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사회에서 투명성은 중요한 이슈다. 인터넷의 발달과 개방 경제의 도래는 지난 십수년 동안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놓았다. 하지만 한국은 세계적인 인터넷 강국의 이미지에도 지배구조의 투명성 관점에서는 여전히 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독일 대표기업 지멘스까지!
초기 환경론자들처럼, 1970~80년대 투명성 제고를 부르짖던 사람들은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투명성 이슈를 제기하면 조직에서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 세계은행의 임원이던 피터 아이겐은 부정부패가 얼마나 심각한 폐단을 발생시킬 수 있는지 절절히 경험하면서 이를 바로잡으려 노력했다.
그는 1993년 많은 사람의 냉소와 반대에도 부정부패를 방지하고 범세계적인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공익단체 ‘세계투명성기구’를 설립했다. 그가 개발한 글로벌 부패지수(Global corruption index)는 오늘날 163개국에서 널리 활용된다. 또 세계은행은 이런 노력 덕분에 부패 척결을 위해 ‘투명성 강화를 위한 범세계적 협약’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기업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분식(粉飾)회계와 부정부패 문제는 미국 엔론 사태를 계기로 2001년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유럽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팔마라트(Parmalat)가 그중 심각한 사례라고 할 수 있으며, 독일의 존경받는 기업 지멘스도 최근 뇌물수수 사건으로 도덕성이 크게 훼손된 바 있다.
독일의 유력 일간지는 이 사건을 계기로 기업 경영진의 도덕성에 대한 이슈를 심각하게 제기했는데, 신랄한 논평은 이렇게 시작된다.
“기업의 최고 경영진은 정치인보다 국민에게 더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부패한 그들은 숨을 곳이 없으며, 잘못에 대해 명백하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
그들은 스스로 도덕성과 투명성을 견지할 때만이 종업원들이 따를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투명성이야말로 기업의 이윤 극대화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 중의 핵심이다.”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법규나 제도를 강화하기도 해야 하지만 경영진이 기업, 나아가 사회 전체의 발전을 위해 수준 높은 도덕적 기준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은 최근 몇 년간 투명성을 높이는 노력을 기울였다. 외환위기 이후 회계 기준과 관행이 엄격하게 재정립됐고, 새로운 법규와 제도가 도입됐다. 내년부터는 집단소송제도 도입한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기업이사회 구성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1997년만 해도 삼성전자에는 59명의 이사가 있었지만 독립적 지위를 확보한 이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비록 이사진은 13명으로 줄었지만 대부분 사외이사들로 구성돼 있다. 경영 공시는 더욱 투명해졌으며, 주주총회에서 사회단체의 참여가 활발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