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호

‘쓰레기 같은 뉴스’는 필요 없어요

  • 입력2009-06-08 11: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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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명예도 도덕도 신뢰도 바닥났다”는 전직 대통령의 한탄으로 봄이 저물고, 스물아홉 살 신인 탤런트가 자살하며 남긴 ‘장자연 리스트’가 유령처럼 떠돌았다. 그렇게 봄날이 갔다.

    노무현-박연차 ‘패밀리 커넥션’의 속편은 천신일-박연차 ‘의형제 커넥션’이다. 검찰 수사가 드디어 ‘죽은 권력’에서 ‘살아있는 권력’으로 넘어가는 모양인데, 과연 전자를 다루듯이 후자도 집요하게 다룰지 지켜볼 일이다. 그런데 초장부터 어째 좀 이상하다. 검찰은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을 수사하더라도 대선자금 부분은 보지 않겠다고 했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무마하기 위해 천 회장에게 로비를 청탁했다는 부분만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천씨는 이명박 대통령과 고려대 61학번 동기다. 2007년 대선 때는 고려대 교우회장으로 고대 동문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이 대통령에게 특별당비 30억원을 빌려주는 등 사실상 후원회장 노릇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그에 대한 수사를 하다보면 당연히 대선자금이 보일 수 있다. 그런데 검찰이 보이는 것도 안 보겠다고 미리 선을 그어서야 ‘박연차 관련 건’에 대한 수사인들 사람들이 미덥게 여기겠는가.

    그렇잖아도 검찰은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도피성 출국’을 방조하지 않았느냐는 의심을 받아왔다. 한 전 청장은 ‘박연차 세무조사’ 결과를 지난해 11월 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했다고 한다. 국세청은 그 뒤 박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그런데 최근 검찰이 서울지방국세청을 압수수색하자 놀라운 점이 발견됐다. 국세청이 ‘박연차 세무조사’ 결과보고서 중 일부 항목을 누락한 채 검찰에 넘긴 것이다. 빠진 항목에는 천씨를 비롯한 여권인사와 사정기관 관계자 관련내용이 들어 있었고, 대선 직전인 2007년 11월 박씨가 천씨에게 보낸 것으로 기록된 송금전표도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검찰은 “필요하다면 한 전 청장을 소환하겠다”고 변죽을 울릴 게 아니라 당장 소환해야 한다. ‘은폐의 주역’을 빼놓고 하는 수사는 ‘죽은 권력’과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검찰의 이중 잣대만 돋보이게 할 뿐이다.



    천씨의 말대로라면 박씨는 그에게 “친동생 같은 아이”다. 원래 박씨는 천씨 동생과 친구 사이였는데, 친구가 세상을 뜬 후 그 형과 가까워져 의형제처럼 지냈다는 것이다. 아무튼 ‘살아있는 권력’의 실세이자 ‘죽은 권력’의 패밀리와도 뗄 수 없는 운명인 ‘천신일 드라마’가 ‘노무현 드라마’의 후속편으로 지겹게 이어질 것이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드라마는 ‘친이(親李)-친박(親朴) 싸움’이다. 한동안 잠복해 있던 이 싸움이 다시 불거진 이유는 4·29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한 데 있다. 친박계의 좌장 격인 김무성 의원을 원내대표에 앉혀 ‘두 나라당’을 ‘한 나라당’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는데, 박희태 대표가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에게 내놓은 안을 미국에 가 있던 박근혜 전 대표가 일언지하에 거절하면서 ‘김무성 카드’는 물거품이 됐다.

