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현지 취재

‘공존’의 섬, 보르네오

‘슬픈 열대’와 ‘기쁜 열대’ 사이

  • 정호재 동아일보 출판국 기자 demian@donga.com

‘공존’의 섬, 보르네오

2/6
코타키나발루는 동말레이시아(보르네오 섬) 사바 주(州)의 주도(州都)다. 지금은 인구 30만, 5성급 호텔이 즐비한 국제적 관광도시지만, 10년 전만 해도 판자로 만든 허름한 수상가옥이 다닥다닥 들어선 낙후된 어촌에 불과했다. 최근 보르네오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투자가 몰리기 시작한 데다 인근에 골프장이 밀집해 있어 레저 신천지로 주목받고 있다. 다른 동남아 관광지와 대별되는 점은 이슬람권 국가이다 보니 흥청대는 유흥가가 없다는 점.

인천국제공항에서 코타키나발루까지는 정확히 5시간이 소요됐다. 비행기 안의 승객들을 살펴보니 나이 지긋한 단체여행객보다는 30대 후반의 부부 여행객이 더 많아 보인다. 코타키나발루는 최근 초·중학생들의 조기유학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이곳 국제학교가 영어와 중국어를 함께 가르치기 때문이다.

어둠이 짙게 깔린 코타키나발루(현지인들은 줄여서 ‘KK’로 부른다)에서 서쪽으로 150km 떨어진 라와스까지는 버스로 3시간을 이동해야 한다. 라와스는 사바 주가 아닌 이웃 사라와크 주에 위치한 인구 3만의 소도시다. 부연하자면 라와스는 사바 주와 사라와크 주, 그리고 브루나이 왕국과 인도네시아 국경에 둘러싸인 경계지역인 셈이다. 봉사단은 왜 하필 이 지역을 택한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죠. 우선 말레이시아가 회교국가지만 동말레이시아는 기독교 인구가 적지 않습니다. 이곳 원주민인 룬바왕(Lunbawang)족은 일찍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여 근대화에 성공했죠. 이곳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선교사와 장로 부부께서 치과봉사를 부탁했습니다.”(이형순 부단장)

원주민의 친구, 오정면·문달님 부부



사바 주와 사라와크 주 경계에 당도하자 검문소가 나타났다. 연방제를 택한 말레이시아는 주마다 왕이 따로 있어 각 주는 완전히 다른 나라로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검문소에서 출입신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라와스에 도착하자 이번에는 현지 경찰이 버스에 따라붙으며 경찰서로 동행할 것을 요구한다. 최근 한 외국 여성이 이곳에서 납치당한 사례가 있어 외국인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말레이시아는 아세안(ASEAN)의 선두국가답게 높은 치안수준을 자랑한다. 그러나 그것은 ‘페닌슐라’, 즉 서말레이시아에 한정된 얘기다. 남한만한 크기의 사라와크 주는 인구가 200만에 불과한 원시 밀림지역이라 외국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이제는 버스에서 내려 산악자동차로 갈아타고 산길로 들어선다. 2시간 넘게 비포장도로를 질주하고 나서야 최종 목적지인 멜라라 캠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새벽 3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서울에서 보르네오 섬의 오지에 도달하기까지 꼬박 하루가 걸린 셈이다.

코타키나발루에서 이곳까지 길 안내를 맡은 오정면 장로는 “원주민 거주지 근처에 천막을 세우고 임시 병원을 세울까 했는데 운 좋게 이곳 멜라라 캠프에 병원을 차려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며 밝은 표정으로 숙소를 안내했다.

경북 상주에서 농사를 짓는 오정면(71)·문달님(69) 부부는 지난 20년간 동남아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벌여왔다. 부부가 보르네오 섬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7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시아지역 농민대회에 참가하면서부터. 동남아 원주민들의 열악한 현실을 접하면서 이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싹튼 것. 그 후 부부는 농사를 끝낸 동절기마다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을 돌며 원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올해도 유기농사를 지어 거둔 수익금 2500만원 가운데 1000만원을 들고 어김없이 보르네오 섬을 찾았다고 한다.

지금껏 오씨 부부가 동남아 각지에서 벌인 일은 다양하다. 농업기술이 모자라는 원주민 마을을 순회하며 유기농법을 전수했고, 원주민의 문화 속에 배어 있는 마약을 퇴치하기 위해 애를 썼다. 또한 심장병과 구순구개열(언청이) 치료를 위해 한국에 데려와 수술시킨 아이도 7명이나 된다. 수술비용만 1억원이 넘었다. 수술비가 모자라면 결혼해 독립한 6명의 자녀로부터 도움을 받았고, 그래도 부족하면 종교계와 의료계를 설득해 일을 추진했다고 한다. 이런 활동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현지어를 익히는 데도 열심이었다. 덕분에 지금은 말레이어, 이반족어, 중국어 등 7가지 언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정도.

룬바왕族의 환골탈태

차량에 부착된 내비게이터는 이 캠프의 위치가 해발 1000m 고지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적도 부근에서는 방향감각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운 데다, 낯선 산길을 2시간이나 질주했으니 방향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적도 하늘에선 찬란한 은하수가 쏟아져 내려 캠프를 감싸고 있었다.

2/6
정호재 동아일보 출판국 기자 demian@donga.com
목록 닫기

‘공존’의 섬, 보르네오

댓글 창 닫기

2022/06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