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이 마르면 귀가 운다
“바다가 산과 골짜기 강물을 다스릴 수 있는 것도 계곡 물보다 낮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물은 진정 낮아지면서 더 위대해진다. 백성 위에 군림하는 성인이 항상 말을 겸손하게 하여 자신을 낮추는 것도 그 때문이다.”
생일을 ‘귀빠진 날’이라고 하는 것도 물과 귀의 연관성을 말해준다. 물은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필수 불가결한 물질이다. 한의학에선 이를 ‘천일생수(天一生水)’라는 개념으로 풀이하는데 모든 생명은 물에서 시작됐다는 의미다. 지구 위의 생명체가 물에서 비롯됐다면 인간의 생명도 물을 상징하는 귀에서 시작된다는 의미다.
귀는 소리를 듣는 곳이다. 소리는 파동이며 귀는 이 파동을 감지한다. 물이 흘러가는 것도 일종의 파동이다. 귀가 소리를 듣는 데는 하나의 법칙이 있다. 귀는 공기의 진동이 물의 진동으로 바뀌고 그것이 다시 전기신호로 전환될 때 비로소 소리를 느낄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소라고둥처럼 생긴 귓바퀴에 모아진 소리의 공기 파동이 고막에 닿으면 고막이 진동한다. 이 진동파를 내이(內耳) 속에 흐르는 림프액이 물의 진동으로 바꾼다. 림프액 속의 털처럼 생긴 유모세포는 이 진동을 전기신호로 전환해 뇌로 보낸다. 우리의 뇌는 이를 소리로 인식하고 그 뜻을 파악한다.
이처럼 우리는 소리가 외부에서 들어오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소리를 내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나 자신이다. 바로 귓속에 있는 자신의 유모세포가 떨리면서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조용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다만 뇌가 그렇게 느낄 따름일 뿐 그때도 유모세포는 계속 떨고 있다. 우리의 뇌는 20db 전후의 떨림이 있으면 이를 인식할 수 없다. 뇌는 그 정도의 떨림을 ‘조용하다’고 판단한다. 대나무 밭에 가면 대나무 소리가 나고 소나무 숲에 가면 소나무 소리가 나듯 바람이나 자극은 외부로부터 오지만 소리를 내는 주체는 바로 자신인 셈이다. 깊이 살펴보면 유모세포는 림프액이라는 물의 흐름을 뇌에 전달하는 전달체에 불과할 뿐이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한장면.
연못의 물이 많지만 수질이 혼탁하면 수면에 비친 달이 보이지 않는다. 맑은 물은 잘 흐르고 탁한 물은 뻑뻑한 나머지 정체된다. 당도가 높은 음식이나 염분이 많이 함유된 음식, MSG가 포함된 중국 음식이나 기름기가 많은 음식은 혈액의 조성을 변화시켜 림프액을 혼탁하게 하고 고이게 한다. 당연히 림프액이 흐르기 어렵고 그 흐름을 전달하는 유모세포는 비명을 지르며 운다. 그것이 바로 이명이자 귀울음이다.
선조대왕을 주제로 만들어졌던 드라마 ‘왕의 여자’.
택사와 침뜸이 유효
인상주의 화가였던 빈센트 반 고흐는 바로 이 병을 앓으며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귀는 눈과 연결돼 사물의 흔들림을 보정해준다. 비디오가 떨리면 재생된 화면이 어지럽게 흔들리는데 귀의 평형기관은 이 어지러운 떨림현상을 조절해주는 기관이다. 고흐의 작품 중에 화폭을 빙글빙글 도는 형태의 그림이 많은데 이는 그가 앓고 있는 병과 무관치 않다. 특히 그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은 그가 앓은 질병이 무엇인지 잘 나타내준다. 계속되는 귀울음의 고통은 그에게 자신의 귀를 자르는 극단의 행동을 하게 했다.
이를 치료하려면 림프관에 고인 림프액을 빼내면 된다. 연못에 고인 물을 빼내야 하는 것이다. 한의학은 이 질병의 치료에 택사(澤瀉)라는 약물을 쓰는데, 택사는 그 글자와 같이 연못에 고인 물을 빼낸다는 뜻이다. 메니엘씨병의 대표적인 치료처방인 택사탕과 반하백출천마탕의 구성 약물 또한 택사다. 이는 현대의학에서 이뇨제를 이 병의 치료에 쓰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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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의 강점은 이명의 원인을 다양하게 나누고 그에 맞춰 각각의 처방을 따로 구성한다는 점에 있다. 특히 침과 뜸은 유모세포의 떨림을 주도하는 자율신경의 조절에 유효하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선조대왕이 이명을 치료하면서 침을 맞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을 정도다. 귀의 별명은 ‘공한(空閒)’이다. 고요함을 소중하게 여기고 마음이 텅 비어 한가함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청소년들이 즐기는 이어폰에서 나오는 음악자극이 계속되면 귓속 유모세포는 울음을 토한다. 병은 한번 오면 치료하기 힘들다. 생활 속 작은 실천이 인간을 병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