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호

쇼퍼홀릭이 슈어홀릭인 이유

  • 김민경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6-06-08 1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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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퍼홀릭이 슈어홀릭인 이유
    모든 쇼퍼홀릭은 슈어홀릭이다. 신발 앞에서 자제력을 잃는 것은 쇼퍼홀릭의 필요조건이고, 슈어홀릭 증후군은 쇼퍼홀릭이 유일하게 ‘드러내는’ (병의) 일각이다. 신발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슈어홀릭은 사회적 분석의 대상이 되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선 ‘슈즈’라는 전시도 열렸다. 영화나 소설 속에도 슈어홀릭이 자주 등장한다.

    대표적인 것이 TV시리즈물 ‘섹스 앤 더 시티’. 카메론 디아즈가 주연한 영화 ‘당신이 그녀라면(In Her Shoes)’과 김혜수 주연의 공포물 ‘분홍신’도 있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 캐리는 강도를 만나자 ‘시계, 반지 다 가져가도 내 마놀로만은 안 된다’고 말한다. 아이 돌잔치를 연 친구 집에 갔다가 마놀로를 잃어버린 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결혼인지, 자신의 삶인지를 놓고 고민한다. 물론 결론은 결혼이 아니라 마놀로다.

    그녀에게 마놀로는 독신, 자유, 뉴욕을 의미한다. 이탈리아 구두 ‘마놀로 블라닉’에 대해 한 패션평론가는 ‘영혼이 담긴 구두굽’이라 했으니 과연 신발이 아닐지도 모른다.

    영화 ‘당신이 그녀라면’과 ‘분홍신’의 여주인공들은 억눌린 욕망을 하이힐 쇼핑으로 푼다. 하긴 안데르센의 동화 ‘분홍신’처럼 구두의 마력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또 있을까. ‘당신이 그녀라면’에 나오는 ‘지미추’-요즘 전세계 슈어홀릭이 열광하는-는 다이애나 비가 생전에 무척 좋아했다고 하니 구두와 여성적 판타지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긴 있나 보다.

    그러나 구두의 역사를 살펴보면, 슈어홀릭의 역사는 남성이 먼저 썼음을 알 수 있다. 여자 구두는 남성의 구두를 뒤쫓아갔을 뿐이다. ‘풀렌’이라는 긴 신발은 남성의 권력과 부를 상징했다. 구두가 성적 의미를 갖는다는 건 여기서 유래한 듯하다. 패션브랜드 구찌를 키운 것도 남성 슈어홀릭들이다.



    왜 슈어홀릭이 생겨날까. 신발은 안목과 취향, 경제력을 한눈에 보여준다. 알랭 드 보통 소설에서 애정에 금이 가는 건 ‘웨지힐’(일명 통굽)에 대한 남녀의 취향 때문이다. ‘당신이 그녀라면’의 주인공은 “예쁜 옷은 뚱뚱한 내게 어울리지 않지만, 하이힐을 신은 내 발은 섹시해 보인다”고 고백한다. 확실히 구두는 거울이 없어도 힐끔힐끔 ‘나’를 보게 한다는 점에서 나르시시즘이란 병의 원인이 된다.

    슈어홀릭은 ‘다른 건 몰라도 신발만은’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주변의 슈어홀릭을 보면 다른 건 몰라도 가방만은, 속옷만은, 청바지만은, 시계만은, 심지어 와인잔만은…이라고도 말한다. 유독 신발 쇼핑하는 실력만 발달할 리가 없다. 억눌린 욕망 따위는 우아한 변명일 뿐이다. 패션브랜드의 마케팅 전략은 향수-화장품-스카프-구두-백-옷-주얼리-홈데코용품 순으로 소비자를 유혹하고, 나와 주변의 쇼퍼홀릭들에게 구두는 충동구매에서 심리적 승인 혹은 한계선이 된다. 모든 쇼퍼홀릭이 슈어홀릭인 한 가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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