    친이-친박 싸움의 근원은 ‘이명박-박근혜의 참을 수 없는 불신’에 있다. 2007년 여름의 지독했던 대선후보 경선 이후 두 사람 간의 불신은 고질이 됐다. 이명박의 승리로 박근혜는 고개를 숙여야 했지만 무릎을 꿇은 것은 아니다. 박근혜의 힘은 지난해 총선에서 친박 후보들을 살렸고, 이번 경주 선거에서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이 밀었다는 친이계 후보를 패퇴시켰다. 더구나 아직은 이르겠지만 시간은 오히려 박근혜의 편일 수 있다. 내년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서는 당내 구도가 친박 우위로 역전될 개연성이 높다. 그러니 조기 전당대회를 연다고 해소될 문제가 아니다.

    낱개인 듯한 이 모든 문제의 밑바닥에는 권력의 사유화(私有化)가 존재한다. 권력의 사유화에는 필연적으로 크로니즘(cronyism·정실주의)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역대정권에서 숱하게 보아왔던 일이다.

    당사자는 펄쩍 뛴다고 하지만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은 ‘영일대군’으로 불린다. ‘상왕(上王)’이라는 얘기다. 모든 인사는 형으로 통한다는 ‘만사형통(萬事兄通)’, 형님이 한마디하면 논란이 종결된다는 ‘만사형결(萬事兄結)’이라는 조어도 붙어 다닌다. 여의도 정치는 형님 몫이라는 말은 이미 뉴스가 아니다. 청와대와 정부, 국가정보원 등 권력의 요소에는 빠짐없이 ‘이상득의 사람들’이 박혀있다. 예컨대 이 의원의 보좌관 출신인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은 여전한 ‘실세’다. 그는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으로 일하다가 지난해 6월 인사 전횡(專橫) 시비로 물러났던 인물이다. 그는 야인이던 지난해 말 대통령의 친구인 천씨와 함께 포스코 회장 교체에 간여했다고 한다. 그 뒤에 누가 있어 그런 무소불위(無所不爲)가 가능했겠는가.

    전임자에 대한 그림 선물 로비 의혹으로 코너에 몰려있던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지난해 말 달려간 곳도 이상득 의원의 지역구인 포항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이 의원의 지인들과 골프를 쳤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묻지 않아도 알 만한 일이다.

    대통령의 형(이상득)과 가까운 대통령의 친구(천신일)는 ‘노무현 패밀리’의 일원(박연차)과 의형제 사이다. 박연차의 돈을 먹고 구속된 추부길(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대통령의 형에게 박연차를 봐달라고 했지만 대통령의 형은 이를 거절했으니 ‘실패한 로비’라는 것이다. 대통령의 친구는 동생 같은 박연차의 딱한 처지를 모른 척할 수는 없었지만 별 역할을 못했으니 ‘잘못 없다’는 것이다. 검찰 수사로 이 묘하게 얽히고설킨 관계는 어떤 형태로든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하지만 권력의 사유화를 근절하지 못한다면 화(禍)의 씨앗은 곳곳에 뿌려질 수 있다. 6선 의원인 ‘영일대군’의 위세를 아무것도 모르는 촌사람이라던 ‘봉하대군(노건평)’에 견줄 것인가.

    심각한 문제는 이런 ‘3류 드라마’가 신문지면을 도배하고 TV 주요 뉴스를 점령하면서 정작 우리 사회의 주요 의제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청년실업이 대표적 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노트북을 켜고 쓰레기 같은 뉴스를 훑어본다. 그 다음엔 잡 코리아에 들러 구직공고를 살펴본다. 나의 주요일과는 집에서 이력서를 쓰는 것이다. 성장과정을 언급하고, 자신의 성격을 솔직히 서술하고, 특기사항과 장점을 피력한다. 학창생활에 대해 언급하고, 입사동기와 포부를 구체적으로 밝힌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거의 쓸데없는 짓이란 걸 안다. 입사지원을 하기 전에 그 회사 공채합격자의 자기소개서 파일을 찾아 복사한 뒤 거기에 맞춰 제 이력을 짜깁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소식은 없다. 나와 내 친구들은 대학을 졸업한 지 2~3년이 지났지만 대부분 직장이 없는 처지다. 온종일 집에서 인터넷을 떠돌며 잠을 청하거나 도서관에서 졸고 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설령 직장을 가졌다고 해도 잠시 땡볕을 피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한재호의 소설 ‘부코스키가 간다’(제2회 창비 장편소설상 수상작)의 주인공 나는 ‘서른 살 소년’인 청년 백수(白手)다. 용인할 수는 없지만 거부할 수도 없는 백수의 삶, 그것이 그의 ‘신종 직업’이다.

