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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비전의 충돌’

세계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gong@gong.co.kr

‘비전의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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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심이냐 공익이냐

제약적 비전과 무제약적 비전은 경제 체제에 대해서도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제약적 비전은 인간의 이기심에 큰 비중을 두면서 인간이 자신의 이익에 충실하도록 행동하는 것만이 경제 문제의 상당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반면 무제약적 비전은 인간이 공익을 위해 헌신할 수 있다고 가정하기 때문에 정부 개입의 범위가 확대되고 급기야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같은 제도로 발전되게 된다. 여기서 좌와 우의 극명한 차이가 비전의 차이에서 비롯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18세기에 있었던 두 가지 사건 즉, 프랑스 대혁명과 미국의 헌법 제정을 보자. 프랑스 대혁명을 주도한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무제약적 비전이 들어 있었다. 제도 개혁을 통해서 얼마든지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전제 위에 진행된 것이 바로 프랑스 대혁명이다. 반면 미국의 헌법은 전혀 다른 인간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인간은 권력을 독점하면 얼마든지 전횡을 휘두를 수 있다고 전제하고, 인간의 선의에 기대기보다는 폭정을 제어할 수 있는 정교한 제어 시스템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둔 것이다.

18세기에 있었던 이 두 가지 굵직한 사건에 대해 토마스 소웰은 이런 주장을 펼쳤다.

“정교한 견제와 균형으로 이루어진 미국의 헌법은 분명 누구에게도 권력을 전적으로 위임할 수 없다는 견해를 분명하게 반영하고 있다. 이것은 생사여탈권을 포함해 루소의 ‘일반의지’를 표명하며 ‘민중’의 이름으로 말하는 사람들에게 전권을 부여한 프랑스 대혁명과는 분명한 대조를 보인다. 당시 직위를 박탈당하고 사형당한 지도자들에 대해 몹시 실망했을 때에도 무제약적 비전을 믿는 사람들은 혁명지도자들의 악행을 개인의 문제로 국한했지, 자신들의 정치 시스템에 대한 믿음을 바꾸지 않았다.”



이처럼 인간 본성에 대해서 다른 관점을 가진 제약적 비전과 무제약적 비전은 지식의 양과, 집중 또는 전파 과정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다른 견해를 보인다.

제약적 비전은 누구든지 자신의 지식만으로는 사회적인 정책을 결정하는 데 부족하고 종종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결정을 하는 데도 대체로 불충분한 점이 많다고 가정한다. 반면에 무제약적 비전은 인간의 지식이나 이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식의 양과 적용에 대해서 제한적인 견해를 갖지 않는다. 이성에 대한 과도한 신뢰는 훗날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 같은 사회적 실험을 가능하게 하는 토대가 된다.

지식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비전에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느냐에 대해 토마스 소웰은 이렇게 말한다.

“요컨대 제약적 비전과 무제약적 비전은 특정 개인이 얼마나 많이 알 수 있고 얼마나 많이 이해할 수 있느냐에 대해 서로 다른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따라서 최선의 사회적 의사 결정이 전문화된 지식을 가진 소수의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느냐 아니면 많은 사람에게 적은 양으로 흩어져 있는 지식을 활용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상반된 결론에 이른다.”

한편 인간 본성에 대한 비전의 차이는 사회 과정에 대해서도 아주 다른 견해를 도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제약적 비전은 최선의 정책이란 인간이 가진 결점을 완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자율적인 조정 과정 그 자체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반면 무제약적 비전은 청사진을 갖고 그런 이상적인 상태를 만들어내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한다. 다시 말하면 제약적 비전은 사회 과정을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데 반해 무제약적 비전은 사회 과정에 대해 혁명적인 관점으로 접근할 때가 많다.

무제약적 비전의 오류

기존 지식과 이성에 의거해서 새로운 질서를 얼마든지 창출할 수 있다고 믿었던 무제약적 비전이 낳은 결과로 20세기의 다양한 사회적 실험을 들 수 있다. 이 책이 발간된 이후 진화심리학이나 두뇌과학 등과 같은 분야의 발달로 말미암아 인간 본성에 관한 진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결론은 무제약적 비전의 근본 가정에 커다란 오류가 있다는 사실이다. 좌파 실험의 실패는 비전의 오류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그런 미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현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

신동아 2006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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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gong@g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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