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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 기자의 Face to Face ⑤

한국 경찰의 자존심 황운하 총경

“경찰은 정치권력에 굴종하고 알아서 기는 습성 버려야”

  • 조성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한국 경찰의 자존심 황운하 총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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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찰의 자존심 황운하 총경

2008년 7월 대전 유천동 성매매 집결지 해체를 진두지휘한 황운하 총경.

‘부당한 인사’에 이골이 난 탓일까. 원칙주의자적인 기질 때문일까. 속내야 어쨌든 자신의 뜻이 무시된 인사에 대해 그다지 낙담하지 않는 태도다. 하긴 생활안전과장 발령을 얼토당토않은 인사라고 단정할 수도 없는 게 그의 말마따나 업무 관련성이 있기 때문이다.

“밤길 조심하라”

생활안전과의 주요 업무는 성매매업소와 불법오락실 단속이다. 지난해 그는 대전중부경찰서장으로 근무하면서 속칭 ‘방석집’으로 유명한 유천동 성매매집결지를 해체하는 성과를 거뒀다. 몸이 몇 개로 잘려도 죽지 않고 꿈틀거리는 뱀처럼 여간해 근절되지 않는 게 성매매업소지만, 적어도 유천동에서는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당시 그의 활약상을 보도한 일간지 기사 중엔 이런 구절이 있다.

“이번 단속이 관심을 끄는 것은 경찰이 거의 30년 만에 처음으로 이 거리의 완전 해체를 공언한 데다 황 서장이 경찰 내부에서 소신파로 통하는 인물이기 때문.”(동아일보 2008년 8월1일자)

황 총경이 새 임지로 와서 내건 표어가 ‘성매매 없는 클린 대전’이다. 성매매 유형은 업소형과 비업소형으로 나뉜다. 업소형은 안마나 마사지 등의 간판을 내걸고 성매매를 일삼는 것이다. 인터넷 채팅으로 만나 성매매를 하는 건 비업소형으로 분류된다. 업소형은 다시 전업형과 겸업형으로 구분된다. 전업형은 집창촌이나 마사지업소 등 성매매를 주영업으로 하는 곳이고, 겸업형은 룸살롱이나 안마시술소 등 주영업 행태가 따로 있고 이른바 ‘2차’가 부업인 곳이다.



그가 성매매와의 전쟁을 선포하게 된 계기는 뭘까.

“유천동 업소에서 빠져나온 여성들이 여성단체 상담과 언론 접촉 등을 통해 감금과 갈취 실태를 폭로했다. 경찰을 불신하기에 신고나 고소 같은 건 없었다. 지역주민들 사이에서 ‘경찰은 뭐 하냐’는 소리가 나왔다. 인권유린 실태가 심각한데도 성매매 집결지를 방치하는 건 업소와 유착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비난이었다. 유천동 집결지가 존속하는 한 경찰의 자존심과 명예를 얘기하지 못하겠더라. 그래서 재임기간 중 유천동 집결지를 없애야겠다고 다짐했다.”

공교롭게도 유천동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중구 산성동의 바로 옆 동네다. 고향친구들 중에 업주의 친구도 있었다. “밤길 조심하라”는 업주의 협박성 발언이 전해졌다. 경찰 내부에서도 냉소적 시각이 있었다. 밖에서는 경찰과 업소의 유착 의혹, 업주의 강력한 저항 등을 들어 실패할 거라 예상했다. 그의 고집을 과소평가한 탓이었다.

그가 진두지휘한 성매매와의 전쟁은 두 달 만에 승리로 끝났다. 30년 전부터 1년 365일 내내 불이 꺼진 적 없던 유천동 업소가 암흑가로 변한 것. 처음엔 서장이 바뀔 때마다 벌이는 의례적 행사로 여겼던 업주들은 황운하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나서는 하나 둘씩 업소 문을 닫고 떠났다. 네온사인과 대형 간판이 내려지고 반라의 여성들이 ‘진열’돼 있던 쇼윈도가 텅 비워졌다. 경찰의 끈질긴 단속과 지속적인 감시 외에 구청과 세무서, 소방서, 시민단체 등 외곽 단체의 지원사격도 한몫했다. 그 결과 전체 67개 업소가 모조리 문을 닫았고 300여 명의 여성이 떠났다.

