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년 동안 법전만 보며 고시공부를 하던 고시생이 드디어 꿈을 찾았다. 2년 전, 시민단체 인턴으로 케냐에서 어린이개발사업을 하던 중 “살아갈 터전을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체득한 박자연(30)씨. 그는 현재 이화여대 행정계약직원으로 근무하며 HoE(Hope is Education)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프로젝트를 지원할 교사와 대학생 리크루팅(recruiting)을 진행했고, 5월16일에는 8월에 있을 케냐 파견사업을 위한 모금행사를 열 예정이다.
HoE가 지원할 케냐 코어(Korr) 지역은 박씨가 활동한 곳으로, 6.6%의 어린이만이 초등교육을 받고 있다. 그곳의 유일한 학교인 티림초등학교(전교생 300여명, 정식교사 3명, 보조교사 12명)는 2008년 라이사미스주 초등학교 졸업시험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우수한 편이지만 재정 문제로 문을 닫아야 할 상황.
HoE 사업제안서에 따르면 ‘HoE 프로젝트의 1차 목표는 코어의 아이들이 누리는 작은 교육의 기회가 유지되도록 티림초등학교의 재정을 지원하는 것’이다. 학교 설립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미 지어진 학교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HoE는 재정지원에 앞서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 8월8일부터 16일까지 이화여대 사범대 성효현 교수 지도로 현직 교사 5명을 파견해 ‘교사연수프로그램’과 ‘어린이캠프’를 진행한다.
“아프리카 현지 교과서를 분석해 개선점을 찾고, 교사연수를 받지 못한 케냐 교사들에게 연수 내용을 전해주며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갑니다.”(박에스더·28·교사)
A4 두 장에 거는 기대
“뭔가 해야지, 해야지 하다 지난해 11월 제 꿈을 담은 제안서를 A4용지 두 장에 적었습니다. 한낱 종잇조각에 불과했는데 그 종이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니 3주 만에 16명이 모였어요. 직업에 따라 Strategy, Biz, Finance, PR, Design, Edu, Legal Affairs 팀 7개를 구성한 뒤부터는 아이디어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저도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은 몰랐습니다.”
박씨의 어린 시절 친구, 대학친구, 대학친구의 동료, 동생의 선후배, 동네친구의 친구, 직장 동료 등이 모인 HoE의 직업군은 실로 다양하다. 민형사 소송 전문 변호사, 해외 부동산 개발 담당 회계사, 세계적 금융회사 애널리스트, 교육지원업체 마케팅팀장, 중국진출기업 컨설턴트, 자영업자, 방송사 PD, 교사, 디자이너, 전시기획자, IT업계 관계자….
구성원 모두가 선뜻 나선 것은 아니다. 그때마다 박씨는 “대단한 사람을 원하는 게 아니다. HoE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함께 성장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설득했다.
“처음에는 많이 망설였습니다. 제가 이런 일을 할 만큼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요. 그렇지만 누군가를 도와주며 함께 성장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모금행사 때 판매할 티셔츠를 만들었는데, 앞으로도 재능을 십분 발휘하고 싶습니다.”(박미진·31·일러스트레이터)
“사회초년생인 제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HoE 조직구성원들이 발걸음을 옮기며 뭔가를 만들어낼 때마다, 저도 뭔가 이룰 수 있다는데 자부심을 느낍니다.” (김유정·29·PD)
직장생활이 고달픈 것은 내 안의 꿈을 놓치고 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HoE 구성원들은 퇴근 후 인터넷으로 원격회의를 하고, 만나서 토론하며,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사람들이 꿈꿀 수 있게 도와주는 게 꿈이라는 원종호(28·광고인)씨, 자신의 예능적인 재능을 살리는 게 꿈이라는 이모(29·금융회사 애널리스트)씨 얘기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