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정호 동아일보 객원대기자가 독일 정부가 주는 십자공로훈장을 받고 미햐엘 가이어 주한 독일대사와 악수하고 있다.
본 공화국은 또한 수많은 ‘위대한 독일인’을 배출했습니다. 아데나워 수상의 ‘서방정책(Westpolitik)’의 완성과 브란트 수상의 ‘동방정책(Ostpolitik)’의 태동을 다같이 현지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는 것은 제 기자생활의 행운에 속합니다. 우리는 1달러에 4마르크 20페니히 하던 독일 돈이 10년도 못 가서 1달러에 2마르크 이하로 떨어지는 ‘라인 강의 경제 기적’도 그 시절에 목도하였습니다. 전후 독일의 학술·예술 등 풍요로운 문화 분야의 활력에 관해서는 시간 사정 때문에 그냥 덮어두고 넘어가겠습니다.
제가 여기서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국토가 분단되고 민족이 분리되고 정치 이념 체제가 분열돼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본 공화국’의 발전에 발목을 잡는 결정적 장애 요인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브란트의 동방정책은 국토분단의 극복보다 민족분리의 극복을 위해 예측 가능한 미래의 통일을 단념하면서 추진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비(非)통일정책’이 독일 통일을 앞당겼다는 것은 현대사의 절묘한 역설입니다.
같은 분단국가이면서도 한국은 독일과는 판이한 길을 걷고 있습니다. 서독이 그때까지 있었던 통독성(Gesamtdeutsches Ministerium)을 없애버린 바로 그 해(1969)에 한국은 그때까지 없었던 국토통일원을 비로소 신설하고 그때부터 반세기 동안 민관, 여야 막론하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합창해오고 있으나 통일은 요원하기만 합니다. 한반도에서는 통일정책이 ‘비통일’을 조장하고 있다고도 보겠습니다. 불행히도 이러한 상황은 한국의 지식인, 특히 진보적(?) 지식인들의 ‘통일지상주의’를 더욱 고조시키고 그것은 다시 최근에는 한미간의 동맹보다 남북간의 민족공조를 우선한다는 ‘신민족주의’에 불을 붙이고 있습니다.
통일지상주의를 신봉하는 이들 ‘사이비 진보적’ 지식인들은 일종의 세속적 ‘원죄론’을 신봉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면 오늘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노정되는 모든 문제, 이 시대의 모든 비리와 부조리, 비극과 불행은 남북한의 분단이라는 ‘원죄’에 기인한다는 것입니다.
그들 담론의 핵심 개념이 ‘분단시대’ 또는 ‘분단체제’라는 말입니다(같은 분단국가인데도 통일 이전의 독일에서는 그러한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오직 통일이 이뤄져야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분단은 악(惡), 통일은 선(善)이라는 이런 단순화된 도식에는 통일만 되면 자유와 평등, 안정과 번영을 구가하는 미래의 정토(淨土)가 약속돼 있다는 신앙 같은 것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통일이 만병통치 단방약 아니다
제가 독일 현대사에 감사를 빚지고 있다고 여기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소극적인 차원에서는 통일을 선취한 독일이 통일은 곧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만병통치의 단방약(單方藥)이 아니라는 사실을 오늘의 ‘베를린 공화국’을 통해서 우리에게 예시해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보다 적극적인 차원에서는 통일 이전의 독일 제2공화국은 분단 상황에도 불구하고 독일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시대를 열었다, 열 수 있었다는 사실을 어제의 ‘본 공화국’을 통해서 예시해주었다는 점입니다.
본 공화국은 베를린 공화국을 위한 전단계이거나 예비단계, 또는 임시적인 과도기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자기완결적인 훌륭한 역사시대였습니다. 저는 오늘의 대한민국도 분단상황에도 불구하고 한민족의 역사상 처음으로 정치적으로 민주화되고 경제적으로 번영하는 대시대를 열어놓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