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공항의 활주로 방향을 틀어도 제2 롯데월드의 안전은 여전히 위협받는다. 대불공단의 전봇대는 뽑아낼 수 있었다지만 서울공항 항로 옆에 한번 박힌 ‘전봇대’는 뽑아낼 수도 없다.
제2 롯데월드 조감도와 제2 롯데월드 건설을 허가해 주기 위해 횡성으로 옮겨가는 KA-1공격기(작은 사진).
제2 롯데월드는 위 그림처럼 연면적이 아주 넓은 저층부와 첨탑처럼 치솟은 초고층부로 구성된다. 저층부는 서울 삼성동의 KOEX처럼 복합 문화공간이 되고, 초고층부는 호텔이나 사무실로 사용될 예정이라고 한다. 저층부는 서울공항 동편 활주로(‘부활주로’라고도 한다)로 인한 비행안전구역의 제한 고도보다 낮은 높이기에 비행안전구역선 안에 지어도 무방하다. 문제는 555m까지 올라가는 초고층부인데, 롯데그룹은 초고층부를 동편 활주로로 인한 비행안전구역선 바로 바깥에 짓겠다고 해왔다.
비행안전구역 설정을 규정한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대로라면 이 초고층부는 비행안전구역 바로 바깥에 있으니, 서울공항에서 뜨고 내리는 항공기의 이착륙 흐름을 막는 ‘규제의 전봇대’가 될 수 없다. 그런데도 공군은 이 초고층부가 항공기 이착륙에 큰 부담을 준다며 555m 건물 건설에 반대해왔다.
제2 롯데월드와 현재의 비행안전구역선. 롯데 제공 자료
기차도 탈선을 한다
차도를 달리게 돼 있는 자동차도 이따금 인도로 뛰어드는 게 현실이다. ‘하늘 길’에는 인도와 차도를 나누는 ‘턱’이나 가드레일 같은 것이 없다. 하늘의 날씨가 얼마나 변화무쌍한가. 하물며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도 레일을 벗어나 ‘탈선’할 때가 있는데, 서울공항 활주로를 이착륙하는 항공기가 비행안전구역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롯데가 낸 헌법소원 문제는 냉정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대한민국 법률에는 제2 롯데월드 건설을 허가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법’이 바로 그것이다.
건물을 지으려는 사람이나 법인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여러 단계에 걸친 심의와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을 할 때부터 제2 롯데월드 건설에 매우 호의적이었다. 그가 시장을 하던 2006년 2월22일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는 잠실지구에 555m 높이의 제2롯데월드 건설이 포함된 지구단위계획(일명 도시계획) 심의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대해 공군은 제2 롯데월드를 203m 이하로 지으면 반대하지 않겠다며 지방자치법에 의거해 즉각 행정협의조정을 신청했다. 행정협의조정위원회는 2007년 7월 ‘제2 롯데월드의 건축고도를 203m로 제한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공군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러자 꿈이 막힌 롯데는 ‘왜 헌법이 보장한 재산권 행사를 막느냐’며 그해 11월 헌법소원을 낸 것이다.
결국 롯데가 제기한 헌법소원은 과연 지방자치법이 재산권 행사를 제한할 법률이 될 수 있는지를 물은 것이 된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아직 아무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전혀 다른 국면이 전개됐다.
2008년 4월28일 이 대통령이 이상희 국방장관에게 “(제2 롯데월드 건설 문제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해 보세요.” “그런 식이니까 14년 동안 결정이 안 난 것 아닙니까. 날짜를 정해놓고 그때까지 해결할 수 있도록 검토하세요”라고 하고, 이어 9월말 김은기 공군 참모총장을 합참차장인 이계훈 공군 중장으로 갑자기 교체한 것이 국면 전환의 시작이었다.
2008년 12월30일 롯데가 서울시에 제2 롯데월드 신축에 협조해달라고 요구하자, 서울시는 바로 다음날 행정협의조정위원회 개최를 요청했다. 그리고 올해 1월7일 국무총리실 주최로 행정협의조정위원회 실무위원회가 열렸다.
이 위원회에 참석한 공군은 ‘기특하게도’ 제2 롯데월드를 짓게 해줄 수 있는 ‘방안’ 세 가지를 들고 나왔다. 이 위원회에서 가장 현실성 있다고 판단한 것은, 서울공항의 동편 활주로를 3도 틀고 안전장비를 보강하자는 안(案)이었다.
동편 활주로를 3도 틀어도 제2 롯데월드와 비행안전구역의 정중앙선 사이 거리는 1852m밖에 되지 않는다. 1852m는 규범상 장애물을 회피하기 위해 띄워야 하는 최소거리다.
1월7일 열린 위원회는 실무 차원에서 양쪽 의견을 조정해보는 실무위원회였다. 실무위원회에서 결정된 것은 본 위원회에서 다시 검토하나 대개는 실무위원회에서 합의된 것을 그대로 통과시킨다. 이 때문에 제2 롯데월드 건설은 사실상 허가된 셈이라는 보도가 나오게 되었다.
