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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 ‘우회전’한 안병직 뉴라이트재단 이사장

“‘통일’은 국민 속이는 말, 盧와 DJ는 대선 새판 짜려 한다”

  • 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극적 ‘우회전’한 안병직 뉴라이트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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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의 경제사 또한 일본과 마찬가지로 서구 자본주의 발달사를 놓고 보니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않은 것 같다 이겁니다. 그래서 나온 게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이에요. 마오쩌둥이 만든 이론이죠. 도시에 자본주의 같은 게 나타나긴 하는데 외국 자본 차지이고, 농촌은 여전히 전근대적이라는 거죠. 저 또한 일제 강점기를 식민지반봉건사회라고 봤습니다.

종속이론이란 것도 있죠. 밖에서 보면 자본주의 형태를 띠지만 실질적으로는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않는다, 선진국의 자본주의가 저개발국을 개발하는 것 같지만 개발에 따른 축적된 잉여가치는 모두 선진국으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에 저개발국은 껍데기만 남는다는.

그런데 1960년대 이후 한국을 보면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돼요. 그때 성장속도가 엄청났으니까. 그래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이론을 전개했어요. 식민지이긴 한데 껍데기뿐이라도 국가독점자본주의 형태를 띠고 있으니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거죠. 북에서는 지금도 한국을 미국의 식민지라고 보는 게 그런 논리죠.”

‘중진 자본주의론’으로 수정

식민지반봉건사회론, 종속이론,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 모두 저개발국가의 경제 성장을 부정하는 이론이다. 그러한 시각으로 한국 근대사의 흐름을 보았던 안 교수는 1970년대 말이면 한국의 자본주의가 붕괴되고, 사회주의로 돌아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길밖에는 없다고 확신했다.



“난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민주화운동을 앞장서서 했던 사람이에요. 그때 꽤 유명했죠. 1970년대 말이면 한국 자본주의는 모순이 축적돼 붕괴할 것이고, 그러면 갈 길은 사회주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마침 1979년에 박정희가 죽었어요. 예측이 정확히 들어맞았다 생각했죠. 이제 사회주의혁명이 일어나 자본주의로부터 일탈할 거라 내다봤어요.

그런데 1980년에 전두환이 나타나더니만, 국가 경영능력으로 보면 박정희보다 못한 사람인데, 사회와 경제가 살아나는 겁니다. 그래서 충격을 받았어요. 내가 사회를 잘못 보고 있다, 내가 반성해야지 사회를 원망할 일이 아니다…. 모든 진리는 현실 속에 있거든요. 연구자는 일정한 이론 틀을 갖고 현실을 보는 것에 불과하죠.”

안 교수는 그 무렵 도쿄대에서 강의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1980년 가을, 신군부에 의해 86명의 교수가 대학에서 쫓겨난 터였다. 대부분 그와 민주화운동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다.

“운동은 내가 오히려 더 열심히 했는데 목도 날아가지 않고 나만 훌쩍 일본으로 떠나버리면 친구들을 배반하는 거죠. 그래서 안 가고 그들 뒷바라지를 시작했어요.”

다행히 1984년 9월, 해직교수들이 복직했고, 안 교수는 그 이듬해 일본으로 떠났다. 일본으로 떠나기 직전 서울대 도서관에서 본 나카무라 사토루(中村哲)의 논문은 그의 사상 전환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나카무라는 서슬 퍼런 1980년대 초에도 학생들에게 마르크스 경제학을 가르치던 그가 자주 참고한 책들을 쓴 일본의 저명한 공산주의 이론가다.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사상과, 자본주의가 발달하는 현실 사이의 괴리 때문에 고민하던 그에게 나카무라의 글은 또 한 번 충격을 주었다.

“나카무라가 1984년 ‘역사평론(歷史評論)’이라는 잡지에 글을 썼는데, ‘중진자본주의’에 관한 것이었어요. NICs(Newly Industrializing Countries, 신흥공업국)가 선진 자본주의의 자본과 기술을 받아들여 중진 자본주의로 발전함으로써 세계는 윤곽뿐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자본주의가 성립한다는 거죠. 나카무라는 1960년대 이후 아시아 신흥공업국의 발전을 20여 년간 지켜보고, ‘앞으로 사회주의는 발전 전망이 없다’고 선언했어요. 사회주의 국가 중 어느 한 나라도 붕괴하지 않았을 때 그런 확신을 가졌으니 대단한 이론가죠.”

안 교수는 일본에서, 사회주의 국가에서 온 사람을 여럿 만나면서 사회주의에 대한 회의가 더 심해졌다고 말한다. 북한은 물론 중국과 소련, 동유럽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는데, ‘독재국가’에서 온 자신보다 훨씬 더 초라한 그들의 차림새와 얄팍한 지식에 실망했다는 것. 그는 결국 나카무라씨와 공동 연구를 시작했다.

“1985∼86년 일본에 있었는데,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한 시기예요. 도쿄대 교수가 나더러 ‘당신, 일본에서 공부 다 하고 한국 가서 공부 안 하려고 하냐’고 할 정도였으니까. 거기서 한국 근대사를 보는 시각을 수정했어요. 중진자본주의론으로.”

저개발국가가 선진 자본주의의 자본과 기술을 받아들여 급속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중진자본주의론’은 저개발국가의 경제 성장을 부정하는 종속이론이나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의 대척점에 있다. 1987년 안 교수는 2년간의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와 함께 학생운동을 하던 동료 후배 제자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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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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