“성매매업소는 부패의 온상이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장을 맡으면 강남 지역의 대형 성매매업소를 완전히 거덜 낼 작정이었다.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을 투자한 불법업소를 계속 운영하려면 경찰의 협조가 불가피하다. 경찰이 집요한 로비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유천동 집결지 해체로 우리 사회 부패의 한 축, 부패의 큰 서식처 하나가 제거됐다. 국민에게 ‘클린 경찰’의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

한국 경찰의 자존심 황운하 총경

황운하 총경이 집무실인 대전경찰청 생활안전과장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고향에서 두 차례 서장 지내

유천동 업주들 중 일부는 서장이 바뀐 후 영업을 재개할 속셈으로 경찰간부 인사를 눈 빠지게 기다렸다. 서장의 임기는 통상 1년. 황 총경이 떠나긴 했지만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그가 다른 곳도 아닌 하필 성매매 단속을 총괄 지휘하는 대전경찰청 생활안전과장으로 부임했기 때문이다.

오는 6월 대전경찰청 신청사가 들어설 지역은 황 총경이 유성과 더불어 2차 성매매 전쟁의 표적으로 꼽고 있는 서구 둔산동이다. 둔산동은 대전에서 가장 번화한 신시가지이고 유성은 관광지다. 연구단지가 많이 들어선 유성구는 전반적으로 청정한 이미지를 풍기는데, 유흥업소가 밀집한 봉명동에 성매매업소가 즐비하다. 두 지역에서 벌일 성매매 전쟁은 유천동과는 다른 양상을 띨 것이라는 게 황 총경의 조심스러운 예상이다.

“두 지역에는 신종·변종 성매매업소가 범람한다. 완전한 근절은 어렵겠지만 적어도 업소형 성매매는 뿌리를 뽑으려 한다. 하지만 유천동에서처럼 시민들의 큰 공감을 끌어낼지는 알 수 없다. 유천동 집결지를 척결하는 명분은 인권이었다. 유성과 둔산의 성매매 양상은 그와는 조금 다르다. 지역경제 위축을 내세워 경찰의 단속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도 예상된다. 또 안마시술소 단속은 시각장애인들의 생존권과 충돌할 수 있다. 일단 유천동처럼 인권 차원에서 접근하려 한다.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성매매업소에 종사하는 여성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비행환경 속에서 자라나 어쩔 수 없이 성매매 하는 것을 자발적이라고 할 순 없다. 사회가 책임져야 할 일이다. 최근 그 지역의 한 안마시술소를 조사했는데, 여종업원을 감금하고 ‘삼촌’들에게 시범이라며 성적 서비스를 강요하고 구타를 자행한 사실이 적발됐다.”

유흥업소에서 ‘삼촌’이란 일본말 ‘기도’라 불리는 관리직원을 일컫는다. 경찰력을 투입해 집중단속을 펼치는 한편 대전시의 지원을 받아 성매매 근절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인다는 것이 황 총경의 복안이다. 아울러 구청과 소방서, 세무서 등 유관기관과 협조체제를 구축해 업소들을 압박할 계획이다.

그는 대전에서 경찰서장을 두 차례 지냈다. 2006년 3월 경찰청 수사구조개혁팀장이던 그가 대전서부경찰서장으로 부임한 것은 그의 뜻이 아니었다. 2006년 1월 경찰수사권 독립을 강력히 추진하던 허준영 경찰청장이 농민시위대 사망사건으로 퇴진하는 일이 없었더라면 인사이동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수사구조개혁팀에서 더 일하길 바랐지만 새 수뇌부는 그의 열정을 식히기로 결정했다. 이후 수사권 독립운동은 추동력을 잃고 표류하다 결국 흐지부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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