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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취재

‘공천=당선’, 한나라당 5·31 영남 공천 요지경

“능력보다 ‘충성서약’ 주효, 약발 안 먹히면 의원 물먹이기!”

  • 이동훈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dhl3457@naver.com

‘공천=당선’, 한나라당 5·31 영남 공천 요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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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한 구청장의 경우다. 그는 초선 의원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인기도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구청장 재선에는 큰 하자가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공천 초기부터 그 구청장은 배제됐다. 대신 초선 의원의 의견을 잘 따른 현역 시의원이 공천을 받았다.

2등 골목대장의 꼼수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국회의원은 해당지역의 1등 골목대장이다. 구청장·시장 등 기초단체장은 2등 골목대장이다. 2등은 1등에게 고개를 숙이지만 한편으로 반란을 꿈꾸기도 한다.”

기초 단체장은 해당지역에서 행정권을 갖는다. 그는 그 지역 공적 조직의 수장이다. 대민(對民) 접촉 범위나 횟수가 의원보다 넓고 활발하다. 의원으로서도 평소 단체장의 도움이 아쉬울 때가 많다. 특히 지역기반이 약한 초선 의원의 경우 단체장의 도움은 필수적이다.



이런 기초 단체장을 의원이 제어할 수단은 지방선거 ‘공천권’이 유일하다. 이러니 지역 의원과 단체장 간의 관계는 미묘할 수밖에. 이런 미묘한 관계가 종종 갈등으로 폭발하는데, 총선과 지방선거를 전후해서다. 의원이 바뀌거나 단체장이 바뀌는 시기다. 총선에서 초선 의원이 등장하는 경우 전직 의원이 공천한 구청장과 양보 없는 기(氣)싸움이 벌어진다. 그 형국이 가관이다.

2004년 영남의 한 지역구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해 총선에서 한나라당 출신 초선 의원이 뽑혔다. 구청장도 한나라당 출신이지만 이 지역 전 의원이 공천한 사람이다. 구청장은 총선 과정에서도 초선 의원의 선거 운동을 돕지 않았다는 얘기가 돌았다. 구청장은 “낙하산 타고 공천받아 당선된 주제에…”라며 의원에 대한 불만을 지인들에게 토로했다고 한다. 둘 사이의 관계는 급속하게 틀어졌다.

이후 구청이 주최한 행사에서 구청장은 직원들에게 “단상에 국회의원 자리를 마련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짬을 내 지역구 행사를 찾은 현역 의원은 당황했다. 지역 주민들이 운집한 행사장에서 이 의원은 자리를 잡지 못해 한동안 쩔쩔매야 했다. 결국 객석에 앉아 있다 행사 중간에 조용히 빠져 나갔다. 감정이 격앙돼 얼굴은 온통 붉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단상에 앉아 있던 구청장이 지켜보고 있었다. 현역 의원에게 제대로 ‘물먹이기’를 한 것이다.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 구청장은 끝내 공천을 받지 못했다. 초선 의원은 “절대 공천 못 준다”며 완강했다고 한다. 결국 그 구청장은 탈당하고, 무소속을 선언했다.

영남의 또 다른 지역구. 환갑을 넘긴 시장은 아들뻘 되는 젊은 초선 의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쩌다 마주쳐도 ‘의원님’이란 호칭이 입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 두 사람의 만남은 늘 서먹서먹했다. 전화통화라도 할라치면 나이 든 시장은 젊은 의원에게 이런 식으로 응대하기 일쑤였다.

“아 의원, 그건 그게 아니고….”

그 또한 이번 지방선거에서 공천을 받지 못했다.

단체장이 공천권을 쥔 초선 의원에게 고개를 숙인다 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초선 의원은 자기 사람을 단체장으로 삼고 싶어한다. 전임자가 공천한 단체장이 아무리 자신에게 복종하는 자세를 보이더라도 내심 맘에 차지 않는다.

결국 ‘현 단체장의 공천 배제, 제3자 공천→현 단체장 조직의 반발→단체장의 탈당과 무소속 출마’라는 절차를 밟는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공천 잡음이 터져 나온 곳은 예외 없이 이런 공식을 따랐다. 지방의원들은 1, 2등의 싸움에서 눈치를 본다. 대부분은 공천권을 쥔 의원 쪽으로 기울지만 끝까지 단체장과 힘을 합쳐 지역 의원과 한판 기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단체장을 따라 집단 탈당하는 사례가 이런 경우다.

무소속의 힘?

결국 이런 사정 때문에 이번 영남지역 기초단체장 선거는 한나라당 대 무소속의 대결구도가 많았다. 지역별로 무소속 연대까지 결성됐다. 이들 가운데는 처음부터 무소속으로 뛴 이들도 있지만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돌아선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이 “한나라당 공천 기준이 불합리하다”며 동시에 “한나라당의 자만과 지역 정치구도의 구태를 막아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이유는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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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dhl34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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