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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함께 떠나는 중국여행 ⑩

‘황비홍(黃飛鴻)’

천당이냐 지옥이냐, 대륙이 풀지 못한 100년 묵은 과제

  • 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 gomexico@sogang.ac.kr

‘황비홍(黃飛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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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홍(黃飛鴻)’

중국에서 가장 먼저 서구에 문호를 개방한 광저우는 중국 제일의 부자 도시다.

‘옛날, 가뭄이 들어 곡식 한 톨 건질 수가 없던 시절에 백성이 밤낮 없이 하늘에 기도를 올리자 하늘이 감동해 신선을 내려 보냈다. 다섯 신선은 오곡을 입에 문 다섯 마리 양을 타고 내려왔다. 신선은 광저우 사람이 다시는 배고픔과 가뭄을 겪지 않도록 곡식을 나눠주고 하늘로 다시 날아갔고, 그들이 타고 온 양은 돌로 변했다. 그후 광저우는 해마다 풍년이 들었다.’

광저우를 양의 도시라는 뜻의 ‘양청(羊城)’이라 부르는 것은 이 전설 때문이다. 화청(花城)이라고도 하는데, 사시사철 꽃이 피는 도시라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 공원 안에 있는 전하이러우(鎭海樓)는 지금은 광저우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에 올라서면 광저우 시내와 주장(珠江)이 눈에 들어온다. 주장 삼각주는 지금 중국 최대의 경제 벨트다. 광저우가 삼각형의 맨 위 꼭짓점이라면, 삼각형의 왼쪽 변으로 후먼(虎門)과 선전이 있고, 그 아래 꼭짓점이 홍콩이다. 삼각형의 오른쪽 변으로 주하이(珠海)와 마카오가 있다. 선전과 주하이는 중국 최초로 1979년에 경제특구가 됐고, 홍콩과 마카오는 각각 영국과 포르투갈에 조차되었다가 홍콩은 1997년에, 마카오는 1999년에 각각 중국으로 반환되었다. 주장 삼각주는 중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상징한다.

서구 열강은 이 주장을 타고 광저우로 들어왔다. 이 일대에서 서구와 가장 먼저 충돌이 일어났다. 주장 삼각형의 왼쪽 변에 위치한 후먼은 중국 근대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꼭 들르는 곳이다. 광저우에서 2시간가량 걸린다. 아편을 금지하기 위해 영국 상인들의 아편을 모조리 압수하여 폐기한 이른바 ‘소연지(銷煙池)’가 있다.

영국은 1715년부터 중국과 본격적으로 무역을 시작한다. 차와 도자기 등을 주로 수입해갔다. 하지만 영국에서 중국에 가져다 팔 것은 별로 없었고 그러다 보니 무역에서 늘 손해였다. 영국의 막대한 양의 은이 중국으로 유출되는 무역역조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생각해낸 것이 아편을 가져다가 중국에 파는 것이었다. 당시 영국은 인도산(産) 아편의 전매권을 갖고 있었다. 차를 수입하는 대신 마약을 가져다 판 것인데, 당시 영국 제국주의의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편에 중독된 중국인이 늘어가면서 아편을 사기 위해 영국에 지급하는 은도 늘었다. 광저우 일대에서 시작된 아편이 내륙으로 퍼져갈수록 영국은 떼돈을 벌었다.



당시 중국은 청나라 정부 1년 예산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돈을 아편 구입을 위해 영국에 지급했다. 결국 중국 정부는 당시 후난(湖南), 후베이(湖北)와 광둥(廣東) 광시(廣西) 지역을 관할하던 후광(湖廣) 총독 임칙서(林則序)에게 전권을 부여하고 아편을 금하도록 한다. 1939년 임칙서는 아편 반입을 금지하고 영국 상인들의 아편을 압류한다. 그렇게 압류한 아편이 무려 1425t이다. 후먼의 소연지는 이렇게 압수한 아편을 소금물에 넣어 폐기처분하기 위해 판 네모난 연못이다. 아편을 소금물에 넣고 다시 석회를 붓는 등 아편성분을 완전 분해하여 주장에 흘려 보냈다. 압수한 아편을 모두 처리하는 데 20여 일이나 걸렸다.

서양 근대 문명의 메신저

일이 여기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영국은 급기야 아편전쟁(1840)을 일으키고 말았다. 영국은 마약 장사를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는, 영국사에 두고두고 치욕으로 남을 일을 저지른 것이다. 끝내 승리하여 그 대가로 홍콩을 빼앗고 광저우와 상하이 등 5개 항구를 개항시켰다. 이후 광저우에 서양인이 대거 몰려들기 시작하고, 사다오(沙面島)는 외국인 전용 거주지역이 됐다. 원래 이곳은 이름 그대로 주장이 휘어 돌아가면서 생긴 모래사장이었다. 그런데 아편전쟁 이후 영국의 조계지가 되면서 서양인 거주지역으로 변모했다.

영화 ‘황비홍’은 중국과 서양이라는 두 대립항을 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중국 쪽이라고 할 수 있는 황비홍의 제자 중엔 서양 귀신, 즉 ‘양귀(洋鬼)’만 보면 무조건 몰아내야 한다며 적개심을 불태우는 푸줏간 주인 세룡이 있는가 하면, 미국에 오래 살다 중의(中醫)를 배우기 위해 온, 중국말을 전혀 못하는 중국인 아소도 있다. 세룡이 고집불통의 폐쇄적인 보수주의자라면 아소는 서구에서 중의학으로 상징되는 중국의 가치를 다시 발견한 인물이다.

매력적인 여인도 등장한다. 쉬커판 (版)‘황비홍’만의 개성 있는 발명품이자 명품이다. 황비홍과 의형제 사이로 나오는 스싼이(十三伊)라는 여자다. 어린 시절을 황비홍과 함께 보낸 이 여인은 영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왔다. 서양 귀족 부인 차림을 하고,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카메라를 들고 나타나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서양 근대 문명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서양 문물을 일찍 받아들인 이 여인은 황비홍을 사랑한다. 자신의 양복을 만드는 스싼이에게 황비홍이 묻는다. “외국이 그리 좋은가, 왜 그들에게 배워야 하는가?” 스싼이는 “서양은 기관차도 만들고 과학도 우리보다 발달해서 안 배우면 뒤떨어진다”고 말한다. 그러자 황비홍은 나중에 그곳 세상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말한다. 영화에서 스싼이는 황비홍에게 서양 근대 문명을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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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 gomexico@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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