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권력의 해부’ 김상배 엮음/ 한울/ 341쪽/ 1만8000원
김상배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가 엮은 ‘인터넷 권력의 해부’는 ‘판단 정지’로 인해 비어 있는 우리의 지적 공백을 채워주려 시도하고 있다. 이 책은 정보사회의 사회변동에 관한 외국의 이론과 경험을 단순히 소개하기보다는 그에 비추어 우리의 경험과 현실을 미시적으로 분석하고자 하기 때문에 매우 흥미롭다.
다만 다수의 필자가 참여하는 책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 책도 각 필자의 글이 논의의 깊이나 방향, 논지의 전개에서 따로 논다는 느낌이 들어 매우 아쉽다. 게다가 일부 글은 주어진 주제에 너무 형식적으로 접근하는 안이함을 내보이고 있다. 일반 독자의 관점에서는 각 장의 내용들이 인터넷 권력이라는 주제어로 어떻게 상호 연관되는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러한 점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전체를 아우르면서 각 장의 의미와 각 장의 상호연관성을 세심하게 짚어주는 별도의 글이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1장이 형식적으로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각 글의 내용을 단순하게 요약하고 정리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의 전체적 맥락을 파악하는 데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책의 핵심은 인터넷을 사회변동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권력이동의 핵심적 현상으로 파악하고, 새로운 중심 권력으로서의 인터넷을 권력의 구조, 주체, 과정, 변화 측면에서 다채롭게 분석하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내용은 ‘새로운 사회 권력으로서 인터넷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 시스템의 변화
이 책에서 직접적으로 제시하지는 않고 있지만, 권력으로서의 인터넷이란 바로 지식체계로서의 대안적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자본주의의 등장은 정보와 지식을 독점하는 전문가 시스템의 발전을 가져왔다. 전문가 시스템이란 사회적 질서를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특정한 직업집단이 독점하는 일종의 사회적 분업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의 등장은 이러한 사회적 권력구조를 뒤흔들어놓았다. 인터넷의 등장이 인터넷 권력의 부상으로 얘기될 수 있는 이유는 이와 같이 인터넷이 기존의 독점적 전문가 시스템을 개방적이고 다중(Multi- tude)이 참여하는 비전문가 시스템으로 재구축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제1부에서 인터넷 검색, 위키피디아 및 UCC를 다룬 세 편의 글은 인터넷 권력의 등장을 전문가 시스템의 변화 측면에서 분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기술체계로서의 인터넷이 마셜 맥루한이 말하는 인간 신체 확장으로서의 미디어라는 성격으로 확장되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새로운 사회적 권력으로 등장하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인터넷이 기존의 지식체계에 대한 대안권력으로 부상하는 과정을 분석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 검색과 UCC를 다룬 글 두 편은 지나치게 현상에 집착해 각각의 실질적 의미를 효과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검색에 관한 글은 포털기업이 인터넷 검색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험적 현실에 치중하다 보니, 포털로 인한 개방적 지식체계의 상업적 왜곡이라는 측면을 너무 강조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지식검색과 새로운 지식체계에 대한 논의가 빈약하게 느껴지는 한계가 있다.
지식검색이 갖는 의미는 독점적 지식의 개방이다. 개인이 보유한 분산되고 단편적인 지식이 인터넷 검색이라는 새로운 기술체계를 통해 상호 연결되고, 이로써 개인적 지식이 집단지식으로 전화하는 새로운 지식체계가 나타나게 되었다. 이를 통해 기존의 전문가 시스템에 대한 맹목적 추종에서 비판적 거리두기가 등장했다. 전문가의 지식과 다른 대안지식과 반지식이 유포되면서, 독점적 지식의 수용과 거부가 아니라 상이한 지식과 정보에 대한 선택과 판단이 중요해진 것이다.