    ‘100만 실업자’ 시대라고 하지만 이는 실업률 통계에 잡힌 숫자일 뿐이다. 취업준비자, 구직단념자 등을 포함한 사실상 백수는 이미 300만명을 훌쩍 넘었다. 취업을 했다고 해도 둘 중 하나꼴로 비정규직이다. 20대는 열에 여덟아홉이 비정규직이라고 한다.

    그런 그들에게는 전직 대통령의 ‘생계형 범죄’도, ‘영일대군’의 위세도, 친이-친박의 싸움도 모두 ‘쓰레기 같은 뉴스’일 뿐이다. 노무현에게 구속영장이 떨어지든 말든, 그것이 청년 백수의 삶에 무슨 변화를 준단 말인가? 천신일-박연차의 ‘이상한 주식거래’가 그들에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친이-친박 싸움에서 어느 쪽이 이기든, 이긴 쪽에서 번듯한 일자리라도 마련해준다는 말인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는 중산층의 폭이 넓은 마름모꼴에서, 상층부와 하층부가 사회경제적으로 분리되는 8자형으로 급속하게 변화해왔다. ‘프레카리아트’는 불안정한(precarious)이란 형용사와 임금 노동자(proletariat)란 명사를 합성한 신조어다. 신자유주의 경제하에서 불안정한 고용, 노동 상황에 있는 비정규직과 실업자를 총칭한다. 8자형의 아랫부분에는 당연히 이들이 존재하고, 그중에서도 청년 백수가 맨 밑에 놓여있다(아마미야 카린·우석훈 지음 ‘성난 서울’). 나라의 미래를 담당해야 할 수많은 젊은이가 희망을 잃은 채 그저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꼴찌를 위한 갈채’는 없다. 생존경쟁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다 네가 못난 탓’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1년 전 “현 정부가 일부 부자를 위한 정부라고 비판하고, 그런 비판은 5년 내내 있을 것이다. 정부는 약자, 도움이 필요한 계층을 위해 일할 것이며 그게 선진사회로 가는 길이다. 잘되는 사람은 능력에 맞게, 약자에게는 길을 열어줘 보호 지원해야 한다. 많은 정권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오히려 빈부 격차가 더 커졌다. 새 정부는 말을 줄이고 격차도 줄여가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과연 1년이 지나는 동안 대통령은 행동으로 보여주었는가? 정부와 집권 여당은 제 몫을 다했는가? 결과는 부정적이다. 청와대와 정부 간, 정부 부처 간, 정부 여당 간 소통 없는 밀어붙이기 국정으로 혼선이 거듭됐다.

    ‘쓰레기 같은 뉴스’는  필요 없어요
    전진우

    1949년 서울출생

    동아방송 기자

    월간 신동아 편집장

    동아일보 논설실장·대기자

    現 경원대·한성대 초빙교수

    저서: 작품집 ‘하얀 행렬’ ‘서울의 땀’, 칼럼집 ‘역사에 대한 예의’


    경제 살리기는 이명박 정부의 정당성을 담보하는 1차 목표다. 그러나 그 결과 불균형이 확장된다면 ‘부자를 위한 정부’라는 비판은 정권의 정당성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199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타 센은 “발전이란 사람들이 좋은 교육기회, 사회보장 등 사회적 혜택을 통해 자아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실질적 자유의 확장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젊은이들에게 자아실현의 기회를 넓혀주는 것이다. 청년 백수들은 말한다. ‘쓰레기 같은 뉴스’는 필요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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