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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봄 길을 걷다가 펑펑 울었습니다. 선생님 제자라서 참 좋았 어요. 사랑합니다.

불민한 후학이 장영희 교수님을 보내며

  • 이남희│동아일보 역량강화팀 기자 irun@donga.com│

눈부신 봄 길을 걷다가 펑펑 울었습니다. 선생님 제자라서 참 좋았 어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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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봄 길을 걷다가           펑펑 울었습니다. 선생님 제자라서 참 좋았          어요. 사랑합니다.
“그때 나는 전율처럼 깨달았다. 이 사회에서는 내가 바로 그 킹콩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단지 내가 그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미워하고 짓밟고 죽이려고 한다. 기괴하고 흉측한 킹콩이 어떻게 박사과정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나 역시 내 운명을 잘 알고 있었다. 사회로부터 추방당하여 아무런 할 일 없이 남은 생을 보내야 하는 삶, 그것은 사형 선고와 다름없었다.”(수필집 ‘내 생애 단 한 번’ 중)

그는 영화관을 나와 집으로 오는 길에 토플 책을 샀다. 이듬해 8월 장학금을 약속한 뉴욕주립대로 유학을 떠났다. 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1985년, 그는 당당히 모교 강단에 섰다.

그는 교단에서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철저한 스승이었다. 100명 넘게 듣는 수업의 학생들 이름을 한 달 만에 모조리 외웠고, 시험을 보면 오답까지 일일이 체크해 학생들에게 돌려줬다. 생소한 영문학 작품도 가슴으로 느낄 수 있게 풀어내는 해설은 수업의 보너스 같은 것이었다.

선친의 뒤를 잇는 영문학자이자 최고의 수필가로 승승장구하던 어느 날. 그에게 또 다른 시련이 닥쳐왔다. 미국 하버드대 방문교수로 일하던 2001년 유방암 판정을 받은 것. 그는 수술 소식을 밖으로 알리지 않고, 그곳에서 홀로 암을 이겨냈다. ‘남들이 무서워 벌벌 떠는 암을 초전박살 냈다’고 자신을 대견해하면서 말이다.

2001년 어학연수차 미국 보스턴에 머물던 나는 우연히 교수님과 거리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그는 머나먼 이역(異域)에서 만난 제자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더없이 밝고 명랑해 보였던 교수님이 당시 ‘암과 싸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뒤늦게야 알았다.



그는 당시 잡지에 연재하던 글에도 자신이 암에 걸렸다고 고백하지 않았다. “신에게 자신이 불운의 대상으로 선택됐다는 사실에 화가 났고, 동정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이 너무나 자존심 상했기 때문”이다.

3년 후에는 척추암이 찾아왔다. 유방암이 경추 3번으로 전이돼 목과 허리에 지독한 통증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투병 소식을 감추지 않았다. 병을 훌훌 털고 일어나겠다는 의지를 한 신문에 담담히 밝혔다.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 넘어질 때마다 번번이 죽을힘 다해 다시 일어났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나는 다시 일어설 힘을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이 넘어져봤기에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몸이 불편하고 아프다보면, 짜증이 잦아지고 의욕도 사라지게 마련. 하지만 그는 암 환자라고는 상상도 못할 만큼 초연한 모습이었다. 2006년 봄 스물네 차례의 항암치료를 마친 고인을 인터뷰할 때도, 그는 오히려 투병생활을 유머러스하게 들려주며 나를 배꼽 잡게 만들었다.

“병원에 누워서 하루 종일 TV를 보는데 제일 웃기는 게 바로 화장품 광고였어. 예쁜 여배우가 광고에 나와 ‘피부가 촉촉해져요’ 하는데, 사실 피부가 촉촉하고 말고의 문제는 ‘죽느냐 사느냐’에 비하면 정말 사소한 거잖아. 항암치료를 받으며 피부가 거칠어진 나는 아무리 좋은 화장품을 써도 소용이 없는데…. 병실에 앉아서 세상을 보니, 사람들이 가치 없는 것들에 가치를 지나치게 부여하는 한심한 상황이 벌어지더라고. 그런데 더 재밌는 게 뭔지 알아? 퇴원을 하고 보니 나도 다시 화장품 광고에 귀가 솔깃해지는 거야. 호호.”

그토록 고통스럽다는 항암치료 과정을 얘기할 때도 교수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밝은 표정은 여전했다. 육체적 통증이 그를 괴롭힐수록 그의 정신은 더욱 명징해지는 듯했다.

“한 번 방사선을 쐬면 식도가 같이 타 들어가. 그래서 물 한 모금을 마셔도 칼 조각을 삼키는 것 같이 괴롭더라고. 암이라는 병 덕분에 요즘 내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공부를 하고 있어. 내 몸이 얼마나 소중한지, 또 나의 아픔을 통해 남의 아픔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거지.”

정 많은 선배, 엄격한 스승

암 투병 중에도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글을 왕성하게 썼다. 올해 안식년을 갖기 전까지 학교에서 교양영어 주임을 맡았다.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증을 끊고 나와 교수회의를 주재할 만큼 일처리에 빈틈이 없었다. 그뿐인가. 학교 행사에도 발 벗고 나섰다. 2005년 11월 ‘서강대 영문과 후원의 밤’ 준비위원장을 맡아 행사를 성공리에 마쳤다.

그는 2006년 7월부터 2008년 6월까지 ‘동아일보’에 칼럼을 쓰기도 했다. “힘든 여건 속에서도 마감 시간 어긴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이 칼럼 편집인의 회고다.

“교수님,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라고 할 때마다 그는 “글을 쓰던 사람이 갑자기 그만두면 금단증상 같은 게 생긴다”고 말했다. ‘무언가 할 일이 있다’는 것은 그에게 삶의 큰 의미가 됐다.

그의 죽음 이후, 각종 기사와 인터넷 블로그에는 그의 헌신적 제자 사랑을 회고하는 이야기가 넘쳐난다.

“잔인할 정도로 빡빡한 수업을 종강하던 날, 교수님이 직접 만든 책갈피를 자신의 책에 끼워 선물로 주셔서 감동했다.”

“한 번도 수업을 들은 적 없는 제자를 위해 교수님이 추천서를 써주신 덕분에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교수님 방에 청첩장을 놓고 왔더니 ‘너희의 우주 같은 사랑을 축하한다’는 메일과 책 선물을 보내주셨다.”

작은 부분까지 섬세하게 배려함으로써 주변 사람에게 큰 행복을 선사하는 것은 교수님의 장기다.

정 많고 따뜻한 교수님. 그러나 내게는 엄격하고 무서운 스승이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난 교수님께 칭찬보다 꾸중을 들은 적이 더 많다. 2000년 학부 조교 시절, 나는 일을 어설프게 처리했다가 교수님께 혼이 빠질 만큼 야단맞았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심장이 콩닥거린다. 당신에게 지독히 엄격했던 만큼, 교수님은 학교 안에서 학생들에게 누구보다 깐깐하게 원칙을 내세웠다. 당시 교수님께 혼나면서 새긴 교훈은 ‘변명은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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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희│동아일보 역량강화팀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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