국무총리실 본위원회에서 협의조정이 완료되면 서울시는 서울시 차원에서 제2롯데월드 건설을 ‘심의’하고, 송파구청은 건축을 ‘허가’하는 요식행위를 함으로써, 제2 롯데월드는 공사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지금 정부는 동편 활주로 방향을 3도 틀면 제2 롯데월드를 지어도 항공기 안전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것처럼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3도’의 실상을 알고 나면 ‘과연 이 주장을 믿어도 될까’하는 회의가 생긴다. 동편 활주로를 3도 틀어줌으로써 제2 롯데월드와 비행안전구역 사이에서 더 벌어지는 거리는 358m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날아가는 항공기에 358m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거리다.
358m 더 벌어지게 해도 비행안전구역 중앙선과 제2 롯데월드 초고층부 사이 거리는 1852m밖에 되지 않는다. 1852m 거리를 두고 항공기가 제2 롯데월드의 ‘허리 춤 높이’로 지나가는데, 제2 롯데월드는 절대 사고를 당하지 않는다고 누가 자신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또 누가 항공기는 항상 비행안전구역의 정중앙을 지나간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그림참조).
이러한 부담 때문에 공군은 롯데 측이 동편 활주로를 3도 트는 공사비와 안전장비를 보강해주더라도 몇 가지 조치를 더 추진한다. 첫째가 서울공항에 배치돼 있는 KA-1 대대를 횡성기지로 옮기는 것이다.
KA-1은 KT-1 기본훈련기를 개조한 저속 공격기로 공기부양정을 이용해 서해로 침투해오는 북한군 해상저격여단을 막는 것을 주 임무로 한다. 북한의 공기부양정은 매우 빠른데다, 해군 고속정이 항해할 수 없는 얕은 바다와 뻘 위로도 달릴 수 있어 추격이 매우 어렵다. 공기부양정을 잡는 데는 전투기의 절반 속도를 내는 KA-1이나 공격헬기가 적격이다.
따라서 KA-1은 유사시에 대비한 긴급발진 훈련을 반복한다. 긴급발진은 최단시간 안에 비행안전구역을 벗어나 작전지역으로 날아가는 것이라, 인근에 초고층 빌딩이 있으면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러한 위험을 ‘아예’ 없애기 위해 공군은 KA-1 대대를 횡성으로 옮기겠다고 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수도권에서 북한의 공기부양정 침투를 막을 부대는 주한 미 육군의 아파치 공격헬기 대대만 남게 되는데, 이 대대는 오는 3월 한국에서 철수해 아프간으로 간다. 아파치 공격헬기 대대가 철수하는데 공군은 제2 롯데월드 건설을 위해 KA-1 대대를 횡성으로 옮기겠다고 한 것이다.
수도권에는 비상활주로도 없다
그러나 KA-1 대대를 옮겨도 유사시 제2 롯데월드는 여전히 위험에 봉착하게 된다. 유사시에는 전후방에 있는 공군기지에서 이륙한 전투기들이 적기와 쫓고 쫓기는 전투를 벌이게 된다. 작전에 들어간 전투기는 금방 연료가 바닥나는데, 이 전투기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활주로를 향해 날아온다. 이러한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국방부는 서울 인근 도로에 여러 개의 비상활주로를 만들어놓았었다.
이 중 가장 유명했던 것이 서울 톨게이트와 신갈 인터체인지 사이 경부고속도로 상에 있던 비상활주로다. 그러나 이 비상활주로는 이곳을 지나가는 자동차가 너무 많아, 유사시에도 사용할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져 비상활주로에서 해제됐다. 덕분에 주변 지역에 설정돼 있던 고도제한도 풀렸다. 서울에서 김포시를 잇는 48번 국도에도 비상활주로가 있었으나, 그곳 역시 자동차 통행량이 너무 많아 비상활주로에서 해제되었다.
그리고 공군과 해군은 자유로에 비상활주로를 만들려고 했으나, 한강 바로 옆에 있어 안개가 자주 끼어 건설을 포기했다. 이로써 서울 인근에는 비상활주로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현재 수도권에서 유사시 전투기가 긴급히 내릴 수 있는 곳은 서울공항과 수원기지뿐이다. 유사시 연료가 떨어진 전투기가 최단거리로 서울공항을 향해 날아오는데 그 앞에 555m의 빌딩이 서 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더욱이 일기마저 매우 나쁘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KA-1 대대를 횡성으로 옮겨도 서울공항에는 백두-금강 정찰기부대와 수송기부대, 대통령 전용기부대가 남는다. 이들 가운데 KA-1 다음으로 긴급발진을 자주 하는 것이 백두-금강 정찰기다.
