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빌딩 옥상에서 바라본 여의도 아파트 밀집지역.
어느 누구에게 물어봐도 실망감과 좌절감을 드러내듯, 그 당국자도 똑같은 반응을 보이며 “앞으로도 이런 식의 개발 광경을 계속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필자에게 말했다. 그 당국자가 취임하기 전에 이미 반포지구를 비롯한 한강변 주요 아파트지구의 개발계획이 승인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강변을 비롯한 여러 재개발 프로젝트를 20년 이상 다뤄온 전문가의 한 사람으로서, 당시 필자는 서울과 우리 사회를 위해 더 나은 개발 계획안을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해 깊은 자괴감을 느껴야 했다. 한편으로는 수많은 이해관계자의 요구를 모두 수용해야 하는 공공부문의 힘만으로는 양질의 도시환경을 만들기에 한계가 있음을 느꼈다. 한강변을 디자인하는 것 같은 복합적인 일은 공공부문의 권한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여러 영역이 협력하는 과정을 통해 진행해야 하고, 필자도 독립적인 전문가로서 함께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고위 당국자와 함께 배를 타고 한강변을 쳐다보면서 필자는 스스로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았다. 한강변은 서울의 얼굴에 해당하고, 서울은 한국의 대표적인 도시이고, 인구 1000만의 세계적인 대도시인데, 한강변 개발을 정말 이대로 마냥 두고 볼 수밖에 없는가. 한강변의 미래에 대한 서울 시민들의 꿈은 과연 이것밖에 없는 것일까. 건축법을 비롯한 관계법령이 허용하는 건물과 도시의 수준이 세계적인 도시가 추구하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과 생각이 한강에서 배를 타고 있는 내내 필자를 사로잡았다.

한강변의 주요 용도지역 현황과 대표적인 아파트지구.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한강변의 총면적 4600만㎡ 가운데 60%인 약 2800만㎡가 주거용도로 이용되고 있다.
필자와 공익도시환경디자인센터는 2000년대 초부터 한강의 수변공간 개발을 위한 장기적인 비전 플랜을 수립하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고도 분명하다. 한강변에서 초고층 아파트 중심의 개발이 무질서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건축법은 이러한 개발과정에서 단지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해 평균적이고 획일적인 작업을 요구하는 것이 전부다. 디자인의 창의성은 소홀하게 다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만들어진 디자인의 결과물은 법적 측면에서는 하자가 없다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미 한국 사회는 이러한 그간의 관행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디자인 내용을 원하고 있다.
서울시 자료를 살펴보면 암사동에서 행주대교 사이 총 36km에 이르는 한강 경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연접 자치구(11개)에서 재건축을 앞둔 예정구역은 약 665만㎡에 달한다(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상 정비예정구역, 협의대상구역, 우선검토구역 포함). 평균용적률을 200%로 잡고 단위가구 평균면적을 115㎡로 적용해 추정하면 가구수로 따져도 10만 가구를 충분히 넘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서울이, 혹은 한국 사회가, 좀 더 사람이 살기 좋고 기업들이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으로 거듭나려면 기존의 관행을 넘어서는 새로운 형태의 비전플랜(Vision Plan)이 필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서울시가 갖고 있는 계획과는 사뭇 다른 성격의, 그러나 서울시가 가진 꿈을 실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계획이어야 할 것이다.

뉴욕의 그린웨이 마스터플랜과 밴쿠버의 그린웨이 네트워크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