UCC 현상도 마찬가지로 개인적 지식의 집단지식화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 UCC에서는 전문가의 권위는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오직 다중의 선택만이 중요하다. 수용과 거부를 선택하는 다중은 기존의 전문가집단이 아니라 대부분 비전문가들이다. 따라서 UCC란 비전문가의 집단지식이 인터넷에서 권력화하는 기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반면에 위키피디아에 관한 글은 지식권력으로서의 인터넷의 등장을 근대적 지식체계의 형성과 비교하면서 나름대로 체계적으로 잘 정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위키피디아야말로 대안지식과 반지식을 체계화한 정보사회의 ‘백과전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키피디아는 그 안에 내재된 지식의 내용보다는 반전문가 시스템의 체계적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제2부는 인터넷 공간의 권력질서 구조를 분석하고 있다. 여기에 실린 세 편의 글은 한편으로는 지식권력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벌어지는 치열한 권력투쟁의 측면을, 다른 한편으로는 가상공간의 권력질서를 만들어가는 주체의 미성숙이 가져온 아노미적 무질서를 분석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획의도와는 달리 제2부는 이 책에서 가장 산만한 구성을 보이고 있다. 그저 관련되어 보이는 주제를 한데 모아놓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권력을 누가 잡느냐
인터넷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지적재산권 논쟁은 지적재산의 문제가 아니라 인터넷 권력질서를 누가 장악하느냐의 거시적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 정보사회의 토대인 지식을 둘러싼 권력투쟁을 정보공유진영과 정보자본진영 사이 대립의 관점에서 파악하고는 있지만 지식권력의 주체 형성보다는 제도적 환경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정보공유진영의 전체적인 주장과 내부적 차이와 같은 권력질서의 구축이라는 측면이 상대적으로 배제되었다. 마찬가지로 인터넷 정치토론에 대한 분석도 너무 미시적으로, 인터넷 정치토론에 참여하는 행위자의 집단심리학적 측면에 치중하고 있다. 제2부에서 다루고 있는 게임중독과 사이버범죄에 관한 글은 글 자체로서는 이해가 되지만 인터넷 권력을 다루고 있는 이 책과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제3부는 인터넷 권력의 주체라는 주제 하에서 정치 경제 및 문화의 영역을 일관되게 다루고 있다. 즉 권력주체의 문제를 정치적(사이버행동주의)으로, 경제적(프로슈머)으로, 문화적(온라인문화수용자)으로 분석한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글은 사이버 행동주의에 관한 글이다. 인터넷 행위자들의 정치적 행동양식을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이에 기초하여 실증적으로 검토함으로써 필자가 주장하는 사이버 행동주의를 인터넷 권력의 정치적 속성으로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다. 중심 없는 대중의 예측할 수 없는 순간적 형성과 소멸로 요약될 수 있는 사이버 행동주의는 인터넷 권력의 정치적 행태임을 쉽게 이해하게 된다.
반면 경제적 권력주체로서 프로슈머를 설정하고 인터넷 권력을 다루는 것은 분석적 과정이 아닌가 싶다. 감성화된 소비자에게 소비의 합리성을 제시해줄 수 있기 때문에 프로슈머가 생산자에 대한 소비자의 경제권력이라는 주장은 경제 문제를 소비 문제로 축소시키는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로슈머의 소비권력이 합리적 소비권력의 모델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소비의 절차적 합리성과 소비의 목적 합리성은 명확히 구분된다. 프로슈머의 합리적 소비란 주로 소비행위의 절차적 합리성에 불과한 측면이 크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문화권력을 다룬 글은 새롭게 형성된 문화권력의 주체와 이로 인한 권력질서의 변동을 동시에 다루고 있다.
이 글은 상징권력을 둘러싼 인터넷 권력이 기존의 전문가 시스템을 대체하여 명실상부한 실질적 권력으로 등장한 사례에 대한 미시적 분석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동류집단에 의한 문화적 사회화와 문화자본의 전수라는 분석틀로 인터넷 권력의 문화자본 형성을 설득력 있게 분석해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4부는 인터넷 권력과 세계질서를 다루고 있다. 아직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내용들이지만, 인터넷은 전세계적인 차원에서도 현실세계와 다른 권력질서를 만들어가고 있다. 인터넷 테러에 관한 글 역시 사족 같다는 인상을 받지만 글로벌 정보격차와 글로벌 사회운동에 관한 글은 인식의 지평을 넓혀준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두 글 모두 인터넷 권력이라는 측면보다는 인터넷의 활용이라는 현실에 기초하여 글을 쓰다 보니 전체적인 논지와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새로운 내용을 제시하는 학술서라기보다는 기존에 논의되어왔던 인터넷의 정치경제적 논의를 대중에게 알기 쉽게 소개하는 책이다. 다양한 주제를 다루다 보니 다수의 집필자가 참여하게 되고, 이로 인해 책 주제의 일관성이나 논지의 일관성이 다소 산만하게 구성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를 접어둔다면 인터넷과 관련된 다양한 쟁점을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