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뇨. 이 나이면 어딘가에 이상이 있는 게 당연할 거고 알아봤자 마음고생만 할 뿐이죠. 어차피 언젠가는 죽는데 억지로 오래 살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만 ‘로마인 이야기’를 쓰면서 눈이 너무 나빠져서 눈 검사를 받으려 합니다. 작가 생활을 하려면 눈만은 괜찮아야 하니까요.”(시오노씨는 4월8일 로마로 돌아갔다. 인터뷰 기사를 쓰면서 그에게 전화를 했더니 안과 검진 결과 백내장 수술을 받게 됐다고 한다. 5월에 다시 일본에 와서 수술을 받을 예정이란다.)
만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그는 대단한 멋쟁이다. 늘 고급 정장 차림에 화려한 액세서리로 단장하고, 화장을 곱게 하고 좋은 향수 냄새를 풍긴다.
▼ ‘로마인 이야기’는 흔히 지도자론이자 조직론, 국가론이라고 평가됩니다. 그중에서도 리더십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죠. 시오노씨는 이상적인 지도자로 로마 제국의 토대를 닦은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꼽는 것으로 압니다만.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지력, 설득력, 육체적 내구력, 지속하는 의지, 자기제어의 다섯 가지를 갖췄습니다. 경제와 외교 등 여러 분야에 정통했고 귀족 출신이기에 오히려 혁신적일 수 있었지요. 바람둥이에 낭비벽이 있다는 점도 인간적인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자극적입니다. 타인에게 자극을 준다는 뜻이지요. 제 개인적 의견으로는 권력은 새로운 생각을 갖게 하는 힘이 됩니다.”
▼ ‘로마의 국부(國父)’로 일컫는 동시대의 보수 정치가 마르쿠스 키케로는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는 지방 출신 수재입니다. 변호사로 각광받다가 정계에 들어갔지만 로마의 엘리트로서는 신참이었습니다. 키케로가 왜 자신이 속하지도 않던 원로원파로서 수구파를 대표했는가. 인간이란 자신을 받아준 시스템에 은혜를 느끼는 법입니다. 난생 처음 엘리트가 된 키케로는 그 엘리트를 구성하는 시스템을 지키려 한 거죠.
반면 카이사르는 태어나면서부터 철저한 엘리트, 명문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현 체제를 부수는 것에 저항감이 없었습니다. 키케로와 달리 카이사르는 원로원에 고마워할 게 별로 없었던 것입니다. 개인적 생각이지만 배경이 좋은 사람은 거기서 나오는 여유로 창조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나는 로마인’ 자부심
▼ 로마 지도자의 특징으로 무엇을 꼽습니까.
“지도자에게는 ‘현상의 보이지 않는 이면을 볼 수 있는 능력, 상대의 속을 읽는 인텔리전스’가 중요합니다. 카이사르는 시민이나 병사의 집단심리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본다’고 한 이도 카이사르죠. ‘팍스 로마나’, 즉 로마에 의한 평화는 먹을 것과 안전을 보장하는 안정된 국제질서의 형성을 뜻했습니다. 로마가 팽창한 것은 정복당한 패자(敗者)가 신질서에 적극적으로 동화했기 때문입니다. 이 정책은 로마의 건국단계부터 일관됐습니다. 카이사르는 그걸 명확히 한 것입니다.”
▼ 일종의 다국적기업 같군요.
“로마는 지금의 프랑스에 해당하는 갈리아, 이베리아 반도의 에스파냐, 도버 해협을 넘어선 브리타니아까지 통치했지만 당시 이들 지역 민족은 반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는 로마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여러 지역을 정벌하고 나면 그곳에 도로와 수도를 건설하고 빵을 배급했습니다. 빵은 일정한 배급소에 가서 줄을 서서 받으면 됐는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에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은 줄을 서지 않으면 그만이었습니다. 저는 로마인의 이런 면모를 사랑합니다.”
▼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중요한 요소로 거론되지요.
“로마의 힘은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인프라 구축과 노블레스 오블리주에서 나왔습니다. 지금도 로마에 가면 공회당 같은 공공시설 유적은 많지만 개인의 성 같은 건 없습니다. 현대 로마인은 유럽의 거대한 성을 보고 감탄은 할지언정 부러워하지는 않습니다. ‘한 개인을 위해 저렇게 큰 성을 짓다니, 대신 우리는 다른 걸 지었다’는 겁니다. 이런 공공건물들은 대개 로마의 리더들이 평생 모은 재산으로 지어 국민에게 기부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