정찰기는 북쪽에서 이상한 조짐이 보이면 이를 확인하기 위해 바로 떠야 한다. 날씨가 나빠도 북한군의 동태가 수상하면 띄워야 한다. 긴급발진하는 백두-금강기에 초고층 빌딩은 큰 부담이 된다. 때문에 공군은 장기적으로 백두-금강 정찰기도 후방기지로 옮길 것을 검토하고 있다. 수송기와 대통령전용기만 서울공항에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송기도 육군 특전단 요원을 낙하시키는 작전에 들어가면 은밀하게 이착륙해야 한다. 은밀하게 이착륙하는 수송기는 자체 레이더를 쓰지 않는다. 레이더를 사용하면 적이 레이더파를 포착해 금방 아군 수송기의 위치를 파악하기 때문이다. 자기 레이더는 쓰지 않고 공항에서 보내주는 전파만 수신해 비행하는 수송기 앞에 555m의 빌딩이 있다면 불의의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다.
늘어나는 서울의 초고층빌딩
매일경제신문 보도에 따르면 2016년 서울시에는 4개의 초고층 빌딩이 들어선다. 가장 높은 것은 640m를 목표로 2014년 완공 계획인 서울 상암동의 서울라이트 빌딩(133층)이다. 두 번째는 삼성물산 컨소시엄이 서울 용산에 2016년 완공하려는 용산드림타워(620m, 150층)이고, 세 번째가 제2 롯데월드(2014년 완공 예정, 112층), 네 번째가 서울 뚝섬에 짓는 550m의 현대자동차 사옥(110층, 2015년 완공 예정)이다.
초고층 빌딩이 늘어나면 항공기 운항은 더욱 불편해진다. 따라서 공군은 물론이고 김포공항도 초고층 건물의 위치와 항로 관계를 세심히 살피고 있다. 초고층 빌딩이 늘어나면 항공사고의 부담 때문에 공항을 옮기라는 주장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공항 인근에 제2 롯데월드가 건설되면 다른 시행사들도 초고층 건물을 공항 옆에 건설하려고 할 것이다.
서울공항의 동편 활주로를 3도 트는 것이 결코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초고층 건물을 지으려고 하는 롯데 측이 더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롯데 측은 VOR/DME와 PAR이라고 하는 정밀 유도장비를 구입해 서울공항 측에 제공한다. 그런데도 안전이 보장되지 않기에 제2 롯데월드가 완공되면 그 안에 ACAS(에이카스, Airborne Collision Avoidance System·공중충돌 회피 장치)를 설치할 것이라고 한다. ACAS는 일정한 범위 안에 항공기가 접근해오면 경보를 발한다.
제2롯데월드에 입주한 사람들은 이 건물 안에 ACAS가 있는지, ACAS가 경보를 발했는지도 모르고 생활한다. ACAS의 경보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건물을 관리하는 중앙제어실뿐이다. ACAS가 경보를 발하면 중앙제어실 요원들은 황급히 서울공항을 통해 경보 사실을 날아오는 항공기의 조종사에게 전달해, 빨리 회피조작을 하게 한다. 그리고 무사히 항공기가 지나가면 가슴을 쓸어내린다.
Think the unthinkable
안보를 다루는 학자들은 “Think the unthinkable(생각할 수 없는 일을 생각하라)” “Imagine the unimaginable(상상할 수 없는 일을 상상하라)”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사고와 안보위협은 상상할 수도 없는, 생각할 수도 없는 형태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좋은 예가 2001년 미국이 당한 9·11테러다. 출근 시간 대에 민항기를 탈취한 테러범들이 이 민항기를 건물을 향해 몰아 충돌하는 테러를 하리라고 누가 상상했겠는가. 6·25전쟁도 ‘설마’하다 당했다.
서울공항의 이착륙 항로 옆에 짓겠다는 제2 롯데월드는 이 공항 처지에서 본다면 전봇대다. 대불공단의 전봇대는 금방 뽑아낼 수 있지만 초고층 건물이라는 전봇대는 한번 박히면 뽑아낼 수가 없다. 경기를 살린다는 이유로 전봇대를 박아놓고, 우리는 항공기가 지나갈 때마다 비가 오면 물에 엄마 무덤이 떠내려갈까봐 걱정하는 청개구리처럼 제2 롯데월드의 ACAS는 “개굴개굴” 울어야 하는 것일까.
대한민국은 이명박 대통령의 나라가 아니다. 법치국가다. 국무총리실은 서둘러 행정조정협의 본위원회를 열어 공군과 롯데 간의 합의를 확정지을 것이 아니라, ‘지방자치법에 따라 롯데그룹의 재산권 행사를 제한한 것이 헌법에 위배되는지’를 물은 롯데의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부터 지켜보는 것이 순서다. 헌법에 합치한다면 못 짓게 하고, 그렇지 않다면 짓게 하면 된다. 법치국가답게 법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좋은 방법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