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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함께 떠나는 중국여행 ⑩

‘황비홍(黃飛鴻)’

천당이냐 지옥이냐, 대륙이 풀지 못한 100년 묵은 과제

  • 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 gomexico@sogang.ac.kr

‘황비홍(黃飛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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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홍(黃飛鴻)’

광둥 사람의 일상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얌차’ 습관이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스싼이가 훨씬 적극적이다. 황비홍에 대한 사랑의 감정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황비홍이 그녀에게 “서양이 그리 좋은데 왜 돌아왔느냐”고 물으니 “그곳에는 보고 싶은 사람이 없다”고 대답한다. 황비홍은 스싼이의 유혹을 짐짓 모른 척하면서 자기감정을 억누른다. 스싼이를 서구 근대 문명의 상징으로 본다면 황비홍은 육박해오는 서구 근대 문명에 한편으로는 매력과 유혹을 느끼면서도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중국의 모습인 것이다.

쿨리(苦力)와 저화(猪花)

황비홍은 중국 전통을 상징하는 무술과 중의학을 한몸에 체현하고 있다. 반면 스싼이는 서구 근대문명을 상징하는 카메라를 늘 지니고 있는데, 그녀와 카메라는 이미 하나의 서구 근대문명이어서 황비홍이 그녀만 받아들이고, 카메라를 거부할 수는 없다. 스싼이가 황비홍에게 “중국도 세계의 흐름을 따라야 한다”면서 양복을 입으라고 권하는데도 “중국인이 모두 양복을 입으면 그때 입겠다”며 거부하는 한 황비홍은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고, 두 사람의 사랑이 실현될 가능성도 희박하다. 두 사람을 중국과 서양으로 가르는 이분법적 심연이 두 사람 사이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중국 쪽엔 중국인이지만 황비홍 편이 아닌 사람들도 있다. 오직 무술만을 생각하는 산둥의 가난한 무술인 엄진동, 미국 잭슨파에 기대어 사익을 챙기는 사하파가 그렇다. 세상 물정 모르고 굶주림 속에서 무술만 생각하는 엄진동은 무술로 황비홍에 도전하고, 사하파는 미국인과 손을 잡고 황비홍의 바오쯔린에 불을 지르고 황비홍을 죽이는 음모에 가담한다. 청 정부 또한 황비홍에게 적대적이어서 황비홍을 감옥에 가둔다. 황비홍은 서구와 중국 내부의 적대자들 사이에서 고립무원이다. 그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감옥에 갇힌 그를 몰래 탈출시켜 잭슨파에게 잡힌 스싼이를 구하고 잭슨 일당과 사하파를 응징하도록 도운 사람들은 다름 아닌 일반 민중이다. 황비홍은 중국 민중의 영웅이다.

서구쪽 구성은 비교적 간단하다. 영국군과 미국군, 그리고 신부가 등장한다. 영화 시작 부분에서 신부와 신도들이 찬송가를 부르며 중국인 거리를 지나가자 찻집에 있던 중국 전통 악단이 광둥 민속음악 ‘시양양’을 더욱 크게 연주한다. 상대방에게 지지 않겠다는 심산이다. 그런데 신부측과 중국인의 대결은 서양 군함에서 울려나오는 뱃고동 소리로 인해 일시에 그친다. 힘은 그쪽에 있었던 것이다.



영화에는 스싼이나 신부처럼 중국과 서양을 중개해주는 이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중개자의 위치를 잃는다. 신부는 황비홍에게 무관에 불을 지른 사하파를 관에 고발하면 자신이 증인으로 나서겠다고 제안하는 등 서양의 양심 세력을 대변하지만 결국 총에 맞아 죽는다. 불운하게도 잭슨 일파가 황비홍을 제거하기 위해 쏜 총에 맞는다.

스싼이는 사하파에게 붙잡혀 겁탈당할 뻔하고 미국에 팔려갈 위기에 처한다. 그럼으로써 서양문화 메신저 역할이 불가능해지고, 중국 남자 황비홍의 구조를 기다리는 중국 여인으로 돌아온다. 황비홍이 미국에 팔려 갈 위기에 처한 스싼이를 구하는 것은 연인을 구하는 것이자 중국을 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중국과 서구 사이에 선 중개자들이 사라져 갈수록 중국과 서구, 황비홍과 잭슨 일파 사이의 대립은 불가피해진다.

영화 ‘황비홍’의 배경은 아편전쟁이 끝나고 45년이 지난 1885년 무렵의 광저우다. 청나라와 프랑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무렵이다. 당시 프랑스는 베트남을 차지했는데 청나라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흑기군을 베트남에 파견해 프랑스와 전쟁을 벌인다. 중국이 영국, 프랑스와 첨예하게 대립하던 때다. 그런데 영화는 영국이나 프랑스가 아니라 미국인 잭슨 일당을 악의 화신으로 다룬다. 영화 시작에서 영국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서양 세력으로 나오지만,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영국은 인신 무역을 하는 ‘양키’들과 구분된다.

잭슨 일파는 미국에 가면 일확천금의 황금을 캘 수 있다고 중국인을 속여 미국에 송출하는 일당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는 중국어로 ‘지우진산(舊金山)이라고 한다. 옛 황금의 산이라는 뜻이다. 미국 서부에 금광 개발이 한창 진행되던 1850년대 무렵부터 중국인은 미국을 황금의 땅이라고 생각했다. 샌프란시스코를 금산이라고 부른 것은 거기서 연유했다.

많은 중국인이 자의로, 또는 영화에서와 같이 미국인 중개업자들에게 속아서 황금의 산을 찾아갔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채산성 있는 채굴은 모두 끝난 뒤였다. 대다수 중국인이 비참한 하급 노동자 ‘쿨리(苦力)’로 전락했고, 여자들의 경우 성 노예인 이른바 ‘저화(猪花)’로 팔려갔다. 영화에서 스싼이도 황비홍이 구출하지 않았으면 미국으로 끌려가 ‘돼지 꽃’ 신세가 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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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 gomexico@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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