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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가족 이데올로기를 조롱하다

  • 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 차장 khmzip@donga.com

소설, 가족 이데올로기를 조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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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라는 결정적 한 골을 희망한 남자와 2명의 골키퍼를 동시에 기용한 한 여자.’

소설은 화자(話者)인 남편과 함께 독자를 서서히 일처다부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나중에는 황당한 꼴을 당한 남편이나 그걸 읽고 있는 독자 모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진다. 소설은 어느 순간 일처다부제에 대한 거부감을 무장해제 시켜버린다.

두 남자와 따로 결혼생활을 하는 아내. 그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난다. 남편은 말한다.

“아내는 투톱 체제의 팀 감독이고 따라서 누가 골을 넣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빌어먹을 투톱 중 하나인 내 생각은 다르다. 언제 벤치 멤버로 전락할지, 또 언제 방출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 가부장제를 이렇게 조롱할 수도 있다니! 이것은 2000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결혼은 미친 짓이다’(이만교 지음, 민음사)보다 한 수 위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는 남편의 집과 애인의 자취방을 아무렇지도 않게 오가며 두 집 살림을 하는 그녀(그러나 남편에게는 비밀이다)가 사뭇 위태로워 보였는데, ‘아내가 결혼했다’에서는 남편도 사랑하지만 애인도 포기할 수 없다며 아예 두 사람과 결혼해버린 그녀가 오히려 편안해 보인다. 요일을 정해 이 남편의 집, 저 남편의 집을 오가는 그녀의 뻔뻔함에 기가 질려서일까.



2005년 스물다섯의 나이로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해서 주목받은 김애란의 작품에도 흔히 말하는 ‘정상적인 가족’의 형태는 보이지 않는다. 김애란이 집요하게 파고드는 주제는 ‘아버지의 부재’다.

표제작 ‘달려라 아비’에서 주인공 ‘나’는 아버지 하면 늘 분홍색 야광 반바지 차림으로 달리는 모습을 떠올린다. 이것은 총각 시절 아버지가 자취방에 찾아온 여자(어머니)와 ‘그걸’ 하기 위해 피임약을 사러 달동네 꼭대기에서 약국까지 전속력으로 달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떠오른 이미지다. 그렇게 해서 ‘내’가 태어났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느 날 모녀를 버리고 훌쩍 집을 나갔고 미국으로 갔다 하더니, 십수년 만에 죽었다는 편지로 돌아온다.

아버지가 왜 집을 나갔을까? 소설은 많은 부분을 생략했지만 다음과 같은 대목이 많은 것을 암시한다.

“미안해서 못 오는 사람. 미안해서 자꾸 더 미안해해야 되는 상황을 만드는 사람. 나중에는 정말 미안해진 나머지, 못난 사람보다 나쁜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한 사람.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고 싶었을 만큼 착한 사람이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자신이 잘못하고도 다른 사람이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하는 진짜 나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꼭 무슨 짓을 해서가 아니라 그냥 미안한 마음이 자꾸 더 미안한 상황을 만들고 결국은 가족에게 돌아오지 못하는 아버지. 아버지는 그런 식으로도 떠날 수 있는 존재다.

그러나 남은 가족이 연민에 빠지거나 방황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아비 없는 자식이 된 딸에게 미안해하지도, 가여워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모녀는 당당하다. 이것이 ‘아버지의 부재’를 다루는 2000년대 방식이다.

발칙함 뒤에 감춘 깊은 상처

올해 38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작인 ‘17세’(이근미 지음, 동아일보사)는 “딸이 집을 나갔다. 30년 전 내가 그랬던 것처럼”으로 시작한다. 17세, 나이는 같으나 방식은 다른 모녀의 가출. 어머니는 e메일을 통해 어딘가에 있을 딸에게 자신의 소녀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며 화해를 시도한다. 문학평론가 하응백씨는 소설 ‘17세’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설을 붙인다.

“21세기가 시작되면서 가족의 해체는 새로운 양상을 띤다. ‘싱글맘’이라는 새로운 조어가 나올 만큼 현재의 한국 사회는 이혼율이 높아지면서 편부 편모 슬하의 아이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크게 보면 이근미의 ‘17세’는 새로운 가족 해체의 시대에 어떻게 가족이라는 끈을 놓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과거의 소설들이 대개 아들이 아버지를 찾는 것이었다면, 이제 그 찾기의 방식은 역전되어 부모가 자식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소설 말미에 나오는, ‘내 딸이에요. 꼭 찾아주세요. 얘 없으면 나 죽어요’라는 어머니의 전단지 문구는 새로운 가족해체 시대의 절규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렇다. 오늘날 소설은 한결같이 가족 이데올로기를 조롱하는 듯하지만, 실상은 가족이라는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래서 끊임없이 가족을 무대로 끌어내고 가족이란 무엇인지 의심하고, 해체하고, 재구성한다. 최근 내로라하는 문학상을 받은 작품들의 발칙함 뒤에는 이처럼 쉽게 아물지 않는 깊은 상처가 웅크리고 있다.

신동아 200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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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 차장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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