하면, 이집트 문자나 수메르 문자의 원형인 상형문자가 처음으로 발명된 것은 5000년 전인 기원전 31세기경이었고, 한자가 처음 발명된 것은 3000수백년 전인 기원전 14세기경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일 뿐이고, 앞으로의 발굴과 연구에 따라서 한자의 발명 연대는 더 오래 전으로 밝혀질 수도 있다.

신석기시대, 한자의 萌芽

중국의 전설 중에 ‘한자는 5000여 년 전인 삼황오제(三皇五帝) 때, 황제(黃帝)의 사관(史官) 창힐(蒼?)이 모래와 진흙 밭에 새겨진 새와 짐승의 발자국을 보고 그 모양에서 힌트를 얻어 창안했다’는 부분이 있다. 현재까지 중국에 전해지는 가장 오랜 체계적인 글자 모음이라고 하는 후한(後漢)의 허신(許愼)이 편찬한 ‘설문해자(說文解字)’에도 “황제의 사관인 창힐이 새와 짐승의 발자취를 보고, 그 모양이 각각 다르게 나타나는 데 유의하여 처음으로 서계를 만들었다(皇帝之史倉? 見鳥獸之跡 知分理之可相別異也 初造書契)”는 내용이 있다. 실제 한나라의 수도였던 장안(長安) 근처에 창힐의 무덤이 있다. 중국 이전의 구 중국 시절, 습자(習字)를 시작하는 아동은 창힐의 무덤에 참배하는 관습이 있었다. 구 중국에서는 습자를 중요시했는데, 습자를 시작하는 아동이 창힐의 무덤에 참배하면 그 아동의 습자 수준이 높아진다는 미신이 있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창힐이 한자를 창제했다는설은, 황제가 곡식을 익혀 먹는 화식(火食)의 기술을 발명했다거나, 우물을 파고 의복을 제정했다는 것과 같이 어디까지나 전설일 뿐이다. 한자는 원시시대에 중국의 한족 대중에 의해 맹아(萌芽)가 싹튼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수억만 대중에게 공유되면서 발전해온 동아시아 대중 문자다.

베이징(北京) 교외의 저우커우톈(周口店) 유적지에서 50만 년 전에 생존한 것으로 추정되는 베이징 원인(原人)의 고대 유골이 발견됐다. 유골의 뇌를 조사한 결과 언어중추 및 청각령(聽覺領·청각작용의 중심을 이루는 부분)이 현저히 발달한 것으로 드러나 원인은 그때 이미 상당한 수준의 단어와 말(言語)을 사용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북중국 대륙에서 문자가 사용된 것은 이로부터 수십만년이 지나서였다.



중국의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문화는 양사오(仰韶) 채도문화(彩陶文化)인데, 이 양사오 채도문화의 토기에는 그림과 그림으로부터 유도된 추상적인 부호가 새겨져 있다. 양사오 문화 뒤에 오는 룽산 흑도문화(龍山 黑陶文化)의 흑색 토기 바닥에서는 한자의 연원으로 보이는 부호가 발견됐다. 양사오 채도문화에 이어 기원전 3000년부터 기원전 2200년까지 계속됐을 것으로 추측되는 룽산 흑도문화는 양사오 채도문화보다 한 단계 발전된 신석기 문화였다.

1959년, 신석기 룽산문화에 이어 청동기 얼리터우(二理頭) 문화의 유적이 발굴됐다. 여기서는 토기, 골기, 석기와 청동제 칼, 화살, 방울, 잔을 만들던 수공업장의 유적지와 묘지가 발견됐다. 장방형 수혈묘(竪穴墓)에선 묘주와 솥·식기·잔, 그리고 단수(斷首)에 의해 신체와 목이 분리된 순장자(殉葬者)의 유골이 발견됐다. 이 문화는 청동기문화로 고대 노예제 사회를 상징한다. 중국의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2200년경에서 기원전 500년까지로 추정되는데, 청동기시대 전기에 고대 노예제 국가인 하(夏)왕조가 기원전 2200년부터 기원전 1750년까지 존속한 것으로 보인다.

얼리터우 문화는 은대(殷代) 초기의 것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중국 고고학계에서는 하왕조의 기반이라고 보는 것이 대세다. 여러 고전 기록과 중국 창건 후 고고학적 발굴 성과를 토대로 볼 때 얼리터우 문화는 하왕조의 기반이라는 설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얼리터우 유적지에서 나온 주둥이가 넓은 술그릇에서는 갑골문자의 선조 문자로 추정되는 ‘井’ ‘勿’ 같은 부호가 발견되기도 했다.

‘武’ 해석의 변천사

상형 표의문자(表意文字)인 한자는 문자의 상형 속에 지배 이데올로기를 내포하고 있다. ‘좌전(左傳)’에는 중국 전국시대 전쟁 이데올로기의 변천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진(晉)과 초(楚)가 싸워 초가 크게 이겼다. 신하가 초왕에게 ‘진이 전장에서 버리고 도망간 시체를 모아서 경관(京觀)을 만들자’고 주청했다. 그러자 초왕은 무(武)자는 과(戈, 베기도 하고 찌르기도 할 수 있는 창의 일종으로 중국 고대 육박전의 주 살상 무기)자와 지(止)자의 합인데, 이것은 창으로써 포(暴, 사나움)를 멈추게 한다는 뜻이다. 무위(武威)를 시위하기 위해 시체를 쌓아 경관을 조성하는 행위가 포(暴)인데, 그러므로 이것은 진정한 무도(武道)가 아니다’라고 하여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때 ‘경관을 만든다’함은 적의 시체를 쌓아 개선문을 만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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