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그의 어머니는 국화빵 기계 옆에 뻥튀기 기계를 갖다놓고 두 가지 장사를 했다. 이명박은 교복을 입은 채 뻥튀기를 팔았다. 변변한 옷이라곤 교복 한 벌뿐이기도 했지만, 일이 끝나자마자 학교로 곧장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장사하는 곳이 여자고등학교로 통하는 골목이었다. 등하교하는 여학생들이 지나가며 쳐다볼 때마다 이명박은 모닥불을 끼얹은 것처럼 얼굴이 뜨거워져 견딜 수가 없었다.
궁리 끝에 밀짚모자를 구해 푹 눌러쓰고 쌀을 튀겼다. “한겨울에 밀짚모자를 쓰고 야단이냐”는 어머니의 핀잔이 날아왔다. 이렇듯 이명박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매우 내성적인 소년이었다.
대학에 진학한 뒤엔 이런 성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안으로 움츠러드는 소심한 성격을 대범하고 활달하게 바꾸기 위해 대학 3학년 때 고려대 상대 학생회장 선거에 나가 당선됐다. 그후로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자세의 외향적 성격으로 바뀌어 역동적인 삶을 살아가게 됐다. 지금도 그는 외향적으로 비치지만, 그렇다고 어릴 때의 내향형 성격이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다.
사장 부인 부탁도 거절한 ‘원칙주의자’
이명박 시장의 타고난 성격은 ‘내향적 사고형’으로 보인다. 내향적 사고형은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어 원리원칙을 고수한다. 그가 현대건설 중기사업소 관리과장으로 있을 때 ‘청운동 사모님’ 변 여사(정주영 사장의 부인)가 아는 사람을 중기공장 기능공으로 써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했다. 그는 회사에서 직원이 필요할 때 채용기준에 맞는 사람을 뽑아서 쓴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사장 부인뿐만 아니라 고향 사람들, 친척들의 부탁도 모두 물리쳤다. 이런 태도 때문에 ‘건방지다’ ‘융통성이 없다’는 말이 나왔고, 당시 코오롱에 몸담고 있던 둘째형 이상득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어느 날 저녁, 형이 그를 불렀다.
“직장생활을 그렇게 원리원칙대로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사원일 때는 그런 자세로 일해도 되지만, 간부가 되어서도 그런 식으로 하면 곤란하다. 간부가 곧이곧대로 했다간 중역이 되지 못한다.”
이명박은 이렇게 답했다.
“저는 지금 사원 신분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사원은 원리원칙대로 일해야 합니다. 사원의 신분으로 지나친 재량권을 행사하면 회사 전체가 흔들리고 맙니다. 만약 중역이 되면 그때 가서 그 위치에 맞는 융통성을 갖도록 하지요. 그러나 저는 중역이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내향적 사고형은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이명박은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항상 무언가를 탐색하고, 지적 작업을 통해 개념화하고, 그런 내용을 토론하고 체계화하는 것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